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캘리번과 마녀 3장까지만 올리고 그 다음에 까먹었다. 하하 ^^;;; 









유럽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대체로 여성농민들이었다는 사실은 여성주의운동 이전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여성주의 운동이 등장한 후 여성주의자들 스스로 자신을 마녀와 동일시하면서 마녀가 여성 저항의 상징으로 채택되었고,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대량살상과 극악한 고문에 시달린 것은 권력구조에 도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혔다. 2세기에 걸쳐 진행된 마녀사냥은 유럽 여성사의 전환점이라는 것도.




이는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진행된 사회적 쇠락의 과정에서 여성들이 감내한 '원죄'와도 같았고,

지금까지도 제도적 관습과 남녀관계를 특징짓는 여성혐오증을 이해하려면

계속 돌이켜볼 수밖에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239쪽


그러고보면 여성혐오는 뿌리가 깊었구나.



마녀사냥은 신세계의 식민화 및 원주민 말살, 잉글랜드의 인클로저, 노예무역의 출현, 부랑자와 거지들에 대한 '피의 법률' 제정과 동시에 일어났고, 봉건제가 종식된 후 자본주의가 '이륙'하기 전 절정을 이루었다. (239쪽) 여성에 대한 엄청난 테러전은 상류층과 국가의 공습에 맞선 유럽 농민들의 저항을 약화시켰다. (240쪽)



마녀사냥에 대해서는 잔 다르크의 예 때문에 약간 불신을 갖고 있기는 했다. 적군의 영웅을 마녀로 몰아서 죽이는 영국과 그걸 방관한 프랑스. 마녀사냥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던 예이기 때문이다. 잔다르크가 사망한 해가 1431년, 15세기 중엽이다. 당시 확립된 사술에 대한 원칙에서는 마법을 일종의 이단으로 선언하고 신과 자연, 그리고 국가에 대한 최대의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Monter의 말, 241쪽) 16세기 중반 이후에는 마녀재판을 받는 여성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마녀박해의 주도권이 종교재판에서 민간법정으로 넘어갔다. (Monter의 말, 242쪽) 마녀사냥은 1580-1630년 사이 절정에 달했는데, 이 시기는 봉건적 관계가 중상주의적 자본주의의 전형에 가까운 경제 및 정치 제도들로 이미 대체되기 시작한 때였다. 이 시기에는 거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서로 전쟁 중이던 국가들 내에서 화형대가 몇 배씩 늘어나고 국가가 마녀의 존재를 규탄하며 박해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242쪽). 홉스는 마법의 존재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지만 사회적 통제수단으로서 박해를 인정했다 (245-246쪽).



가톨릭과 청교도 국가가 종교적으로는 대립했지만 마녀를 박해할 때만큼은 뜻을 같이 했다.



마녀사냥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분란 이후 유럽 통합의 첫 사례이자,

새로운 유럽 국민국가의 정치에서 최초의 통합의 장이었다.


247쪽


마녀들의 고백은 심문관들이 고문을 통해 얻어낸 것이고 (신뢰하기 힘들다), 마녀 사냥의 대상은 대부분 극빈층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재산이 목적이 되지는 않았다. 마녀사냥이 일어난 역사적 맥락, 피소자들의 젠더와 계급, 박해의 영향 등을 살폈을 때 유럽의 마녀사냥이,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여성들의 저항에 대한, 그리고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에 대한 통제력과 치유능력을 통해 여성들이 획득한 권력을 공격한 것이었다고 결론지어야만 한다. (248-249쪽)



이 지점의 진행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급작스러우나... 당시의 기록이 잘 남아있지 않을 것이므로 정황상의 증거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모든 과정이 설계된 채로 '의도적'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녀사냥 이후 여성의 몸과 노동, 이들의 성적인 능력과 재생산능력은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되었고 경제적 자원으로 변형되었다. (249-250쪽) 또 마녀사냥의 대상은 과거에는 용납되었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 공포와 범죄화를 통해 공동체에서 몰아내야만 하는 관행과 집단이 되었다. 마법은 공포를 극대화하기는 하지만 증명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마법에 대한 비난은 오늘날의 '테러리즘'에 대한 비난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다.


