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독서의 기술과 적극성

최근 독서가 옛날만큼 중요시되지 않는 것 같다. 라디오, 특히 텔레비전은 일찍이 활자가 수행하고 있던 기능을 대신 떠맡으려 하고 있다. 텔레비전의 뉴스는 눈에 호소하며, 라디오는 일을 하면서 들을 수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이들 새로운 매스 미디어의 출현은 우리가 사물을 깊이 이해한다는 점에서 정말로 도움이 되고 있는지 매우 의문이다.

현대의 두뇌는 그 정수를 모아, 정보나 의견의 지적 패키지를 만드는 대발명을 이룩하였다. 이 지적 패키지를 우리는 텔레비전, 라디오, 잡지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거기에는 재치 있는 말솜씨나 선발된 통계, 자료 따위가 모두 정리되어 있어, 우리는 꼼짝하지 않고도 '자기의 판단을 내릴' 수 가 있다. 그러나, 이 지적 패키지가 너무 지나치게 잘 되어 있어서, 자기의 판단을 내리는 수고조차도 덜어주기 때문에, 독자나 시청자가 전혀 머리를 쓰지 않고도 해결되고 만다. 카세트를 플레이어에 끼우는 요령으로 지적 패키지를 자기 머리에 탁 던져 넣고 나면 그 다음은 필요에 따라 단추를 눌러 재생시키기만 하면 된다.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독서에는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와 이해를 깊이 하기 위한 독서가 있다. 목적이 다른 두 종류의 독서는 처음부터 분명하게 구별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목적이 두 가지가 있으므로 읽는 방법도 마땅히 두 가지가 있어야 좋을 것이다. 하나는 신문, 잡지와 같은 것을 읽는 것인데, 이러한 것은 독자의 독서력이나 이해력에 따라 곧 내용을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것은 정보의 양을 증가시켜줄 뿐이지 이해를 깊이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전에 읽고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에 다시 한번 도전하는 경우다. 즉, 자기의 이해를 웃도는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독자는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이다.

얕고 넓게 읽는 것과 충분히 읽는 것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 '가르침을 받는 것' 과 '발견하는 것'의 다름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이것은 독서뿐만 아니라 널리 교육에도 관계되는 문제다. 교육학에서는 '가르침을 받아' 배우는 것과 '발견하여' 배우는 것은 일반적으로 구별하여 생각한다. '가르침받는 것'은 말하는 이나 필자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자면 자기 스스로 '발견'해야만 한다. 남에게 의지하여 이루려고 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연구하고 조사하고 깊이  생각하여 배워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배우는 것의 일부에 불과하다. 무엇을 배워 얻으려면 감각이나 상상력을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관찰력과 기억력도 필요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상상력으로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발견'의 과정에서는 이러한 정신 활동이 중요시 되는데, 읽기 듣기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는' 경우에는 아무튼 그것이 과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 독자에게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은 독서 기술에는 '도움 없는 발견'을 위해 필요한 기술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날카로운 관찰력, 틀림없는 기억력,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분석과 사고에 의해 단련된 지성, 이러한 모든 것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이해를 깊이 할 수 있는 독서는 책이라는 교사가 붙어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도움이 없는 발견' 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 때에는 누구나 교사에게서 초보적인 독서 방법을 배워 난해한 책과 맞붙게 된다. 하지만, 자기가 읽고 싶은 것을 읽을 때나 학교를 나와 교양을 몸에 붙이려면 믿는 것은 교사 없는 독서뿐이다. 그러니까, 일생 동안 줄곧 계속해서 배우고 계속해서 '발견'하려면 어떻게 하여 책을 가장 좋은 스승으로 삼느냐 하는 것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독서의 기술)은 무엇보다도 우선 그것을 위해 씌어진 것이다.

제 2 장 독서의 수준

최초의 수준은 '초급 독서'이다. 이 초보적인 읽기 쓰기를 배우는 제1수준은, 기본 독서, 기초 독서, 초보 독서라고 이름붙여도 좋은 것이지만, 보통 초등학교에서 학습하므로 '초급 독서'라고 해두자.

