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슬럼프다.

 

당최 니가 뭐라고 슬럼프씩이나 앓고 야단이냐 물으시면 뭐 딱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 도대체 내가 써 놓은 문장이 하나같이 개똥 같은데 이걸 슬럼프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불러야 한답니까.....

 

요런 잡글 쓰는데도 문장 안 뽑힌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니, 작가 같은 위대한 사람이 아닌 것이 정말 다행이다. 작품 쓰는데 이런 식이면 단기간에 머리 다 빠졌을 것 같다. 머리 다 빠질 때까지 이 악물고 써 본들, syo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될 거야, 알랭 드 보통이 될 거야. , 정말 천만 다행이다......

 

뭐래니.

 

정말 뭘 써도 쓰는 족족 슬럼프의 증거물이 될 뿐이군.

 

 

 

201906 : 36권


 

 

1.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 / 악셀 린덴 지음 / 김정아 옮김 / 심플라이프 / 2019

: 6월의 책을 꼽으라면 이걸로.

: 정말 별 내용 아니다. 그냥 양 먹이고, 양 죽이는 이야기. 오늘은 건초를 만들었다, 오늘은 울타리를 고쳤다, 오늘은 숫양을 사와서 교미를 시켰다. 근데 이 양아지()가 자꾸만 나를 들이받네. 죽일까..... 뭐 이런. 그런데 이 안에 은근히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었나보다. 일기를 한 단락 쓰고, 내용에 걸맞은 인용문을 찾아보려고 에버노트를 뒤적거리면, 계속 이 책에서 따놓은 대목들이 걸려든다. 뭘 써도 걸린다. 일부러 피해야 할 정도다. 참 이상하지, 나는 양이라고는 꼬치랑 아치 말고는 모르는 사람인데......

 

2. 세월 / 아니 에르노 지음 /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

: 아니 에르노의 눈으로 훑은 세월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은 꽤 어지러운 경험이었다. 현기증이 날만큼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동시에 아름다울 만큼 현기증 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그것은 에르노의 시간이었다. 에르노의 시간은 에르노의 것이므로 syosyo의 것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 syo의 시간이라는 게 있긴 하다면. 그리고 아름답게 써낼 수 있다면 말이지. 현기증 나게까지는 못하더라도.

 

3.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 /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9

: 여전히 이집 맛집이긴 한데, 밀도랄지, 재미랄지, 느낌이랄지, 그것도 아니면 스웩이랄지, 하여간 그런 것들이 조금씩 옅어지는 느낌이다. 몇 년 전, 그러니까 이정모 선생님이 지금보다 덜 알려져 있고 덜 다양하게 활동하던 시절에는 완전 핵존맛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장사는 잘 되지만 어쩐지 단골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드는 평범한(?) 전국구 맛집처럼......



 

4. 다가오는 말들 /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

: 기교는 그야말로 기교라, 잡문이라도 몇 년쯤 쓰고 나면 제 가락이 생기고, 그때부터는 도대체 남의 것을 빌려다 쓸 수가 없다. 매직스트레이트를 받은 핵꼽슬 머리카락처럼 효과는 잠시 뿐, 자꾸만 원래 내 문장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는 것은, 글쓰기를 다룬 모든 책은 결국은 태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저 많은 글쓰기 책들이 결국은 태도에 관한 훈육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끝까지 남을 책은 더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쳐내고, 쳐내고 또 쳐내도 마지막까지 쳐내지 못할 책이 은유 선생님의 것들이다. 태도에 관하여 이분보다 더 몸으로 육박해오는 작가는 찾기가 어렵다.

 

5. 아무튼, 요가 / 박상아 지음 / 위고 / 2019

: syo는 요가를 모른다. 그러니 글만 볼 밖에.

: 그렇게 보면, 이 책은 아무튼 시리즈 가운데 제일이라고 해도 될 만큼 별로였다. 비교 대상을 다른 요가 에세이로 바꿔 봐도, 이 책은 이아림 선생님의요가 매트만큼의 세계에 미치지 못한다.

