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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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 부분에 가계도가 그려져 있다. 백년의 고독을 읽었을 때의 기억이 두려움으로 되살아났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떠올리는데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정작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다행히 스톤 다이어리는 백년의 고독만큼 복잡하지 않았다. 주인공 데이지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의 일대기를 약 10년 씩 단위로 그려나가고 있다.

데이지의 탄생 장면은 영화 향수의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로누이를 생각나게 했다. 축복받지 못한 외로운 탄생.

머시는 데이지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머시를 데이지의 엄마라고 하지말고, 그녀의 이름으로 불러야만할 것 같다. 소설을 읽고나면 이 느낌을 알 것이다.) 뱃속에 있을 때조차 아무도 그녀가 세상에 나올 것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심지어 엄마인 머시조차도.

그래서인지 데이지의 인생은 외로움과 고독으로 점철돼 있다. 데이지를 둘러싼 그녀의 가족, 이웃의 삶도 크게 다르지가 않다. 어쩌면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살게 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몰스킨에 옮겨 적었던 몇몇 구절.


​" 시인은 시가 끝나는 때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더는 더할 것도 없을 만큼 단정하게 호흡을 멈추는 순간이 오기 때문일까? 여자는 결혼생활이 끝장난 때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삶이 어느날 갑자기 과거와 미래 두 조각으로 잘려나갈 때일까. 흔히 전쟁은 행복이나 휴전이나 협정으로 종결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쟁은 그 자체로 소진되고 더는 아무런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때, 그리고 문득 천박한 것으로, 커다란 세계가 저지르는 무례한 짓으로 비치기 시작할 때 끝나는 것이다. 일은 시작되고 끝나게 마련이다. 어떤 고요한 장 속에 이르는 순간, 우리는 갑자기 육체가 매끄럽게 기능하는 예층 가능성과 파멸의 욕구 사이의 기록에 놓이게 된다. 그때 우리는 불합리하고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른다. 그렇지 않으면 상상도 못했던 어떤 적이 나타나 훼방을 놓게 될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매니토바의 시골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행상을 한 에이브 스쿠타리는 이튼 우편 판매에 의해 사업을 잃게 되고 말았다.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109)

"그럼에도 그는 그런 표현들을 중얼거리며 외워보려고 했다. 그래서 만에 하나 아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예전의 자리를 차지하기로 마음먹을 경우 써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만약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 이런 바보 같은 말들이라면 기꺼이 그 요구에 응해줄 터였다. 펌프에 마중물을 붓듯이, 부드럽고 다정한 표현들을 쏟아부을 터였다:"(146)

"이렇게 고의적으로 왜곡과 생략을 뒤섞어 얘기하면서 그녀가 마음이 편했을지 그렇지 않았을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그녀는 그 일에 익숙해 있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남녀가 매일 아침 각자의 침대에서 눈을 뜨면서 자신의 삶에서 어떤 실체를 갈망하지만, 결국은 매일매일 자신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고 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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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인문학 - 도시남녀의 괜찮은 삶을 위한 책 처방전
밥장 지음 / 앨리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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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밥장의 세번째 책.

저자의 단골 빠에서 사람들과 인문학을 주제로 나눈 대화들을 엮은 책으로, 수다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재밌게 읽었다. 내용이 좀더 풍부하고 깊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신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어떤 그림이 나올까, 무지 기대가 됐다. 어렸을 때 광수생각을 보는 그런 기분?
밥장의 글도 좋지만 그림, 스케치가 참 좋다.

"돈은 밀물과 썰물처럼 의지와 상관없이 들어왔다 나갑니다. 하지만 추억은 애써 모아두지 않으면 결코 들어오지 않습니다. 추억이야말로 인생을 견고하게 버티게 해주는 재산입니다. 부지런히 추억을 만드는 사람이 진짜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추억은 머리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부지런한 손, 무거운 엉덩이, 그리고 쉴틈없이 걷은 발이 만듭니다."(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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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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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었을 때는 전쟁 기간 동안 민간인으로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피해를 다룬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책은 2차 대전에 저격수, 통신병, 위생병, 군지휘관으로 참전했던 (당시) 소련의 여성병사, 소녀병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진 한편의 증언집이다.

실제로 2차 대전 당시 참전했던 러시아 여성의 숫자는 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게 공식적으로 징집 허가를 받은 사람의 숫자인지, 상황에 비추어 가늠하여 추산한 숫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자이든, 후자이든 엄청난 규모인 것 같다. 놀라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어린 소녀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보다 더 놀라운 것은 국가가 강제로 징집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자원하여(이 책에서 증언한 여성들의 거의 대부분), 심지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어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들의 사령관, 대장 등을 설득하여 입대하였다는 사실이다.

대체 무엇이 열여섯살 어린 소녀들로 하여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쟁터에 나가도록 만든 것일까?

대체 ​무엇이 국가, 스탈린, 공산주의를 적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가족, 젊음, 목숨보다 가치있는 것이라고 믿도록 만든 것일까?

그리고 이 책은 국가가 국가로서 전쟁을 잘 수행하는 것만큼이나 전후 수습을 제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차라리 전쟁터에서 행복했다고 말하는 어떤 참전 여성의 증언이 가슴을 파고든다.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바꾸면서 살아야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221)


"사랑은 전쟁터에서 사람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개인적인 사건이다. 사랑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공동의 사건일뿐. 죽음까지도. ... 전쟁이 끝나고도 그들은 또 하나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미 치르고 돌아온 전쟁에서 견줘 결코 가볍지도 않은 또 다른 전쟁."(395)


"나는 지금도 그 사람을 사랑해. 내 기억 속에서 전쟁은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야. 그곳에서 행복했으니까..."(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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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보다
이인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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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로로 이 책을 알게 됐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저자 이인휘가 90년대 노동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소개를 어디선가 봤던 것 같다.
합판 공장, 식품 공장 등 현장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고사란히 담긴 다섯편의 소설이 실린 책이다. 현장작가이기 때문일까. 어설픈 위로와 작위적 희망 같은 것들은 없다. 오로지 슬프고 무겁고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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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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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따뜻하거나 애잔한 소설일 것 같았다.
작가 위화가 열 개의 단어로 문화대혁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여러 면모를 개인의 경험과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는 글이다. 그런데 왠지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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