독서의 제2수준은 '점검 독서'다. 시간에 중점을 두는 것이 제2수준의 특징이다. 점검독서의 목적은, 주어진 시간 안에 될 수 있는 대로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점검 독서는, '골라 읽기', 혹은 '예비 독서'하고 해도 괜찮지만, 그냥 띄엄띄엄 골라 읽는다고 하더라도 마음 내키는 대로 겉핥기로 읽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점검 독서는 '계통을 세워서 띄엄띄엄 골라 읽는' 기술이다. 책의 표면을 점검하고, 그 한도에서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는 일이다. 이것은 매우 힘이 드는 일이다.

독서의 제3수준은 '분석 독서'다. 분석 독서란 철저하게 읽는 것을 말한다. 독자로서 가능한 한도의 극히 고도의 독서법이다. 점검 독서가 시간의 제약이 있는 경우의 가장 뛰어난 완벽한 독서법이라고 한다면, 분석 독서는 시간의 제약이 없는 경우의 가장 뛰어난 완벽한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가장 고도의 독서 수준은, '신토피칼 독서'다. 신토피칼 독서는 비교 독서법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신토피칼로 읽는다는 것은, 한 권뿐만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몇 권의 책을 서로 관련지어서 읽는 것을 말한다.

제 3 장 초급 독서 - 독서의 제 1 수준

제 4 장 점검 독서 - 독서의 제 2 수준

1. 표제나 서문을 볼 것  2. 책의 구조를 알기 위해 목차를 살펴본다  3. 색인을 살펴본다  4. 커버에 씌어 있는 선전 문구를 읽는다  5. 그 책의 논의의 요점이라고 생각되는 몇 개의 장을 잘 볼 것  6.군데군데 띄엄띄엄 골라서 읽어본다

점검 독서는 책을 조사하면서 읽는 것이므로, 주의력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극히 적극적인 독서이다. 좋은 책의 페이지를 넘겨보면서, 그만 꾸벅뿌벅하다가 퍼뜩 잠이 깨어, 읽던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한 경험을 몇 차례나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실패는, 지금 말한 절차를 밟기만 하면, 즉 실마리를 따라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기만 하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자기가 탐정이 된 셈치고, 그 책의 커다란 테마나 의도를 발견할 실마리를 찾아서, 온갖 힌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읽으면, 시간을 놀랄 만큼 절약할 수 있고 이해도 깊어진다. 또, 처음 예상한 것보다도 간단한 것임을 알고 마음이 편해질 것이 틀림없다.

세상에는 '골라읽기'를 할 만한 가치도 없는 책이 많으며, 빨리빨리 읽어내려가는 편이 나은 책도 상당히 있다. 천천히 정성껏 주의를 기우려 읽어서 완전히 이해하여야만 될 책은 극히 소수밖에 없다. 속독하기에 알맞는 책에다 시간을 들이는 것은 낭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안구를 정류하는 버릇을 고치는 데는 자기의 손을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스스로 손을 페이지 위에 놓고 그것을 점점 빨리 움직이는 연습을 한다. 엄지손가락, 집게손가락, 가운뎃손가락을 가지런히 하여, 활자의 행을 따라 안구의 운동보다 빠르게 이동시킨다. 다소 무리해서라도 이 손을 따라가도록 노력을 한다. 마침내 그 손의 움직임과 같은 빠르기로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될것이다. 그렇게 되면 손의 스피드를 올려본다. 이것을 계속 되풀이하면 어느새 읽는 속도가 2배나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빨리 읽을 수 있게 되면 도대체 어떠한 소득이 있는 것일까? 확실히 시간은 절약된다. 그러나 이해에 대해서는 어떤가? 아니면 읽는 속도가 늘었기 때문에 이해가 소홀해지지나 않았는가? 읽는 속도가 늘면 그에 따라 이해력도 증진된다고 어느 속독 교실에서  말하고 있다. 이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 손가락은 읽는 속도를 빠르게 할 뿐만 아니라, 당장에 읽고 있는 페이지에 향하는 독자의 집중력을 높이는 구실도 한다. 손을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도 앉아서 졸거나 몽상에 잠기거나 멍하니 딴 일을 생각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진다.

