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작은 오디오를 하나 샀다. 크기는 작지만, 소리가 꽤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 오디오였다. 반신반의했는데 물건을 받아 시디를 넣고 돌려보니 생각보다 훌륭했다. 기대보다 더 좋았다. 그리고 이 작은 오디오 때문에 삶의 큰 즐거움이 하나 더 생겼다. 나는 좋은 오디오에 대한 욕심이 있다. 지금은 경제 여건상 이 정도 오디오를 살 수 있을 뿐이지만 능력이 된다면 나중에라도 꼭 어마어마한 음질의 오디오를 마련해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자동차라든가 집이라든가 이런 것에 쏟는 욕심처럼 나는 오디오에 꼭 그런 욕심이 든다.

그런 오디오를 마련해서 책과 시디로 둘러싸인 방에 오디오를 설치해놓고 책과 음악 나, 이렇게 그 방 안에 머무는 것이다. 어떤 방해도 없이. 고요한 가운데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은 오디오를 타고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에 그대로 온몸을 맡긴다.... 볼륨을 한없이 올려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그런 곳이라면 더없이 좋다.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어떤 책은 음악을 들으면서 함께 읽어도 괜찮을 것이다.


예전에 읽은 <스토너>를 보면서 더욱 확고해진 생각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사람에게서 구할 수 있는 기쁨이나 행복은 매우 가변적이고 한정적이라는 사실이다. 가족, 연인, 친구, 배우자, 동료 등등 사람들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그 관계 안에서 기뻐하고 행복해 하며 즐거움을 찾는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변하기 쉽고 그 변화 때문에 관계는 늘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나 행복감 또한 한결같을 수는 없다.

어쩌면 그렇기에 '스토너'가 더더욱 문학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 자신의 고독한 삶을 위로받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문학에 자신의 삶을 바쳤기 때문에, 아니 꾸준하게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보통의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의미 있는 삶을 살다 간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그리고 그런 삶의 의미를 아는 이들의 눈에는 스토너가 그저 외롭고 고독하게 죽어간 가련한 인간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책이나 음악도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만든 이의 의도를 알고자 사람들은 끊임없이 애쓴다. 그렇지만 작품을 만들어 낸 사람의 의도를 100% 정확하게 알기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사람 또한 나 아닌 타인을 100% 완벽하게 알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알고자,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뿐이지만 완벽한 이해나 앎은 관계 안에서 존재할 수 없다.

책이나 음악은 사람의 해석을 기다리고 환영한다. 비록 작가나 작곡가의 의도를 완벽하게 알지 못하고 독자나 청자의 주관이 깊이 배인 해석일지라도 환영한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수록 작품이 풍요로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있는 그대로 보아주길 바란다. 해석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고, 이해가 아닌 오해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는 늘 불협화음이 따를 수밖에 없다. 타인의 주관적 해석 때문에 사람들은 상처받고 아파한다.