 

6.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 김겨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9

: 지난 번 책보다 좀 나은 것 같다. 자꾸 나아지시는 김겨울 선생님.

: 인문학적 지식을 투하한 각 딱 잡힌 느낌의 본글보다, 챕터 사이사이에 있는 솔직하고 경쾌한 분위기의 끼인글에서 훨씬 더 문채가 선연하게 빛난다. 면구스럽게도 지난 번 책과 이 책은 빌려 읽었지만, 요 끼인글들과 닮은 애들로 묶인 책이 나온다면 깨는 묻따않 사전구매 각이다.

 



7.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19

: 소설을 쓰지도 않을 거면서 자꾸만 이런 책을 읽는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 소설의 기술, 소설 쓰는 법, 그러다 이젠 심지어 이미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안 쓸 사람에게 이런 책이 의미가 있을까?

: 의미가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생각보다 일기는 소설에 가깝고, 소설에서 차용해 올만한 기술 이, 소설가의 마음에서 빌려올 만한 마음 같은 것들이 꽤 있다. 이래서 인생은 소설이라고 하는가. 아니다, 소설이 인생이었나?

 

8. 우리 고전 읽는 법 / 설흔 지음 / 유유 / 2019

: 읽는 법을 배운 건지 읽은 법을 배운 건지 알 수가 없다.

: 지난 달,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 읽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syo, 읽는법이라는 것은 성립하기 어렵고 각자의 시 읽은법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오히려 개인적이라서 존재가치가 있다는 식의 평을 남겼다. 그렇게 따지면 이 책 역시 같은 경운데, 왜 별로 호의적인 감상이 생기지 않는지를 고민해보았다. 아무래도 syo우리 고전보다 라는 장르에 더 여유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정교하지도 않고 거의 매번 실패하긴 해도, 시에 관해서라면 나의 읽는 법이라 할 만한 것이 그래도 갖춰져 있기 때문에, 타인의 읽기에 더 호의적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 이 책에서는 정말 말 그대로 읽는 법을 기대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도, 읽어봐야겠다 싶은 우리 고전작가들 리스트만 무거워졌을 뿐, 특별히 어떤 방법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시 읽는 법때와 마찬가지로 예견된 실패인 셈이다. 그런데도 어느 책은 좋다고, 어느 책은 무용했다고 평하다니, 점점 나란 놈의 자기중심적인 모습만 발견하는 것 같다.

: 이게 무슨 서평이야, 고해성사지......

 

9. 고전 속에 누가 숨었는고 하니 / 조현설 지음 / 우리학교 / 2019

: 제목 속의 숨은 누군가는 다양한 양태의 소수자들을 이른다. 컨셉이 좋았다. 아이들 책이라 얇고 가볍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 하지만 이 책은 아이들 책이라서 뜻깊다. 며칠 전 아이들 책 시장에서 공전의 베스트셀러인 “WHY?” 시리즈 중 한 권, “WHY? 사춘기와 성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2008년에 출간되었던 2판에서는 난 동성애자가 정신병자인 줄 알았어.” 라는 아이의 말에 단지 세상에는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아서 동성애자가 특별해 보이는 것뿐이야.” 라고 말했던 엄마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10년 만에 입장을 확 바꿔서 3판에서는 글쎄, 나쁘다기보다는 정상이 아니지.” “대다수의 사람이 이성에게 호감을 느껴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지.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기도 해.” 라고 대답해준다. “분명한 건 내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라고 말하는 딸에게는 엄마는 우리 딸이 보편적인 성의식을 갖고 있어서 맘이 놓이네.” 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자본의 힘이 이렇게 무섭다. 큰 흐름은 몰라도 작은 물결 정도는 얼마든지 역행시킬 수 있다. 어느 세상이나 쓰레기 같은 책은 태어난다. 쓰레기는 치우는 게 가장 좋지만 여의치 않을 땐 덮어 놓기라도 해야 한다. 책을 덮는 책이 되기를.

