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 말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이 책 때문에 아멜리 노통에게 실망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재미가 없을 수 있지?
아무리 요즘 내 정신상태가 독서 모드에 맞춰져 있지 않다고는 해도 어지간한 책들은 그냥저냥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이건 읽는 내내 엄청난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몇 달째 책장 구석에 꽂혀 있는 '살인자의 건강법'만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노통 책들은 다 읽어봤으니까 그녀의 글쓰기 성향을 모르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녀의 허황스러운 수다와 이리저리 튀는 상상력을 예찬하면서 노통 스타일을 꺼리는 사람들을 은근슬쩍 설득해가면서 슬그머니 품안에 책을 밀어넣어 주기까지 했었는데..
앞으로는 함부로 그런 짓을 못하겠다. 내가 이렇게 질려버렸는데 누구한테 권해줄 수 있겠어.

실망의 원인 1.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겠다. 주제가 뭐지?
인간의 오만함? 미래사회에 대한 경고? 차별이 낳을 수 있는 끔찍한 재앙?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사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실망의 원인 2. 매끄럽지 못한 전개.
난 지금껏 노통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물 흐르는 듯한 이야기 전개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폐쇄된 공간 속에 갇혀 공감대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지금 당장 서로를 목 졸라 죽여버린다 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두 인간끼리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글이 마구 사방으로 튀어도 되나?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역자의 글을 보면 노통의 글쓰기 스타일은 일단 머릿속에서 모든 내용을 정리한 후 그것을 그대로 종이 위에 옮겨 전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펴내는 것이라고 한다. 노통 자신의 말에 의하면 전혀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 책 한 권이 저절로 팍! 하고 떠오른다나? (좋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스타일을 좀 바꿔 수정이라는 것도 가끔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주위 사람들의 꽤 감탄했던 '적의 화장법'을 읽었을 때도 난 시큰둥했었다. 그땐 스포일러 때문이려니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다. 노통의 소위 '대화체 소설'이라는 게 특히 싫은 건가 보다. 좋아하는 작가라도 모든 책이 다 마음에 들 순 없는 거지만 이 정도로 실망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안타깝군. 워낙 좋아하던 작가라 실망도 더 크다.
앞으로도 물론 계속 읽긴 하겠지만 지금까지처럼 열성으로 사모아가면서 읽지는 않을 것 같다.

** 이건 리뷰인가? 리뷰로 옮겨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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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9-09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참고하겠습니다. 이제 노통도 내리막길을 걸을 때가 된건가요. 저는 <두려움과 떨림>과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이 재밌었어요.^^

ceylontea 2004-09-09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노통 책 중 이것은 읽지 말라시는 거죠?

starrysky 2004-09-09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 아, 저도요!!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 너무 괜찮죠? '두려움과 떨림'은 처음 읽은 책이었는데 그 책 덕분에 노통에게 홀딱 반했죠. 전 '오후 네시'도 좋았어요. 그 책 좋아하는 분들은 별로 없지만.. 흠,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아직 실망한 책보다는 좋아하는 책들이 더 많군요. ^^
확실히 좀 괜찮은 책들이 초기에 출판되고 상대적으로 못하다 싶은 책들은 인기를 얻고 난 다음에 출판되는지라, 갈수록 점점 매력이 떨어지나 봐요.

실론티님, 이 책이랑 '적의 화장법'이 저는 별로였어요.
근데 노통도 상당히 취향을 타는 작가인지라 읽어보신 분들마다 좋아하는 책들도 다 다르시고 싫어하는 책도 다르시고.. 그래서 섣불이 이건 읽으시되 저건 읽지 마세요..라고 권해드리기가 어렵네요. ^^

superfrog 2004-09-09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후 네시는 읽어봐야 겠어요..^^ 스타리님 추천이라면!ㅎㅎ

비로그인 2004-09-09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없다면 괜히 읽어보고픈 충동이;;;

瑚璉 2004-09-09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이 꽤나 재미가 없어서 서평도 그리 써놓았는데 극찬을 하시는 분이 더 많아서 '내 안목에 문제가 많구나'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starry sky 님, 앞으로 우리 no 노통족들끼리 친하게 지내요 (-.-;).

sweetmagic 2004-09-0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두려움과 떨림은 좋았는데 실망입니다.
노통.. 너무 겁없이 잘났어요 ~ㅠ.ㅠ.....!!