제 5 장 - 의욕적인 독자가 되려면

읽고 있는 동안에 질문을 할 것. 그 질문에는 다시 독서를 계속하는 동안에 자기 스스로 회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1. 전체로서 무엇에 관한 책인가  2. 무엇이 어떻게 상세히 서술되어 있는가  3. 그 책은 전체로서 진실한가 혹은 어떤 부분이 진실한가  4. 그것에는 어떠한 의의가 있는가 - 네 가지 질문을 명심할 뿐만 아니라 읽으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읽으면서 질문을 하는 '습관'은 의욕적인 독자의 표시다.

책에 써넣기를 하는 것은 단적으로 말하면, 독자가 저자와 의견을 달리하느냐 같이하느냐의 표현인 것이다. 이것은 독자가 저자에 대해 바치는 최고의 경의(敬意)다

효과적인 써넣기의 방법  -  1.방선을 친다.  2. 행의 첫머리 여백에 횡선을 긋는다.  3. ☆표, ※표 기타의 표를 여백에다 한다. 이것은 남용해서는 안 된다.  4. 여백에 숫자를 기입한다. 논의의 전개에 따라...  5. 여백에다 다른 페이지의 넘버를 기입한다. 같은 책의 딴 곳에서 저자가 같은 말을 하고 있거나, 이것과 관견되거나 모순되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표시할 때...  6. 키 워드를 ○으로 둘러싼다.  7. 페이지의 여백에 써넣기를 한다. 어떤 곳을 읽다가 생각난 질문이나 대답을 기록하기 위해서...

제 6 장  책을 준류한다

제 7 장  책을 투시한다

제 8 장  저자와 타협을 짓는다

책이라는 것이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 주고 독자를 계발해주는 것은 금방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제 9 장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제 10 장  책을 올바르게 비평한다

좋은 책은 적극적인 독서를 할 만하다. 그러나, 내용을 이해한 것만으로는 적극적인 독서로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비평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즉 판단을 내림으로써 비로소 적극적 독서는 완료된다.' 의욕적이 아닌 독자가 실패하는 것은 이 점이다. 의욕적이  아닌 독자는 내용의 분석이나 해석을 게을리하는 수도 많지만, 게다가 더욱 판단을 게을리한다. 이해하는 노력을 아까워할 뿐만 아니라, 책을 내팽개쳐서 씌어 있던 것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만다. 아무런 비평적 고찰도 가하지 않고 나쁘다고 단정하는 것은 허울 좋은 칭찬의 말보다도 더욱 나쁘다.

베이컨은 독자에게 훈계하고 있다. '반론이나 반박을 위한 독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책의 뜻을 잘 모르면서 그대로 외는 것도 좋지 않다.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해서 읽는 것도 탐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음미하고 숙고하는 일이다.'

확실히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의미로, 독자보다도 훌륭한 책을 비평하려면 우선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전제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독자는 저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 된다. 대등자로서의 특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리고 난 다음부터이다. 여기서 충분히 비평의 수완을 발휘하지 않는 독자는 저자를 부당하게 취급한 것이 된다. 저자는 독자를 자기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노력한 것이므로, 당연히 독자에게도 대화의 상대로서 대등하게 응답하여 말해주기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가르침을 받는 것은 오히려 지극히 적극적인 활동이다. 자기의 판단을 내리지 않는 인간은 참다운 의미에서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은 독서 기술의 훈련을 쌓아도 책에서 배울 수가 없을 것이다. '가장 훌륭한 비평가야말로 가장 좋은 독자'이다. 좋은 독자는 다 읽고 나서 책에 응답하여 말하고 자기 자신의 판단을 내리려고 한다.

비평의 제1규칙은, 우선 "이 책을 알았다."고 어느 정도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그리고 나서 '찬성' '반대' '판단 보류'의 '태도를 분명하게 할 것' 이다. 독자가 취할 수 있는 비평적 입장은 이 세 가지에 그친다. 비평이란 언제든지 반대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지 말기를 바란다. 찬성하는 것이나 반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독자의 비평 행위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좋은 비평이라고 할 수 없다. 판단을 보류하는 것도 하나의 비평 행위이다. 그것은 납득도 하지 못하고 또 설득당하기에도 이르지 못해서 태도의 표명을 보류하는 입장이다.