(공포를 극대화하기는 하지만 증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는 점에서 요즘의 가짜뉴스가 생각났다)


이단은 특정 성별과 관계가 없었으나 사술은 여성의 범죄로 여겨졌다. 이 시기 가장 많은 여성이 처벌받은 분야는 영아살해와 마법이었다. 피임, 낙태, 마법이 같은 범주로 묶여 악마화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유럽의 국가관료 및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재생산 및 인구규모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나타난 것과 관계가 있었다. 16-17세기는 중상주의의 전성기였고 이들은 노동력의 규모와 국가의 부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녀사냥은 출산통제를 범죄화하고 여성의 신체, 특히 자궁을 인구증가와 노동력의 생산 및 축적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는 시도였다.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했다면,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마녀사냥은 특히 하층계급의 여성에게 행해졌고 이는 같은 계급의 여성으로 하여금 공포를 불러일으켜 지배체제에는 순종하는 한편 여성들간의 연대는 희미해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가십이라는 단어는 여성친구라는 뜻이었으나 이 시기 험담, 소문이라는 부정적인 뜻을 갖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여성은 심신이 약하고 생물학적으로 사악해지기 쉬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이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통제와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를 정당화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토지를 빼앗겨 빈곤해지고 범죄자로 몰린 하층계급의 남성에게 마녀사냥은 좌절을 분출할 수 있는 국지적인 배출구가 되었다. 결국 마녀사냥은 프롤레타리아 전체의 지배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남성을 유혹하고 취약한 존재로 만들며, 에로틱한 열정을 촉발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이 시기부터 만들어져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성적인 열정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위를 약화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데카르트 철학이 이성의 근원이라고 칭송했던 그 소중한 머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성은 남성의 책임감과 노동 및 자기통제 능력을 뒤엎어 버리기 때문에 공공의 위험이자 사회적 질서에 대한 위협이었다. 16-17세기 성적 탄압의 시대는 이렇게 시작된다. 성에 대해 적극적이거나 문란한 여성은 ‘여성 변태’로 비난받았고 이는 에로틱한 얼굴을 가진 여성에서 노동하는 얼굴을 가진 여성으로 여성을 탈바꿈, 즉 여성이 가정 내에서의 노동과 출산, 재생산 노동에 집중하게 하기 위한 첫 단추였다.



푸코는 가톨릭 목회와 고해성사에 의해 강제적으로 사람들이 성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 모양인데 (<성의 역사>에서), 그보다는 마녀사냥 과정에서 고문 등에 의해 발화되었다고 한다. 고해성사를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고해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물론 그 때와 지금 종교에 대한 진지함은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되지만)



마녀사냥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노동규율에 순종하여 가족 내에서의 재산상속과 출산을 위협하거나, 노동에 들어갈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낭비하게 만드는 모든 성적 활동을 범죄화하는 광범위한 성생활의 재구조화를 위한 수단이었다. 또한 마녀사냥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우상숭배와 더불어 원주민들을 식민화하고 노예화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근대과학의 발달과 과학적 세계관이 마녀사냥의 성쇠와 시기를 같이 하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영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녀사냥이 종식된 것은 지배계층이 목적을 달성하고 권력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근대적인 과학수단과 합리주의가 마녀사냥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마녀박해를 지지했던 지적 형틀이 철학적 합리주의에서 직접적으로 추출되었다기보다 완수해야만 했던 과업의 압력을 받으며 진화했던 과도기적인 현상이 일종의 브리콜라주처럼 작용하여 마녀박해를 지지하는 지적 토대가 되었다. 결국 합리주의와 기계론은 도구였을 뿐, 중요한 것은 유럽 엘리트들 (부르주아들)의 필요였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시기의 지배층이 치밀한 계획하에 여성을 통제할 목적으로 마녀사냥을 계획했다고 상상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이런 의문에 잠깐이나마 아니라는 언급이 있어서 반가웠다. 그러나 과거의 일이 치밀한 계획하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이런 일이 언제든 (물론 치밀한 계획하에 일어났어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쉽게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 같아 약간 다르게 괴롭다. 요즘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여성 혐오 발언, 얼마전 한 운동 선수와 관련하여 일어났던 논란 등은 가끔 나로 하여금 <시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데, <시녀 이야기>가 있을 법한 이야기를 쓴 것이라면 마녀사냥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니까 말이다. 물론 그 둘이 무관하지 않고 상당히 유사하기도 하다.


결국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항상 주의깊게 살피고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남성'이 여성의 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조장하거나 그 결과에 기뻐하는 것은 현 체제 하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글 두개를 붙였는데 앞뒤의 형식이 달라 대대적으로 고쳐볼까 하다가 그냥 놔두기로 한다. <캘리번과 마녀>를 읽은 기록을 모아두는 것에 의의를 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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