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봄아
봄은 쉽게도 왔구나
강물이 실어다가 빠진 데 없이 나누어 준
봄을 쉽게도 받아들고
꽃들을 피워 이고
벌과 나비를 부르는구나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있겠냐만
이 땅에서, 사람이 사람으로 살려는 것처럼
어려운 일 또 어디 있겠느냐.
.
산은 밤마다 강물로 소리없이 넘어져
가만가만 몸을 씻고 일어서라
논밭들은
가만히 누워서 곡식들을 키우고
달은 물결도 없이 강 건너와 지더라
우리들의 봄은
온몸에 피 흘려 꽃피워도
캄캄한 밤 캄캄하게
소쩍새 소리로 애터지게
왼 산을 헤매며
핏빛 진달래로 피었다
핏빛으로 지는구나.
.
아, 봄아 봄은 쉽게도 왔건만
봄맞이 임맞이 나갈 사람들의 마음은
이리 추워 문 열 수 없구나
사람들의 봄은
올해에도 홀로 지는 꽃처럼 쓸쓸하고
흙바람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구나.
.
쉽게 살 일인데
묵은 두엄 져 날라
여기저기 뿌리는
우리 어매 손길같이
밭 갈아가는 아버지 쟁기날같이
쉬울 일이 아니더냐 세상은.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진달래를 봤다. 일요일엔 버스를 타고 지나다가 개나리를 봤다. 회사의 큰 창 너머로 목련이 피었다. 봄이 와버렸다. 3월 말까지 겨울코트를 입고 다녔는데... 봄이 와버렸다. 올 3월은 이상하게 덤덤했다. 그러다 4월에 하나둘 피는 꽃들을 보고 화들짝 놀라고 있다. 밤 늦은 시간, 인터넷을 헤매다 발견한 시에 위안을 삼아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래된 꿈과 비밀을 간직한 부드러운 사람이고 싶어

부드러움은

망가진 것을 소생시킬 마지막 에너지라 믿어

밥, 사랑, 아이...... 부드러운 언어만으로도 눈부시다

삶이라는 물병이 단단해 보여도

금세 자루같이 늘어지고 얼마나 쉽게 뭉개지는지

그래서 위험해 그래서 흥미진진하지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를 들으며 눈부신 창을 본다

 

황혼 속에선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일만 오천 년 전 라스코 동굴 벽화의 검은 황소다

황소를 그린 자의 마음이다

생존의 서러움이 득실거리는, 풍요를 기원하는 심정

 

막 희망의 빈민굴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있어

으리으리한 디지털 인간, 상추 한 잎만한 사람, 별게 아녔어

다들 부서지기 쉬운 밥그릇을 싣고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맨다

행복, 그게 뭔데? ......카푸치노 거품 같은 것

 

누군가 명품, 성형수술, 다이어트에 빠지는 동안

너는 죽음보다 깊은 외로움에 빠지거나

연애 골짜기에 빠지거나 독서에 빠질 거야

 

나는 유통기한이 없는 시의 마력에 빠져

천 년 후에도 다시 튼튼한 한국 여성으로 태어날 거야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나를 더 아프게 해라

이렇게 되뇌이며 언어의 엽총을 겨냥할 거야

 

너도 환장하겠니 나도 환장하겠다

뭔가 사무치는 게 있어야겠어

해방감을 주는 거, 징 하게 눈물 나는 거

 

                               

     

 

 

 

 

 '너도 환장하겠니 나도 환장하겠다' 하!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다니... 정말... 당신 맘에 들었어~ 그래 사는 데는 그런 게 필요한 거 같다. 해방감을 주는 거, 징 하게 눈물 나는 거. 그나저나 보라색 면지 색에 환장했던 것 같다. 보라색만 아니었어도 당장 사들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찔레꽃 하얀 숨소리에

흔들릴 듯이 그대가 서 있네

그 넓은 세상 가운데서 만나

돌아서면 어깨 부딪는

그 흔한 사람 중에 만나서

아주 먼 듯 가까이 그대가 서 있네

 

가슴 깊이 꽃 한 송이 피우고

꽃잎 하나 등불에 달아 날려보내던 날

아주 작은 들꽃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서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을 가진

그대가 서 있네

 

생활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우울해지고

세상의 변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은 날에

이렇게 서서

언제고 돌아갈 세상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던 그대가 저만치 서 있네

 

그리운 사람처럼

기다려야 사람처럼

가는 시간 속에

인생의 창을 반쯤 연

그대는 소망의 화분 하나 들고 섰네

 

출처 : http://plaza.munhwa.com/ 장재선의 문학노트-시인 명숙의 연꽃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 신문에서 봤다. 요렇게 이쁜 시가~ 예쁜 시 한 편 만나니 복잡한 지하철에서 잠시 숨통이 트였다. 늘 누군가를 기다리는 내 마음을 또 확인하고... ( 아래서 네 번째 행은 오타인 듯 한데 원문을 찾을 수가  없네... 궁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드무비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詩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1985년 수첩 기록

 

오래 전 김종삼 시인의 시 '묵화(默畵)'를 참 좋아했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 서로 적막하다고.('묵화' 전문).                        군더더기 하나 없이 똑 떨어지는  동양화 한 폭 같은 시  '묵화'에 비해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라는 시는 뭔지 좀 유치하고 어리숙해 보인다. 그런데 난 이 詩도 참 좋았다.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있는 사람으로 살 자신은 없지만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돼지기름으로 구운 번철 위의 남대문시장 빈대떡 같은 詩가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릴케 현상 > 소스라치다

소스라치다-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