이 비평의 제1규칙에 대해서는 이 밖에도 주의해야 할 일이 몇가지 있다. 좋은 책의 경우, 독자는 그렇게 쉽사리 '알았다' 어쩌고 해서는 안 된다. 확신을 가지고 알았다고 단언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해되었는지 어떤지는 자기 판단을 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만큼 책임도 중대한 것이다. '모른다'는 것도 물론 하나의 비평적 판단이다. 힘껏 이해하려고 노력한 끝에 '모른다'고 할 때에야 그것은 비로소 책에 대한 정당한 비난으로서 통용된다. 그 경우는 독자가 나쁜 것이 아니다. 독자의 의무를 완전히 다하였는데도 모르는 것이라면 그것은 책이 나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좋은 책에 대해서 논하려는 것으로서, 책 쪽에 몫이 있는 경우이다. 좋은 책을 읽고서 모르는 것은 대개 읽는 법이 나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독자는 책의 개략과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 충분히 시간을 들인 다음에 비평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와의 대화에서 얻을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이익은 상대편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며, 독서의 성공은 지식을 얻는 데에 있다. 독자가 이러한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면 부질없이 논쟁만 해가지고는 아무런 이익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저자에게 반론하거나 저자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반론하는 데뿐만 아니라 찬성하는 데도 그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상대편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이상 자기에게도 그 준비가 있어야 마땅한 일이다. 자기의 잘못이나 무지도 인정할 만한 융통성이 필요하다. 반론하는 것은, 상대편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또 가르침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치를 아는 사람이 납득해줄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이 진실이라거나 그것을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제 11 장  저자에게 찬성하느냐 반론하느냐

책을 다 읽고 나서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내용을 이해했느냐 어떠냐 하는 것이다. 책에 씌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무엇을 말해도 소용이 없다. 그 때는 잠자코 책을 다시 되풀이하여 읽는 수밖에 없다.

책의 구성이 질서가 없다든지 각 부분이 조리가 닿지 않는다든지 맥락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든지 혹은 저자가 중요한 말을 모호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전체에 혼란이 생긴다든지 좌우간 구체적으로 증거를 들어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책 탓이라는 것이 입증되면 그 이상 독자에게 비평의 의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저자를 향하여 "당신이 말하는 것은 알았지만 찬성은 할 수 없다."고 하는 경우, 독자가 할 말로는 네 가지가 있다. (1)지식이 부족하다. (2)지식에 오류가 있다. (3)논리성이 결여되어 논증에 설득력이 없다. (4)분석이 불완전하다.

제 12 장  독서의 보조 수단

일반적으로 주석서를 읽을 때의 유의 사항을 하나 들어두겠다. 이것은 부대적 독서의 기본적인 유의사항이라고도 할 만한 것이다. 그것은, '다 읽어버리기까지는' 그 책에 관한 다른 사람의 주석서를 읽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학술적 평론적인 것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독자는, 최선을 다해서 한 권의 책을 읽고, 그런 다음에 주석서를 읽고 그 때까지 남아 있던 자기의 의문을 해결한다. 이것이 주석의 올바른 이용법이다. 처음부터 주석을 읽어버리면 주석자가 채택하고 있는 문제에만 정신이 팔려,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어도 빠뜨리고 넘어가기가 쉽다.  그것은 이미 자기의 독서라고는 할 수 없다.

제 13 장  소설 희곡 시를 읽는 법

'교양서'를 읽을 때에는 눈을 언제나 매처럼 빛내며 금세라도 습격할 수 있는 태세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시나 소설을 읽을 때에는 이래서는 곤란하다. 그 경우에는, 말하자면 적극적인 수동이라고도 할  만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읽을 때는, 이야기가 마음에 작용하는 대로 맡기고, 또 그에 따라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맡겨두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무방비로 작품을 대하는 것이다.

철학이나 과학은 이 세계의 진실한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은혜를 끼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 현실의 세계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지는 일도 있다. 문학의 본질은 도피니 뭐니 하고 말할 생각은 없다. 이른바, '도피' 라는 말에는 별로 신통하지 않은 의미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좀더 깊고 큰 현실에 향하는 것으로서, 그 현실이란 우리의 내면의 진실, 우리가 마음속에 독자적으로 그리는 세계이다. 이것을 발견할 수 있으면, 보통으로는 얻을 수 없는 깊은 만족을 경험할 수가 있다. 훌륭한 문학 작품을 읽을 때는 이처럼 깊이 있는 경험을 목표로 해야 한다. 감동을 방해하는 것은 전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를 읽는 법은, 첫째로 단숨에 계속하여 읽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나 희곡의 경우와 마찬가지지만, 시의 경우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둘째로, 되풀이하고 또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다. 눈으로만 읽을 때에는 놓치기 쉬운 어구도 귀로 들으면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시의 리듬이나 운이 이해를 돕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시에 몸을 맡기면 있는 그대로의 시를 음미할 수가 있다.

