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마저 먹자
새벽 내내 엄마는 잠 못 들고 뒤척인다. 뒤척이면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그러면 나는 부스스 일어나 감은 눈으로 엄마 다리를 주무른다. 얼음을 갖다 대면 통증은 조금 더 빨리 가라앉는다. 통증이 썰물처럼 밀려가면 엄마는 갯벌처럼 답답하다. 나는 그저 다독일밖에. 답답해. 답답해 미치겠어. 아니야. 엄만 안 미칠 거야. 사람 미치는 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니더라고. 엄마는 다시 뒤척인다. 뒤척이면 아프다. 아프다, 아파. 이 다리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다리를 주무르며 내가 말한다. 식칼 가져와서 확 잘라버릴까? 엄마가 웃는다. 헤헤.
그런 새벽이 꿈처럼 지나가면 한낮에도 우리는 좀처럼 깨지 않는 꿈속에 나란히 누운 사람들 같다. 우리는 지쳤다. 몽롱하다. 한여름이다. 나는 덥고, 엄마는 추웠다가 더웠다가 한다.
과일 트럭이 지나가는 듯했다. 자두 한 소쿠리 삼천 원, 사과가 오천 원. 자두 먹고 싶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엄마가 말했다. 엄마, 어차피 못 먹잖아. 다 토하잖아. 천장을 올려다보며 내가 대답했다. 자두 한 소쿠리 삼천 원, 사과가 오천 원. 자두 먹고 싶어. 토하면 엄마가 힘들잖아. 그래도 괜찮겠어? 나는 꼼짝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내 귀찮음에다가 엄마 걱정이라는 가면을 씌우고 이게 다 당신 탓이라는 시그널을 던졌다. 하지만 엄마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두를 사서, 끓는 물에 삶아서, 껍질 벗기고, 갈아서, 빨대로 마시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밤새 당신의 다리를 주무르고 투정을 받아내느라 이렇게 뻗어있는데 아무리 환자라지만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자기 생각만 할까. 어차피 먹지도 못할 자두를. 그러는 동안 트럭은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어느덧 자두까지는 들리는데 사과가 들리지 않는 거리. 아, 자두 먹고 싶어. 엄마는 앵무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벌떡 일어나 지갑을 챙기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는 현관을 박차고 나갔다. 골목을 돌아 나가는 트럭을 붙잡고 자두 한 봉지를 샀다. 자두는 노랗게 덜 익었고 크기도 고르지 않아 맛이 없어 보였다. 침도 고이지 않았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물을 끓이고, 자두 다섯 개를 돌돌 삶아내고, 도마 위에서 껍질을 벗기고, 칼로 과육만 저며내어 믹서기에 갈았다. 갈아 놓으니 색이 예쁜 한 컵 분량의 걸쭉한 자두 주스가 만들어졌다. 엄마는 누운 채로 내가 이 자두 주스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장만 보던 사람의 눈동자가 내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숟가락으로 떠서 천천히 입에 넣어주고 한 술 넘길 때마다 심호흡 두 번과 얕은 호흡 두 번을 시켰더니 토하지도 않고 반 컵을 잘 마셨다. 토할 것처럼 기침을 시작하면 가슴을 쓸어주며, 아니야, 아니야, 그냥 기침이야, 토할 필요 없어, 아니야, 했다. 남은 반 컵은 이따가 저녁에 마저 먹자. 엄마는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다시 몸을 뉘었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은지 어릴 적 방학마다 놀러 갔다던 김천 큰아버지 댁을 이야기했다. 맑은 물이며, 빽빽이 헤엄치는 고기며, 물레방아며, 대구에서 김천까지 두 살 어린 동생과 단둘이 찾아갔던 열 살 그 시절의 기억 같은 것들을 줄줄이 읊으며, 다 나으면 다시 꼭 가봐야지, 했다. 나으면. 개구리랑 메뚜기 같은 것도 막 잡아먹고 그랬나? 나는 괜히 말을 돌렸다. ‘나으면’으로부터 야비하게 도망쳤다. 못 들은 척했다.
그리고 두 시간 뒤였다.
별다른 기별도 없이 갑작스레 엄마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말이 어눌해졌다. 급히 재 본 혈압은 220이었다. 나는 119에 전화를 했고, 동생은 엄마를 달랬다. 엄마, 지금 너무 위험한 것 같으니까 일단 구급차 불러서 병원에 갔다 오자. 엄마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입으로 말을 뱉었다. 시-러- 아니야, 갔다가 괜찮아지면 바로 다시 집에 올 거야. 병원에 입원하는 거 아니야. 이제는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엄마는 간신히 말소리를 만들어냈다. 거-짐-마-알-
그게 우리가 들은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다.