 



10. 헤겔 / 피터 싱어 지음 / 노승영 옮김 / 교유서가 / 2019

: 헤겔은 숙제 같다. 철학책 뭐 좀 읽다 보면 헤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헤겔을 읽어보면 열라 정교한 헛소리 같다. 그래서 무시하고 다시 읽고 싶은 철학책을 읽으면 얼마 못가 다시 헤겔 운운이다. 그래서 다시 헤겔을 찾아 가면 헤겔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지치지도 않고 똑똑한 헛소리를 하고 있다. 젠장...... 물론 이 개똥같은 무한루프가 발생한 것은, 헤겔의 말이 실제로 헛소리여서라기보다는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이 헤겔에 대해 소양도 애정도 부족한 syo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겠지만.

: 그럼에도 피터 싱어는 역시 피터 싱어. 최소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헤겔의 말이 더 이상 무의미한 개소리로 들리지는 않게끔 만들어주었다.

 

11.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켄 크림슈타인 지음 / 최지원 옮김, 김선욱 감수 / 더숲 / 2019

: 애정하는 서재친구님들이 읽고 올리시는 페이퍼들을 보며 혼자 키웠던 기대감에 어울리지 않는, 뜻밖의 범작이었다. ‘아름다운 한줄같은 건 꽤 있었다. 그렇지만 제목에 한나 아렌트가 박힌 책에서 한나 아렌트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근데 하이데거와 벤야민은 지나치게 또렷하다. 하이데거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한 개새끼였으며, 벤야민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모질이였다..... 하이데거와 벤야민을 읽어야겠다.

 

12.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다산초당 / 2019

이 책의 효용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면그건 syo에게 철학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영학 지식이 부족해서일 것이다이런 식의 경험은 또 처음이군.




13. 레비나스, 그는 누구인가 / 박남희 지음 / 세창출판사 / 2019

: 심한 중언부언. 주어와 술어의 잦은 불호응. 문장의 짜임새로 놓고 보면 정말 별로인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긴 하다는 장점 때문에 버릴 수는 없는 책.

: 그리고 이 정도 함량이라면, 같은 출판사의 시리즈물 '세창 사상가 산책'에 편성되지 않고 굳이 단독 출간된 이유도 잘 모르겠다. 가격 때문일까?

 

14. 타자와 욕망 / 문성원 지음 / 현암사 / 2017

: 선생님, 팬입니다. 팬이 되었어요.

 



15. 한국 요괴 도감 / 고성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

: 뭐 내용이야 제목 그대로이고, 큰 기대를 하고 본 것은 아니었으니 크게 남길 말도 없긴 한데, 서술이 은근히 웃기고(피식 사이즈) 귀여운(아코 사이즈) 데가 있었다. 사전식 어투조차 능력 있는 사람이 잘만 구사하면 뜻밖의 재미를 준다는 것을 배웠다. 인간이란 하려고 들면 십자드라이버로도 참치 캔을 딸 수 있다. 자칫 참치에서 쇳가루 맛을 볼 위험은 있겠지만.

 

16. 정신의 고귀함 / 롭 리멘 지음 / 이성민 옮김 / 오월의봄 / 2019

: 열심히 따라간다고 따라가고는 있었는데, 대체 여기가 어디지- 싶을 때가 자꾸 찾아와서 참 곤란했다. 정신의 고귀함에 대해서 알게 되려나 싶었는데 정신없음에 대해서만 알게 되었다. 아무나 읽는 책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넘기고 싶은데, 그냥 syo가 멍청해서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었을 뿐이었던 것이었던 것일까 봐 겁난다. 그런 일이 굉장히 많았기에,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제껏 syo가 잘 못 알아 처먹은 책들 가운데 과반이 굉장히 좋은 책이라는 평을 받았다(아감벤, 키냐르.....) 이 책은 과연 어느 쪽에 설까?

