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가 참 살기에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것은 에너지의 과잉과 부족이 평형을 이룬다는 것이고, 이렇게 양쪽으로 균형 잡힌 곳에 살게 되어 너무나 다행스럽다. 외국에 나가 살아보진 않았지만, 사계절이 나타나서 실증남도 훨씬 덜 한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사계절의 변화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빨라지는 느낌이고, 그런 일 년의 계절 중에 이맘때가 되어 비가 내리면, 그리고 그 빗방울이 빛좋은 산을 감싸고도는 것을 보는 날을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오늘이 일 년중에 바로 그런 날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
어제 저녁 비가 와서 자전거는 독서실에 묶여 있다. 아침에 걸어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산이 안개와 포옹한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독서실 방향과는 정반대방향인 산 쪽으로 걸어갔다. 집에서 산 쪽으로 삼 백 여미터를 가면 버스 종점이 있는데, 그 곳에 앉았다가 버스가 오면 타고 가려고 캔 커피를 하나 사서, 오랜만에 산에 다가 섰다.
'마동 마을'이라고 마을의 입구를 알리는 입석 옆의 콘크리트에 걸터앉아 산을 바라보며, 내 넋을 씻어 내고 있었다. 이 태백이 달을 동경했고, 퇴계 선생이 매화를 아꼈듯이 나는 산 안개를 즐긴다고 멋스런 생각도 해 보고, 오늘 하루를 공치고 저 안개 속으로 뛰어 들까? 라는 강한 유혹도 받았다. 그럴 때, 저 안개는 복사 안개인가? 이류 안개인가? 라는 지구과학의 내용이 느닷없이 떠오르면서, 현실을 잠시 잊고자하는 욕구와 냉정한 현실과의 괴리를 맛보고, 아예 의식을 차분히 저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자꾸 방해하는 방해꾼이 있었는데, 바로 개구리였다. 마을 경계 입석의 바로 옆은 폭이 십 미터도 채 못되는 하천이었는데, 물의 냄새를 맡고 어디서 나왔는지, 십 여 마리는 족히 넘어 보이는 개구리들이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비는 스며들어 하천의 바닥은 말라있고, 그 자갈바닥에서 습기를 찾고 있는지 이리저리 뛰어 하천가로 몰리고 있었지만, 콘크리트로 방벽이 2 미터 가량 쌓여져 있어 빠져나올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 방벽의 높이는 나도 겨우 빠져 나올 정도의 높이었다. 그러나 개구리가 50 여 미터 아래로 내려가야 방벽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리는 만무했다.
'왜, 또 나를 시험에 들게 하십니까?' 그 개구리는 내가 어릴 때 익숙히 보아 왔던 고향의 토종 개구리는 아니었다. 짙은 녹색의 등에 붉은 반점이 위협적으로 박혀 있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둥이 개구리였다. 개구리를 포함한 모든 파충류가 내 취향에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렇게 온 종일 팔딱거리다 피부가 말라버리면 죽는 것은 뻔한 이치였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내가 만약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저런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 책을 읽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판단 능력이 흐려진다면, 저 개구리처럼 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다 죽는 줄도 모르며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닐까? '불교에서 *호생지덕(好生之德)이라 했으니, 저 놈들을 살려야 겠지' 생태계가 파괴되면 인간 또한 멸한다고 했으며 인간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과 식물까지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윤리시간에 교육을 받았으니 당연히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개구리가 "어, 저기 못생긴 놈이 돌에 멍청하게 앉아 커피 마시고 있네" 라든가, "어, 저기 멋있는 사람이 자연에 도취되어 앉은 모습이 요즘 보기 드문 선인 같아" 라는 편견은 갖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친숙한 개구리가 아니고 보기에 흉한 개구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편견이 내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일 테지, 하지만, 다 같은 생명이라는 점에선 당연히 편견을 깨고 모든 생명의 고귀함을 알고 살리기를 실천해야 되지 않을까? 선(善)이란 것이 내가 본래부터 선한 것이 아니고, 상황의 이치를 알고 나를 깨우쳐 실행함으로써 느낄 때, 즉 순자가 말한 *화성기위(化性起僞)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래, 맞아. 나는 절대적으로 순수하지도 선하지도 않아, 단지 선해지려고 노력을 하는 거야' '하루에 몇 번씩 악한 생각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칸트가 말한 *실천이성(선의지)일거야.'
*호생지덕 - 살리기를 좋아하는 마음
*화성기위 -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이며 인위(人爲)는 선한 것이라 하였다. 여기서 인위란 사고 작용을 통해서 선택되고 조종된 것, 학습을 통해서 얻어진 모든 것을 말한다. 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일종의 질박한 재료이고, 인위는 예의 도덕을 이용하여 가공한 것이다. 그는 인위에 의하여 인간의 본성이 바뀔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인위를 통해 본성을 변화시켜야만 완전한 선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실천이성(선의지) - 스스로 보편 타당한 도덕 법칙을 세우고 이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위 하도록 명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