이런 까닭에 어떤 예술 작품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일보다도 한 사람을 받아들이고 알아가는 과정이, 사람과의 관계가 한층 어렵고 까다롭다. 그러나 그 공들임에 비해 쉽게 어긋나는 것 또한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그렇기에 사람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행복이나 즐거움은 변하기 쉽고 제한적이며 불완전한 것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이런 사실을 알았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돌아보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사람과 함께 할 때가 아니었다. 적어도 어린 시절에는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에는 창고처럼 쓰이는 뒤꼍이 있었다. 형제가 많아 온전한 내 방이 없던 나는 그 뒤꼍을 어느 곳보다 사랑했다. 여름이면 그곳에 돗자리를 깔고 라디오(이종환, 김기덕, 배철수 같은)를 들으며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나는 친구가 많았던 적도 없었고, 많기를 바랐던 적도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던 그 시기에는 사람으로부터 즐거움을 얻기도 했지만,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곧 모두 지나갈 것임을. 쉽게 변해버릴 한없이 가벼운 것임을.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와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인간은 인간에게 좋은 존재가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물론 나 또한 분명 타인에게 그런 존재일 것이다. 인간은 타인을 해석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 받는다. 그렇기에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편이 낫다. 아니면 해석할 여지를 아예 주지 않던가. 그러나 이조차도 불가능하다. 사람은 꼭 가까운 사람만을 해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친구가 얼마 되지 않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그 숫자가 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친구를 늘이고 싶어서 마음이 다급하지도 않다. 그런데 묘하게도 좋은 책이나 음악을 만나는 일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 책도 읽어보고 싶고, 저 음악도 들어보고 싶고..... 어떤 이에게는 무척이나 외롭고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이런 삶에 나는 아주 만족한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이 내게는 진리나 다름없다. 그 구석방에 좋은 오디오까지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는 셈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과 딱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그래서 행복하다. 어린 시절, 그 안에선 한없이 평화로웠던 뒤꼍에서의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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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5-12 11: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내일 할 얘기지만, 스토너가 사실은 소세키의 겐조하고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존 윌리엄스가 스토너에게 과하게 선역을 시켜서 말입죠. 사실은 스토너 역시 찌질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가정과 사회생활에서는요. 이번에 소세키 읽으며 확실하게 느낀 건, 소세키 >>>>>> 윌리엄스!!!

잠자냥 2021-05-12 11:19   좋아요 4 | URL
아 맞습니다! 겐조하고 비슷한 인물이죠! 하지만 전 겐조는 어떤 면에선 좋은데 스토너는 좋아할 수는 없더라고요. 스토너는 사실 딱히 매력적인 인간은 아니죠.
소세키>>>> 윌리엄스라는 말에도 공감합니다.
내일 기대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05-12 1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토너 읽을 때 조금 답답하단 생각을 했는데, 제게도 그런 모습이 있더라구요.^^
움베르토 에코의 말 저도 동의해요~
책이 있는 구석 방안 쉴 곳이라는...♡

잠자냥 2021-05-12 11:32   좋아요 2 | URL
아마 알라딘 서재분들은 다들 책이 있는 방구석을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

Falstaff 2021-05-12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파트 살면 오디오 좋은 거 전혀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출력대로 들을 수 없어요. 아래층, 위층, 벽 넘어 옆집에서 날마다 쳐들어올 겁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1-05-12 11:32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 그래서 아파트가 아닌 또 단독주택이 필요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능 ㅋㅋㅋ

2021-05-12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2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5-12 11: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살짜쿵 태클을 걸자면,
고 쿼테이션은 에코가 아니라
토마스 아 켐피스라는 분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려서는 새로운 관계에 점프하
길 원했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그 관계들을 유지하는 데 더 중점
을 두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휘발되고
나니, 어느 시절 사람들과 함께
보내던 시절이 참으로 행복했었구
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그 땐 그랬
지 하구요.

오디오에 대한 로망은... 회사에서
놀고 있는 티악 앰프부터 어떻게
슈킹을...

잠자냥 2021-05-12 11:55   좋아요 4 | URL
아하, 그렇군요.<장미의 이름>에서 나왔기에 그렇게 인용했으나, 정확히는 그게 맞군요. 감사합니다!

mini74 2021-05-12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남편이 싼값에 얼릉 주워왔다는 오디오, 형부가 우와하며 가격을 말한 후 잔잔한 음악과 책이 있던 방의 평화는 잠시 깨졌었죠 ㅎㅎㅎ

잠자냥 2021-05-12 14:1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디오에 환장한 사람들도 은근 많죠. ㅋㅋㅋ

새파랑 2021-05-12 1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과 씨디에 둘러쌓인 방에서 살고 싶어요. 언젠가는~!
스토너 읽고 인간관계에서 많이 생각했었는데~ 역시 책 좋아하는 사람은 책만 있으면 혼자있어도 어디있어도 즐겁다는^^

