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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낯선 공간을 여행한다거나, 모르는 사람을 소개받는 자리가 있다던가, 혹은 지인들과의 식사자리조차도 괜히 피하게 된다. 의욕은 사라졌고, 매일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다보니 쉽게 지치고 피곤하다. 지난날의 피로가 만성적인 형태로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자문하곤 한다. 그래서 내가 요즘 주위 사람들에게 심심치 않게 내뱉는 말이 "만사(萬事) 귀찮다"이다. 흔히 하는 말로 '귀차니즘'에 빠진 듯 하다.
이 책 이방인의 주인공인 '뫼르소'를 통해 그런 나의 모습을 읽고 있었다.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탄탄한 묘사를 통해 뜨거운 여름날의 게으름과 고독, 나태함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뫼르소는 우발적인 살인을 범하게 되고 큰 반전을 가져 오며 1부의 끝을 맺는다.
1부까지 읽고서 이 이야기의 끝을 전혀 종잡을 순 없었다. 비도덕적이고 삶의 권태로움에 빠진 인물이 살인을 함으로써, 주인공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무척 궁금했었다.
살인 전과 후의 차이는 극명한 것이었고, 2부의 내용은 살인자인 주인공의 재판 과정을 다룬 내용이었다.
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한 아랍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주인공이 살인을 한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나의 관심은 주인공이 무기징역이나 몇 년 형을 받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나의 신경에 거슬리는 것은 살인자의 범행 동기나 계획성이나 살인 당시의 정황이 아닌, 살인자의 도덕성에 과중한 무게가 실려 진행되는 재판의 과정이었다.
뫼르소에게 사형이 구형된다. 관선 변호사가 뫼르소를 변호하지만,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인간은 악마이며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다는 논리의 검사의 주장에 배심원들은 뜻을 같이 했다.
이 책은 270쪽 불량이지만, 본문인 1부, 2부는 136쪽이다. 절반 불량이 책에 대한 해석이며 작가의 연력 소개였다. 책의 두께는 얇지만 내용은 얇은 것이 아니었다.
한 번 읽고 책의 내용을 다 소화하기엔 나에게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2부부터 다시 한 번 속독했었다. 141쪽의 '미국판 서문'을 다시 읽고서야 윤곽이 드러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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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쪽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다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희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자기가 사는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사생활의 변두리에서 주변적인 인물로서 외롭게, 관능적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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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는 알겠으나 그것을 몇 줄의 글로써 꼬집어 표현하기가 나로선 난해하다. 나의 한계인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다만, 정리를 시원스럽게 못 해 작가의 의도를 쉽게 잊어버릴까가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알베르 카뮈의 의도를 생각하며, 소처럼 되새김질을 해야겠다.
87 엄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110 나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139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141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213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삶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확신이 인간을 사형수로 만들어 놓는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다. 삶과 죽음은 표리관계를 맺고 있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으므로 자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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