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밤을 치고 계실 때, 어린 나는 어떻게 치는 것이 밤을 제대로 치는 것인지 여쭤본 적이 있었다. 선친께선 기특하게 여기셨는지 웃으시며, 칼날이 지나간 자리가 표시 나지 않게 여러 번 반복해서 치고, 팔각의 각이 알맞게 생겨야 한다고 일러 주셨다. 그리고 선친께서는 한자를 고서에 찍힌 활자처럼 매우 잘 쓰셨는데, 나는 먹을 갈며 옆에 앉아서 지방을 쓰시는 선친의 모습을 바라다보며, 나도 이 다음에 한자를 잘 써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제사를 마치고 나면, 어머니는 제물(祭物)을 골고루 나누어 이웃에 나누어 드렸는데, 몇 마리 되지 않는 생선을 나누고 나면, 정작 우리의 식탁에는 생선의 머리와 꽁지부분이 올랐다. 물건을 나눌 때는 상대방에게 좋은 부분을 주고, 자신은 나머지의 것을 취해야 한다는 어려운 사실을 쉽게 받아 들릴 수 있게 되었다.
선친이 양자로 나오셨는데, 우리 집의 제사는 일년에 열 번이었다.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듯 한다'는 속담은 우리 집 같은 경우를 두고 생겨난 듯도 하지만 부모님은 언짢아하시거나 귀찮게 생각하시는 기색이 전혀 없이,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셨고, 나 또한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제사 풍속을 당연히 받아 들였고, 그런 전통에 흥건히 젖어 있는 상태가 되었다.
나도 어릴 때는 한밤중에 일어나 세수하고 제상을 닦고 잔심부름하는 것이 못마땅한 적이 있었다. 제물을 장만할 돈으로 차라리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다른 음식을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던 중에 서울 생활을 하게 되었고, 공부를 핑계삼아 제사에 불참하게 되었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기(魂氣)는 하늘로 돌아가고 형백(形魄)은 땅으로 돌아가므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하늘과 땅에 흩어진 음과 양에서 그를 찾는다.-예기(禮記)' 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같이 과학적이고 바쁜 시대에 제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나의 의구심은 최근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분명 우리 삼 형제만 섰던 자리에 형수님들이 언제부턴가 들어서는가 싶더니, 이제는 어디서 오셨는지 나의 조카들도 거짓말처럼 자리를 메워 가고 있다. 7살, 5살 남매인 조카들은 내가 형님들과 그러했듯이 소곤거리고 깔깔거리기도 하며, 오빠가 조용해야 된다며 동생을 타이르기도 한다. 소리 없이 빠른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신(神)의 조화로움과 위대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 진다. 그래서 나는 조카에게 다가가서 조카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큰형의 이름을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의 아버지는 누구인지를 물었으나, 생전의 모습을 뵌 적이 없는 어린 조카에게 그것은 무리인 듯 했다. 나는 조카의 조부, 나의 선친의 함자를 일러 주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아주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조카는 누구 때문에 태어났는지를 묻고, 이어서 아버지는 누구 때문에 태어났는지를 물었다. 다시 조카를 무릎에 앉히고 조카는 아버지 때문에 태어났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 위의 아버지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줬다. 물론 일곱 살짜리 꼬마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을 것이고, 내가 성급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매 제사마다 이 이야기를 상기시켜 주면서 제사를 지내는 의미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심을 감사들이기 위해서' 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다.
집안 제사의 제물을 장만할 때, 부엌에서 여자들만 고생하는 권위적인 가부장시대는 지났으며 우리 집도 예외일 순 없다. 큰형님은 마련된 생선을 서두하고 차리신다, 작은 형님은 과일을 깎고 음식을 차리신다. 나는 제상을 닦고 음식을 나른다. 기회(형님들이 먼저 밤을 쳐버릴 수도 있음)가 주어진다면, 껍질을 까서 깨끗한 물에 담가 둔 밤을 친다. 내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멋진 공예품은, 아마도 내가 친 밤일 것이다. 부엌에선 형수님 두 분이 밥을 짓고 나물을 삶고 한참 분주하시다. 이러한 일사불란한 모습 속에서 나는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한다. 모든 사회가 그러하듯 조그마한 가족의 울타리 속에도 구성원의 지위와 역할이 있다. 집안이 평안하다는 말은 가족 상호간에 질서가 있어 마찰이 생기지 않고, 잡음이 일지 않으며 그 구성원의 각자가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알아서 척척해 낼 때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내가 지방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것은 내 지위에 맞지 않는 역할이기 때문이고, 내가 나물을 삶고 싶어도 삶을 수 없는 것은 형수님들이 각자의 일을 찾아서 먼저 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자의 *정명론과도 상통하는 얘기로, 제사를 통해 가족 상호간의 지위의 역할과 질서를 확인하고 신뢰를 느끼며, 또한 정성으로 이뤄진 제사의식을 통해 강한 가족 애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며칠 전, 선친의 제사가 있어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모였는데, 제사를 마치고 제관들이 물러나며 음복을 기다릴 때, 말수가 적으신 고모부께서 잔을 받으시며, "정말, 양반이네"하고 대뜸 말씀하셨다. 21세기의 양반이 어떤 의미 일까를 생각하다가, 아마도 고모부께서 말씀하신 것은 우리들의 이러한 가족애가 아닐까하고 생각해 봤다.
*정명론(正名論) -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가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라는 뜻. 즉, 제각기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자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때에 나라가 태평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