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허기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두 대원을 남겨놓고 산을 내려갔다. 굶어 죽으나 일본군에게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배를 움켜쥐고 몇 시간을 헤맨 끝에 간신히 마을을 찾았다. 집이 일고여덟 채밖에 되지 않는 화전 마을이다. 나는 삽짝이 열린 집으로 들어가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문이 덜컹 열리고 몽둥이를 든 우락부락한 사내가 뛰어나왔다. "너는 러시아에 입적한 자가 분명하다. 너희 때문에 우리가 다 죽게 생겼어."

집주인이 몽둥이로 나를 때리고 사람들을 불러 묶으려고 했다. 러시아에 입적했다는 것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자를 말한다. 나는 그들과 싸울 수가 없어서 황급히 몸을 피했는데 골목에 일본군이 있었다. 가슴이 철렁하여 재빨리 피하려는데 일본군이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총을 쏘았다. 다행히 탄환이 뺨을 스쳤으나 맞지는 않아서 산속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이제는 동포들도 우리를 배신하는구나.' - <안중근 불멸의 기억> 중에서
 

<안중근 불멸의 기억>(추수밭 펴냄)의 한 장면이다. 무장투쟁에 패배, 동지들과 함께 살길을 모색하던 안중근은 이렇게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이듬해 10월,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처단한다. 이야기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일본의 협박과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등 국운이 풍전등화에 이르자 안중근은 민족의 살길을 모색하고자 상해로 떠난다. 그 무엇보다 나라를 구할 구국영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귀국 후 청계동에서 진남포로 이사(1906년), 삼흥 학교를 설립하고 돈의 학교를 인수하여 구국영재 양성에 나선다.

한편으로 안창호와 이준 열사 등의 애국지사들을 초빙하여 강연회를 열어 애국심을 고취하는 계몽운동을 펼친다.

그런 중에 이준 열사가 헤이그에서 분사하고 그 때문에 고종황제가 강제로 퇴위 당한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해버리고 만다. 이에 분노한 안중근은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결심한다. 그리하여 만주를 누비며 의병을 모아 최재형 등과 함께 무장투쟁(항일운동)을 시작한다.

"나는 얀치헤의 의병과 홍범도 부대와 연합하여 국내 진격작전을 전개하면 국권회복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에 일본군은 대규모 병력을 두만강 일대에 배치하는 등 수비를 강화한다. 안중근은 두만강 일대를 넘나들며 일본 수비대를 공격, 국내 진격작전을 벌이지만 그러나 결국 참담하게 패배하고 만다. 독립군들의 의기는 충천했지만, 소지한 총이 제각기 다르다거나 전투력이 떨어지는 등 여러 조건에서 일본보다 훨씬 불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립군(의병)들을 더욱 곤경으로 빠뜨린 것은 일본이 독립군들을 잡고자 민간에 심어둔 밀정과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에 협력하는 사람들인 '일진회'. 이는 일본인으로 그치지 않았다. 독립군에게 밥 한 덩이라도 베풀면 마을 전체 일본군의 보복을 당하기도 했기 때문에 밥을 주고 안심시킨 다음 일본군에게 신고하여 사지로 몰아넣는 동포도 많았다.

또한 러일 전쟁 후까지 계속된 러시아와 일본 간의 민감한 문제들로 러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한인)들이 살해당하거나 강제 이주되는 등, 무참하게 희생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독립군들을 힘들게 한다. 그리하여 독립군들은 졸지에 '러시아에 입적한 자'가 되어 몰매를 맞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참담함을 안중근은 또한 이렇게 회상한다.

"…그 동포의 집에서 며칠 동안 쉬며 비로소 옷을 벗자 거의 다 썩어서 몸을 가릴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이까지 득실거렸다. 나는 6월 23일(1908년) 이후 12일 동안 회령군을 벗어나지 못하고 폭우 속에서 길을 잃고 지냈다. 하룻밤도 집에서 자지 못하고 산속에서 뒹굴며 겪은 고초는 붓 한 자루로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 노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안중근, 동지들의 원혼 때문에 참담하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며 방황하던 그는 1909년 2월 7일, 김기룡 등 11인과 함께 "3년 안에 어떤 일이 있어도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와 매국노 이완용을 처단하리라. 거사가 성공하면 침체에 빠진 독립운동이 활력을 찾을 수 있으리라"며 손가락을 끊어 혈서로써 '대한독립'을 결의한다. 그 유명한 '단지동맹'이다.

그리고 몇 달 후인 10월 26일 하얼빈역. 우리 민족의 원흉이자 동아시아 평화를 짓밟은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의 저격으로 사살, 처단된다. 당시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세기의 사건으로 일본의 침략과 만행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항일투쟁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러시아와 중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범행의 동기는 무엇인가?"
"첫 번째 대한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두 번째 대한제국 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킨 죄, 세 번째 을사5조약과 정미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네 번째 무고한 조선인을 학살한 죄, 다섯 번째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여덟 번째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한 죄,…열다섯 번째…" - 책속에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법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의 일방적이고도 강압적인 분위기의 재판을 받으면서도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로 '이토 히로부미를 반드시 처단해야 하는 15항목'과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이유)를 조목조목 설파함으로써 일본과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다. 당시 세계 언론은 이 세기의 재판-사형까지 6차례-을 연일 톱뉴스로 다뤘다고 한다.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의거 100주년을 기념하며! 