제 14 장  신토피칼 독서  -  독서의 제 4 수준

신토피칼: 동일 주제에 관한 Syntopical. syn-: '함께' , '동시에',  '비슷한' 등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사. topical: 화제의, 문제가 되어 있는 제목에 관한.

제 15 장  독서와 정신의 성장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책만을 읽는다면 독자로서는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의 힘 이상의 난해한 책과 맞붙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책이야말로 독자의 마음을 넓게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다. 마음이 풍부해지지 않으면 배웠다고 할 수가 없다.

오락서가 나쁠 것은 없지만 그러한 것은 독서 기술을 향상시켜주지는 못한다. 정보를 전달하기만 하는 책도 이해를 깊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종류의 책은 독자를 정보통으로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마음을 정말로 풍부하게 하여 독자를 향상시켜주지는 못한다.

인생에는 일조일석에 해결되지 못하는 영원한 문제도 몇 가지 있다. 남자와 여자, 어버이와 자식, 인간과 신 등과 같은, 인간과 인간, 또는 외계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다. 또 과학이나 철학에는 자연과 그 법칙, 그리고 존재나 생성의 문제가 있다. 훌륭한 책은 이러한 영원한 문제를 생각할 때의 좋은 안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깊은 사색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책을 읽고 있을 때의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책을 읽음으로써 정신이 향상되고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그 책에서 흡수할 것은 이제 더 없다는 것을 육감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몇천 종 가운데, 참으로 분석 독서를 할 만한 참되고 틀림이 없는 양서란 100종도 채 안 될 것이다. 최고의 독서술을 구사해도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책이다. 힘껏 몰두해도 무언가 아직 자기가 읽어내지 못한 것이 남아 있을 듯한 생각이 드는 책이다. 이 때에도, 아직 여기서는 생각이 든다고밖에 할 수가 없다. 무언가 있을 듯한 생각이 들 뿐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까지나 머리 한 구석 어딘가에 걸리어, 다시 한 번 고쳐 읽었을 때 이상함을 알아채게 되는 것이다.

정신의 단련을 게을리하면 '정신 위축' 이라는 대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정신의 사멸을 의미하는 무서운 병이다.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던 사람이 은퇴하면 급히 쇠퇴하는 일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오직 일에만 몰두하여 살아왔으나 그것은 바깥쪽에서부터 인위적으로 떠받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떠받침이 없어지자 자기 속에 정신적인 저장이 없는 사람은 사고하기를 완전히 그만 두고 마침내 죽음이 시작된다. 우리들 주위에 있는 텔레비전, 라디오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의 오락이나 정보원도 모두 인위적인 버팀목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밖으로부터의 자극에 반응하고 있으면, 자기의 정신이 활동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자극은 마약과 마찬가지여서, 마침내 효력을 잃고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마는 것이다. 자기 속에 정신적인 저장을 가지지 않으면,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우리의 성장은 그치고 만다. 그 때 우리의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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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의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항상 그대로 있길 원하지. 이번에도 그랬던 것 같아. 그게 삶이 아닐까? 봐, 인생은 변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잖아. 우리도 그렇게 해야 돼." ... p.44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두려움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안일한 생각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p.49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치즈는 오래되어 곰팡이까지 피어 냄새가 났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는데도, 허(주인공)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p.53

"두렵지 않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p.55

그는 가능하다면 많은 치즈를 소유하고 싶었지만, 치즈가 행복의 절대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느낀 행복의 순간은 두려움에 압도되어 있지 않을 때였다. ...p.66

변화는 우리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p.69

사람들은 흔히 변화가 우리에게 낯설다는 이유로 변화 자체를 거부한다. 또 변화가 필요함에도 불고하고, 위험하다는 핑계를 대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용하려 들지 않는다.그러나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뀌게 되고 이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려있다. ...p.71

