핵의 평화 생명의 평화
도석스님 지음 / 열린아트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버려지고 또 버려지고...세 번 버려진 억울한 영혼들이여

"죽은 나의 시체를 일본 대사관 앞에 두고 여러 사람의 눈에 띄게 하라. 나도 면목이 없지만 외국인이라 하여 피폭자를 방치한 일본정부는 더욱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본문 121쪽

1975년 봄, 30년간 원폭피해 후유증에 시달리던 이남수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이렇게 유언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원폭 피해자나 그의 후손이 뼈저린 절망 앞에 목숨을 끊으려 할지도 모른다.

혹자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이미 30년이나 지났는데 지금까지 이남수씨처럼 목숨 끊을 만큼 나라에서 그냥 두었겠는가? 옛날만큼 못사는 것도 아닌데 나라에서 보상 없이 그대로 있을 것인가' 라고.

이남수씨가 목숨을 스스로 끊기 1년 전인 74년 손진두씨는 7년 동안의 외로운 재판 끝에 '한국인도 <피폭자 수첩>을 받을 수 있다'는 권리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일본은 바로 '후생성 402호' 규정을 두어 수첩 소지자가 일본 영토를 벗어나는 순간 지원을 받을 수 없게끔 만들고 말았다.

손진두씨가 외로운 투쟁으로 얻어내고 싶었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지는 순간 일제에 징용당해 끌려간 7만의 한국인이 피해자가 되었다. 그 순간 4만 명이 죽고 3만 명은 후유증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60년이 지난 지금 대다수는 한을 풀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고, 10% 피해자가 생존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원폭 피해자가 부모임을 숨겨야만 하는 억울한 삶을 살고 있다.)

이남수씨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는가? 손진두씨는 왜 외로운 투쟁을 해야만 했는가?

▲ 자수공예가인 스님은 지난 10여 년간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버림받은 우리 피폭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와 추모사업을 해왔다 .또 원폭투하로 희생된 영혼들 중 명단이 확인된 2914위의 무연고 영령을 우리 땅에 모셔와 평안을 기도하고 있다.
이들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생자들 7만여 명 중 일부일 뿐이다. 한사람은 고국조차 외면하고 있는 그들의 권리를 위하여 투쟁했고, 또 한사람은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억울한 고통과 한을 단 한사람에게라도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 원폭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는 어떤 태도인가. 그들의 고국인 우리나라 정부는 또 어떤 태도인가. 우리들은 그들에 대해서, 그들의 고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일본이 외면한 것도 억울한데 우리 스스로 그들을 버리고 있지 않은가.

억울하게 끌려가 피폭의 고통으로 버림 받았고, 일본의 전쟁야욕으로 피폭 당했음에도 적절한 보상은 물론 마땅한 사과조차 받지 못한채 버림 받았다. 그리고 제 백성을 지켜내지 못한 조국에게 다시 버림받았다.

그들은 이렇게 세 번 버림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평화라는 화두를 들기까지...

"나는 지극히 평범한 승려입니다. 그런 내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60년 전 일본 땅에서 원폭에 죽어 간 7만 여명의 한민족 영령들과, 지금도 원폭의 고통 속에 방치된 채 처절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1세와 그들 2세의 존재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도석스님은 비교적 어린 나이인 여고생 때 전통자수와 접했다. 1970년에는 일본의 기모노나 오비에 수를 놓아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던 시절이었다.또한 1978년부터는 대한무역진흥공사에서 중간 연결자 없이 직접교역이 가능한 길을 열어주었다.

기모노 하나에 자수를 완성하면 당시 3~4천만원은 쉽게 받을 수 있었으며. 고급품에 1~2년을 걸려 수를 놓아주면 1억원이 넘는 대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

ⓒ2005 열린아트
이런 돈벌이의 단순한 거래처였던 일본에 이제는 그들의 평화를 가장한 이중성에 맞서는 선두가 되었다. 스님은 말한다.

"일본인에게 고문당한 후유증으로 정신병자라는 손가락질을 받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도, 일본에 수를 놓아 돈을 벌었던 지난 시절도, 죽은 목숨으로 타의에 불가에 입문하여 스님이 된 것도 모두 지금 이 길을 가기 위한 인연이었다."

어떻게 스님이 되었는지, 우리 불교계의 큰 별 성수스님과의 인연이 어떻게 닿았는지 보다는 도석스님의 피폭자들에 대한 거룩한 발원에 더 주목하여 마음으로 읽어 보았으면 한다.

혹시라도 스님이 쓴 글이니 종교서 쯤으로 생각하여 외면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이 책의 초점은 스님의 평화에 대한 화두다. 억울한 우리 피폭자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것들과 정부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이다.

일본은, 자국의 원폭 자들에 대해 대대한 지원을 하는가하면 원폭의 후유증으로 죽어간 소녀마저 이용하여 자국의 평화를 위장하는데 혈안이면서 자신들의 전쟁야욕으로 희생된 한국인 피폭자들에게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그럼 그들의 조국인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 중 얼마가 그들의 고통을 아는가?

이 책을 통하여 저희가 스스로 저지른 전쟁의 부끄러움도 평화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세계에 원폭의 피해자라 하소연하는 뻔뻔스런 그들의 실체를 낱낱이 보기 바란다. 아울러, 해방이라는 이름 뒤에 억울한 피폭으로 버려진 우리 동포들의 아픔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헤아리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일본에 대해 알고 싶거든 반드시 읽어라

ⓒ2005 열린아트
책 속에는 도석스님의 원폭 피해자자들에 대한 거룩하고 원대한 서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 한나절 읽을 수 있을 만큼 글들은 속속 스며든다. 마음속에 그대로 소름끼치도록 깊은 자각과 감동으로 스며드는 글들이다.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원폭 피해자들의 아픔에 나처럼 부끄러워하기를 바란다. 또한 그 부끄러움에 울고 싶기를 바란다. 나아가 원폭 피해자자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들에게 힘이 되는 마음의 동참이든 물질적인 동참이든 적극 나서길 바란다.

아쉽다면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선뜻 동참할 수 있는 경로를 덧붙여두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이제라도 수정을 하여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동참을 할 수 있게 독려했으면 좋겠다.

일본정부의 마땅한 사과와, 고국의 든든한 지원 못지않게 우리들에게 같은 동포라는 끈끈한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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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0-2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아픈 글은 사실 손이 잘 안 가는데...하지만 외면하다고 피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읽어보고 싶네요.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