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 보리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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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가을 산을
어떻게 혼자 넘나
우리 둘이서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7세기 중국에서 씌어진 시로 이 책을 시작하는 헬렌 니어링. 53년간 함께 살았던 스코트가 조용히 숨을 거둔 뒤 헬렌에게는 이 시가 떠올랐을까. 그랬을테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꼭 그런 것 만은 아니었겠어.. 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 둘이 그토록 조화로운 삶을 살면서, 적어도 마음은 얼마나 평화로웠을까. 헬렌도 그렇게 썼다. '스코트가 떠났으므로 나 홀로 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았다. 고요한 생활과 고독을 즐겼으며, 걱정해 주는 친구들의 잦은 전화와 방문이 번거롭기까지 했다.'

헬렌과 스코트는, 서로 조화로왔고, 각자 올바르게 살았으므로 그들은 최상의 행복을 누렸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코트의 올바름이었다. 아마도 그 부부를 이끌어갔고, 삶의 여러 힘든 순간을 어떤 원칙으로 이끌어 나가는가를 명확히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죽음의 순간마저도 이 세상에서 가능한 가장 적절한 방식을 알고 고요히 택할 수 있었던 스코트야말로, 참으로 이 세상에 와서 한 생을 살다 가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책의 말미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위엄을 간직한 죽음은, 그의 삶의 행적 만큼이나 진실했고 올바른 선택이었다. 책의 제목이 어째서 '사랑하는 것'과 '떠나는 것'인지 절로 공감이 갔다.

도서출판 보리에서, 자연을 닮은 색으로, 재생지로 만든 책의 모양새도 그 내용에 걸맞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렌과 스코트가 누렸던 그러한 자유와 충만의 느낌을 내 안에서 느끼는 것은 분명 힘들겠지만....그들의 삶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조금 더 맑아지는 것 같았다. 순간의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끝에서 언젠가 맞이할 죽음의 방식을 생각할 때, 작고 환한 불 하나가 켜지며 그 순간을 제시하는 것만 같았다. 누군들 그런 순간을 원치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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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정원 리네아의 이야기 2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지음, 레나 안데르손 그림, 김석희 옮김 / 미래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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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말 좋아하는 딸과 또 나를 위해 이 책을 구입해서 보았다. 어린이 도서 연구회에서 나온 <권장도서 목록>에서 처음 보고 선택했는데, 실제로 보고 난 느낌은 추천의 글보다 훨씬 좋았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딸도 정말 좋았던지, 어느날 메일의 아이디를 '리네아'로 정하겠다고 했다.

글을 쓰고 그린 이들은 분명 서양 사람들인데, 리네아는 우리 동양인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에 관해 유용한 정보가 책날개에 나와 있었다. 책날개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리네아는 정말 한국 아이이다. 이 책의 리네아를 그린 레나 안데르손이 스웨덴으로 입양했고, 지금 두 사람은 다정한 모녀 사이로 소문이 나 있다니... 실제로 리네아가 이 책의 모델이고 이 책에서는 정말 있었던 일, 혹은 있음직한 일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리네아는 또 식물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 또 수집하는 내 딸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딸과 나는 이 책을 지지난 겨울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보았다. 그리고는... 봄이 오고 여름이 오기를 기다렸다. 리네아의 책 <6월>에 나오는 화관을 보고 어서 만들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들판에 널려 있는 노란 꽃들로 어서 화관을 만들어 딸의 머리에, 또 아들의 머리에 씌워주고 싶었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왔다. 우리는 그 해 내내 민들레로, 또 강아지풀로, 가을에는 노란 산국으로 또 가늘디 가는 쑥부쟁이로 화관을 엮었다. 내 친구가 사는 시골집 앞 저수지의 둑길에는 이런 꽃들이 지천으로 피고지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강아지풀로 보기에는 좀 너무 크다 싶은 풀이 있어서 그걸로 머리에 쓰는 관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진작에 강아지풀을 알고 있던 아들은 그 풀을 이름하여 <개풀>이라 하였다. 조그만 건 강아지풀이니 그렇게 큰 건 개풀이라나! 나중에 책에서 그 풀의 이름이 술크령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집 식구들에게는 그냥 그 풀은 <개풀>일 뿐이다. 그 풀은 개풀로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선사했던가!

