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정말 많이 나는데, 나도 화낼 줄 아는데... 허공에 하릴없이 흩어지는 악한 기운을 무찌를 수가 없다. 그에 걸맞는 무기를 찾지 못했다. 성난 상대방 앞에서 나는 순한 양이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친 것 같은 성난 상대방의 악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명상하려 애쓴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제 끝이다."
너무 많아 넘치는 썩은 내를 질리도록 다 맡아버린 어린 양들을 사악한 눈으로 무시하며, 이제사 조금은 후회가 되는지 뿜어댄 기운을 애써 주워담으려 하는 그를 뿌리치며 힘없이 돌아선다. 처진 어깨와 힘빠진 걸음걸이와 두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삶은 정말 힘들다.
어젯밤, 9시가 넘은 시각 청계천이 시작되는 곳에서 친구를 만났다. 연휴 내내 청계천을 TV로만 구경하다가 실물을 보니 참으로 감개무량하였다. 나는 이미 서울시민이 아니므로, 그저 눈과 귀와 몸을 놀리기만 하면 된다는 게 더 좋았다.
예전에 'TV, 책을 말하다'에 도올 김용옥이 나와 청계천은 西出東流라고 했다. 그런데, 친구에게 잘난 체 한답시고 동출서류라고 해버렸다. 나의 얕은 지식이 어디 가겠는가?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