Falstaff 2021-05-12 14:03   좋아요 2 | URL
흠... 자랑으로 읽으시면 곤란하고요,
제가 책 읽는 곳으로 쓰고 있는 방에 한 줄로 늘어놓으면 28미터의 책꽂이와 33미터의 CD 꽂이가 꽉 차있는데요, 책 읽을 땐 음악 못 듣고, 음악 들을 땐 책을 못 읽습니다. 마음 먹고 책이나 음악을 좀 즐기려면 또 술에 취해 있기 십상이고요. ^^;;
책은 두 번 읽기가 쉽지 않고, CD는 두 번 이상 듣기가 쉽지만 듣는 것만 들어서 한 번 달랑 듣고 먼지만 쌓이는 애들 불쌍해 바라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책은 모르겠으나, 음반은 많이 사지 마세요. 딱 들을 것만 사시는 것이.... 전 반올림 해서 3천 장 가지고 있는데, 정작 듣는 건 한 2백장 되려나 그렇습니다.
오디오는 아파트 기준해서, 잠자냥님이 즐기시는 자그마한 거면 충분합니다. 괜히 오디오 입문이네 뭐네 해서 인켈 하이파이 팔아버리고 전문가용이네 뭐네 하는 거 샀다가 아직도 후회 막급입니다. ㅜㅜ

잠자냥 2021-05-12 14:15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맞습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 어떤 날은 사람하고 악속해놓고도 집에서 그냥 혼자 책이나 읽고 싶다고 생각하죠.

폴스타프 님/ 책하고 음악 같이 감상하기 어렵긴하죠. 책도 두 번 읽기 쉽지 않고, 음반도 듣는 것만 듣는다는 말씀 공감해요. 저도 소싯적엔 음반(주로 락 음악)도 사 모았는데, 결국 듣는 것만 듣고 자리만 차지하고.. 요즘은 정말 어쩌다 삽니다. 올봄 알라딘 수입 음반 할인 행사도 생애(?) 최초로 그냥 넘어갔다능. ㅋㅋㅋ 책도 읽고 되파는 경우가 많고요. 짐이다 짐.

근데 폴스타프 님 그 방 구경하고 싶네요- ㅋㅋ 술 취했을 때 함 올려주세요. ㅋ

로자 2021-05-12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작은 크기에 소리가 훌륭한 오디오가 궁금하네요. 저한테 알려주실 수 있나요?

잠자냥 2021-05-12 15:06   좋아요 2 | URL
제가 완전 반했던 미니 오디오는 필립스 mcm 2150입니다. 전 이 오디오를 두 번이나 샀습니다. 그런데 이 오디오는 시디 넣는 부분에 먼지가 쌓이면 판이 튀는 단점이 있어서... 현재는 브리츠 BZ-T7600 WC 쓰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브리츠가 예쁜데요. 소리는 아무래도 필립스가 더 좋았습니다(특히 중저음).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 느낌이니, 실제로 여러 후기 검색해 보시고 판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2021-05-1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읽는데 행복해졌어요..* 음악들으면서 고독한 독서하는 모습이 근사하게 느껴졌어요. 저도 오늘은 음악독서를..*
저는 책도 사람도 너무 좋아해요. 불가해하다는 거 알아도 사람에 대해서도 책만큼 혹은 책 처럼 알아가고 싶어요. 수많은 질문들을 던져주는 책처럼 누군가에게 열렸을 때 수많은 질문을 품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요. 많을 필요는 없어요. 마치 책처럼요.
아직은 책도 사람도 일단은 많이 보고 읽어가야하는구나 싶긴해여ㅡ 고르는 눈이 없거든요 ㅠㅠ

잠자냥 2021-05-13 14:06   좋아요 1 | URL
쟝쟝님은 사람 좋아하는 거 글에서도 느껴져요. ㅎㅎ
그래서 또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ㅎ
행복해지셨다니 저도 기분 좋네요-

두부 2021-05-15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책이 최고의 벗이죠.

