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으로 기억되는데, 그때 아주 존경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난에 대해서 틈틈이 많은 말씀을 해 주셨다. 댁에서 기르는 난을 위해 자동 개폐되는 창문을 설치하신 이야기, 선생님이 집을 비운 사이에 사모님이 관리를 잘못하셔서 난이 절반 가까이 죽어서 많이 다퉜다는 이야기 등... 내가 너무도 존경하는 분이 난을 사랑하시니, 나도 모르게 난을 동경하게 되었다.
독서실의 총무로서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아주머니 한 분이 화분을 여러 개 들고 들어 오셨다. 이름은 은행 난인데, 아주머니는 시골에 내려 갈 기차 시간이 되어서, 싸게 몽땅 팔 테니 사라고 하셨다. 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던 중에 이런 일을 당하니, 나는 천우신조가 아닐까하며, 난을 사야겠다는 쪽으로 절반이상 기울어지고 말았다. 아주머니는 이 난은 귀해서 하나당 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정말 신기하게도 낚시줄같은 줄기에 크기는 매우 작지만, 은행잎과 똑같이 생긴 잎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나를 더 혼미하게 만든 것은 화분의 밑바닥부터 잎이 나기 시작한 것은 여자난, 갈대처럼 뻗어 올라가서 잎이 난 것은 남자난 이라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난도 이처럼 남자, 여자 짝이 있는데, 나는 왜 짝이 없을까? 하며 짝을 지어 쌍으로 사야 난이 외롭지 않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가격이 부담이었다. 나는 그때 한 끼에 천 오백 원하는 식사를 했는데, 하나에 만 원이면 도대체 몇 끼의 식사인지를 셈했었다. 아주머니는 정말 애처로운 표정으로 살 것을 권했으며, 그런 아주머니의 표정에서 집에서 기다리는 아주머니의 아이들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망설인 뒤, 나는 무려 다섯 개를 샀다. 귀신이 씌어도 톡톡히 씌었던 모양이었다. 아주머니도 아주머니였지만, 남자난, 여자 난들이 독특하게 조금씩 다르게 생겨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책상에 올려놓으면 지나가는 여러 사람들이 볼 수도 있어 좋을 것만 같았다. 사 만원을 주고 하나는 덤으로 얻었다고 마냥 좋아하며, 여러 사람에게 자랑까지 했었다. 때론 밥보다 더 귀한 것이 있는 법이라며, 나는 고고한 선비라도 된 듯 마음 흡족해 하며 난들을 바라다보고 했었다. 그런데 며칠 뒤, 꽃가게를 지나다 처마에 걸린 화분에 여자의 긴 머리카락처럼 흘러내리고 있는 은행 난을 발견했다. 나는 반가움에 화분에 다가섰다가 불에 데인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조그마한 가격표가 꽂혀 있었다. 은행 난은 은행 난인데, 나의 까만 플라스틱 화분보다 더 좋은 화분에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 천원이었다. 다시 확인 해 봤지만 영(0)은 세 개었다. 일생 일대의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남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억울하던지 사기꾼 아주머니는 잡을 길이 없고, 선생님에게 달려가 난 값을 물어 달라고 억지를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난(蘭)이 정말 나를 난(難)하게 만들었었다...
나는 꽃가게 앞을 지날 때면 항상 발길이 멈춘다. 콘크리트 바닥이나 보도 블록 위에 꽃이나 난, 혹은 분재를 보면 그들이 콘크리트라도 뚫고 나온 듯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운 친구를 길거리에서 만난 듯 기분이 좋아진다. 며칠 전에도 까만 숯의 가운데에 난을 심어 놓은 것을 유심히 보고 온 적이 있었다. 과거의 기억으로 쓴웃음도 났지만, 나의 뇌리에는 벌써 숯으로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 가게로 다시 찾아가서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내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만들 수 있는 원형크기의 굵기를 가진 숯의 가운데를 파내고 난을 심어 놨는데, 주인의 말로는 숯이라서 실내 공기 정화에도 좋고 난이 있어서 정서 순화에도 좋다고 했다. 한 송이의 풍란과 혼자인 내가 벗이 되어 서로를 위로하자며 만 원을 주고 샀다. 정말 나에게 돈이 아깝지 않을 때는 이럴 때다. 방에 와서 창틀에 올려놓고 바라다보면, 숯은 산이고 난은 고독한 소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 고독한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라보다, 문득 난이 답답해 보였다. 움푹 패인 그 속에 쏙 들어가 있는 폼이 영 마음에 걸렸다. 그러한 생각을 할 때, 밤을 세워 가며 난의 뿌리를 돌에 동여매고 시간 맞춰 물을 주신다고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서 책을 접어 치우며, '이래선 안 되는데,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좀 쉬었다 하지뭐, 때론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하며 어느새 난의 뿌리를 다 풀어 헤쳤다. 이끼에 가린 뿌리들은 엉망이었다. 온전하게 자란 뿌리는 단 두 개었다. 하나는 나의 새끼손가락보다 조금 짧게 자라나 있었고, 다른 하나는 볼펜의 심만큼 튀어 나와 있었다. 나머지 여섯 개의 뿌리는 모두 썩어 있었다. 왠지 또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벌써 화분의 테두리에 팔 월 모의고사 몇 점이라고 커다랗게 목표 점수를 적어 띠를 둘러놓았기 때문이다. 풍란이 살아야 내 목표점수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우선 세 장의 잎을 과감하게 잘라 냈다. 난의 크기에 비해 여섯 장은 너무 많은 것 같았고 뿌리가 건실히 살아야 잎이 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썩은 뿌리도 잘라 냈다. 처음엔 성한 두 개만 남기고, 뿌리 끝이 검게 썩어 길게 자랄 수 없는 나머지 것들 모두를 잘라 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했었다. 그러나 혹시 하는 마음에 썩었지만 세 개를 더 남겨 두었다. 그리고 나서, 물을 빨아들일 수 있는 뿌리에 이끼를 싸맸다. 실이 없어서 가게에 가서 반짇고리를 사 와서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동여맸다. 그런 다음 내가 마음에 드는 숯의 일부에 잎의 중심으로 잡고 다섯 개의 뿌리를 손가락으로 숯을 에워싸는 형상으로 뻗쳐 놓았다. 치료가 끝난 난이 다시 창틀에 올려 졌다. 마치 숯이 잔디를 뒤집어 쓴 것처럼 모양이 우습게 되었다. 나중에 뿌리가 뻗어 내리면, 내 마음이 투영된 나의 분신으로 다시 태어 날것이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성장점이 있는 뿌리의 끝부분이 썩어 버린 세 개의 뿌리가 어떻게 살아 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섞은 뿌리를 동여 맬 때 잘라 버린 뿌리도 고통을 인내하고 멋지게 살아 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잘라 버린 것은 아무래도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앙증맞은 천 원짜리 분무기도 하나 샀었는데, 뿌리가 마르지 않게 즐거운 마음으로 물도 나눠 마시고, 서두르지 않는 느긋한 마음도 배우며 풍란이 탈바꿈하는 모습을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