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써놓고 보니 이런 제목의 책이 있는 것 같은데...
(진짜 있네)
11월 말쯤부터 걱정거리가 있었고 1월 초에 해결이 됐다. 그것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어디에 써야할 지를 잘 모르겠더라. 개인적인 일이면서도 개인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내가 원래 쓰던 블로그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어있는데 언젠가부터 그곳이 불편해졌다. 거기에 뭘 쓰면 다들 그걸 보고 나를 짐작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특정 커뮤니티에서 자주 이루어지던 뒷담화가 불편해 그곳을 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쓰기 싫었다.
알라딘 서재가 요즘 가장 친숙하지만, 여기에는 책 얘기가 아닌 걸 쓰기에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몇 분들이 투비에 글을 쓰시나 싶기도 했고, 그런데 거기에 책 얘기가 없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고. 투비는 오히려 더 공개적인 플랫폼인 것도 같고. 그러다보니 그냥 쓰지 않고 참게 됐다. 뭐 쓴 들 어떠리 안 쓴들 어떠하리.
1월 말에 오래 전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일이 있었고 또 뭔가 쓰고 싶어졌다. 그게 그렇게 큰 일이 아니었는데도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를 괴롭힌다는 게 놀라웠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의 괴로움은 얼마나 클까 생각하게 됐다. 그건 더욱 쓰기 힘들었다.
그런데 자꾸 쓰고 싶고, 못 쓰니까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다.
왜? 왜 이렇게 쓰고 싶어하지?
1월에 어렵게 읽었던 <공포의 권력>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현대 문학이 이와 같은 아브젝트의 자리를 대신하여 등장했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현대의 초자아가 가진 도착적인 입장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것이 그 원인인 듯하다. ..... 흥미로운 점은 문학 또한 도착성처럼 그것들을 이용하고 이리저리 비틀어서 가지고 논다는 점이다. 이때 문학은 아브젝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아브젝트를 상상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고, 언어의 유희라는 이동을 통해 자신이 위치를 스스로 관조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브젝트와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40쪽)
인간은 자기 표현의 욕구가 있다는데.. (나는 사실 그렇게까지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
문득 작가들은 왜 글을 쓸까 궁금해졌다. 예전에는 잘 쓰는 사람이 작가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작가는 '쓰고 싶은 게 있는 사람' 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의 기능이란 것을 독자 위주로 생각했는데, 크리스테바의 글을 보니 작가에게 문학이란 어떤 것인가, 작가는 왜 쓰는가 싶고.
그래서 뭘 찾았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제 좀 궁금해졌다는 이야기다.
대충 찾아보니 사르트르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냈더라. 이해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크리스테바와 시기상 가까우니 한 번 구경이라도 해볼까...
쉽고 좋은 책을 아시는 분은 추천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