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절머리 나는 진지함

 

 

 

1

 

요즘 읽는 것도 그렇지만, 쓰는 게 정말 예전 같지가 않아. , 괜찮은데. 아니야, 내가 우연히 2년 전 이맘때 쓴 글을 보게 됐거든? 근데 걔는 진짜 잘 쓰더라. 아닌 게 아니라, 그때 너가 참 대단하긴 했지. 그 글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 지금부터 3년쯤 열심히 쓰면 2년 전의 나만큼 쓸 수 있겠구나, 하고. 웃기지 않냐? 2년 전의 내가 되기 위해 3년을……. 무슨 소리야. 너 아직 괜찮아. 아니야, 난 이제 틀린 것 같아. 총기를 완전히 잃었어……. , 글이 좀 무디다는 건, 그만큼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뜻 아닐까? 그건 좋은 거잖아. 거 봐, 너도 결국 지금 내 글이 후지긴 후지다는 거잖아……. 아니, 후지다는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안 후지면 내가 지금 이렇게 고민하고 있겠니? 너 대체 지금까지 내 말을 듣긴 들은 거야? 아놔, 후지다고 해도 지랄, 아니라고 해도 지랄,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고! 니가 어떡해야 될지까지 내가 가르쳐 줘야 되겠니? 너는 생각이라는 걸 해볼 생각이 없어? ……, 진짜 진절머리가 난다, 너란 남자. 정답.

 

오늘의 주제는 이족보행 하는 진절머리, syo입니다.

 

 

 

2

 

요즘 읽는 것도 그렇지만, 쓰는 게 정말 예전 같지가 않다. 괜찮다는 말은 넣어두시길. 진절머리 나는 수가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2년 전의 syo가 대단하긴 했다. 2017년 돌연 혜성같이 나타나 신인상(없다)을 거머쥐더니, 2018년은 아주 찢어놓았드랬다(마음이 찢어진다). 혹자는 syo()알라딘에서 심어놓은 쁘락치일 거라고 의심했고 심지어 신형 AI일 거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그의 정체는 사실 알라딘이라는 작은 생태계의 꼬마 요정이었다고 합니다. .


 

내 이놈의 요정질을 관두든가 해야지


 

 

그렇다면 이미지를 위해 정보와 사실을 조합하고 조작하는 조직된 거짓말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아렌트는 거짓말쟁이가 성공하면 할수록 자기 거짓말에 희생될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더 많은 사람이 믿게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기만해야 한다.

이진우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3

 

2년 전의 syo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 속에 숨겨 놓은 너무도 많은 나였다. 그 가운데 두각을 드러낸 두 놈이 번갈아 나타나 글을 쓰곤 했다. 하나는 개그병 걸린 놈(개놈이)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2병 걸린 놈(중놈이)이었다. 특히 서재친구들은 개놈이를 아껴주었는데, 걔는 마음만 먹으면 그냥 도서관에 정자세로 앉아 논어필사하시는 할아버지를 가지고도 남들 배꼽을 훔칠 줄 아는 미친 녀석이었다. 모른 척하지 마세요. 님 배꼽 이야기라니까요(무리수). , , 지금 슬쩍 배꼽 확인해보네(무리수대폭발)?


 

우리는 어쩌면 인지부조화 때문에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살다 보면 부끄러워 되돌리고 싶은 행동이 얼마나 많은가부끄러운 과거 한때를 합리화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내 이상한 행동에 합당한 각주를 계속 달아야 한다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그랬지그래그게 맞아!' 하다하다 갖다 붙일 이유가 떨어지면 이젠 기억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아니야그때 받은 과일바구니에는 분명 과일밖에 없었어.‘

박주영어떤 양형 이유

 

 

 

4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개놈이와 중놈이를 번갈아 가며 등장시키는 일이 너무도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이제 짬 좀 찼으니 내 안에서 샘솟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드러내도 되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착각이 뇌 속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결심한 것이다. 그래, 나는 나야. 내가 바로 2018 알라딘 쓰나미 syo! 으르렁…….

 

그랬더니 사는게 칙칙해서 그런가, 언제부턴가 개놈이는 사라지고 중놈이만 남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놈이 걔도 참 걔인 게, 그냥 하던대로 대충 할 것이지 개놈이의 빈자리를 채워보겠다고 지나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아아, 그거 하지 말지. 중놈이가 그렇게 중중놈이로 진화하고, 그 마당에 갑자기 인생이 주정뱅이 스텝처럼 이리저리 꼬이기 시작하면서 중중놈이가 중중중놈이로 메가진화하고…… , 정신을 차려보니 syo의 서재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잿빛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syo의 서재에는 이제 개그라고는 온데간데없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팩트 폭풍과 반박이 불가능한 논리, 치열한 사변과 심금을 울리는 감수성이 공존하는, 그야말로 무색무취하고 무미건조하며 농담 따윈 1mg도 함유되어 있지 않은 철저한 과학적 페이퍼만이 올라오게 된 것이다. 바로 지금 이 페이퍼처럼. , 정말 나도 내가 너무 객관적이어서 진절머리가 난다. 농담 하는 법을 까먹었어. 기억이 안 나…….

