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무한육면각체
장용민 지음
리뷰어: 이다혜(북칼럼니스트)
천재가 예술 작품 속에 비밀코드를 심어놓았다……. 댄 브라운의 2003년 작 『다빈치 코드』(안종설 옮김, 문학수첩 펴냄)가 팩션 붐을 일으키기 전, 한국에도 팩션의 바람이 불었다. 그 주인공은 1997년에 출간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의 장용민이었다. (1993년에 발표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세계사 펴냄)도 빼놓을 순 없으리라.) 2013년 작 『궁극의 아이』과 2014년 작 『불로의 인형』(모두 엘릭시르 펴냄)의 장용민이 처음 발표한 이 장편소설이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비밀’이 제목에서 빠진 셈인데, 그러고 보면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말 자체가 이미 퍼즐과 같고 비밀 그 자체로 보이니 당연한 결정일지도 모르겠다. ‘장용민 월드’라고 불러도 좋을, 한국적인 상황과 역사에 매력적인 재해석과 추리를 더해 만들어낸 작품들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건축무한육면각체』가 풀고자 하는 암호는 이상의 시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뜻은 몰라도 외워 놀기 좋았던 음률을 지닌 이상의 시에 큰 비밀이 숨어 있다는 설정은, 이상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김재희의 2012년 작 『경성 탐정 이상』(시공사 펴냄)이 경성 시절의 이상을 소설가 구보 박태원과 콤비를 이루는 탐정으로 등장시켰다면,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이상이 남긴 암호를 현대(2006년)의 우리들이 풀어간다는 구성을 취했다. 책의 목차부터 기발하다. 사람은 사람의 객관을 버리라-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사람은 숫자를 버리라-우리들은 이것에 관하여 무관심하다-영원한 망각은 망각을 모두 구한다-사각의 이름을 발표하다…. 당연하게도 프롤로그는 설명도 없이,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전문인용이다. 소설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가상의 해설판이기도 한 것이다. 장용민은 이상의 삶을 그의 작품과 병치시키고, 현재 시점에서 그의 시를 해석하는 두 인물을 집어넣었다.
첫 번째 미스터리. 후일 이상이라고 불리게 되는 김해경은 본디 천재적인 건축가였다. 그는 서울대 공대의 전신인 경성 공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조선총독부 산하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 그는 1929년에 설계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바로 그 해, 그의 건축물이 조선건축학회의 기관지 《조선과 건축》에서 1등과 3등으로 뽑혔다. 그리고 1930년부터 1931년 사이의 기간, 그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1932년이 되어 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상이라는 이름으로였다.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하면서. 대체 그 1년여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두 번째 미스터리. 서울역 구 역사의 대합실 중앙, 붉은 대리석과 검은색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등장한다. 세 개의 육면각체가 서로 직각으로 맞물리며 중앙으로 이어진 문양 한가운데는 천황을 상징하는 열여섯 개의 잎을 가진 국화 문양이 자리 잡았다. 이것을 삼종신기라고 한다. 일본 천황은 왕위에 오를 때 선대 천황으로부터 세 가지 보물을 물려받는데, 이 또한 삼종신기라 부른다. 삼종신기가 단군신화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잠시 등장하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 중 단 세 곳에만 삼종신기가 새겨져 있음을 지적한다. 그 세 건물은 철거된 중앙청, 서울시청, 그리고 서울역이다. 왜 이 세 건물에만 삼종신기를 그려 넣었을까? 그리고 서울역 바닥에 이 문양을 넣도록 지시한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라는 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단서들을 조합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인물은 소설가 지망생이자 졸업 논문에 시달리던 지우, 그리고 그에게 이상에 관한 소설을 써보지 않겠냐고 제의한 수수께끼의 인물 은표다. 소설이 시작되면, 지우는 사라진 은표가 “전부 사실이었어”라는 음성 메시지와 함께 그간 모은 자료를 자신에게 넘겼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지우는 은표가 뭘 하는 사람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지우와 은표의 시점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구성이며, 책을 읽어갈수록 책 속 설명을 검색창에 계속 넣으며 찾아보게 만드는 마성의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때의 보물찾기하는 기분이 되살아나는 재독이었는데, 그새 검색이 용이해지니 책의 내용을 확인해가며 새삼 놀라는 재미가 있다. 추리 내용을 설명할 때의 매끈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과 달리, 지우나 은표의 심경을 묘사하는 대목들은 비유나 형용사가 다소 치덕거린다는 약점도 있다.
P.S. 소설은 1996년 한국영화진흥공사 주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신은경, 이민우, 김태우 등이 주연한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1999년 개봉했다. 굳이 영화를 먼저 보고 싶은 독자를 말리고 싶은 기분이며, 소설을 읽은 뒤 보고 싶다는 독자도 말리고 싶은 기분이지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니까 당신의 선택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