하얀마녀 2004-09-0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후 네시'읽고 다시는 그녀의 작품을 읽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_-

starrysky 2004-09-09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 '오후 네시'는 요 위에서 하얀마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별로 안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일단 소재가 좀 파격적인 데다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노통 스타일'과는 약간 다르거든요. 오히려 그 즈음에 읽었던 엠마뉘엘 카레르의 '겨울아이'랑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 기회 닿으면 보셔요. 호호.

여대생님, 사실 저도 다른 님들께서 마구 악평을 해놓은 책을 보면서 쬐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도대체 어떤 부분이 어떻게 맘에 안 드셨을까, 나는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게 궁금해서요. 그런 비교를 통해 그 분과 제 성향을 비교해볼 수도 있으니까 더 재밌죠. ^^

호련님, 사실 저도 책 읽고 나서 리뷰를 쓸까 말까 망설이면서 기존에 올라온 리뷰를 찾아보니까 자그마치 24개나 달려 있더라구요. 다는 못 읽고 몇 개만 찾아 읽었는데(호련님 리뷰는 미처 못 봤습니다. 잠시 후에 읽어볼게요. ^^) 평들이 그닥 나쁘지 않기에 괜히 여기에 찬물 뿌릴 필요 없겠다 싶어서 리뷰란에 안 올리고 페이퍼로 썼어요. 아직 우리나라에는 노통 붐이 사그러들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일단 칭찬하시는 분들이 많은 듯한데, 몇 년 지나면서 몇 권의 책이 더 출간되면 확실히 판가름이 나겠지요. 그때까지는 좀더 지켜보려구요.. ^^

스윗매직님, 두려움과 떨림은 뭐랄까.. 느낌이 아주 독특한 책이었지요? 그 책을 읽으면서 계속 느꼈던 스멀거리는 감정들은 도저희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참 멋지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맘이 오래 갔으면 좋았을 걸 벌써 실망을 맛보게 되니 슬프네요. ㅠㅠ 확실히 너무 잘난 작가님들은 저하고 좀 안 맞나 봐요. ^^;

하얀마녀님, 아, 제가 이 글 쓰면서 '오후 네시' 싫어하시는 분도 어디서 뵜었는데.. 싶었는데 바로 하얀마녀님이셨군요. 제 친구 중에도 '오후 네시' 싫다는 사람, 노통이 아예 싫다는 사람이 몇몇 있어서 나랑은 취향이 다르구나.. 하고만 생각했는데 오늘부로 저도 그쪽 편으로 약간 기울게 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좀더 오래 좋아할 수 있는 멋진 작가가 또 제 앞에 나타나겠지요. ^^

sooninara 2004-09-0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통을 아직도 안봤어요..한번 읽어 봐야할텐데..

starrysky 2004-09-09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아멜리 노통의 많은 책 가운데서 부디 님께 잘 맞는 거 고르시기 바라요. 처음부터 함정에 폭 빠지셔서 다시 안 쳐다보기에는 그래도 좀 아까운 작가거든요. ^^

마태우스 2004-09-09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말하지만 노통은 소재와 대화체가 매우 신선할 뿐이죠. 전 그게 좋아서 노통의 책을 계속 읽는 건데요,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요. 특히 책이 다 양장본이라 분량에 비해 값이 좀 비싼 것도 흠입니다. 어쨌건 스타리님 글이 노통보다 훨씬 더 재미있으세요^^

플레져 2004-09-10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리님, 우선 찌찌뽕~ 저두 재미가 없어서 읽기 포기했어요. 두려움과 떨림, 적의 화장법,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이 그녀의 최고 작품인 거 같아요. 오랜만에 스타리님 방에 불 켜졌네요. 귀여우신 별총총님...^^

starrysky 2004-09-10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소재는 언제나 기발하지요. 그리고 풀어나가는 방식 자체도 나쁘지 않아요. 근데.. 에이 모르겠어요. 순진하게도(?) 기대치가 너무 컸나 봐요. ^^ 노통 책이 전부 양장본인 건 분량이 너무 적어서 양장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내놓을 만한 모양새가 안 되기 때문 아닐까요? 이제 장편을 한번 써보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한데 말여요.
마태님께 제 글에 대한 칭찬을 듣다니, 덩말덩말 가문의 영광이여요. ^///^