 

17. 여성, 전적으로 권력에 관한 / 메리 비어드 지음 / 오수원 옮김 / 글항아리 / 2018

: 누구나 여성 혐오라고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들을 표적으로 하는 페미니즘 책들은 포화상태고, 오히려 요즘은 더 세밀한 쪼개기를 통해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의 다른 방식을 상호비판하며 나선형 발전을 추구하는 책들에 손이 간다. 어차피 나는 답을 내릴 소양이나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말 저말 듣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압도적인 지식, 압도하는 문장, 그리고 압도당하지 않는 태도를 갖춘 페미니스트의 글에 syo가 더 무슨 말을 붙일 수 있을까.

 



18.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 우치다 타츠루 지음 / 이지수 옮김 / 서커스 / 2019

: 말하기 힘든 것들이라 그런지 읽기도 힘들었다. 이제껏 우치다 선생님이 쓰신 많은 책들을 읽어왔지만, 토 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많이 알고 말도 잘 하는 우치다 선생님. 이미 눈이 먼 syo는 선생님의 어떤 책을 읽어도 늘 비슷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19.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자유 / 엄윤진 지음 / 갈무리 / 2019

: 너무 내 생각과 닮았기 때문에 도리어 남에게 추천하기가 꺼려지는 책이 있다. 읽은 게 나라서 좋은 건지 좋은 책이라 좋은 건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서. 대놓고 따지고, 비판하고, 적지 않게 비난하는 책인데, 주장 면에서는 마치 syo가 쓴 것 같다. syo보다 오조 오만 배 정도 똑똑한 syo. 이 책에 실린 어필은 syo에게 대충 95푼 정도의 타율로 들어맞는다. 세상에 이 책이 있으니 syo는 정치에 관해서라면 책 안 써도 되겠다. . 안 쓰는 척. 못 쓰는 거 아닌 척.

: 엄윤진 선생님이 화가 잔뜩 나 있으신 듯하다. 처음에는 조곤조곤 하다가 이내 화르르 타오르시고, 어느 지점부터는 이노무 세상 확 그냥 막 그냥- 이런 느낌도 든다. 그 깊은 빡침조차 공감이 되니까, 거참, 이 책에 대해서는 뭐라고 평하기가 어렵겠다.

 

20. 미루기의 천재들 / 앤드루 산델라 지음 /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19

: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천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미루기의 천재. 빠밤.

: ‘미루기의 천재들이지 천재들의 미루기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를. 어쨌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미루며 살겠습니다.....

 



21.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 엄기호 지음 / 나무연필 / 2018

: 엄기호 선생님의 문장에서 syo가 자주 쓰는 문장들과 유사한 냄새를 맡았다(송구스럽습니다). 예를 들면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고통나눌 수 없는 고통으로 나누는 데서 생겨나는 고통을 놓치지 말자라는 식이랄지, “고통을 수반하는 고독과 고독을 수반하는 고통 사이에서 고독한 것이 인간이 치르는 고통이다.” 라는 식이랄지(이 두 개는 책에 종종 등장하는 문장 형식을 흉내 내어 syo가 지금 이 자리에서 대충 만든 문장들입니다. 책에 이런 후진 거 안 나옴). 그런 이유로 syo는 되게 부드럽게 읽을 수 있었는데, 모르겠다. 읽기 피곤하실 수도.

 

22. 위험하지 않은 몰락 / 강상중, 우치다 타츠루 지음 /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8

: 두 분 선생님의 대담을 읽고 있으면, 앎도 말도, 강 선생님보다 우치다 선생님이 한수 위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두 분의 다른 책들 역시 잘 생각해보면, 늘 강 선생님의 책보다 우치다 선생님의 책이 읽기가 덜 수월했다. 어쨌든 이 두 분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syo에게는 홍복.



