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이은정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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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팟캐스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중앙대 김누리 교수님의 독일 관련 강의를 듣고 독일 통일, 68혁명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책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 창비에서 <베를린, 베를린>이란 제목의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이책이다! 싶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독일과 우리나라가 분단의 아픔이라는 역사를 공유한 나라이기 때문에 비슷한 점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고, 특히나 독일의 통일이 우리에겐 희망이자 가능성의 사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얻는 확실한 결론 한 가지는 우리와 독일은 많이 다르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독일은 분단된지 50년이 채 안 돼서 통일이 될 수 있었지만, 우리의 통일은 훨씬 더 어렵고, 요원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나는 우리도 독일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대신 절망감을 느꼈다.

통일이 멀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에겐 '빌리 브란트'와 같은 정치인이 없다는 사실이다. 브란트는 서베를린 시의회 의장이었다가 나중에 서독 연방정부 수상이 되어 사실상 독일 통일을 이끌어 낸 인물이다. 물론 자유를 희망하는 동베를린, 동독의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던 것이지만, 시민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원칙과, 대립과 갈등 속에서 최소한의 합의라도 이끌어내야 한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했던 브란트가 없었다면, 통일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희생과 고통이 잇따랐을 것이다.

우리에겐 왜 브란트와 같은 정치인이 없을까. 왜 우리 곁엔 자신 혹은 자기가 속한 정당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협상 무효'를 불사하며 한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정치인만 수두룩한 걸까. 자한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과 그걸 지지하고 나선 사람들이 너무나 한심하고 꼴사납게 느껴지는 이유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원칙'과 '소신'을 남발하지만, 대체 그 원칙과 소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꼭 하나가 되는 통일이 아니어도 좋다.'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통일보다는 평화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베를린, 베를린>의 저자가 제기하는 '분단이 완전한 차단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라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통일을 이야기 할때 흔히 경제 논리를 앞세우고,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는 1국가 체제의 형태를 생각하지만, 양보 없이 통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조금씩의 교류와 관계 개선 없이 급작스런 통일은 더욱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서독과 동독은 분단이 된 상태에서도 교류와 왕래가 이루어졌고, 특수한 위치의 '베를린'이 있었기에 양측 정부가 끊임없이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었다. 우리는 분단된 이래로 민간인의 서신 왕래나 교류가 허용된 적이 한번도 없었고, 베를린과 같이 분단된 정부의 접점이 되어줄만한 도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독일과 우리가 이렇게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과 동독 양측 정부가 분단된 상황 속에서 주민들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 있어서는 흔들림이 없었다는 사실은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브란트가 훌륭한 정치인이기는 했지만, 그를 수상으로 선출하고 그의 신동방정책을 지지해준 것은 수많은 독일 시민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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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열전 - 3.1운동의 기획자들.전달자들.실행자들
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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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취지의 북펀딩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책이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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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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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단연 최고다. 이렇게 훌륭한 책과 훌륭한 연구자인 저자를 알게 되어 정말 뿌듯하다. 이런 분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책의 부제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에 나타나 있듯이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추적하는 사회 역학에 관한 것이다. 질병의 원인을 개인의 나이나 가족력, 생활습관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와 그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찾는 것이다.

저자는 흔한 감기부터 암, 심장병,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에 이르기까지 질병을 개인 혹은 가족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정 질병에 취약하다면, 그 이유가 혹시 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어떠한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였고, 연구를 통해 질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쌍용자동자 해고 노동자, 삼성반도체의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사례를 접하며 너무 가슴이 아프고 왠지 죄스러웠다. 또 동성애자, 이주민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그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도 알게 됐다. 저자는 본인이 경험하고 목격한 것을 이야기하고 관련 데이터를 제시할 뿐이지만, 그게 어떤 회초리나 호통보다도 큰 깨달음을 준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지만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가장 적은 돈을 투자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심지어 박근혜 정권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한 해고, 노동자의 잘못으로 인한 징계 해고 이외에 '저성과자 해고'라는 규정을 추가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업무 능력을 명분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했다.

