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린 P/W를 찾는 기억 장치에 가장 즐거웠던 여행지는 어디인가라고 묻고 답란에 '울릉도'라고 적어두곤 했었다. 1993년 승엽이랑 둘이서 울릉도를 여행했었고 그때의 추억이 사진만으로 남지 않고 아주 잊지 못할 추억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여행다운 여행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여행 할 생각하면 먼저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냥 잠이나 자며 하루 종일 할 일없이 뒹굴뒹굴 방바닥이나 굴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작년부터 간간이 똘민이가 일본에 가자고 했었고 '그래, 가자.'며 맞장구를 치며 잠시 얘기를 즐기다가 말았는데, 그저께는 석가탄신일을 끼워 일본에 가자는 제의를 나도 모르게 수락하고 말았다. 똘민이가 나를 달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귀신에 홀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똘민이보다 먼저 여권까지 어제 신청했었다. 오전에 여권용 사진을 찍고 오후에 가까운 구청에 가서 서류를 접수했었다. 여권 사진을 보니 여행할 마음이 싹 가셨지만 어쨌든 여권은 18일에 나온다고 한다.
뭘 입고 가야하고 무슨 가방에 뭘 쑤셔 넣고 가야 할 지 모르겠다. 하루정도 내가 결근해도 무리 없이 회사가 굴러가도록 재고를 쌓아야겠는데 괜스레 마음이 더 바빠진다. 아직 제주도도 못가보고 우리나라도 못가 본 곳이 많은데 구태여 비싼 돈 드려 일본까지, 그것도 칙칙한 똘민이랑 가야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없이 그냥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가서 온천이나 하고 와야 하나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아직 장소도 미정이지만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12시간이 넘게 배를 타고 간다는 것이다. 배를 타고 아무 생각없이 가판에 앉아서 마냥 바다를 바라다보고 싶다. 아무 생각없이, 바다 깊이만큼 멍하니 앉아 있고 싶다.
다행히 여행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다음엔 내가 똘민에게 여행가자고 조르고 싶어졌으면 좋겠다.
물론 간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