 

23. 어제는 봄 / 최은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

: ‘저 감정 잘 모르겠지만 정말 현실감 있다.’ 라는 말이, 말이 되나? 뭔지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핍진성을 논할 수 있지?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된다. 이게 작가의 힘인가. 모르긴 몰라도 작가가 저런 상황 저런 감정을 통과해 왔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건 말이 되나? ‘모르긴 몰라도 확신이 든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된다. 허허허.

 

24. 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지음 /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

: 정말 대단히 훌륭한 책이라고 소문이 짜르르. 그래서 그런가 정말 대단히 힘들게 읽어냈다. 한 편 한 편 쪼개서, 하루에 많아야 세 편씩 읽는 페이스로 읽었더니 어떻게 끝은 났다.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내가 똑똑한 놈 같았다가 천하의 바보 천치 똥멍충이 같았다가, 뭐 그러면서 꾸역꾸역 해냈다. 언젠가 또 읽으라면 또 읽겠다는 확신은 있다만, 그때는 수월하게 읽을 거라는 확신은 또 없다. 카프카가 그렇게 좋아했다더니, , 어쩐지......

 

25.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

: 이렇게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을 경험고통의 총량이 얼마나 어마무시한지, 그 경험과 고통을 다 안고도 이렇게 덤덤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리하여 이 책이 얼마나 위대한 책이고 솔제니친이 얼마나 존경받아 마땅한 작가인지, 그 모든 걸 다 알겠다. 다 알겠는데, 솔직히, 재밌으세요? 심지어 98년 번역이잖아요.....

 



26. 반성 / 김영승 지음 / 민음사 / 2007

: 시간이 글에다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에 관해 글이 탄생했을 때 이미 알 수 있다면, 그 글은 굉장한 졸작이거나 반대로 굉장한 대작임에 틀림없다. 그 이외의, 그러니까 대부분의 글들은 각자 자기가 태어난 시대의 시대성과 비교되며 의미를 지녔다가, 시간과 교류하며 자리가 조정되기도 할 것이다. 사실 그건 시인의 몫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써놓고도 끊임없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닐까?

 

27. 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 / 정철훈 지음 / 민음사 / 2002

: 어디론가 데려가는 시가 있다. 그곳은 과거였다가 미래였다가 한다. 때로는 오늘 같기도 하다. 오늘로 데려간다는 것은 결국 아무데도 데려가지 않는다는 말 같은데 그게 또 그렇지 않다. 지금 여기를 언젠가 어딘가로 만드는 시가 있다.

 

28. 하늘이 담긴 손 / 김영래 지음 / 민음사 / 2004

: 두고 온 것들을 향한 그리움과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미안함이 손을 만든다. 다시는 아무것도 두고 오지 않으려고 그 손은 열심히 담고 또 담지만, 무언가를 놓고 놓치는 것은 마치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다시 또 다시 일어나고, 손은 자꾸만 생겨난다. 물웅덩이처럼 바닥에 깔려 하늘 말고는 더는 담을 것이 없는 순간까지도 손은 자신을 스쳐간 것들을 기억한다. 우리도 그 손을 기억한다.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은 그 손이었다.



 

29. 해질녘에 아픈 사람 / 신현림 지음 / 민음사 / 2004

: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말 건네고 싶은 사람 하나 있을 것이다.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이 시집을 읽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그 사람이 들을 것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읽어본다. 이 시들이 내 마음을 잘 전달해줄는지를 생각한다. 이걸로 부족하면 한 편 써보는 것도 좋겠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해질녘이 있다. 각자의 아픈 사람이 있다. 각자의 인사법이 있다. 어쩌면 그게 다 시일지도 모른다. 시가 아니어도 시.

 

30. 딴생각 / 김재혁 지음 / 민음사 / 2013

: 이 시집 안의 시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지만,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않아서 문제였다. 개취. 아 이 무서운 개취.....



