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2꿉3
1
아메리카노와 먹 간 물의 차이를 치열하게 고찰하던 코찔찔이가 있었다. s모라는 작자다. 대학생활의 끝물쯤 되자 그는, 카페인은 내 고독한 인생의 필수품, 에스프레소 한 잔은 내 지친 전두엽을 위로하는 아스피린과도 같지- 따위의 허세(=지랄)도 떨 줄 아는 으른 남자가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자기 자신을 참 치열하게도 속여 왔다. 이게 맛있는 거야. 쓸개즙 맛 같겠지만 이게 고급진 거야. 생각해 봐, 쓸개즙 먹어본 적 있어? 없지? 왜 없을까? 고급지니까! 넌 이걸 마셔야 해. 마실 줄 알아야 해. 여기가 어디야? MAN, 여긴 SEOUL CITY야. 모름지기 MAN OF SEOUL라면 AMERICANO정도는 CAN DRINK해야지? GOT IT? 마셔, 들이켜, 익숙해질 때까지 들이 부어! 인상 쓰지 마. 인상 피라고. 저기 저쪽에 앉은 여자가 널 얕잡아 볼 모양이다! 지지 마. 웃어. 힘이 들면 안성기를 떠올려. 그리고 그윽한 표정을 지어. 음미하는 연기를 하란 말이야. 하다 보면 진짜 맛있어진다. 먹다 보면 정말 맛있어진다. 맛있어진다. 맛있어진다.....
이렇게 맛있어졌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맑으면 두 잔, 비 오면 석 잔을 정량으로 친다. 하루 한 잔도 버거웠던 날들과 일곱 잔씩 들이부었던 날들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 찾아낸 균형점이다. 근데 이것도 거의 강박이라, 언제였던가, 맑은 서울에서 아침 점심에 한 잔씩 마시고 밤에 대구 내려왔더니 비가 내렸길래 반잔만 꺾어 마신 날도 있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놈이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나조차 사랑하기로 하자. 요즘 자기오구오구 주간이다. 그리고 장마의 시작이다. 커피 소비량이 1.5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어 새로이 주문을 넣었다. 대책없이 대량으로. 박스째 올 것이다. 오구오구 잘했어요. 올해 내내 먹을지도. 오구오구 그것도 잘했어요. 괜찮아. 카페인은 내 고독한 인생의 필수품, 하루 세 번 반드시 입 안을 애무하는 치약과도 같지. 오구오구 지랄도 잘했어요.
syo(와 그의 친구 三)의 아메리카노 적응기는 사실 더 길고 지난한 이야기다. 굴욕과 수난, 뻔뻔함과 시기질투, 스타벅스아이스바닐라라떼투샷얼음빼고주세요가 어우러진 철저한 개인사지만, 동시에 사회 문화의 변동 양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번듯한 미시사라고 볼 수도 있는데, 오늘은 오늘 치 커피를 다 마셨기 때문에 차마 쓸 수가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웬만하면 쓸 일은 없을 듯하다. 카페인은 물론 알콜의 도움도 상당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참 아쉽다(핵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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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에는 그렇게 말하며 심호흡을 했다. 미도리는 진열된 과일을 들고 하나씩 향을 맡았다.
"도쿄에 있을 때 가끔 고급 슈퍼마켓에서 장을 봤습니다. 월급을 받은 직후에요. 구경 온 것 같은 직장 여성들한테 난 당신들하고는 차원이 좀 달라, 하고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었다고나 할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직장 생활을 하는 주부가 장보러 나온 것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양상추 한 통 800엔, 양배추 600엔, 조개관자 몇 개가 1200엔. 굉장한 가격이죠. 머리 한구석으론 '비싸! 집 근처 채소 가게나 생선 가게에서 사면 몇 분의 일만 줘도 살 텐데' 생각하면서, 또 다른 마음은 고급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게 우쭐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걸로 끝이더군요. 이곳 시장처럼 장을 봐도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괜히 허세를 부려놓고는 집에 돌아와서 봉지에서 물건들을 꺼내 가격을 보고는 새삼 놀라고 그랬죠. 그런데 그러면서도 기분은 왠지 나쁘지 않더라는 거죠. 이상한 반복이었습니다. 어디가 잘못됐던 걸까요."
미도리는 여전히 진열된 과일을 손에 들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_ 무레 요코, 『카모메 식당』
추억이란 게, 필요 없다고 어디 없던 시간이 되나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기까지도 기억의 방바닥에 꾸덕꾸덕 눌어붙어 기어코 추억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을요. 잊히기 위해서라도 존재해야 하는 시간들.
