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마리아 미즈의 관심사는 페미니즘, 환경과 세계 개발문제에 대해 방법론과 경제학 부분에서 대안적 접근 방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1998년에 쓴 이 책의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는
가사노동, 비공식 영역의 노동, 식민지에서의 노동과 자연이 만들어 낸 생산이
자본주의 경제의 수면 아래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23쪽
이라고 하였다. 바로 이 전에 읽은 <캘리번과 마녀>에서도 나왔던 이야기다.
이번주에는 “2장, 성별노동분업의 사회적 기원”을 읽었다.
요약)
다양한 형태의 불균형하고 서열이 있는 노동분업은 오늘날 전 세계가 자본축적의 엄명 아래 불평등한 하나의 노동분업시스템으로 구조화된 단계까지 와 있다. 이 불평등한 노동분업은 약탈적인 사냥꾼/전사의 사회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것이다. 자신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무기를 이용해 다른 생산자의 생산력과 생산품을 전유하고 종속시키는 관계는 남성과 여성, 남성과 자연 사이에서 수립되었고, 자본주의를 포함한 다른 모든 가부장적 생산양식의 모델로 남았다. (171-172쪽)
맑스와 엥겔스가 '인류의 생산 혹은 출산'과 관련된 것을 '자연적'인 과정으로, 생산수단과 노동의 발전과 관련된 것을 '역사적' 과정으로 구분한 것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여성성과 남성성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자연'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불평등이나 착취적 관계들을 타고난 것 혹은 사회적 변화의 영역을 벗어난 것, 즉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며, 여성의 경우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이 여성에게 자궁과 가슴이 있다는 사실과 연결지어 생리활동의 연장선으로, 노동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 개념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생산적 노동,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남성의 일은 진실로 인간적인 것(생각하고, 합리적이며, 계획되고, 생산적인 것 등)으로 여겨지는 반면에, 여성의 일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맑스에 따르면 노동 과정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자연적 물질을 전유 (exclusively possess)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자연을 전유하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 여성은 몸 전체를 통해 생산성을 경험한다. 아이를 생산하고, 아이의 첫 번째 음식도 생산한다. 어린 아이들과 자신의 생산물을 나눠야 하므로 여성의 생산은 처음부터 사회적 생산이다. 어머니-자녀 집단은 최초의 사회적 단위이고, 그래서 이것은 인간적인, 즉 의식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이다. 어머니는 자신과 자녀를 위해 채집을 하였고 나아가 농부가 되었다. 여성은 처음으로 자연과 진정한 생산적 관계를 발전시켰다.
이에 비해 남성은 몸을 통해 생산을 경험하지 못하므로 외부적 수단, 즉 도구의 중재가 필요하다. 역사 속에서 남성 생산성의 상징으로 부각되는 첫번째 신체기관은 남근이다. 남근을 통한 남성의 생산에 여성은 물리적 조건으로 전제된다. 남성은 주로 자신을 위해 채집과 산발적인 사냥을 하였고, 사냥의 도구 즉 무기를 발전시켰다.
여성 생산성은 집단의 구성원(남성 포함)에게 양식을 제공하면서 생존을 보장했다. 사냥은 ‘위험도가 높은 경제 활동’ 이기 때문에 빈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 사냥꾼’ 보다 ‘여성 채집자’ 덕분이다. 그러나 남성-사냥꾼 모델을 인류 진화의 패러다임으로 상정하는 것은 인간사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 연구의 기초가 되었고 매체를 통해 대중화되었다 (초기 호모 속의 출현을 도구의 사용과 관련하여 정의하는 것, 문명(계급이 있고 가부장적 사회가 전제되는)의 발달과 함께 역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이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발제자 의견).
남성이 사냥에 이용한 도구는 생산이 아닌 파괴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동료 인간을 강제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사냥꾼은 살아있는 존재에 대해 지배력을 갖게 된다. 무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상-관계는 기본적으로 약탈적이며 착취적이다. 이런 지배관계는 남성이 세운 모든 생산관계의 일부가 되어 왔고, 이것이 그들 생산성의 주된 패러다임이다. 첫 번째 형태의 사유재산은 가축이나 식량이 아니라 납치된 여성 노예로 추정된다.
목축민은 사육 과정에서 황소 한 마리가 여러 암소를 임신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 경제적 논리는 여성에도 적용되었다. 여성은 움직이는 재산의 일부, 가축이 되었다. 사냥꾼과 달리, 목축유목민에게 여성은 식량의 채집자나 생산자로서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고, 자녀 특히 아들을 출산하는 의미에서 필요했다. 여성의 생산성은 이제 '출산'으로 축소되었고, 이는 남성에 의해 전유되고 조정되었다.
농업 사회에서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착취적 관계가 존재한다. 농사를 주로 짓는 이는 여성이었으며 전사-사냥꾼은 활과 화살을 통해 식량과 여성 등 모든 다른 생산물을 취할 수 있었다. 사냥꾼은 원정을 통해 다른 마을의 여성이나 어린이를 납치하여 개인 노예로 전유하거나 팔아넘겼다. 여성은 농업노동자이기도 했고, 더 많은 노예도 생산할 수 있었으므로 납치된 여성은 사유재산 축적의 직접적인 원천이 되었다.
