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cl
1
노을이 붉게 타는 하늘을 거울처럼 비추는 어느 소금 바다에 꼭 가 보고 싶었다. 거기가 어딘지도, 언제나 가 볼 수 있을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바탕화면에 사진을 깔아놓고 넋이라도 있고 없고 마냥 바라보는 것조차 막연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막연함은 막연하여 말로는 전달되지 않는 마음이었고, 마음을 전달하지 못 하는 말은 힘이 없었고, 힘없는 말은 스스로 여위고 고갈되는 것이 수순이었다.
붉게 녹은 구름이 쇳물처럼 염전 위로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소금이 제 소금기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염전을 매만지겠다.
세상은 이제 영원히 조용하고 텅 빈 것이다
앞으로는 이 고독을 견뎌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긴 터널을 지나 낡은 유원지를 빠져나오면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_ 황인찬, 「부곡」 부분
2
조금 고단하긴 해도 티가 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syo의 다크서클을 지적한다. 녹즙 이모가 syo 주임님 오늘따라 굉장히 지쳐 보이네, 화이팅! 이랬다. 아침 9시 10분이었는데! 나 겁나 쌩쌩했는데! 지지난 주였나, 다른 구에서 일하는 동기들이 저녁에 회사 근처로 찾아왔는데 딱 보자마자 그랬다. 형, 영혼은 어디 가고 다크만 있어요?
이런 말들을 듣노라면, 그렇다면 힘껏 다크해져버려야지 하는 다크한 마음이 생긴다.
처음 밝히는 건데, 사실 이건 다크서클이 아니라 몽고반점입니다. 타고난 거라구요. 어릴 적 찍은 사진을 보면 장난기 가득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렌즈를 마주보는 동글동글하고 총명하게 생긴 애기가 들어있는데, 걔 눈 밑에도 짙은 어둠이 자리잡고 있다. 엄마도 다크, 아빠도 다크, 동생도 다크. 다크한 우리 가족 다크 패밀리 다크 서클. 젊었을 때는 나중에 돈 벌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 불량서클을 완전히 해체해버리겠노라 다짐했지만, 막상 손에 한줌도 안되는 월급을 쥐고 나니 돈도 아깝고, 내 face 내 body에 하자가 다크 딱 하나인 것도 아닌 마당에 굳이-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크서클 제거를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하는 노동이 다크서클이 진하게 만드는 이 미친 다크영구기관 메커니즘 때문에 허탈해지는 것이다.
하여간 다크는 별로다. 초콜릿도 다크 말고 밀크만 먹는다.
3
온 세상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 보니 생긴 문제 가운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나 뜻밖에 심각한 것이 있다. 다들 한층 더 예쁘고 잘 생겨 보인다는 것.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어떠한 종류의 위해든 가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하는 표정을 짓는 일은 눈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 두 가지 문제가 짝짓기를 빅 프라블럼 하나가 태어난다.
저 사람 와잘생겼다 싶어서 나도 모르게 오래 쳐다보다가 걸림 -> ’뭘 봐 이숑끼야‘ 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봄(그건 눈만 가지고도 됨) -> ’허허허 시주님, 끝없는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그저 한 번 스치는 눈길이었을 뿐이니 오해일랑 접어두시지요 나무아미타불 옴마니반메훔‘ 하는 표정을 시전했는데 코와 입이 가려져 있다 보니 ‘앗 걸렸다 훔쳐보고 있었는데 으헤헤’ 하는 눈빛으로 보임.
저 잘생긴 청년이 잘생긴 주먹을 말아쥐고 이쪽으로 다가오기 전에 하차하자…….
4
여름만 해도 힘든데 코로나썸머라니.
이러나저러나, 읽을 것이다.


조급하거나 불안해지는 날이면 노트북을 켜고 한글 프로그램의 흰 화면에 걸러지지 않은 글자들을 쏟아내었다. 내 안에 들어찬 욕심과 수치 들을 날것의 글자들로 까불어 엎어낼 때도 있었고, 행복의 순간들을 수를 놓듯 가다듬어 쓸 때도 있었다. 스스로도 보기에 부끄러운 글들이 많았지만 괜찮았다. 그보다 부끄러운 일들은 앞으로 살면서 훨씬 많을 것이므로, 때로는 우스운 글을, 때로는 욕이 가득한 글을, 때로는 미래를, 때로는 과거를 A4 용지 세 장만큼 썼다. 쓰고난 뒤엔 딱 A4용지 세 장만큼 회복되어 조금 튼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_ 강이슬, 『안 느끼한 산문집』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틀니를 꺼내 손수건으로 감쌌다.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에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딜리오를 향해, 이따금 인간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_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 읽은 ---
56. 어느 작가의 오후 / 페터 한트케 : 82 ~ 149
페터 한트케를 읽으며 제일 많이 하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아, 이걸 내가 왜 읽고 있지? 하는 것이다. 알알이 좋은 대목 있고, 점점이 공감 가는 마음의 무늬가 드러나긴 해도. 반면 그의 글에 공감하고 주인공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경로를 곧잘 따라가는 독자들도 있다. 허허허. 세상 참 모르겠다. 그게 교훈이다. 당신의 어느 오후를 잘은 모르겠어요.
57. 회계 천재가 된 홍대리 1 / 손봉석 : 134 ~ 260
하고 싶은 말이 선명한데, 스토리와 하고 싶은 말 사이에 유기적인 결합 관계가 부족하여 국물 따로 먹고 고기 따로 건져 먹어야 한다.
58. 맨 얼라이브 / 토머스 페이지 맥긴 : 152 ~ 239
문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고통을 설명하는 과정을 고통스럽지 않게 하거나 혹은 더욱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문장은 어떤 역할을 떠맡을 수 있을까. 고통을 이겨내는 능력이 각자 다르듯, 고통을 설명하고 그리는 능력 역시 각자 다르다. 아픔이 있는데 문장이 없거나, 문장이 있는데 아픔이 없다면 아쉽게도 우리는 그저 아프거나 아름답거나 할 뿐이겠지만, 자, 그 두 가지가 다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자.
59.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 김고명 : 98 ~ 220
좋겠다.
60. 반 고흐 / 바바라 스톡 : ~ 135
이 알듯 말듯 끝내 알 수 없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왜 이렇게 꾸준히 읽는 걸까? 하자 있는 인간의 분투와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이루어진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치명적일 만큼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길이 열려 있다 보니, 반 고흐에 관한 책은 많지만 저마다 다 자기 몫이 있다. 반 고흐란 사람은 어쩌면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 읽는 ---





그림 속 경제학 / 문소영 : ~ 170
한 장 보고서의 정석 / 박신영 : ~ 124
허변의 모르면 호구되는 최소한의 법률 상식 / 허윤 : ~ 179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 이현우 : ~ 69
에코페미니즘 /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 72 ~ 124
이미지 저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