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하게 쇠약해지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고흐는 아를르로 옮겼는데 그로부터 2년간이 이 화가의 생애의 절정이었다. 격렬하고 극도로 표출적이 그 양식도 거의 완성의 영역에 달했으며 마지막 해에는 색체 분할과 선묘로 인상주의 기법과 그가 그때까지 품어왔던 비전이 총괄적인 조화점에 이르렀다. 고흐의 자연에 대한 접근 방법의 특이성은 이미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생성과 생동의 신비를 둘러 싸고 고호의 비전은 형성된다.

고흐의 풍경화에서는 그러한 비전의 형성에 도움이 되는 기본적인 형태를 제공하는 것으로서만 자연 속의 여러 대상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아를르 공원이라는 현실적인 대상을 보고 그린 것이고, 또 견실한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이 해 여름,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원에 협죽도가 무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자랑스럽게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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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밑의 모네 부인]
-1880
-캔버스에 유채, 81*60cm
-워싱턴 국립회화관

모네의 색의 세계에선 인물도 초목도 하늘과 집도 고유한 색채를 지닌 독립체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풀숲의 흰 옷의 부인 모습도 막연하다. 빛 속에 빠져들어간 것처럼 얼굴도 손도 발도 확실치 않다. 버드나무의 나뭇잎들도 엷은 잡색의 터치로 연기처럼 처리되었고 원경의 집들도 담홍색과 청홍색의 반점에 지나지 않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우리들이 무턱대고 개개의 물체가 무엇이냐고 판단하기에 앞서 전체를 바라보면서 여러 색채의 혼합을 눈여겨보면, 홀연히 눈앞의 풀숲에서 흰옷의 부인이 나타나고 그 뒤로 버드나무의 나뭇잎들이 푸른 초원에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밝은 하늘에 잎을 벌리고 나타난다. 빛의 화가 모네는 사람들에게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이 빛의 세계를 자신을 갖고 충실히 그려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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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 접목하는 농부,
1855, 캔버스에 유채,
80.5X100cm, 뮌헨, 알테 피타코테크


밀레의 ‘접목하는 농부’(1855) 역시 그런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어린 나뭇가지를 성숙한 나무에 접목시키는 농부와 그의 가족을 소재로 했다. 일상적인 농가의 풍경을 한없이 따뜻하고 다감한 필치로 표현한 그림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주제는 그러나 좀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보다 깊은 정서적 울림을 자아내도록 고안돼 있다. 농부의 부인과 그의 아이가 지닌 주제와의 연관성이 그 울림을 증폭시킨다.

접목이란 어린 나뭇가지를 성장한 다른 나무에 접붙여 그 나무에 영양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부모가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과 같다. 농부의 아이가 어머니에게 폭 안겨 있는 모습이 바로 그런 사랑과 희생의 관계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삶의 고리가 언제나 이전 세대의 숭고한 희생으로 이어져왔음을 은근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작품인 것이다. 새롭게 동이 터 오는 하늘의 모습도 이와 관련이 있다.

파리 근교 바르비종서 그려

이 그림을 처음 본 동료화가 테오도르 루소는 작품의 주제와 표현이 매우 마음에 들어 당장 구입했다고 한다. 두 화가는 아마도 이 그림을 앞에 두고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유명한 시구를 떠올렸을 것이다.

“다프네(월계수)여, 배나무를 접목하라. 너의 손자들이 그 열매를 추수하리라.”

어쩌면 밀레를 비롯한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이 이런 접목의 희생물로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과 즐거움을 가져다 준 존재일지 모른다. 그들은 남들이 아직 채 발견하지 못한 위대한 미학적 가능성을 자신의 삶에 접목시켜 그것들을 키워내고 스스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스러져갔다. 일례로 반 고흐는 지상에서 달랑 작품 하나밖에 팔지 못하고 갔어도, 그의 작품이 내걸린 미술관에는 오늘날 수많은 인파가 찾아오고 그에 관한 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술적 감동을 얻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적 혜택도 누리고 있으니 밀레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진정 위대한 접본(♥本)이 아닐 수 없다.

밀레가 ‘접목하는 농부’를 그린 곳은 파리 근교에 있는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바르비종은 한편으로는 퐁텐블로 숲, 다른 한편으로는 샤이 들판에 면해 있는데, 파리에서 가까우면서도(차로 1시간 반 정도의 거리) 경치가 좋은 곳이 많아 19세기 중반부터 화가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특히 1830~1875년 사이에 이곳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루소, 디아즈 드 라 페나, 코로, 샤를 자크, 바리, 도비니, 트루아용 등은 밀레와 더불어 이른바 바르비종파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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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캔버스에 유채, 65 x 54.5cm

고흐는 앙베르 시절 때부터 40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고, 그 안에서 심도 깊은 닮음을 추구해 왔다. 고흐에게 자화상은 자기 자신과의 대면에 사로잡힌 예술가의 고유한 이미지에 대한 일련의 유채였으며, 때에 따라 의도적으로 자기의 특징을 바꿔 가며 강조하기도 한다. 누이 윌에게 "동일한 인물이 아주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그 스스로를 캔버스 앞에 선 화가로, 낭만적인 북유럽 사람으로, 짧은 머리를 한 일본인처럼 그리면서 인물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표출하고 있다.

1888년 겨울부터 1890년 자살에 이르기까지 고흐는 간혹 회복을 보이기도 했으나, 격심한 고통 속에 살아가는 만성적인 환자였다. 1889년 7월에 생 레미 요양소에서 6주를 끈 첫 번째 발작에서 회복된 고흐는 두 점의 초상화를 그렸다. 첫 번째 그림은 요양소 측에서 그의 작업을 중지시키지 못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 그린 이 작품은 확고한 결심과 동시에 자기 반성을 표명하는 것이었다.

그림에서 거칠고 붉은 수염, 움푹 파인 눈, 창백한 입술, 이 모든 것이 화가의 진짜 얼굴이다. 그의 얼굴은 충분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소용돌이치는 배경의 선은 형체를 와해시키며,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한 인물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고흐의 자세와 옷차림은 차분하고 고요한 안정을 드러내지만, 혼란스러운 배경은 그 안정이 위태로운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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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무대 위의 무희

사진크기 : 412*600 (원본사진보기)

출처 : © encyber.com

설명 : 1876~1877년 프랑스의 화가인 드가의 작품이다. 파스텔화로, 크기는 60x44cm이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련항목 : 오르세미술관, 인상주의미술, 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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