잠자냥 2021-05-15 23:37   좋아요 1 | URL
네 살아갈수록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ㅎㅎ

행복한구름 2023-10-20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학생 시절의 작은 키에도 누우면 머리와 다리가 서로 마주보는 벽에 닿을 것만 같은 작은 방에 엎드려서 과자와 우유를 놓고 역사책을 읽던 시절이 저에게는 가장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아이둘의 아빠라 나만의 공간이 전혀 없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독립하고 저도 은퇴하면 저는 다시 골방에서 책을 읽고 있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언젠가는 나만의 작은 휴식처를 찾을 수 있기를.

잠자냥 2023-10-20 16: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행복한 구름 님의 옛추억을 읽노라니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언젠가의 그 로망이 꼭 이뤄지길 바라겠습니다.
 
행복한 고양이 아저씨 - 2021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비룡소의 그림동화 289
아이린 래섬.카림 샴시-바샤 지음, 시미즈 유코 그림,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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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내가 읽고 싶어서 산 책. 자기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운 전쟁 중에 고양이들을 돌보는 인간의 모습이란, 그리고 또 그런 사람을 돕는 인간들의 손길이란! 고양이들이 마냥 귀엽게 그려지지 않은 것도 이 책의 장점. 오히려 생생해서 그림 뜯어보는 즐거움도 크다. 조카 안 주고 내가 가져야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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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5-12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내용보다
‘칼데콧 명예상‘이란 단어가 눈에 콕 박혀요~~
그럴 때가 있었는데^^
잠시 아련히 추억에 잠겨 보네요**

잠자냥 2021-05-12 00:39   좋아요 1 | URL
오 그렇군요! 그 아련한 추억도 궁금합니다.

바쿠스 2021-06-2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스러운 리뷰입니다🐈

잠자냥 2021-06-20 08: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프리모 레비의 말 - 아우슈비츠 생존 화학자의 마지막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프리모 레비.조반니 테시오 지음, 이현경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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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를 앉혀두고 이런 질문밖에 할 수 없었을까 싶을 정도로 질문 수준이 낮아서 안타깝다. 물론 레비의 갑작스러운 죽음(자살) 때문에 가장 중요했을 두 번의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기대했던 독자에겐 참 밋밋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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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ery Hungry Caterpillar (Board Book, 2nd Edition) - 느리게100권읽기 4색과정 (빨강) 느리게100권읽기-1차추천도서
에릭 칼 글 그림 / Hamish Hamilton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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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들 주려고 샀다. 한 녀석은 너무나 좋은지 책을 씹어먹고 있었고 한 녀석은 구멍에 손가락 넣고 뚫어져라 바라보며 깔깔. 두 녀석 모두 아직 돌도 안 된 아가들. 구연동화하듯이 읽어주는 건 내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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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5-1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틀꿈틀 애벌레. 기냥 나오는 말이에요. 얼마나 읽었는지도 모르겄어요. 물론 지는 한국말로^^ 조카들이 복이 있군요. 책 읽어주는 이모(고모??)라니.

잠자냥 2021-05-11 13:04   좋아요 0 | URL
한국어 버전도 있군요?! 색감이 예쁘고 동영상이랑 보면 좋을 것 같아 사줬어요. 책 읽어주는 이모는 그날 딱 하루만...ㅋㅋㅋㅋㅋ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제안들 36
아글라야 페터라니 지음, 배수아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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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서커스단 곡예사라 자기 뜻과 상관없이 부모와 함께 이리저리 떠돌며 사는 아이의 삶은 어떠할까. 그것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는 삶이라면? 아이니까, 마냥 새로운 일상이 신기하고 재미나기만 할까? 나로서는 잘 상상하기 어려운 삶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그 아이가 나처럼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조용히 있기를 좋아하고 낯선 환경에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라면 어디 한곳 정착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은 지옥과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천국을 꿈꿨을까.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는 ‘나는 천국을 상상한다.’로 시작한다. 천국을 상상하는 아이 ‘모니카’는 또 생각한다. 신은 외국어를 할 줄 알까? 신은 외국인도 이해해 줄까? 아니면 천사들이 작은 유리 칸막이 안에 앉아 통역해 주는 걸까? 그리고 정말로 천국에도 서커스가 있을까?