개풀로 만든 관은 화관을 능가할 만큼 너무나 멋있었다. 완전히 인디언 추장의 머리 장식이 된 것이다. (이글을 보는 여러분도 올 여름에 꼭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멋있답니다) 아들과 딸에게 그 관을 씌워서 사진을 찍고... 우리는 리네아의 <꼬마정원>을 더할 수 없이 즐겼던 것이다. 지금도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서로 자기가 더 멋있다고 우기는 아이들.

그 외에도, 이 책은 아주 유용한 정보들로 꽉 차 있는데, 어쩌면 '지식에 관한' 책을 이렇게 기분좋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글을 쓴 이와 그린 이는 절친한 친구이고, 주인공은 그 딸이라니, 게다가 그 아이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들을 옮겨 만든 것이라 생각하니 그들의 행복했을 작업이 생각나고, 덩달아 나까지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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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 닮았니? 난 책읽기가 좋아
로리 뮈라이므 글, 오딜 에렌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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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된 아이가 드디어, 주변의 환경에 의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날이 온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이 맞닥뜨리기 두려운 상황이어서 더 민감해지는 부분이다.

이 책의 무대는 프랑스. 어쩌면 한국의 아이였을지도 모르는 동양의 아이를 입양한 프랑스 가정이다. 표지부터 속지까지 꽉 채우는, 이 책에서 글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그림을 보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이가 한국의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첫 장에 아이의 독백. 이 아이의 성격과 앞으로의 내용이 결코 우울하지 않을 거라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내 피부는 누런색, 머리는 검은 색, 눈은 옆으로 길쭉하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생겼고 이런 나의 모습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나쁘다, 좋다 라는 판단이 한치도 들어있지 않은 선선한 출발.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는 아이의 건강함.

학교에서, 보트 피플이었던 봉의 아버지로부터 '너는 운좋게 이 곳으로, 너를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 밑으로 오게 되었다'라는 말을 듣고 그때 자신을 둘러싼 사실을 깨닫고 눈물이 앞을 가려 뛰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약간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아이는 삼 주 동안이나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 그리고 부모님께 알려드리기로 결심. '엄마, 아빠 죄송하지만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요. 안 좋은 소식이예요.' 긴장.

조심조심, 아이는, 사랑하는 부모님이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기를 바라며 비밀을 알려준다. 이런 식으로..'마음이 아프시겠지만, 엄마 아빠는 내 진짜 부모님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것쯤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나는 엄마 아빠가 진짜 우리 부모님들인 것처럼 사랑해요.' 웃음을 터뜨리는 부모들. 그리고 다정한 받아들임. 그리고 아이의 생각.'걱정할 것 없어! 제대로 설명만 잘 해 드리면 부모님들은 결국은 다 이해하신다고!'

'나는 우리 부모님의 진짜 아기가 아니야... 사랑해 주시기 어려울거야...' 가 아니다. '우리 부모님은 내 진짜 부모님이 아니야.... 하지만 내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믿게 해 드려야지.'