 

31. 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씨에지에양 지음 / 김락준 옮김, 박동곤 감수 / 지식너머 / 2019

: 이 책만 놓고 보자면 결국 기억에 남아 내게 도움이 되는 부분은 화학이 아니라 한 줄짜리 생활 상식이 될 것이다. 모공을 줄이겠노라고 고통을 참아가며 한겨울에 찬물로 세수해 봐야 다 헛일이라든지, 2 in 1 샴푸라는 물건이 남자한텐 그리 나쁜 건 아니라든지 하는. 그게 아니라, 정말 일상에서 다양한 화학제품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이런 저런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만큼의 화학을 알려면 이 책으로는 태부족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은 제목대로 따로 쓸 만하고, 내용은 내용대로 따로 쓸 만한 희한한 책이 된다.....

 

32.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 / 이정모 지음 / 사월의책 / 2019

: 우리 알라디너들은 로쟈님이라는 거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분도 신은 아니신지라 장르 단위로 파고들면 그분보다 더 무시무시한 리뷰어들이 꽤나 도사리고 있다. 과학책 분야에서 이정모 선생님이 그렇다. 물론 로쟈 선생님이 과학책 적게 읽으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빨을 보노라면 이정모 선생님 역시 비-과학책이라고 적게 읽으시는 건 아닌 것 같다. 젠장, 프로들이란. 정말 그들만의 리그가 아닐 수 없다.

: 읽고 쓰고 강연하는 일이 본업인 로쟈님에 비하면 이 양반은 아주 나아아아아아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책 읽는 일고 글 쓰는 일이 본업이 아닌데(잘은 모르겠지만 과학커뮤니케이터라는 직업은 읽고 쓰는 일이 당연히 어느 정도 수반되는 직종처럼 보이긴 한다. 그런데 따지고 들자면 세상 모든 일이 대체로 그렇다)도 이래 버리면 이거 여러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다. 책날개에다 이런 걸 일러 남의 밥벌이 영역을 침범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각자 고유의 분야가 있으며 그것만 잘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서평마저 잘 쓰면 그건 안 되는 거다. 사람이라면 일부러 못 쓸 줄 알아야 한다. 아직 인성의 진화가 덜 되었나 싶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는 추천사를 써 놓으신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님의 마음이 뭔지 잘 알 것 같다. 심지어 syo는 도서평론가도 뭣도 아닌데도! 문제는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는데 과학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정모 선생님의 다른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다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 이정모 선생님이 과학책을 많이 많이 써내시는 것 외에는 뾰족한 도리가 없겠다. 알아서 수습하시겠지.



 

33. 단숨에 그림 보는 법 / 수잔 우드포드 지음 / 이상미 옮김 / 시그마북스 / 2019

: “~는 법이라는 책에 손대는 버릇을 이제 좀 고쳐야 하는데, 왜 이렇게 유혹적이냐...... 아 정말 별 거 없구나, 하며 물러나는 경험이 이렇게나 축적되었는데도, 여전히 끌리다니, 알고 보니 법 좋아하는 남자 syo.

 

34. 나는 오늘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 / 안정은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

: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성공한 흔한 성공기.

 



35. 도시재생 이야기 / 윤주 지음 / 살림 / 2017

36. 돈이 보이는 손가락 회계 / 김상헌 지음 / 길벗 / 2017

: 아무리 입문서라도 평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아는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껏 철학 입문서들을 평하면서는 입문서라서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내가 아는 게 좀 있었구나. 아는 게 없으면 이렇게 아무 말도 못하는 거구나......

 

 

 

16일부터 읽었으니 하루 2.4권 페이스로 읽어댄 것이로군?

 

그렇담 7월에는 다시금 공부를 좀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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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7-02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직스트레이트를 받은 핵꼽슬 머리카락,의 주인공인지라 다른 말, 다른 책이 눈에 안 들어오는..... 흐흑ㅠㅠ 시집이 많네요. 4권? 5권? 흐흑 ㅠㅠㅠ

syo 2019-07-02 21:53   좋아요 0 | URL
단발님 울지 마세요. 넣어둬 넣어둬 눈물은 넣어둬.....
4차산업혁명 시대가 오면 인공지능이 핵꼽슬 시원하게 펴줄 거예요! 걔네가 못하는게 어딨어.....

