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눈물이 많다. 심하게 많은 편이다.
그래서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잘 운다. 열라 창피할 정도로.
드라마나 영화, 책(만화책)을 보면서 우는 건 아주 기본이고 신문 보면서도 울고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도 울고 일하다가도 울고.. 이렇게 써놓으니 인생이 아주 우울처참해서 울 일이 너무너무 많은 사람 같아 보이겠지만 사실 그런 것도 아닌데..
내 눈물의 20%는 슬퍼서, 10%는 화나거나 분해서, 그리고 70%는 감동받아서 흘러나오는 눈물이다. 한마디로 감정이 흘러 넘친다. 사무실에서 인터넷 검색하다가 모니터에 얼굴 박고 우는 게 한두 번이 아니기에 처음에는 다들 놀래서 내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던 사람들도 얼마 지나면 그러려니 하고 신경도 안 쓴다. 남들은 사람 많은 데서는 자존심 때문에 절대 안 운다 그러던데 내 눈물은 자존심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숱하게 울면서 딱 한번 정말정말 쪽팔렸던 적이 있다. 이건 화나고 분해서 흘린 눈물이었는데 어떤 XX 같은 클라이언트 때문이었다.
몇 년 전 모 종합병원 관련 프로젝트 PM을 한 적이 있다. 전혀 돈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쪽 원장이랑 우리 회사 경영진과의 모종의 관계 때문에 억지춘향 격으로 맡게 됐다. 돈 안 되는 일이라 회사 지원은 미미한 반면 대상이 종합병원이다 보니 일의 양은 엄청났기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그래도 어차피 맡은 일, 제대로 잘 해내리라 다짐하고 진행하고 있었는데, 병원이란 데가 워낙 관련된 과도 많고 이해관계도 얼기설기 얽혀 있고 잘난 척하는 분들도 많아 진행이 무지 더뎠다. 빨리 해치우고 끝내야 그나마 회사 손해가 덜할 텐데..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원장 힘을 빌려 전체 관련자들을 다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 모든 과의 담당 선생들과 그에 줄줄이 딸린 레지던트, 인턴들까지 몇 십명이 커다란 회의실에 모여 웅성웅성. 그런데, 이 인간들이 의견 조율하라고 모아놨더니만 조율은 커녕, 한쪽에서 뭔가를 요구하면 다른 쪽에서는 그보다 더 큰 걸 요구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아예 새로운 걸 요구하고 하는 식으로 서로 경쟁심에 불이 붙어 계속 무리한 요구를 줄줄이 뱉어내는 거다. 해달라는 거 다 해주면 우리가 받는 쥐꼬리만한 돈의 30배를 더 받아도 모자랄 정도로..
게다가 우리 회사와 그 병원 사이에 중간 매개자가 하나 있었는데, 이 인간은 그 프로젝트를 빌미로 자기가 그 병원에서 크게 한 자리 해보려는 속셈을 가진 작자였다. 한마디로 우리 회사를 지 출세의 제물로 삼으려는 야욕을 품은 인간. 그런 인간이니 의사들이 온갖 말도 안 되는 요구들을 해대는데도 말릴 생각은 커녕 '네네' 하면서 무조건 다 해주겠다, 그보다 더한 것도 해주겠다는 식으로 나간다.
듣고 있던 나는 속에서 열불이 나다 못해 얼굴까지 울그락푸르락해지고 있는데, 아예 기름을 붓는 누군가의 한마디. "병원이란 데는 결국 공익기관인데, 이런 프로젝트는 사회에 봉사한다 생각하고 무료로 해줘야 되는 거 아냐?" "맞아맞아(모인 의사 일동)."-_-+++
"아니, 그러는 너네는 공익기관이라서 아픈 환자들을 그토록 푸대접하면서 그렇게 터무니없는 입원비에 특진비까지 받아처먹냐??!!!"라는 말이 목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소심한 나, 말 대신 그만 눈물이 터져버렸다. -_- 회의하다 말고 담당 PM이라는 애가 얼굴 뻘개져서 꺼이꺼이 울고 있으니 모인 사람들 죄다 벙쪘고, 나는 나대로 쪽팔려 죽겠는데 눈물은 안 멈추고, 같이 있던 울 회사 사람은 나 땜에 죽을라 그러고, 나보다 어린 레지며 인턴들은 대따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할튼 내 인생에 지워지지 않을 쪽팔림이있다.
그리고 그 후에 결국 그 프로젝트는 파토났다...
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은 그넘의 모종의 관계와 써글넘의 중간책 땜에 결국 끝까지 밀고 나가야만 했다. 난 그 죽을 듯한 쪽팔림을 무릅쓰고 1주일에도 몇 번씩 그 병원을 드나들어야 했고.
몇 달 후 마침내 그 끔찍한 일이 끝났을 때, 병원측은 돈 거의 안 들이고 프로젝트를 해낸 자신들이 자랑스러웠는지 무슨무슨 기념행사까지 열었다.. 그리고 나한테 감사패인지 공로패인지까지 주고.. -_- 그 패는 받자마자 버렸기 땜에 뭐라고 써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받으면서도 치가 떨렸다.
그 이후 그 병원 쪽으로는 얼굴도 안 돌리려 노력한다. 근처를 지나갈 때도 절대 안 쳐다보고.
근데 작년에 울 아빠랑 동생이 줄줄이 그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었다. 덴당!!! 매일 병문안 가면서 혹시 아는 의사들 마주칠까봐 007을 찍으며 숨어다닌 거 생각하면... -_-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잘 운다. 앞으로 또 어떤 인생의 쪽이 나를 기다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