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나서 비로소 이해하는 것들
1
나는 살면서 수도 없이 물었다. 늘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엄마를 사랑하고 있나?
2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버지로서는 낙제점을 간신히 면하였으나, 남편으로서는 최악을 바라보는 차악의 수준이었다. 그 결과 말년을 앞두고 병실에 누웠을 때 의례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찾아오는 이는 친구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 그 인생을 성공이라 하기는 어렵겠다. 아들이 보고 인생을 배울 교재로서의 아버지는 참고서라기보다는 오답노트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라는 인간 개인의 태도나 마음, 잘못 고른 것으로 결론 난 낱개의 선택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있다. 그만큼 나는 그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나도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교복을 입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이미 엄마는 내 이해력의 범위 밖에 있었다. 집에서 입던 옷을 침대 위에 던져놓고 나갔다 돌아오면, 그 옷들은 항상 침대 옆에 있는 옷걸이에 걸려있다. 엄마, 뭐 하러 옷을 걸어놨어, 밖에 나갈 때 입는 옷도 아닌데. 야, 그렇게 침대 위에 너저분하게 늘어놓았다가 손님이라도 와서 보면 뭐라 하겠어. 니가 나갈 때 좀 걸어놓고 나가면 좋잖아. 그 말은 맞다. 우리 집에 ‘손님’이라는 존재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 5년도 더 넘었다는 사실과, 손님이 온다 한들 기어이 저 방문을 열어 안의 정리 상태를 점검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과, 그리고 무엇보다, 손님들은 거실 바닥에 깔려 있는 홈쇼핑 책자, 마른 가지가 꽂혀 있는 작은 화분들, 혈압계, 혈압약 봉지, 정리한 거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냥 일렬로 놓여있을 뿐인 휴지와 물티슈 두 통, 알 수 없는 기준으로 주워온 조약돌 여러 개, 등받이가 박살난 고물 의자와 그 아래 놓여 있는 쓰레기통 등등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풍경을 목격한 후에야 방에 들어와 침대 위에 놓인 옷 두 벌을 점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엄마의 말은 맞다. 엄마, 거실이 더 엉망이야. 손님들이 저거 보고 뭐라 하겠어. 좀 치우고 정리하면 안 돼? 이제 엄마가 입을 꾹 다물 시간이다.
3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오래 살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삶의 영역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미워하는 방식으로 실천된다. 그래서 엄마를 이해하려 시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 일에 실패했는데, 아버지보다 더 매정하고 공학적이고 되바라진 인간인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하지 않았다.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으려고. 엄마를 그냥 엄마로, 저런 사람인 것으로, 영원히 그 속을 알 수 없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사람의 자리에 가져다 놓고 살았다. 미워하지 않는 대신 사랑하지 않았다. 엄마를 위해서였다. 이기적인 헛소리 같지만, 최소한 내 눈에, 나는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너끈히 살 수 있는 인간인 반면, 엄마는 내게까지 미움 받으면서는 단 하루도 살기 힘든 약하고 불쌍한 사람이라서. 아들이 무뚝뚝하긴 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확신하며 엄마가 살아가는 동안, 아들은 엄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사랑은 사랑일지언정,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범주 안에 없다고 확신하며 살고 있었다. 한 지붕 아래서, 때론 다른 도시의 다른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자는 동안, 이렇게 두 사람의 생각이 만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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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는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밤새도록 얼마 나오지도 않는 쓴물을 토해내고, 그걸 토해내느라 온몸을 움찔거리면서 아직 아물지도 않은 수술부위에서 오는 진통에 신음한다. 아들은 보호자용 침대에 누워 눈 감았으나 잠들지 못하고 있다가, 엄마의 숨소리가 흩어지는 순간 벌떡 일어나 봉지를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 댄다. 엄마가 한줌도 안 되는 쓴물을 토하고 나면 아들은 휴지로 엄마의 볼과 머리카락을 닦고, 다시 물티슈를 꺼내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고, 반대쪽으로 접어 입가와 볼을 한 번 더 닦는다. 그쯤 되면 엄마는 다시 짧은 잠을 청하고 있다. 금방 코를 곤다. 아들은 엄마의 머리에 올린 물수건을 뒤집고, 물 한 모금 못 넘기는 엄마를 내려다 보며 물 한 모금 넘겼다가, 침대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잠깐 눈을 감아도 본다. 어차피 10분 뒤면 다시…….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보다 더 매정하고, 공학적이고, 되바라진 나라는 인간이, 아버지의 뼈를 뿌리고 돌아서는 순간부로 30년을 이어오던 친가쪽 모든 친척과의 연을 단칼에 끊어버리고도 일말의 망설임, 후회, 양심의 가책이 없었을 만큼 ‘혈연'을 우습게 여기는 나라는 인간이, 단지 피붙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옆에서 이런 새벽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인간인지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계속 하고, 아이처럼 고집을 피우고, 입을 꾹 다물고,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그냥 아무렇게나 해도 좋으니까, 다시 이 사람이 우리집 거실에 앉아 TV를 보는 모습을, 하나도 재미없는 장면에 혼자 크게 웃으며 박수치는 그 모습을 보고 싶다.
5
엄마의 용태가 좋지만은 않다. 수술 자체는 잘 되었다고 하지만, 애초에 나이든 몸에서 신장 하나를 통째로 들어냈기 때문에 남은 신장에 무리가 오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께 밤부터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고 몸은 점점 부어만 갔다. 결국 급성신부전 판정을 받고 내과로 옮긴 엄마는 어제 저녁부터 투석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오래 병원 생활을 이어나가야 할 모양이다.
새벽의 오한은 어깨로 오고 인후와 편도에 농이 오고 눈두덩이가 부어오고 영은 내 목에 마른 손수건을 매어주고 옆에 눕고 다시 일어나 더운물을 가져와 머리맡에 두고 눕고 이상하게 자신도 목이 아파오는 것 같다고 말하고 아픈 와중에도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웃고 웃다 보면 새벽이 가고 오한이 가고 흘린 땀도 날아갔던 것인데 영은 목이 점점 더 잠기는 것 같다고 하고 아아 목소리를 내어보고 이번에는 왼쪽 가슴께까지 따끔거린다 하고 언제 한번 경주에 다시 가보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몇 해 전의 일을 영에게 묻는 대신 내가 목에 매어져 있던 손수건을 풀어 찬물에 헹구어 영의 이마에 올려두면 다시 아침이 오고 볕이 들고 그제야 손끝을 맞대고 눈의 힘도 조금 풀고 마음의 핏빛 하나 나란히 내려두고
_ 박준, 「나란히」 전문
--- 읽은 ---
+ 문학하는 마음 / 김필균 : 165 ~ 345
+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 정기문 : 277 ~ 455
--- 읽는 ---
= 동의 해신 서의 창해 / 오노 후유미 : ~ 215
= 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 입문 / 고지마 히로유키 : 55 ~ 147
= 소소한 일상의 물리학 / 제임스 카칼리오스 :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