무기 독점에 기초한 남성의 약탈적인 생산 양식은 주로 여성으로 이루어진 다른 생산경제들이 존재하고, 이들을 공격할 수 있을 때에만 '생산적'이 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불균형한 성별노동분업은 무기를 독점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약탈적 생산양식 혹은 자연과 여성에 대한 전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유양식은 인간 사이의 모든 착취관계의 역사에서 패러다임이 되었다: 자율적인 인간 생산자를 타인을 위한 생산의 조건으로 변형시키는 것, 혹은 그들을 타인을 위한 '자연 자원'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가부장제는 지구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독특하게 가부장적이었던 사회 (유대인, 인도-유럽인, 아랍인, 중국인 - 이 지역들은 모두 초기 문명의 발상지이다) 에서 거대 종교들과 더불어 발전했다.
모든 가부장적 문명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계속 강압적이고 착취적이었다. 불균형한 성별노동분업이 일단 폭력수단을 통해 수립되면, 이는 가부장적 가족, 국가와 같은 제도 그리고 강력한 이데올로기 체제 등을 통해 유지되었다. 특히 가부장적 종교, 법, 의학 등은 여성을 자연의 일부로 규정하여 남성이 통제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 봉건제 시대는 새로운 토지에 대한 약탈적 취득과 무장한 봉건계급 (기사)에 의한 대대적인 노략질과 강탈에 기초했다. 토지와 함께 생산의 수단이자 조건인 농민 역시 봉건영주에게 특수한 생산관계 내에서 전유되고 구속되었다. 봉건제에서는 농민을 토지의 일부로 보았기에 남성 농민 역시 여성과 비슷한 위상에 있었다 (이것이 중세 시대 여성의 인권이 이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 않았던 이유이다).
자본주의 역시 경제적 강제의 메커니즘에 기초하고 있었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생산물과 생산자에 대한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취득이 초기 자본주의에서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었다. 자연은 원료의 매장지였고, 아프리카 여성은 인간 에너지의 결코 마르지 않는 공급처였다. 자본가가 노동자와 임금을 매개로 하는 새로운 노동 통제를 수립하고 경제적인 강제를 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인 양보가 필요했다. 유럽 중심부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경제적인 양보는 주변부, 즉 동유럽과 식민지의 노동자 남성과 여성을 '자연'으로 취급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자원을 약탈함으로써), 정치적인 양보는 가정에서 지배계급의 사회적 패러다임인 사냥꾼/전사 모델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함으로써 주어졌다. 노동자의 '식민지' 혹은 '자연'은 자기 계급의 여성이었다. 결혼과 가족법에 따라 규정된 범위 내에서 그는 강압수단과 직접적인 폭력을 독점했다.
식민지와 노동계급 여성 외에, 부르주아 여성 또한 자연으로, 자본가 계급의 후계자를 낳고 키우는 이로 규정되었다. 부르주아 여성이 길들여지고 남편의 소득에 의존하는 가정주부로 변모하는 것은 자본주의 아래 성별분업의 모델이 되었다. 이는 모든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통제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력이 재생산되는 영역인 가정과 가족은 '자연, 사적이고 길들여진 자연'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공장은 공적이고 사회적('인간적')인 생산의 공간이 되었다.
여성은 자신의 생산성, 섹슈얼리티, 생식 능력에 대한 통제권을 자발적으로 남편과 유력자(교회, 국가)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마녀사냥 이전의 유럽 여성은 자신들의 몸과 피임법에 대해 오늘날(책이 처음 쓰여진 1980년대)의 우리보다 훨씬 나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수세기에 걸쳐 수백만의 여성이 성적 생산적 자율성에 대한 잔혹한 공격(마녀 사냥)을 당한 끝에 유럽 여성은 의존적이고 길들여진 가정주부가 되었다. 마녀사냥은 여성의 성과 재생산 행위를 통제하는 직접적인 훈련 효과 외에, 여성의 생산성보다 남성의 생산성이 우월함을 수립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마녀사냥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적 자연의 사악함-성적으로 통제되지 않고, 만족할 줄 모르며, 언제나 정숙한 남성을 유혹하려고 함 - 을 끊임없이 강조하여, 딸과 아내의 정숙을 남성이 지켜야 하는 것으로,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여성은 한 남성을 위한 가정주부이거나 자본가를 위한 임금노동자로, 혹은 둘 다로 훈련되었다. 이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에게 사용된 실제적 폭력을 자신에게로 돌리면서 내면화했다. 그들은 이를 자진해서 한 것으로, (낭만적) 사랑으로 규정했다.
Q. 여성 몸의 생산성을 동물의 번식과 동일시하는 관점은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노동분업의 결과이다. 여성 몸의 생산성과 동물의 번식은 본질적으로 다른가? 생산물을 나누고 어머니-자녀의 관계를 맺는 것은 일부 동물에서도 나타나는 행동 양식이다. '자연'을 지배 대상 혹은 열등한 것 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인간의 경우와 구분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후 다른 결과 (성별 분업 등)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다른건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건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