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절 마당을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산에 걸린 달도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이성선, <백담사>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아! 그 고요함 속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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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기차는 떠나서

기차는 달린다

움직이는 건 가볍고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달리는 기차 바퀴 소리의

그 꿈결이

이 기나긴 쇳덩어리를 가볍게

띄운다-꿈결 부상 열차

교행 때문에 서 있으면

근심도 서서 고이고

꿈꾸는 간이역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는 움직인다

움직이는 건 가볍고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정현종의 <세상의 나무들> 중에서

 

 

 

 

 

              

정현종 시가 눈에 들어와서 퇴근길에 서점을 두 군데 들렸다. 정현종의 시집이 문학과 지성사에서 3권 나왔는데 내가 보고 싶던 <한 꽃송이>는 없었다. <세상의 나무들>을 보다가 이 시가 맘에 들었다. 일상을 떠나 여행을 하고 싶은 요즘 심정을 합리화하기에 딱이다 크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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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05-06-1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직이는 건 가볍고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참 마음이 움직이는 구절이네요. 알라딘에서 정현종 시를 많이 보는 거 같습니다 좀전에 플레저님 서재에서도 보고.. ^^

낯선바람 2005-06-15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반갑네요.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P.35 알고 싶어요, 詩/황진이 /이선희 노래

蕭寥月夜思何事(소요월야사하사)
달밝은 밤에 그대는 누굴 생각 하세요?

寢宵轉輾夢似樣(침소전전몽사양)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問君有時錄忘言(문군유시녹망언)
붓을 들면 때로는 내 얘기도 쓰시나요?

此世緣分果信良(차세연분과신량)
나를 만나 행복 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悠悠憶君疑未盡(유유억군의미진)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게 궁금해요.

日日念我幾許量(일일염아기허량)
하루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
바쁠때 나를 돌아보라 하면 괴롭나요? 반갑나요?

喧喧如雀情如常(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悠悠憶君疑未盡(유유억군의미진)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게 궁금해요.

日日念我幾許量(일일염아기허량)
하루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
바쁠때 나를 돌아보라 하면 괴롭나요? 반갑나요?

喧喧如雀情如常(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직 역* 
簫蓼月夜思何事 ㅡ소슬한 달밤이면 무슨 생각 하오신지
寢宵轉轉夢似樣 ㅡ뒤척이는 잠자리는 꿈인듯 생시인듯 
問君有時錄妾言 ㅡ님이시여 때로는 제가 드린 말도 적어보시는지
此世緣分果信良 ㅡ이승에서 맺은 연분 믿어도 좋을지요
悠悠憶君疑未盡 ㅡ멀리 계신 님 생각, 끝없어도 
日日念我幾許量 ㅡ하루 하루 이 몸을 그리워는 
忙中要顧煩惑喜 ㅡ바쁜 중 돌이켜 생각함이라 괴로움일까 즐거움일까
喧喧如雀情如常 ㅡ참새처럼 지저귀어도 제게 향하신 정은 여전하온지요 
 
**가끔 꿈속에서 황진이를 만난다는 국어선생님,이 문득 생각난다.요즘도 만나시는지..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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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어찌할꼬. 나를 받치고 있는 것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 어리석은 중생을...
한 꽃송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114
정현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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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한다. 너희들이 사람이냐고... 너희들 그리 살고 싶냐고... 그런데 시를 읽으며 그 외침을 들으며 내 가슴은 저리다 못해 시리다. 누가 이 말을 들을까. 누가 이 시에 귀 기울일까. 누가... 정작 들어야 할 그들은 듣지 않을, 보지 않을 시를...

시인은 시를 통해 자연 파괴와 환경 보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연의 소중함을. 그리고 그것을 외면하는 정치인들, 경제인들에게 말하고 있다. 말 하느라, 시 쓰느라 수고하셨다고 해야 하나... 벽창호들이 그들인데 그들 데리고 사신다니 고맙기는 하지만 답답하지 않을런지...

 

이 시가 가장 맘에 든다.

 

75쪽의 깊은 흙

 

흙길이었을 때 언덕길은

깊고 깊었다.

포장을 하고 난 뒤 그 길에서는

깊음이 사라졌다.


숲의 정령들도 사라졌다.


깊은 흙

얄팍한 아스팔트.


짐승스런 편리

사람다운 불편.


깊은 자연

얕은 문명.


가끔 내가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어쩌면 이런 때였나 보다. 시인의 우렁찬 외침에 무의식이 깨어나 나를 이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살고 그들도 오늘을 살고 시도 산다. 그리고 점점 많은 것들은 사라진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안티지율카페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어찌할꼬. 나를 받치고 있는 것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 어리석은 중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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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1989, 세계사

 

                

늘 지나가고 놓치고서야 이 시를 되뇌인다.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ㅠㅠ

있을 때 잘하자, 후회 없이, 미련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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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5-06-0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