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 멀쩡하던 사람의 한순간 폐인이 되어 버리는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술, 여자(남자), 도박, 그리고 게임..
요새 내가 알라딘에 올 때마다 입버릇처럼 떠들어대던 말이 있었다. '책이 통 안 읽힌다. 책이 손에도 안 잡히고 눈에도 안 들어온다.. 이를 어쩌만 좋을까..' 이런 푸념을 늘어놓으면 착하신 알라디너들은 다정한 위로의 말씀들을 건네주신다. '저도 그래요... 그렇게 책이 안 읽힐 때가 있어요... 그러다보면 또 언젠가는 읽게 될 거예요.. 등등'
하지만 난 이 착한 분들께 거짓말을 해왔다. 책이 눈에 안 들어온다고? 책이 안 읽힌다고? 아니, 사실은 1달 넘게 폐인 게임에 푸욱~ 빠져서 일할 시간, 책 읽을 시간을 몽창 거기에 바치고 있는 중이다. 폐인 게임이 뭐길래? 별 거 있나. 사람 폐인 만들 정도로 시간 잡아먹고 정신 빼앗는 게임은 모조리 폐인 게임이지 모. 어렸을 때 식음을 전폐하고 컴퓨터 오락에만 매달려 있다가 엄마한테 쫓겨날 뻔한 이후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요즈음 그 증상이 사뭇 심각하다 아니할 수 없다.
1달여 전, 내가 처음 접하게 된 폐인 게임은 '금캐기' 게임이었다. 잘 다니던 어떤 팬사이트에서 새 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말라고 서비스용으로 링크시켜 놓은 게임이었는데 옴팡 걸려들어버린 것이다. 수염이 덥수룩한 늙은 할아버지가 갈고리 하나 달랑 들고 땅 속에 파묻힌 무거운 금덩이들을 땀 뻘뻘 흘려가며 끌어올리는 모습이 몹시도 애처로워, 좀 거들어주려고 했던 것이 그만.. ㅠ_ㅠ 뭐 그 금덩이를 좀 빼돌려서 책도 사고 집도 사려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하여튼 그때 마감 시즌이었는데 정신 못 차리고 게임에 빠져들어서 마감을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캐고 캐고 또 캐고.. 갈고리를 던지고 던지고 또 던지고.. 금도 캐고 다이아몬드도 캐고 가끔 실수로 돌덩이도 캐고.. 그렇게 몇 주를 보내다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던 모모 장군 말씀이 갑자기 사무치게 다가왔는지, 재미가 떨어져 버렸다. 한마디로 질린 것.
그러고 끝났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 자신을 이뻐라 해주기도 전에, 다시금 두 번째 수렁에 덜컥 빠져버렸으니 이름하여 '가나다 게임'. 이것도 위의 그 사이트에서 친절하게도 링크시켜 준 게임인데, 생긴 게 꼭 마작 같았다. 마작쯤이야 십수년 전에 가볍게 뗀 종목이라 부담 없이 덤벼들었는데, 안 하다가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어렵기도 하고 시간 제한까지 있는 것이 도전 정신을 끓어오르게 하면서리... 또 홈빡 빠져버렸... -_-;;;
그리고 지금 현재 상황은 세 번째 폐인 게임 '주키퍼'에 열혈 매진중. 아, 이건 옛날에 할 때는 하나도 재미없었는데 지금 새삼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걸까.. 나 요새 디게 심심한가 보다.. ㅠㅠ
이따구 게임 할 시간에 책을 읽었으면 책 500권은 읽었을 텐데.. (쬐끔 많이 과장;;)
이렇게 고해성사를 하고 뻥친 걸 사죄하면 다시 자력갱생의 길로 접어들어 정상인이 될 수 있을까?
음.. 아니, 별로 가망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 이 글 쓰기 바로 전에도 게임하다가 왔고, 다 쓰고 저장한 후에도 또 게임을 하러 갈 테니까.. 누가 나 좀 말려줘요~~ 흑. 즐겨찾기에서 주소 지워버려도 URL을 외워버린 손가락이 지 멋대로 주소를 치고 있으니 이를 어쩜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폐인 게임 주소들을 알라딘에도 널리 유포해서 남들도 다 책 못 읽게 만들어 버리고도 싶지만, 그런 짓 했다가는.. 난 쥐도새도 모르게..;;;
이럴 때 내가 읽어야 할 책은 게임공략집일까, <어려운 중독환자를 위한 치료계획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