실업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한다. 우리나라 보다 더 높은 실업률을 보이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해고가 곧 살인인 나라는 없을 것이다. 왜 유독 우리나라만 한 사람이 직장을 잃으면 삶이 붕괴되고 가족이 해체되고,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비극이 많이 발생하는 것일까? 얼마 전에 읽었던 오연호의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목격했던 덴마크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됐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실업자가 직장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포기하는 이 비극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괜찮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기회를 주는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지 않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다 읽고 난 지금, 왜 더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없이 어떻게 나는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 20대에 저자가 했던 고민이라는 이 말이 지금의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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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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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책을 다 읽고 블로그에 발췌한 부분을 옮긴 날,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봤다.

영화에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는 여러 명의 인터뷰이가 등장하는데, 그중 노무현이 변호사였던 시절 그를 감시,관리하는 일을 했던 중앙정보부 직원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인터뷰 중에 바로 이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언급돼서 참 절묘한 우연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있던 노무현은 자신을 시찰하던 중앙정보부 직원에게 책 한권과 비디오 테이프를 줬다. 책은 바로 당시 금서였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였고, 비디오 테이프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촬영된 영상이었다. 중정 직원이 이런 걸 나에게 주면 당신이 잡혀갈 수도 있다고 했지만, 노무현은 책과 테이프를 보면 생각이 바뀔테니 일단 한번 보라고 했단다. 그날 밤을 새워 책을 읽은 중정 직원은 비디오 테이프도 보지 않을 수 없었단다. 그는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서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추측컨대 그 책을 읽고 난 후부터 그의 삶은, 세계관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5월 광주민주화 운동은 언제나 새롭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고나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동안 제대로 모르고서 안다고 떠들었구나, 자괴감 비슷한 감정도 느꼈다. 또 (법적 판단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법원에서 이미 5.18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고, 12.12사태를 군사반란, 내란으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것이 어떤 가치판단의 대상인듯 조심스러워했던 경험들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5.18이 없었으면 87년 6월 항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앞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가르쳐야겠다.

이 책은 5.18이 우리 현대사가 겪어야했던 뼈아픈 고통과 시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자랑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 차지철은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은 2백만명을 희생시키고도 정권을 유지했는데 우리도 1백만명쯤 못 죽이겠느냐"고 막말을 서슴치 않았다. 박정희는 차지철의 편을 들어줬다. 김재규는 더이상 유신체제가 지속돼서는 안 된다고 판다하고는..

 

* 박정희가 사망하자 군 내부에서는 정치군인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졌다. 박저희 정권 아래서 군의 요직을 독차지한 군  내부의 사조직 '하나회'에 대한 반발이 노골적으로 터져 나왔다. 위기감을 느낀 하나외 회원들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빠르게 뭉쳤다. ... 정치군인 숙정이라는 위기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하나회가 선택한 승부수는 '군권 장악'이었고..

 

* 1997년 대법원은 '12 12' 사건을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이라고 판정했고, '정권찬탈을 위한 내란의 시작'이라고 규정했다.

 

* 미국과 한국간의 주요 정보기관이 모두 첩보의 신빙성을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이를 무시한 채 '북한의 남침'을 5 17 비상계엄 전국 확대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 이날 밤(5/15) 서울지역 총학생회 대표들이 다시 고려대에 모여 긴급회의를 열었다. 가두시위를 계속할 것인지 투쟁일정을 둘러싸고 논의를 벌였는데, 격론 끝에 당분간 시국의 추이를 관망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 광주를 제외하고, 부산, 대구, 전주 등 대부분의 다른 지방 대학들은 서울지역 대학들의 결정에 따라 가두시위를 중지했다.

 

* 저녁 9시 텔레비전 뉴스나 라디오에서는 광주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렇듯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언론은 철저히 광주 상황을 외면했다. 18일은 일요일이라 신문도 나오지 않는 날이었다. 광주는 어둠 속에서 '공포의 도가니'로 변해갔다.

 

* 5 18 최초 희생자는 청각장애로 말을 하지 못하던 김경철(24)이다.

 

* 18일 하루 동안 연행자가 대학생 114명, 전문대생 35명, 고교생 6명, 재수생 66명, 일반 시민 184명 등 모두 405명이었다. 이 가운데 68명이 두부 외상, 타박상, 자상 등을 입었고, 12명은 중태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연행자와 부상자는 그보다 휠씬 많았다.