_ 김나연,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2
열흘쯤 놀다시피 읽었더니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또 열흘쯤 공부하다 보면 읽으면서 놀고 싶겠지. 내가 이따위라서 큰 인물이 못 되고 고작 syo가 된 것이다. syo. 모든 행보가 갈지자인 남자. 망하고 망하고 또 망해도 망할 짓만 골라하는 이 망할 노무 자슥 같으니라고.
3
어차피 못 쓸 거라면 못 써도 나같이 못 쓰고 싶다. 누가 syo 아니랠까봐 열라 syo같이 썼군, 이런 말을 들으면 퍽 좋을 것 같다. 그게 잘 썼다는 뜻이건 못 썼다는 뜻이건 간에, 어쨌든 syo의 글이 syo같기만 하다면, syo가 괜찮아지면 syo의 글도 괜찮아지는 거니까, 글 따로 syo 따로 키울 필요 없이 syo만 키우면 되니까, 얼마나 편해. 왜 글이 그 따위에요- 물어오면, 죄송합니다, 제가 이따위라서 그만- 하고 대답하면 땡이니까, 얼마나 편해.
잘하자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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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어떤 작품에 대해 자전적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모든 소설은 궁극적으로 자전적이다. 작가는 여러 권의 책을 통해 한 편의 자서전을 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작가다.
_ 이승우,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목장으로 이사 와서 처음 한두 해는 책을 등한시했다. 책은 그저 벽을 장식하는 가구였다. 그런데 이렇게 대번에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고 있다.
롤랑 바르트를 읽고 있는데 이런 말이 나온다. "나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하려면(다시 말해 내 미시지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다른 말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창적인 말, 아무도 쓴 적 없는 말로 바꾸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 자체를 진짜로 하려면 그것을 습관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그 일을 통해 경험을 얻었거나 인식을 얻었다면 그 일 자체를 진짜로 한 것이 아니다.
바르트는 문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너무 잘하게 되면 그 일이 재미없어진다.
똑같은 농담을 두 번 연속으로 하기는 어렵다.
양들이 계속 신비로움을 간직해 주기를.
언젠가 양들이 전기의 허점을 찾아내는 날이 오기를.
_ 악셀 린덴,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
4
뭐라도, 짧은 거라도, 매일 찌끄려보는 게 먼 훗날을 위하여 좋으려나 생각하는 중.
어차피 사흘에 한 번, 혹은 묵혔다가 일주일에 한 번 쓴다고 해서 뭐 더 봐줄만한 게 나온 건 딱히 아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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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도 고통스럽고 글을 안 써도 고통스럽다. 그러면 쓰는 게 낫다. 뭐라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니까. 슬프지만 일을 하고, 슬픈데도 밥을 먹고, 슬프니까 글을 쓴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으면 내일도 살 수 있다. 서툴더라도 자기 말로 고통을 써 본다면 일상을 중단시키는 고통이 다스릴 만한 고통이 될 수는 있다. 그러므로 우리 뭐든 써보자고 하며 저마다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_ 은유, 『다가오는 말들』
일기는 작품화하지 못한 '잡문'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작품으로 담아내지 못한 덜 정제된 재료도 아니다. 오히려 울프의 일기는 소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독자적 장르다. 소설가 울프를 가능하게 만든 삶의 언어가 바로 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는 일기에서 소설의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마음을 실험했다. 에세이가 현상에 대한 분석을 전제로하는 것이라면 그의 일기는 형식 자체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생각나는 대로 기술하고 있지만, 그 기술은 현실의 전개다. 이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울프의 관점이다.
_ 이택광, 『버지니아 울프 북클럽』
예측할 수 없는 일 가운데서도 가장 이상한 것이 일기를 쓰는 일이다. 일기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예견할 수 없다. 좋은 것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것이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니다. 내면의 가장 풍부한 창고에 빛을 비추더라도 나의 계산대에 올라오는 것은 그저 조잡하고 값싼 재료들 뿐이다. 하지만 몇 개월이나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이 혼란스러운 더미 속에서 육로를 통해 가져온 중국의 희귀한 유물이나 인도의 보물이 나올지 모른다. 마른 사과나 호박을 줄로 이어놓은 듯한 너저분한 것이 나중에는 브라질의 다이아몬드와 코로만델의 진주를 엮어놓은 보물로 밝혀질지 모른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일기』
--- 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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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 / 아니 에르노 : 188 ~ 309
+ 타자와 욕망 / 문성원 : 109 ~ 168
+ 해질녘에 아픈 사람 / 신현림 : ~ 117
+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 / 이정모 : 283 ~ 430
+ 미루기의 천재들 / 앤드루 산델라 : 117 ~ 239
---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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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상학 / 한전숙 : ~ 64
=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 김겨울 : ~ 133
=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김진영 : 68 ~ 150
= 세상을 알라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 ~ 52
= 위험하지 않은 몰락 / 강상중, 우치다 타츠루 : ~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