구급차에서, 그리고 응급실 침대 위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거칠게 헐떡이던 엄마는 그렇게 두 시간 남짓 숨을 쉬다가 세상을 떠났다. 우리 남매는 그 자리에서 두 시간을 더 울고 식어가는 엄마를 만지며 이런저런 말을 건네다가 돌아왔다. 밤이 늦어서 분향소는 다음 날부터 모시기로 하고 엄마는 안치실로, 우리는 집으로,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었는데, 노랗고 걸쭉한 자두 주스가 반 컵, 남아 있었다. 만약 그때 자두를 사러 나가지 않았더라면(그 마음은 정말 순간적인 변덕에 가까웠다) 아마도 나는,
어제 삼우三虞를 마쳤다. 다음에 엄마를 보러 갈 때는 원색의 꽃 몇 송이 사야겠다. 엄마의 손이 닿으면 쉽게 시드는 화분이 없었다.
--- 읽은 ---
247. 응답하는 사회학
정수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
정수복 선생님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것들은 파리 생활에 대한 책이거나 책에 대한 책이었다. 그래서 syo에게 선생님은 에세이스트였다. 공저인 『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 속 좌담 꼭지에서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시는 것을 보고서야 선생님이 사실 사회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선생님에 대해 뭔가를 더 알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선생님은 더 흐릿해졌다. 사회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가 사실은 사회학자였다는 정보는 왜 그 사람을 덜 선명하게 만드는가.
선생님 역시 유사한 고민을 하셨던 것이다. 대중에게 사회학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며 또 무엇일 수 있으며 또 그 무엇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주류 학계 바깥을 떠돌던 선생님의 인생은 저 질문에 대해 자신의 몸과 삶으로 하는 대답 그 자체였던 듯. 그리고 이 책은 그 대답의 요약본에 가깝다.
구성은 이렇다.
1부: 사회 구성원과 괴리된 강단 사회학의 대안으로 “예술로서의 사회학”을 제안
2부: 그런 대안을 만들어내기까지 사회학자로서 살아온 스스로의 삶에 대한 사회학적 자기분석
3부: 이미 새로운 사회학의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내고 있는 세 명의 사회학자에 대한 분석
다소 길지만, 일독 여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예술로서의 사회학’이 어떤 개념인지 제시하는 대목을 인용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삶이 앎의 근거가 되는 사회학, 학문의 숙성과 인간적 성숙이 함께 가는 사회학, 개성이 드러나는 자기만의 사회학, 감동을 주며 마음을 위로하는 사회학,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학, 타인의 삶을 깊이 이해하는 사회학, 삶의 고통과 환희, 좌절과 역경에 귀 기울이는 사회학, 그렇게 함으로써 자유와 평등, 진리와 정의가 살아 있게 만드는 사회학을 하고 싶었다. 그런 사회학을 '과학으로서의 사회학'과 대비시켜 '예술로서의 사회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학을 말하는가?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우선 문학, 예술과 대화하는 사회학이다. 소설이나 시, 그림이나 조각작품, 사진이나 영화처럼 보통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삶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하는 사회학이다. 사회학은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런 삶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어떻게 짜여 있으며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모색하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사회학은 문학 · 예술과 대화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문학과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현실을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사회학은 현실을 설명하고 예측하고 통제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고 현실을 비판하고 현실을 넘어서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학이 되어야 한다.
_ 정수복, 『응답하는 사회학』
248.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 지음 / 열림원 / 2020
옮겨적어 놓겠다고 따 놓은 대목이 50군데 정도 되었으니, 시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선생님의 산문 역시 좋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다 읽고 덮어 놓은지 스무 날이 지난 지금, 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을 하기로 했었는지 곰곰 생각하는 중이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스무 명이 스무 편의 시를 낭독했다. 태어나서 처음 시를 쓴 사람도 있었고 이미 유명한 시인들도 있었다. 평등하게 섞여 자신의 시를 읽었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학예회처럼 설렜다. 그 작품들이, 떨리던 목소리들이 정물화처럼 내 가슴에 놓여 있다. 심정 아프게 하는 시가 많았다. 일상의 괴로움을 안고 시를 지으며 달랬으려니. 모든 사람의 혈관에는 시어가 흐르고 있다. 모든 사람의 손바닥에는 시인이라는 징표가 새겨져 있다. 손금을 찬찬히 보면 '시'라고 적혀 있다.
_ 김이듬,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249. 모르면 호구되는 경제 상식
이현우 지음 / 한즈미디어 / 2019
250. 재무제표 처음공부
대럴 멀리스, 주디스 올로프 지음 / 백승우 옮김 / 신현식 감수 / 이레미디어 / 2018
--- 읽는 ---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 / 윤태영
도시를 걷는 문장들 / 강병융
프로이트 : 20세기의 해몽가 / 피에르바뱅
사조영웅전 1 / 김용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 리디어 더그데일
왜 읽을 수 없는가 / 지비원
논어에 반하다 / 김석
나의 사랑, 매기 / 김금희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 서양 고대 철학 편 / 김재훈, 서정욱
책Chaeg 2021. 6 / ㈜책(월간지)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