 

* 18일  시위를 대학생들이 주도하였다면, 19일 오전 상황은 연행된 사람들 중 일반 시민이 절반에 이를 정도였다.

 

* 5월항쟁은 진행과정에서 몇 번의 계기를 넘으면서 질적으로 고양되어 갔다. 바로 이날(19일) 오후가 그 질적 비약의 첫번째 계기였다. 19일 오전부터 시위대의 중심세력이 학생에서 일반 시민으로 옮겨갔다. 19일 오전까지 산발적이고 비조직적인 수독적 저항과 이에 대한 공수부대의 잔인한 진압으로 시위대가 일방적인 피해만 당하던 수세 국면이 공세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 19일 공수부대의 진압은 18일에 비해 더욱 잔혹했다. 18일처럼 '진압봉'을 주무기로 사용했지만 '대검' 사용이 훨씬 늘었다.

 

* 30여년이 훨씬 더 지난 요즘도 광주는 여전히 '유언비어'에 시달리고 있다. 5.18 기간 동안 있었다는 '북한군 6백명 침투'라는 유언비어다. 간첩도 아니고, 아예 북한 특수부대원 6백명이 항쟁기간 중 광주에 잠입하여 시민들 사이에 섞여 시위를 자극하여 폭동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 북한 특수부대가 침투해서 저지른 만행이라면 이를 막아야 할 임무는 국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군은 북한 특수군은커녕 단 한명의 간첩도 색출하지 못했다는 점을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 20일 저녁의 대규모 차량시위는 조직적이었다. 자발적이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시위였지만 운수노동자들의 강력하고 일체화된 행동에는 강한 폭발력이 응축돼 있었다. 민중 스스로 역사의 전면에 자신의 온 생애를 던지는 순간이었다.

 

* 20일 밤 광주역 전투에서 최초의 집단 발포. 사망자 5명, 부상자 최소 11명.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누가 발사했는지는 아직까지도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 (21일) 시위대는 계엄군이 정오까지 퇴각할 것을 요구했고, 도지사가 그렇게 해보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정오가 지났지만 계엄군은 여전히 꿈쩍도 않고 그대로였다. 시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 오후 1시 정각 도청 옥상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그 순간 일제히 사격이 시작됐다. 1시 이전의 발포가 급작스런 상황에서 이뤄졌다면 1시부터는 명령에 따라 '집단 발포'가 시작된 것이다.

 

* 태극기를 흔들던 청년의 머리, 가슴, 다리에서 붉은 피가 쏟아졌다. 태극기에도 피가 흥건하게 젖어들었다. 총탄은 주변 건물 옥상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저격수들이 조준 사격을 하고 있었다. ... 잠시 사격이 멈췄다. 그 순간을 틈타 몇명의 청년이 쏜살같이 도로에 뛰어나와 쓰러져 있는 시신과 꿈틀거리는 부상자들을 끄집어냈다. 그러자 더욱 놀라운 일이 이어졌다. 다른 청년들이 다시 태극기를 들고 금남로 한가운데로 뛰쳐나와 구호를 외쳤다. 또 총성이 울렸다. 그 청년들도 공중에 피를 뿌리며 금남로 한가운데서 맥없이 쓰러졌다. 또 사람들이 부상자와 시신을 끌어냈다. 그러자 다시 몇몇이 태극기를 흔들며 금남로로 뛰어들었다. 총알은 여지없이 날아와 그들을 쓰러뜨렸다. 이렇게 하기를 대여섯번. 정말로 충격적인 광경이 반복되고 있었다.(201-202)

 

* 고등법원(1996)은 '광주시민'을 '헌법제정권력'이라고 규정했다. 대법원(1997)은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이고, 신군부가 "공수부대 병력을 동원하여 난폭한 방법으로 분쇄한 것'은 '국헌문란'이라고 판시하였다.