플레져님~ 흑, 이 책 정말 재미없죠? 저도 포기할까.. 하다가 얇으니까 읽어준다는 맘으로, 그리고 다른 분들 리뷰 보니까 뒷부분으로 갈수록 재미있어진다는 얘기가 가끔 있길래 믿는 맘으로 끝까지 읽었는데.. 그랬는데..!! 크흐흑. 맘을 씻는 기분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이나 다시 함 읽어봐야곘어요.
참, 제가 플레져님께 추천하는 만화 리스트 보셨나요?? 그 중에서 단 하나라도 님 마음에 드는 만화가 있었음 좋겠네요.. ^-^

마냐 2004-09-13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엣.....뜬금없지만, 저도 다니엘 페낙이 좋아요. 노통의 '시간의 옷'도 강추하곤 했는데...음음...호불호가 강할 수 밖에 없는 책이다 싶기도 하네요...스타리님의 리뷰 좋아요.

groove 2004-09-13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노통좋은데 저책은 안읽어봤군요 제 아는사람의말로는 좋은건좋고 별로인건 엄청별로라고하던데..흐흐
저는 참고로 오후네시가 최고인듯 ^^

starrysky 2004-09-14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새벽별님. 언제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나요?? 요샌 놓치고 못 보는 댓글이 왜 이렇게 많은지 원.. ㅠㅠ 그저 노화 현상이려니.. 생각해 주세요. (퍽!)
전 '살인자의 건강법' 사놓고 아직 안 읽었는데.. 걔도 좀 황당하게 전개되나 보죠? 으음.. 이왕 한번 데인 거 한꺼번에 학을 떼야 할까요, 아님 뒀다가 나중에 좀 가라앉으면 읽어야 할까요? 고민되요, 고민..
사실 아멜리 노통, 폴 오스터,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인기 많고 특히 알라디너들께서 좋아하는 작가를 비판하는 일이 쉽지는 않죠. 내가 어딘가 좀 취향이 이상한가 보다..란 생각도 들고. 그래도 좋고 싫은 건 솔직하게 말해야 다른 분들도 참고가 되실 것 같아서요.. ^^ 취향이 아니다.. 싶으시면 굳이 계속 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세상은 너무나 넓고 읽어야 할 책은 이렇게나 많은 걸요. 전 사실 다니엘 페낙을 잘 몰라요. 두어 번 시도했다가 엄마, 뜨거~ 하고 물러난 기억이 있어서.. 나중에 한번 도전해 볼게요. ^^

마냐님도 다니엘 페낙! 오오, 제가 존경하는 님 두 분께서 한꺼번에 페낙 협공을 해오시니 귀 얇은 제가 또 슬슬 넘어갈라 그럽니다. 담번에 도서관 가면 빌려봐야겠어요. 근데 그 연작 시리즈 있잖아요. 말로센 말로센, 정열의 열매들 등등으로 이어지는.. 그게 저한테는 상당히 엽기적이더라구요. 아시다시피 그런 쪽에 많이 약해서.. 약간 소프트한 걸로 추천해주실 만한 거 없을까요? 마법의 숙제는 또 너무 애들 용이구.. 산문 파는 소녀던가.. 그 제목이 확 끌리는데 구할 수가 없더라구요.
마냐님께서는 '시간의 옷'을 재미나게 읽으셨군요. 저런 글 쓴 게 너무 죄송스럽네요. ^^; 하지만 말씀대로 사람마다 호불호가 뚜렷한 작가니까요. 노통 새 책 나왔던데 그걸 또 기대해봐야겠어요.

groove님, 안녕하세요~ 제 서재에서 처음 뵙는 듯한데 맞나요? 혹시 아니라면 용서해 주세요. 제가 정말 기억력이 3초도 채 안 되거든요.. ㅠ_ㅠ
저도 시간의 옷은 나온 지 꽤 지나서 본 셈인데, 오히려 나오자마자 봤더라면 더 좋게 읽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까지 봐온 책들이 다 평균 이상이었던지라 기대를 많이 했던 만큼 실망도 더 커져서요.. ^^ 앗, 님도 '오후 네시'를 좋아하시는군요. 너무 반가워요. 저도 그 책을 참 좋아하는데 의외로 노통 팬 가운데서도 '오후 네시' 좋아하는 분들은 별로 없더라구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