아이의 엄마와 아빠, 이모는 모두 서커스단의 곡예사이다. 엄마는 머리카락으로 공중에 매달리는 연기를 선보이며, 아버지는 광대이다. 아이는 부모와 이모, 언니를 따라 이리저리 전전하는 떠돌이 생활을 한다. 이 아이 ‘모니카’는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의 작가 아글라야 페터라니(세례명 모니카 지나) 그 자신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삶을 알아야 할 것 같아 몇 자 적어본다. 모니카는 1962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 조세피나는 루마니아 국립 서커스단의 곡예사이며, 아버지는 서커스에서 찰리 채플린 스타일코미디 연기로 인기를 끌던 헝가리 출신 광대였다. 1966년, 그러니까 아글라야가 네 살이 되던 해, 가족의 재능을 알아본 스위스의 서커스 단장은 이들의 망명을 추진하고, 부부와 두 딸 안두자와 모니카, 그리고 조세피나의 언니 레타는 빈을 거쳐 스위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1967년 부부와 레타 3인의 공연은 서커스단의 최고 인기프로그램이 된다. 조세피나의 머리카락 곡예가 유명해지면서 가족은 서커스단의 일원으로 또는 전 세계 서커스단의 초청을 받아 유럽 여러 도시와 브라질, 미국, 아르헨티나 등을 여행한다. 모니카 또한 아주 어린 나이에 버라이어티쇼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그러나 1976년 어머니가 스페인 공연 도중 사고를 당해 더 이상 머리카락 곡예를 할 수 없게 된다. 그 사이 부모가 이혼해 모니카는 1977년 어머니와 함께 스위스에 정착하는데, 루마니어와 스페인어를 할 줄은 알았지만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던 그녀는 15세 나이에도 문맹이었다. 그때서야 독일어 쓰기와 읽기를 독학으로 공부했고 1999년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대중과 비평가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으나 2001년부터 심각한 정신 장애에 시달리던 아글라야는 2002년 취리히 호수에서 스스로 익사를 선택한다.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는 작가의 이런 평범하지도, 순탄하지도 않은 삶이 건조하고 담담한, 또 때로는 투박하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운 언어로 쓰여 있다. 이 작품은 조국 루마니아를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고, 또 그 때문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으며, 그랬기에 모국어를 ‘말할 줄’은 알았지만 ‘쓸 줄’은 몰랐던, 이런저런 외국어를 들어왔고, 어떤 외국어(스페인어)는 할 줄 알았지만 역시 쓸 줄은 몰랐던 문맹이었던 한 아이가 스스로 한 언어를 선택하고 글을 쓰게 되는, 그러니까 자기의 언어를 갖지 못했던(가질 수 없었던) 한 아이가 자기만의 언어, 목소리를 찾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언어는 독일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서의 언어일 뿐 아니라, 자기 목소리, 자기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어떤 면에서는 조국인 헝가리를 떠나 스위스로 망명, 프랑스어로 글을 써야만 했던 <문맹>의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이 그러했듯이 결코 미문도 아니며, 삶의 아름다운 면을 보여주지 않는, 오히려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는데도 그 진솔함 때문에 작품은 더없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아이는 영원한 이방인이자 방랑자이다. 그런데 그런 삶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다. 루마니아에 두고 온 할머니가 그리워도 돌아갈 수 없다. 루마니아에서는 그들이 탈출한 후 아이의 부모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비록 외국일지언정 누군가 아이의 이름을 묻는다면 아이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라고 대답해야 한다. 우리가 누군지 밝혀지면 우리는 납치되어 루마니아로 돌려보내질 것이며, 어머니와 아버지, 이모는 죽임당하고 언니와 ‘나’는 굶어 죽으리라. 곳곳을 떠돌아도 아버지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호텔에 머물 때면 장롱을 문 앞으로 옮겨 놓고 장롱 앞에 소파를, 소파 앞에는 침대를 밀어 놓는다. 아이의 인형도 혼자 길거리에 나가서는 안 된다. 그런데 아이는 궁금하다. 여기서 이렇게 숨어 다녀야 한다면 왜 굳이 고향을 떠나 온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고향의 할머니는 슬픔과 그리움으로 죽었고 어머니는 여기가 뭐든 훨씬 낫다고 말하는데 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저 돌아가고만 싶다.

