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걸린 병이 아니라 우리 엄마님에게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나야말로 1년 365일 다이어트가 필요한 몸매이지만 타고난 의지박약과 나태함으로 꿈도 못 꾸고 1년 365일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발병 주기 : 1~2달에 1번꼴

증상 :
아침 운동을 다녀온 엄마,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걱정스러운 딸들 무슨 일이냐고 여쭙는다. 한숨을 푹 내쉬며 하는 말씀, "글쎄 수영장에서 체중을 재봤더니 자그마치 2킬로그램이나 는 거 있지. 요새 내가 좀 잘 먹고 다녔더니만.. 휘유우.." 엄마 얼굴을 살펴보니 평소보다 턱이 약간 더 겹쳐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했다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될 터이니 암말 안 하고 가만있는다.
그리고 잠시 후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엄마, 냉장고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는 "오늘부터 우리 식구 다 다이어트야!! 니들 각오해!! 이 기회에 다들 10킬로그램씩 빼는 거야!!! 우리 집에 이런 음식이 가당키나 해!!!"라며 아까운 고기반찬, 치즈, 조각케이크, 아이스크림들을 냉장고에서 쓸어내 아낌없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다.
식구들 모두 입 헤~ 벌리고 쳐다만보고 있을 뿐, 찍소리도 못한다. 옛날에 한번 "다이어트 할 거면 엄마만 하지 왜 우리까지 괴롭히느냐"고 용감하게 대들던 내 동생, 엄마한테 찍혀 상당기간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었다. 알아서 기어야 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식탁은 푸르디 푸른 초원이 되어 쌈채소와 샐러드와 나물이 즐비하고 조리법도 기름이라곤 한 방울도 안 들어간 죄 찌고 삶고 데친 것들 뿐. -_- 그나마 나물을 좋아하는 동생은 잘 먹지만 나물도 쌈도 질색인 나는 밥과 김만 먹고 있다. 반찬이 너무 심하지 않냐며 달걀이라고 하나 구워달라는 아빠에게 엄마 왈, "아니, 그 기름 좔좔 두른 프라이를 먹겠다고요? 게다가 달걀 노른자는 콜레스테롤 덩어리잖아욧!" 에고, 말 꺼냈다 본전도 못 찾은 불쌍한 우리 아빠. ㅠㅠ 그냥 가만히 계시지..

치료법 :
이 상태로 2~3일이 지나면 누군가가 말하기 시작한다. "아, 고기를 못 먹었더니 막 어지러울라 그래. 고기 먹고 싶어" "나 너무 피곤해. 초콜릿 좀 먹으면 이 피로가 싸악~ 가시련만.. 어디 숨겨놓은 초콜릿이라도 없냐?"
이런 말 하는 사람이 과연 누굴까? 그래, 바로 우리 엄마다. 며칠 전의 그 처절했던 맹세와 호기로움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 다시 냉장고 문을 열어서는 텅텅 빈 윗칸과 꽉 찬 채소칸을 들여다보며 몸서리를 치고 있는 엄마. 우리가 다들 기막혀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면, "뭘 그렇게 보고만 있는 거야? 엄마가 먹고 싶다는데 당장 나가서 사오지는 못할 망정!!!"
...............
"네, 마마.. -___-"



내가 이렇게 집안망신 시켜가면서 몰래 엄마 흉을 보고 있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우리 엄마의 다이어트 발작이 또 시작됐다. 괴롭다. ㅠㅠ 주말에 아빠가 맛잇는 거 사준다 그랬는데 엄마의 증세가 오늘 막 시작됐으니 이번 주말은 텄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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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5-2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종일 회사에서 다이어트 하겠다고 떠들고 왔더니 배가 고프네요...이러니 님의 어머니 맘을 쬐금 이해를 할듯싶어요...ㅎㅎ

starrysky 2004-05-2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머, 라이카님이 빼실 살이 어딨다고 다이어트를.. ^^ (직접 뵌 적도 없지만 분명, 1그램도 군살이 없으실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저는 매일 밤마다 라이카님 부엌(Laika's Kitchen)에 몰래 숨어 들어가 군침 잔뜩 흘리다 오는 거 아시죠? 우리 다이어트 같은 거 하지 말고 맛난 거 마니마니 먹으면서 살아요~ 네? ^^

Laika 2004-05-22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starry 님께는 절대 제 모습을 드러내면 안되겠군요...저 살이 너무 쪄서 이제 "곡기"를 끊을까도 생각하는데, 아시다시피 제가 먹는걸 워낙 좋아하는지라....고민되네요..^^

starrysky 2004-05-23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걱, "곡기"를 끊으시다니요. 절대로 아니되어요오오~!!! 혹시라도 그런 일 하신다면 제가 라이카님 집과 직장까지 쫓아가서 밥숟가락을 입에 물려드릴 겁니다. 스토커 한 마리 키우기 싫으시면 절대 그런 독한 맘 먹으심 아니됩니다. 아셨죠? ^^

치유 2004-05-24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꼭 누굴 보는듯 해요....
꼭 제얘기 같아서..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