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글들아, 열 떨어지면 다시 만나자
※ 이 글에는 책에 대한 정보가 일절 없습니다. 근데 왜 썼을까요......
나란 놈이 도통 나와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어 보여서 나는 난감하다. 책 세 권을 꼼꼼히 읽겠다고 분명히 나한테 약속했는데, 그래서 나는 없는 살림에 큰 맘 먹고 나한테 책 세 권을 선물해줬는데, 나란 놈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책들을 내팽개치고, 내가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신간에만 관심을 둔다. 비싸게 주고 들여온 책 세 권은 책상 위에서 먼지수집장치로 맹활약중인데 그 처연한 자태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쓰리다. syo가 이런 놈임을 syo가 이미 잘 알긴 했으나, 저렇게까지 당당하게 나오니 도리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으슬으슬 오한이 드는가 싶더니 금세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라 에라이 모르겠다 드러누웠는데 자고 일어나도 컨디션은 똑같고 또 자고 또 일어나도 컨디션은 또 똑같은 거라 한번 더 자고 일어나도 한번 더 똑같겠구만 싶었으나 자고 일어나는 것 말고는 뭐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라서 그냥 그렇게 계속 잤다. 자고 또 잤는데도 여지없이 늦잠이었고, 아침 새소리 뭐 그런 걸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눈을 떴을 때 주변은 부당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커피포트를 켜고 책상 앞에 앉아 컨디션을 점검해본다. 콧물, 안 나옴. 기침, 안 나옴. 이마, 안 식음. 머리(아픔) 어깨(결림) 무릎(쑤심) 발(간지러움) 무릎(노답) 발(긁었음). 등 뒤에서 포트는 탁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뱉고 있다. 어떻게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뭐라도 좀 길게 쓰고 싶은데, 읽은 것 중에 말하고 싶은 부분들도 꽤 있었는데, 머리가 무겁고 손끝이 무디다. 결국 다 읽는데 1분 걸릴 지금 이 글을 40분 째 쓰고 있다. 뭔가를 자꾸 썼다가 지웠다가 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읽었다는 기록은 남겨야 할 것 같은 못난 강박 때문에, 뜨거운 손가락으로 책 제목만 나열한다.
--- 읽은 ---




김정선,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조동범, 『보통의 식탁』
아니 에르노, 마크 마리, 『사진의 용도』
데니스 C. 라스무센, 『무신론자와 교수』
--- 읽는 ---







김민주, 『김민주의 트렌트로 읽는 세계사』
서민, 『밥보다 일기』
마쓰무라 게이치로,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The School Of Life, 『인생 직업』
위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이혜민·정현우, 『요즘 것들의 사생활 : 결혼생활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