돌아오는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은 이를 기념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팩션형 역사서를 정착시켰다는 평을 듣는 이수광씨, 책은 두 갈래로 영웅 안중근과 인간 안중근을 우리와 만나게 한다.  

한 갈래는 저자가 안중근과 당시 러시아에서 독립군의 대부로 알려졌던 최재형의 흔적을 찾아 떠난 10일간의 여정이다. 저자는 수많은 독립군들이 항일투쟁을 하던 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기행하며 그들의 흔적을 찾아 들려준다. 그 땅은 또한 100여 년 전 일제의 탄압과 굶주림에 지쳐 모여든 수많은 한인들이 살던 곳이다. 그들의 흔적도 들려준다. 

저자의 마지막 여정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4분 안중근 의사가 교수형을 당한 여순감옥서. 교수형이 집행되는 순간 시신은 교수대 아래에 있는 침관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이 침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관과 많이 다르단다. 침관의 길이는 겨우 1m. 그러니 시신은 구겨져서 들어가야 한다. 일본은 이처럼 사자에 대해서도 인권을 침해했다. 

안중근도 마찬가지, 그 역시 침관에 구겨진 채로 박혀 삶의 마지막을 끝냈으리라. 책에는 이 침관 사진이 실려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런 침관에 구겨진 채로 묻혔다는 사실을 안 그 순간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어떤 표현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먹먹해지는, 치오르는 분노, 이 비장한 슬픔들을 어찌 설명할까?

<안중근 불멸의 기억> 나머지 한 갈래는 안중근이 회상하는 자신의 서른두 살 삶이다. 사형을 하루 앞둔, 자신의 삶 그 마지막 밤인 1910년 3월 25일, 안중근 의사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자신의 생애를 반추하며 기억의 파편들을 끌어 모은다.

3천석 지기 부유한 집안 장손으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유년시절, 일본군의 총과 화약을 구해 총 쏘기에 몰두한 나머지 당시 어지간한 호랑이 몰이꾼들보다 총을 잘 쐈던 청소년기, 결혼과 성령에 충만한 전교활동, 거사를 준비하고 실행하기까지 등 안중근의 삶이 순서적으로 그려지는데 안중근의 회상 형식이라 이야기는 훨씬 진실하게 와 닿는다.

옥중 안중근은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한다. 또한 동지들이 처참하게 죽어간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아내의 품속을 그리워한다. 그는 또한 하얼빈 거사를 앞두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거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의 품속에서 편안하게 살아갈까 흔들리기도 한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달리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이다.

그리하여 '어? 정말 안중근이 이랬을까?' 처음에는 이런 반감도 있었다. 그런데 책을 모두 읽고 며칠 동안 자꾸 생각나는 것은 정작 안중근 의사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다. 안중근 뿐이랴. 우리에게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도, 군복도 무기도 없이 두만강과 백두산 일대에서 이름없는 들풀로 피고지던 수많은 의병들 또한 그랬으리라.

저자는 안중근 유적지 답사를 통해 영웅 안중근을 우리에게 만나게 하는 한편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집필했다는 <안응칠 자서전>을 바탕으로 안중근의 내면 세계를 세심하게 묘사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영웅으로 부각된 인간 안중근을 만나게 한다. 안중근에게 감화를 받은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의 이야기 또한 드라마틱하다.

저자는 이 책을 쓰고자 3년간 현지를 답사했단다. 때문일까? 저자가 안중근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면서 누군가의 나래이션을 듣는 듯,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다니는 것처럼 생생하게 와 닿는다. 하얼빈 의거를 하기까지의 과정과 당시 러시아의 정치 상황까지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단지동맹비와 단지동맹터,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걸린 안중근 의사가 머물던 집, 여순감옥서와 침관, 안중근의 가족과 면회를 동생 공근·정근이 면회를 하고 있는 장면, 이토 히로부미는 파렴치한 독재자요 안중근을 월계관을 쓴 영웅이라고 보도한 영국 <더 그래픽> 보도 기록 등, 책에는 당시의 기록 사진과 저자가 답사 중에 찍은 사진 또한 풍성하다.
 
'우리는 안중근의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10월 26일이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삶을 던져 민족의 원흉을 제거한 날이라는 걸 몇이나 알까? 우리들은 영웅들을 역사 속에 박제화 시켜놓고 나라와 사람을 구하는 일은 그들이나 하는 거창한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분분하던 생각들이다. 작가는 압록강 철교 위에서 탄식한다.

"목숨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치열하게 독립 투쟁을 한 선열들에게 부끄러워해야 한다.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민족은 또다시 역사의 횡포를 만날 것이고, 역사를 통찰할 줄 모르는 민족은 미래로 전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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