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자본주의가 식민지 강탈에 기초하여 세계체제로 발전하면서 착취 대상은 외부로 확장되었다. 식민지의 토지와 주민은 남성 문명인의 착취와 이용을 기다리는 ‘자연’으로 여겨졌다. 동시기에 발전한 근대 과학기술은 자연을 분석과 해체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여성, 식민지에 대한 시각과 유사하다. 교회, 국가, 신흥 자본가 계급, 근대 과학자는 협력하여 여성과 자연을 폭력적으로 종속시켰다.
12-17세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던 마녀사냥은 여성을 통제하고 종속시키려는 메커니즘의 하나였다. 중상주의 관점에서 근대국가의 발전에 노동력의 확보는 필수적이었다 (이 관점은 지금까지도 대체로 고수되고 있다). 마녀사냥으로 산파가 통제하던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남성 의사에 의해 통제되었다. 마녀로 몰린 자들의 재산은 몰수되어 국고로 환수되었고 봉건계급과 부르주아의 자본으로도 축적되었다. 코르넬리어스 루스에 의하면 마녀 재판은 ‘인간의 피에서 금을 만들어낸 새로운 연금술’이었다.
근대과학의 아버지 프란시스 베이컨은 마법의 비밀을 알아내는 수사 방법과 같은 방법- 귀납법으로 자연의 비밀을 캐낼 수 있다고 하였다. 베이컨에 따르면, 자연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고, ‘노예’로 만들어져야 하며, ‘규제’되고, ‘해부’되어야 한다. ‘여성’의 자궁이 상징적으로 겸자에 굴복한 것처럼, 자연의 자궁이 품고있는 비밀 역시 인간의 삶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발굴되어야 하는 것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연약한 여성상은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조해낸 산물이다.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잠시 엿보았다. 그 시대 여성은 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긴 치마를 입고 물에 빠진 고양이를 구한 여성은 누가 자신을 봤을까봐 정신없이 고양이를 안은 채로 ‘네트’를 통과해 미래로 가고 만다), 신경증이 있고 기절을 잘 하며 (자주 가장하기도 한다), 온통 결혼에만 관심이 있다. 그 시절 여성과의 대화에서 성적인 것과 관련된 주제는 금기시된다 (사람이 아닌 고양이의 임신에 대해서도 언급할 수 없다).
16-17세기는 약탈, 해적질, 강제노동과 노예노동을 통해 식민지로부터 자본을 축적한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의 여성과 본국의 여성에게 서로 다른 가치체계가 적용되었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이 소유한 여성은 한 사람과만 성관계를 갖는 후계자의 출산자로 길들였다. 집 밖에서 일하지 못하게 했고, 재산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반면 노예 여성에게는 결혼이나 출산이 허용되지 않았다. 임신-출산-육아의 노동공백기를 고려하면 노예를 수입해 오는 것이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1807년 노예 무역이 폐지되면서 식민지 정부는 노예 여성에게 출산을 장려하였다. 그러나 노예제 기간 동안 반모성적 태도를 내면화한 노예 여성은 19세기 중엽까지 출산 파업을 지속했다. 출산을 하면 자녀가 노예가 되어 평생 노예주의 부를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 용납되기도 했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가 떠오른다)
식민지 초기 서아프리카의 상류 여성들은 숙녀로 대접받았고 유럽인과 결혼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영국인들은 서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여성을 창녀로 만들었다. 아프리카 여성을 ‘야만인’으로 취급하면서, 조국에 있는 백인 여성은 ‘숙녀’의 지위로 상승시켰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서는 자메이카에서 귀족으로 살고 있던 여성이 영국에 가서 다락방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지역에 따라 여성에게 다른 기준이 적용된 이 두 과정은 역사적으로 단순히 평행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에서 필요에 의한 인과관계로 깊숙히 얽혀 있다. (남성들의 필요에 의해 두 집단의 여성이 다르게 살게 되었다는 것 외에 딱히 얽혀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내가 잘못 이해한건가?)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부르주아 이상 계급 여성의 향신료, 화장품, 비단 등의 사치품에 대한 욕구는 자본주의의 발전(신항로의 개척 등) 에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가정을 새로운 기계와 물품의 소비 시장으로 삼아 가사노동과 소비의 주체로 가정주부를 부각시켰다.
부르주아는 가족을 사적 영역으로 선언하고 여성들을 공공 영역에서 철수시켰다. 그리고 여성의 성적 경제적 독립성의 증발에 대한 보상으로 ‘낭만적 사랑’ 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
반면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는 재생산의 동기가 부여되지 않았고 이 여성들은 결혼 제도에 매여있지 않았다. 국가는 입법과 경찰과 교회의 이데올로기적 캠페인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재생산에 개입했다. 결혼 전 혹은 결혼 외 성관계를 범죄로 규정했고, 낙태를 불법화했다. 교회는 사람들의 영혼에 호소했다.
엥겔스와 베벨의 동지이자 사회주의 여성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클라라 제트킨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부르주아 페미니즘처럼 남성에 맞서서 싸울 수 없으며, 남성과 함께 자본과 계급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리아 미즈는 이러한 제트킨의 주장을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와 아내로 보는 부르주아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사회적 생산으로 진입하는 것이 여성해방 혹은 독립의 전제조건이라면,
남성을 부양자이자 가장으로, 여성을 의존적인 가정주부이자 어머니로 여기고,
핵가족이 ‘진보적’이라는 생각을 고수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는 여성 운동을 부르주아 여성의 전유물로 보고,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여성 운동으로부터 유리시키는 주장이기도 하다. 여성 운동이 여러 상황에 있는 여성의 다양한 주장을 모두 포괄하기는 어렵겠지만, 여성 운동이 계급 운동 혹은 사회 운동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국의 한 진보 인사가 진보진영 내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벌어진 논란에 대해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 고 했던 발언과 비슷한, 대를 위해서 소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굳이 ‘조개’를 줍는다고 한 것도 기분 나쁘다. 의도된 표현일까?))
또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남성과 함께 자본가 계급에 맞서 싸워야 한다면,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남성 사이의 계급 차이는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남성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가정화하면서
1) 쓸만한 임금노동에 대해 독점적 권한을 주장할 수 있고
2) 가정 내에서 모든 소득에 대해 통제권을 주장할 수 있다.
여성의 노동은 공기나 물처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자연자원처럼 여겨져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여성은 자본가 (부르주아 보다도 더 상위계급) 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가정주부화는 가정에 여성을 묶어둠으로써 여성의 단체협상력도 떨어지게 만들었다. 남성 ‘부양자’가 부양하는 핵가족과 여성은 가부장제적 자본주의의 ‘내부 식민지’인 것이다.
엥겔스는 ‘지배계급에게 좋은 것을 모든 계급에게 확대’하는 것을 통해 계급의 양극화된 관계를 변화시키고 싶어하였으나,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는 자연이나 타인에 대한 착취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를 위한 발전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퇴보적 진보의 관계 (남성의 여성에 대한 착취, 남성의 자연에 대한 착취, 식민주의자의 식민지 주민에 대한 착취,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착취)를 완전히 폐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방식의 경제 체제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논제)
부르주아 남성 - 부르주아 여성 / 프롤레타리아 남성 - 프롤레타리아 여성 간의 위계는 분명하다고 치자.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 여성과 프롤레타리아 남성의 상대적 지위는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분명하지 않지만 각자의 생각을 말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