그렇지만 루마니아가 천국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루마니아에서의 삶은 끔찍했다. 슬픔은 사람을 늙게 만드는데, ‘루마니아의 아이들은 늙은 채 태어난다. 이미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가난하고, 부모의 근심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사람들은 꿈에서조차 자유롭게 생각할 수 없다. 소리 내어 말했다가 스파이에게 들키면 시베리아로 끌려간다.’ ‘외국에서는 독재자의 당에 속하지 않고서도 유명해질 수 있다.’ 그러나 외국도 아이에게 천국은 아니다. 루마니아가 아닌 곳에서 우리는 낙원에서처럼 살지만 그것이 나를 더 젊게 만들지는 않는다. 아프리카는 외국이지만 루마니아만큼 가난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흑인이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은 서커스에서 따로 앉아야 하지만 입장료는 전액을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외국에서 그들 가족은 ‘유리처럼 부서’지고 만다. 어머니는 울부짖는다. 민주주의국가에서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결코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거라고. 아버지는 우리가 낙원으로 가는 거라고 말했다는데, 그 낙원에서는 ‘개가 사람보다 더 소중’하다. ‘이 나라 욕실에서는 어디든 따뜻한 물이 나오고, 사람들 가슴에는 냉장고가 들어’ 있다. 루마니아와 마찬가지로 이방인들도 우리를 해치고 싶어 한다. 어머니는 누구도 믿지 않으며, 나 또한 그것을 배워야 한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다른 나라에서도 언제나 이방인으로서 머물 수밖에 없는 삶. 가족끼리 온전하기만 하다면 더 바랄게 없지만 아버지는 걸핏하면 폭력을 쓴다. 때때로 기묘한 영화를 찍는 아버지는 영화에서 자신의 모국어로 말하지만 어머니와 나는 대개 대사가 없고 있더라도 ‘도와줘!’라는 외침이 전부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언니에게 유난히 집착한다. 아버지의 딸일 뿐인 언니는 사실 나에겐 남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나는 언니를 친언니처럼 사랑한다. 언니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의붓딸이다. 아버지의 의붓딸과 그 어머니. 즉 언니의 할머니이자 아버지의 전 부인은 병원에 있다. 미쳐버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언니도 이미 미쳤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언니를 여자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미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어디에 가든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닌다. 언니는 나보다 몇 살 밖에 많지 않지만 벌써 무릎이 박살났다. 아버지가 트랙터로 언니의 다리를 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야 언니가 다른 남자를 찾지 못하고 영원히 아버지 곁에 머물 것이므로.
 