 

 


하지만 자네에게는 오점이 있네오래된 약점자네는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여기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고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곧 알 수 있을 걸세자네 역시 처음부터 실패자로 만들어졌다는 걸자네가 세상과 싸울 거라는 얘기가 아냐세상이 자네를 잘근잘근 씹어서 뱉어내도 자네는 아무것도 못할 걸세그냥 멍하니 누워 무엇이 잘못된 건지 생각하겠지.

존 윌리엄스스토너

 

 

 

5

 

개놈아 이제 그만 돌아와 줘. 그때 우리 참 좋았잖아…….

 



가끔 길을 걷다가 저 멀리 보석이나 꽃 같은 물체가 있는 것을 보지만 몇 걸음 더 다가가서 보면 그냥 쓰레기일 때가 있다하지만 그 물체도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기 전에는 아름다워 보인다.

리베카 솔닛길 잃기 안내서


 

 

 

 

 

 

--- 읽은 ---

 


193. 아무튼, 달리기

김상민 지음 / 위고 / 2020

 

세상에서 제일 진부하고 식상한 것이 바로 잘 쓰고 잘 뛰다보니 마라톤도 자꾸 완주하는 작가 캐릭터다. 무라카미 하루키, 김연수, 그리고 이제는 김상민……. 지겹다 지겨워. 화가 다 난다. 지겨워서 화를 내는 것이다. 질투하는 게 결코 아니다.

 

……아, 아니라고요!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 읽는 ---

연년세세 / 황정은

그 후 / 나쓰메 소세키

아우스터리츠 / W. G. 제발트

마르크스 캐피탈 리딩 인트로 / 에르네스트 만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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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0-26 1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놈아 돌아와 222... 어 저기 진절머리 내면서 기어오고 있다...빨리 안 튀어 오냐...
남 웃기는 글이 제일 어렵지요 ㅎㅎㅎ

syo 2020-10-27 12:22   좋아요 1 | URL
남 웃기는 건 부수적인 거고, 나는 나를 웃기고 싶어요.... 나야 너 좀 재밌다? 이러고 싶다.

han22598 2020-10-27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노의 포도 알갱이가 꼬마요정었다니 ㅋ

syo 2020-10-27 12:23   좋아요 0 | URL
빨갛고 동그란 얼굴 속에 감춰놓은 정체성....

희선 2020-10-27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예전 제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읽고 자꾸 쓰다보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하고 쓰지만 나아지기보다 더 안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에 쓴 글을 보고 정말 내가 쓴 거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사람은 다시 돌아가지 못하겠지요 좋아지든 안 좋아지든 앞으로 갔다 조금 뒤로 갔다 그러면서 앞으로 가겠지요


희선

syo 2020-10-27 12:24   좋아요 0 | URL
그렇지만 사실은 좋아지든 안 좋아지든 앞으로 갔다 조금 뒤로 갔다 그러면서 뒤로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서운 일이네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로 2020-10-27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노의 포도 알갱이가 꼬마요정었다니 ㅋ2

내 댓글을 빼앗긴 것 같은!!!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그런데 너는 왜 웃고 있는 건데? 개놈이도 중놈이도 아니면서...버럭)

syo 2020-10-27 12:2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요밍아웃했다

다락방 2020-10-27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았는데요. 2017년.. 쇼님이 혜성처럼 등장해 각종 신인상을 휩쓸고 알라딘을 평정하기 시작하던 그 때...

syo 2020-10-27 12:26   좋아요 0 | URL
그때 꼭대기 찍고 이제는 내리막이지.....
젊은이들에게 모든 걸 양보하고 돌아서는 늙은 요정이에요!

공쟝쟝 2020-10-29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잉 저 요정은 웨딩피치???? 어디서 마니 봣는데 ㅋㅋㅋ

syo 2020-10-31 14:16   좋아요 0 | URL
저거 아마 디지몬일걸요? ㅋㅋㅋㅋㅋ 저도 네이버에 ˝꼬마요정˝ 검색해서 찾은거라 ㅋㅋㅋㅋㅋㅋㅋ
이럴 땐 일본문화 전문가인 ㅂㄹㄱㅌ님이 등판해야 하는 건데, 그 분은 요즘 통 뭐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