정말 이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로리 뮈라이유가 '진짜 이럴 수도 있지 뭘!' 하면서 만들어 낸 듯한 세상의 한 단면이, 언젠가 진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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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 - 3단계 문지아이들 7
다니엘 페나크 지음, 장 필립 샤보 그림,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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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 이 책 <까모...> 보다 먼저 <늑대의 눈>으로 접했다. 뒤의 책은 아주 특이하고, 정적인 응시가 돋보이는 책이어서 페나크에 대해 먼저 호감을 느꼈다. 까모를 읽고 나니, 새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내게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작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 읽어보면 아주 흥미진진하다. 십대 때 <폭풍의 언덕>을 읽고, 그 히쓰가 만발한 황무지의 캐더린 언쇼의 운명적인 삶에 으스스한 한기마저 느꼈던 내가 아니던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까모에게 히쓰의 벌판으로부터 격정의 편지가 오다니!! 뭐가 뭔지... 이건 대체 어떤 종류의 동화인가. 팬터지인가 추리인가?
맙소사. 대체 이게 뭐지? 라고 생각하며 장르를 더듬고 있을 때, 마지막 대단원은 그야말로 <눈이 번쩍> 떨어질 만큼 신선했다. 환상을 다룬 책이 결코 아니고, 의외로 아주 참신한, 기발하고도 가능한 아이디어가 있어서 가능한 책이었던 것이다. 마음이 예쁘고 지혜로운 까모의 엄마같은 사람이 옆에 한사람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러고보니 까모는 영어만 잘 하게 된 것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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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와 늑대 눈높이 어린이 문고 23
진 크레이그헤드 조지 지음, 유기훈 그림, 작은 우주 옮김 / 대교출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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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 소녀 미약스, 그러나 알래스카가 미국의 영토에 속하면서 에스키모 문화는 표류를 시작한다. 이 책의 공간적 배경은 광활한 알래스카의 대평원이지만, 같은 알래스카 안의 또다른 무대는 이미 백인 문명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술렁거리는 곳이다. 그리고 미약스는 이곳에서 줄리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어린 시절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내심과 강인함을 가진 에스키모의 전통적인 생활에 자부심을 느끼는 소녀 미약스가 주인공이라면, 아버지가 행방불명 되고 옛날의 정혼자와 결혼하면서 그 술렁거리는 새로운 세계에로 떠밀리듯 들어가게 되는 줄리는 마치 미약스의 그림자같은 주인공이다. 그러나 도저히 견디기 힘든 결혼과 그곳의 생활...결국 편지를 나누는 백인 친구인 에이미를 찾아 혼자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위해 탈출한다. 마치 거기 꿈의 도시가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그리고 대평원에서 열세살 소녀가 혼자 겪어내는 일들. 먹을 것도 없다. 해가 지지 않는 밤에는 방향을 가르켜 줄 별도 뜨지 않는다. 그때 이 열세살의 야성을 간직한 소녀 미약스는 훌륭한 에스키모였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집중한 결과, 늑대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대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강인한 늑대의 무리, 그 대장 아마록이 미약스를 보호하고 먹이를 주어 지켜주는 것이다. 그런 아마록을 통해 미약스는 진정한 에스키모로 거듭난다. 그러나.

미약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아마록은 백인들의 사냥감이 되어 안타깝게 죽고 미약스는 마음에 치유할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입는다. 열세살, 에스키모의 딸인 미약스는 샌프란시스코 대신 대자연의 평원에서 홀로 살라가는 것을 택하고 돌아선다. 여기까지 따라오며 나 또한 미약스와 아마록을 벗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작가인 조지 여사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미약스는 잃었던 아버지를 찾게 되고, 미국인 여자와 결혼해 있는 아버지는 이제 너무나 변해 더이상 옛날의 자긍심 높던 아버지가 아니다. 다시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려고 그곳을 나서지만... 작은 친구 토네이트가 죽으면서 미약스는 한 장을 마무리한다. 미약스는 줄리가 되어 아버지가 있는 캉킥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 부분, 불과 두 줄 밖에 안되는 이 짧은 마무리는 그 전의 모든 내용들을 완전히 뒤엎는다. 미약스는 줄리로 변해 있고, 대자연의 품을 믿었던 자부심 강한 에스키모 소녀 미약스는 그 두 줄에서 줄리가 되어 아버지를 찾아간다. 무엇때문에? 아무리 집중해 봐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말이 아닌가! 무언가 잘못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번역자의 해설에조차, 미약스는 대자연 속에서 혼자 살아가기를 시작한다고 되어있다. 납득이 가지 않는 결말이다. 작가의 어처구니 없는 마무리와,그것과 반대의 결론을 말하고 있는 번역자의 해설...천분의 일, 혹은 만분의 마지막 일에서 어이없게 배신당한 기분이어서 아직도 얼떨떨하다. 조지 여사와 번역자, 둘 다 이해가 가지 않아서... 번역자에게라도 묻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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