☆변화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벽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다. ...p.73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줄 아는 것이다.그렇게 할 수 있으면 자유롭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 ..p.79

그는 이제 익숙한 것과 남들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편안한 곳에서 외부와 격리된 삶을 사는 것보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까닭이다. ...p.83

'치즈'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얻고자 하는 직업, 인간관계, 근사한 저택, 자유, 건강, 명예, 영적인 평화 그리고 조깅이나 골프 같은 취미활동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p.114

자신이 그토록 갈구하던 '치즈'를 얻게 되면, 누구나 그것에 얽매인다. 하지만 만약 '치즈'를 상실하게 된다면 급격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심리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버린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치즈'를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들을 제시한다. ...p.115

우리의 '치즈'는 계속해서 옮겨다닌다. 변화하는 '치즈'에 따라 과거에는 충성스럽고 우직한 직원이 필요했지만, 현재는 주위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직원이 필요하다. 그러한 까닭에 '치즈'는 유동적으로 움직일 줄 아는 직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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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소감과 비평적인 생각을 껴들여 '마이리뷰'를 나름대로 쓴다면 그 글이 명문이 아니더라도 크게 꾸짖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리뷰를 통해 읽은 책도 정리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에 대한 정보도 전할 수 있다면 좋을 것도 같은데, 며칠을 별러도 뜻대로 돼질 않는다.

리뷰가 써지질 않는 첫째 이유는 완벽을 추구하는 내 성격 탓이다. 그렇다고 매사가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완벽을 추구하다보니 글에 대한 느낌보다 중압감이 먼저 내 손을 마비시켜 버린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차근차근 글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련만, 이내 성격이 문제로다.

둘째 이유는 내가 쓰고자하는 마이리뷰의 책과 내가 읽은 책과의 관계이다.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책중에서, 쓰려고 하는 리뷰의 책은 파우스트, 노인과 바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 정도이다.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은 리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지, 다른 책들은 아직까지 리뷰를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 위의 책 중에서 파우스트는 세 번을 읽었지만 완전히 소화시켰다고 장담하기가 이르다. 아마도 두 세 번은 더 읽어봐야 리뷰를 쓸 자신이 생길 것 같다. 노인과 바다는 분량은 비록 작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이 인생 자체를 압축시켜 놓아서 어떻게 풀어놓아야 할지, 내겐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는 읽은 지가 좀 되어서 생각이 가물가물하다. 다시 들여다봐야 쓸 수 있을 것 같다.

셋째는 글 쓰기 실력일 것이다. 어쩜, 이것이 첫째이유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썼나 궁금해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 보면 주눅부터 든다. 모두들 어쩜 그렇게 잘 썼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으리라, 감명 깊게 읽지 않아서도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글 쓰기 실력이 부족해도 내 마음을 표현하는데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위로 해 본다. 오늘이 되었든 내일이 되었든 마이리뷰의 첫 탄을 쏘는 그 날을 위해... 으~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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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이 근심스레 한 사내 내려보네.

 과거를 얻기 위해 해를 건지려고 기어오네.

졌을 해를 다시 본들 지난날이 돌아오나.

 

하안참 고개 떨군 사내, 눈빛이 살아나네.

 어두워진 산길을 위태로이 내려가네.

조용한 골짜기에 울음소리 아름답게 퍼지네.

신음소리 밤새워 멀어져 가네.

 

경주 토함산, 본존불 반갑게 한 사내 바라보네.

미래를 맞이하려 해를 마중하려 올라오네.

찢어진 상처위로 잉크가 묻어나네.

 

본존불 걸어나와 찢긴 상처를 감싸주네.

그들의 웃음소리

어두운 골짜기를 환히 비춰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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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운동화 2004-03-05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창시절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여 과거에 연연하는 모습을
내가 살고 있는 경주의 남산(해지는 서쪽)과 토함산(해떠는 동쪽)을 배경으로 적어 본 시! (시라고 할 수 있다면....)

이누아 2004-03-22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산에 가면 정말 부처가 내 어깨를 두드릴 것만 같습니다. 문득 햇살 가득한 남산에 오른 느낌입니다.

