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

by 안토니오 타부키


리뷰어: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




실제 사건의 요약. 1996년 5월, 포르투갈 리스본 교외 사카벵 지역에서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됐다. 신원은 스물다섯 살 청년 카를루스 호자로 밝혀졌고, 좀 떨어진 곳에 묻힌 머리에는 총상이 있었으며 몸에도 고문당한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남아 있었다. 피해자는 사카벵 국가방위대 경찰서에서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부검에 ‘실패’해서 피해자가 고문을 받았는지 확언할 수 없으며 사망 원인 또한 총상인지 머리 절단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고 발표했다. 


다음은 안토니오 타부키의 1997년 소설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이후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요약이다. 공원에서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되고, 얼마 후 피해자의 머리가 강에서 발견된다. 기자 일보다는 죄르지 루카치와 포르투갈 소설의 네오리얼리즘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피르미누는 큰 열의 없이 이 사건을 취재하러 포르투로 내려간다. 피해자의 정체는 스물여덞 살 청년 다마세누 몬테이루였다. 익명의 제보자는 몬테이루를 고문하고 죽인 뒤 유기한 범인이 국가방위대의 티타니우 실바 경위라고 알려준다. 피르미누는 배우 찰스 로튼을 닮은 변호사 페르난두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한다.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다마세누 몬테이루』는 전통적인 미스터리 구조와는 꽤 다르게 진행된다. 이 사건에는 확실한 목격자가 있었기 때문에, 머리 없는 시체의 신원도 범인의 정체도 초반부터 밝혀진다. 문제는 이 목격자의 증언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도록 막는 힘의 정체, 소설 속 용어를 빌리자면 ‘밀리건 카드 게임’의 메커니즘이 무엇이냐다. “[밀리건] 게임을 하는 사람은 다른 게임 참가자와 협력을 주장하지만 사실은 상대의 선택 폭을 제한하기 위해 함정을 만들 궁리를 하면서 카드를 차례로 늘어놓는다는 거요.”  


이 게임에서 계속 문제시되는 핵심은 근본규범이다. 근본규범은 본래 오스트리아의 법학자 한스 켈젠이 제시한 개념으로, “법의 타당성의 근거로서 가설적으로 설정된 궁극적인 최고의 규범”, 이를테면 우리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인간 행위의 근본이 되는, 법 위의 법이 되는 초월적이며 형이상학적 규범이다. 이것은 포르투갈이라는 국가에서(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사기관 국가방위대를 통해 “진짜 멋지게 구체화”된다. 국가방위대원이 마약을 밀수한 뒤 대규모 나이트클럽에서 비싸게 밀매하고 그 비밀이 보잘것없는 청년에게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도, “높은 애국심, 진정한 가치 보호, 범죄와의 전쟁, 국가에 대한 완벽한 신뢰”라는 ‘원칙’을 내세운다. 그는 모든 것이 오해이고 사소한 실수들이 중첩되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을 뿐이라고, ‘국가’에 대한 충심으로 빚어진 당황스러운 해프닝이라고 호소한다.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변호사 페르난두는 새삼스럽게 격분하거나 절망하지 않은 채, 무덤덤한 어조로 말한다. 





“난 고문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 왠지 알겠소? 고문은 개인의 책임이요.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들 하지만 용납할 수는 없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상관의 명령이라는 초라한 변명 뒤에 몸을 숨기고 합법적으로 발뺌하며 자신을 지키지요. 이해하겠소? 근본규범 뒤에 숨는 거요.”





페르난두는 “우리는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파괴 충동을 누를 수 없기 때문이 고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인간은 사악하다’이기 때문에 체념해야 한다”는 독일의 정신분석가 알렉산더 미체를리히의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한때 고문에 관한 글쓰기를 꿈꾸었지만, 미체를리히의 문장 앞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꿈을 포기했다. 대신 “고문당하는 사람들을 변호하기 위해 법원에 가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아직 자신이 정확히 뭘 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써야 하고 따라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젊은 기자 피르미누에게, 문학이 역사의 중요한 증거이며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페르난두는 법원에서, 피르미누는 원고지 위에서 밀리건 게임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책략을 거듭 모색해야 한다.


다마세누 몬테이루가 잠시 동안 잃었던 머리는 타락한 공권력에 의해 부정당하고 사탕발림의 ‘근본규범’ 미로 속에서 영영 길을 잃게 되었다. 미스터리는 진작 풀렸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격자는 계속 나올 수 있다. 나오게 되며, 나와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는 달리 보일 수도 있는데, 거미줄, 그러니까 은밀하게 연결되고 비현실적으로 결합되고 이해할 수 없는 우연의 일치들로 이루어진 체계를 만들어내는 거요. 당신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적어도 이 우연의 일치를 공부하는 법을 배워야겠지요. (……) 그 시대를 철저히 탐구할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포르투갈 신문에 실린 일기예보를 알아야 할 거요. 일기예보를 이용해서 정치 경찰의 검열을 묘사해낼 수 있었던 우리 작가의 놀라운 소설에서 배울 수 있듯이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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