어머니는 나를 끔찍이도 사랑한다. 나 또한 어머니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편지를 써도 어머니가 읽지 못한다면, 그 언어를 왜 배워야 할까 의아하기만 하다. 그렇게 사랑하는 어머니인데, 아이는 어머니를 항상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어머니는 강철 머리카락을 지녔고, 그 머리카락으로 원형 천장 꼭대기에 매달려 곡예를 펼친다. 공연 날마다 아이는 어머니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아이는 빵으로 귀와 입을 틀어막는다. 어머니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동안 언니는 나를 달래주려고 ‘폴렌타 속에서 끓는 아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폴렌타는 루마니아와 발칸 지역에서 주로 먹는 옥수수 죽이다. 언니는 폴렌타 속에서 끓는 아이가 얼마나 아플지 상상해 보라고 한다. 그러면 어머니가 천장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지만 소용없다. 나는 항상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한다. 나는 절대로 머리카락으로 매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삶은 그렇게 쉽지 않다. 나는 이제 버라이어티쇼 극장에서 공연한다. 처음에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무대 등장 횟수는 점점 더 늘었고, 극장주는 점차 나를 앞줄에 세우기 시작한다. ‘육체-이것은 내가 모든 도시에서 실물 크기 포스터로 광고되는 방식’(152쪽)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들
공연이 끝난 후 함께하는 식사.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 어머니.
새벽에 조용히 일어난 어머니가 내게 이불을 덮어 주며 요리를 시작하는 것.
그을린 닭 털 냄새는 고향이다.
그런 다음 나는 잠이 든다. (79쪽)


모국어를 잃어버린 나. 이제는 어머니를 잃을까 언제나 두려움 속에 떨며 살아간다. 조국인 루마니아는 폭력적인 독재 정권 아래서 사람들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신음한다. 그런 나라를 등지고 낯선 땅을 찾아 왔으나 집안의 아버지 또한 조국만큼 폭력적이며 마침내 좋지 않은 방식으로 가족을 해체하고 만다. 그리고 신은 외국어를 알아듣는지 아이의 말을 알아듣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런 삶 속에서 아이는 ‘폴렌타 속에서 끓는 아이’를 상상해야만 한다. 그러는 동안은 삶의 고통을 잊을 수 있노라고 되뇐다. 아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기 전, 아버지는 자신이 신으로 나오는 영화를 찍고 있었다. 어머니는 신의 할머니 역할이었고 그 영화에서 아이는 수호천사였다. 저토록 소박한 것에서 행복을 느꼈던 아이는 비록 영화 속에서였지만 수호천사가 되어 신 가까이에 서 있었다. 거기서 아이는 폴렌타 속에서 끓는 아이를 상상하면서 이방인으로서, 소외자로서, 난민으로서의 삶을 더는 잊고자 애쓰지 않아도 되었을까. 그러나  아이는 어쩐지 평생 ‘폴렌타 속에서 끓는 아이’를 떠올리며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고통을 조금도 줄여주지는 못했기에 그 아이, 모니카, 그러니까 아글라야는 끝내 스스로 물에 잠겨버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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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5-1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21-05-10 14:20   좋아요 0 | URL
절규를...! ㅎㅎ

Falstaff 2021-05-10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가 문고판 사이즈.... 같은데 실험적 출판이 눈에 띄네요!!
이 책을 포함해서 위스망스도 일단 보관했습니다. 우쒸... 위스망스, 진짜 모 아니면 빠꾸 도.... ㅋㅋㅋ

잠자냥 2021-05-10 14:23   좋아요 2 | URL
네,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시리즈 같습니다. 다 사 모으고 싶기도 하지만 사실 딱히 땡기지 않는 작품도 있어서 그건 좀 무리인 거 같고요. 간혹 정말 보물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 보물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위스망스 그 작품 저도 지금은 *보관* 중...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5-10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단 담아요. 저는 아이가 등장하면 그냥 못 지나치겠어요. 잠자냥님 리뷰는 길고 깊어서 작정하고 읽어야 됨 ㅋㅋ

잠자냥 2021-05-10 17:56   좋아요 1 | URL
제 리뷰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읽으셔도 됩니다!

새파랑 2021-05-10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그냥 읽어라는 리뷰같아요^^

잠자냥 2021-05-10 20:50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