북다이제스터 2019-07-0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올해 6개월 동안 읽은 책 분량과 같으세요. ㅠㅠ

syo 2019-07-02 21:54   좋아요 0 | URL
양만 저렇지 실상은 입문서, 시집, 대담집.....

늘 질적 독서로 저를 압도하시는 북다님이시잖아요ㅠㅠ

독서괭 2019-07-0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라 정교한 헛소리” 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보관함에 잔뜩 담아갑니다~^^

syo 2019-07-03 08:26   좋아요 0 | URL
이런 말 하면 누군가로부터는 욕을 들어 먹겠지만, 그래도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대출이 먼저다˝

2019-07-03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7-03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나 김영승 시인의 시집 반성 가지고 있다요 ㅎㅎ 놀랍죠?!

2. 하이데거 읽어봐야겠어요. 그 만화버젼으로. 킁킁.

3. 제 사무실 책상 위에 옥수수랑 자두 있지롱요.

syo 2019-07-03 08:28   좋아요 0 | URL
1. 뜻밖이긴 하네요. 전 김영승이라는 시인에 대해서 처음 알았어요. 심지어 내가 그 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ㅋㅋㅋㅋㅋ

2. 하이데거는 눈깔 몇개 달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3. 훗, 그래서요? 옥수수랑 자두는 옥수수랑 자두지 복숭아가 아니잖아요^ㅜ^

다락방 2019-07-03 08:34   좋아요 0 | URL
페이퍼 뒤져보니 2011년에 김영승 페이퍼 썼네. 있는 것만 확인하고 읽지는 않았어요. 부끄러운 글이 나올까봐.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 아직 이번 여름 복숭아 못먹었어요. 먹게될 날을 기대합니다. 이번 주말에 시장 가봐야지. 지난 주말에는 천도복숭아만 잔뜩이더라고요.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안샀어요. 대신 오렌지 사왔는데, 오렌지 되게 맛없다? 오렌지 원래 엄청 맛있는데, 이번에 사온 거 왜이렇게 물이 없고 ... 으으 얼른 먹어치워야지.

syo 2019-07-03 09:08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은 복숭아맛 아이스크림이나 복숭아맛 요플레나 먹으면서 몸풀기를 하고 있다는....
복숭아놈들 나오기만 해 아주 조져버릴 테다.

목나무 2019-07-0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출이 먼저다!
댓글보다 빵터졌어요. ㅎㅎㅎ
syo님의 이 결산을 기다리는 일인으로서 7월달 공부 좀 덜 하시고 책 더 많이 읽으시면 안될까나요? ㅋㅋ

syo 2019-07-03 10:54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닐지...... 이게 참, 적게 읽겠다고 다짐한다고 적게 읽어지는 것도 아니고 많이 읽겠다고 다짐한다고 많이 읽어지더라구요. 응?

ohbusybee 2019-07-0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 진짜 많이 읽으시네요. 감탄하구 갑니다ㅠㅠ. 슬럼프 언능 극복하시길 바래요.

syo 2019-07-03 17:32   좋아요 0 | URL
이 감기 같은 슬럼프놈아......ㅠㅠ
얼른 낫겠습니다. 감사합니다 ohbusybee님.

또 봄. 2019-07-0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나르베르베르는 되지 마세요오.
뒤늦게나마 상경을 축하드립니다.
(너무 뒷북인가요?)
저도 올 3월에 입성했거든요.
환영하지 말입니다.

syo 2019-07-03 23:39   좋아요 0 | URL
아, 아직 상경 전입니다 ㅎㅎㅎ
전혀 뒷북 아니시고 오히려 앞북이세요.

또봄님의 3월 입성을 축하드립니다.
이게 진정한 뒷북이지요.

2019-07-30 0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31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