파란운동화 2004-03-2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5년 여름에 제대를 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조. 남산 어느 기슭에 인자하신 노스님이 계시지 않을까싶어 산중을 헤매던 기억이 납니다. 윗 글도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쓰여졌습니다... 님의 서재에 다녀 왔습니다. 풍경소리가 조용히 들려오는 아늑한 산사같았습니다. 인연이란 정말 묘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경주를 관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문단지를 들렀을 것이다. 보문단지 안에 있는 큰 호수(보문지)에서 경주 동천동을 가로질러 형산강으로 흘러가는 내(川)가 북천이다. 그 곳, 북천의 작은 둔치로 자전거나 조깅을 할 수 있게 소로로 포장이 되어 있다. 둑 위의 도로를 가끔 차로 지나가며, '내를 바라다보며 잘 닦여진 길로 달리면 마음도 즐겁게 달릴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3월 1일인 어제, 물리치료를 받은 다음 냇가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세워놓고, 근 일 년 만에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2003년 1월 23일 좌측 발 복숭아 뼈 골절로 고정용 핀을 삽입하는 수술을 하고 2003년 12월 23일 고정용 핀 제거 수술을 하였다.) 담당 의사는 발목을 접쳐 넘어지지 않도록 만 조심하면 적당히 뛰는 것은 괜찮다고 했었다. 십 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조심스럽게 뛰기 시작했다. 햇살도 따갑지 않게 적당했고, 바람은 조금 불었으나 완연한 봄바람이었다. 게다가 새로 산 운동복은 나에게 잘 어울렀고 편안했으며, 달리는 차 속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나쁘지 않았다.

가볍게, 가볍게 달려나갔다. 예상했던 발목의 통증보다 가슴에 통증이 먼저 왔다. 멈춰 서지 않고 심호흡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이 십분 정도 걸으니 땀이 조심스럽게 나기 시작했다. 근 일 년 만에 운동으로 흘러보는 기분 좋은 느낌의 땀이었고, 상쾌한 순간이었다. 마주쳐 가는 사람에게 인사도 나누고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도 잊은 채 풀쩍 뛰어 허공에 주먹을 날리기도 하였다. "가끔씩 크게 아파 봐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처럼, 건강 할 땐 건강의 고마움도 모르고, 운동으로 땀을 흘리는 배출의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둔치로 난 조깅 코스는 삼 킬로 정도의 길이었고, 그 다음은 보문단지 가는 도로의 인도(자전거 도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 휴식을 취한 뒤 뛰지는 않고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 왔다.

다행히 밤사이 발목에 통증은 크게 없었다. 잠자리에 누워서 다리에 힘은 주니, 종아리와 허벅지에 굵은 힘살이 뻗치는 것이 나른한 상쾌함을 가져다 주었다. 잠도 깊이 잘 잤으며, 다시 운동으로 땀을 흘릴 수 있다는 고마운 마음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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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운동화 2004-03-0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쁘띠아!
다음에서 구입한 나이키 트레이닝 복이란다. 마라톤 대회에 나갈 땐 반바지를 입어야 겠는데, 입고 나갈만한 반바지가 다행히 집에 있구나. 뽀대는 조금 안나지만...^^

쁘띠아 2004-03-02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혹? 군에서 입던 반바지는 아니겠지요!
넘 무리하지마시고요....나이가 나이인지라..ㅋㅋ
운동다시시작한거 추카합니데이.........흐~~ 부럽따!~!
낼 휴무인데...나도 오랫만에 달려봐!!??

파란운동화 2004-03-02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하고 와서 저녁먹고...
식사는 하셨나?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내일은 황금같은 휴일이겠다.
달리고 나면 몸도 몸이지만, 기분이 너무 상쾌하다.
날씨도 좋으니, 내일은 가까운 곳에라도 한번 나가보렴. 한번 달려도 보고...^^

쁘띠아 2004-03-02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복 이쁘네요!! 좀 싸구려같기도 하고.,.ㅋㅋ

파란운동화 2004-03-02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싸구려같기도 하다 ㅡ,.ㅡ^
근데, 내가 입으면 옷에서 빛이 나온다. 막 나온다... ^ㅡㅡㅡㅡ^
내가 알아 본 나이키 운동복 세트중에 가장 저렴한 옷이다.
발광(?)하는 내 모습을 네 디카로 다음에 한번 찍어주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