* 무기를 '회수'하는 것과 회수된 무기를 계엄군에게 '반납'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무기를 어떻게 '반납'할 것인지에 대한 최종 판단을 유보한 상태에서 수습대책위원회가 서둘러 무기 회수를 진행한 것이다. ... 신군부는 언론뿐 아니라 외곽 교통로를 철저하게 봉쇄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무기 반납은 '무조건 항복'을 의미했다. 협상력 강화를 통한 사태 수습을 고려한다면 대안 없는 무기 반납은 잘못된 방향이었다. 무기 회수는 사실상 지역방위대 해산과 시민군의 와해로 이어졌다. 그 결과 협상력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 '발포명령'과 표리관계에 있는 것이 '자위권 발동'이다. 발포명령이 발포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라면, 자위권 발동 주장은 '윗선'에서 포괄적으로 발포명령을 가능하게 하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행위이다. 집단 발포로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사살한 가해자들은 '발포명령'을 은폐하기 위해 '자위권'이라는 명분을 앞세웠다. ... 광주 현지에 출동한 지휘관들은 '자위권 발동' 지시를 '발포명령'으로 받아들였다.


* (21일) 시위대가 총기로 무장하면서 오후 3시경부터 시위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했다. '시민군'과 '계엄군'의 교전으로 바뀐 것이다. 계엄군은 M16 소총 등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최정예 공수부대였다. 여기에 맞서 평범한 시민들이 카빈이나 M1 등 재래식 소총으로 무장하여 대항했다. 이 둘의 전투력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재래식 소총이라도 총알을 맞으면 생명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신군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시위가 서울로 확산되는 것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만약 광주시민의 집단 항거 사실이 서울 등 타 지역에 알려지면 민심이 어떻게 폭발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계엄군은 초기 진압작전 실패 후 전면적인 외곽봉쇄 작전으로 전환하게 된다.


* 계엄군, 광주시민, 그리고 외신 기자는 항쟁을 구성하는 3개 주체였다. 만약 외신 기자들의 노력과 기록이 없었다면, 광주시민의 억울한 희생과 장렬한 투쟁은 '존재하지조차 않은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진실을 외면하였다면, 광주항쟁은 말 그대로 '북한의 사주는 받은 용공분자들의 폭동'으로 기억되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 기자들과 달리 외국 기자들은 편견이 거의 없었다. 이들이 광주에서 목격한 사실들은 하나하나가 경악스러움 그 자체였다.


* 1987년 6월항쟁은 518 진상 규명 문제를 국회에서 제기할 수 있게 만들었다. .. 이듬해 1988년 4월에 실시된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만들어지자 국회는 헌정사상 최초로 518 청문회를 도입하였다. ... 국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자 위기에 처한 노태우정권이 1990년 2월 '3당합당'을 통해 '여소야대'에서 '여대야소'로 정치지형을 변화시킴으로써, 발포책임자 규명 등 518의 핵심 사항은 국회에서 더이상 진행될 수 없게 되었다. ... 1992년 12월 김영삼 정권이 등장하자 잠시 주춤하던 518 진상 규명 움직임이 다시 본격화되었다. ... 그러나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워, 1995년 7월 18일 이들 모두에게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쿠데타가 성공하여 새로운 헌정질서가 생겨났기 때문에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리한 것이다. ... 명동성당 입구의 길바닥에서 시작된 518 당사자들의 농성이 180여일 동안 진행되었고, 교수들의 성명 발표, 변호사들의 거리시위 등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사회단체들의 릴레이 지지농성, 검찰과 청와대 항의방문 등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한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이로부터 이틀 후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전격 구속되었다.


* 대법원은 1212쿠데타를 '군사반란'으로,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신군부의 진압을 '내란'으로 판정했다. 또한 대법원은 '우리나라 헌법 질서 아래에서는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한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고 하였다.


* 518 재판은 인류사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정의가 승리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재판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 재판은 학살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장지휘관들이 전혀 처벌되지 않았다는 한계를 안고 종료됐다.


* 518 기록물이 영국의 대헌장,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 등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으로써 518은 인류사의 진전과정에서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세계적인 사건'으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518의 경우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피해보상, 기념사업' 등 광주문제 해결 '5대 원칙'이 모두 관철되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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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지금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인생을 얻을 수 있다
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애덤 스미스 원작 / 세계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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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러셀 로버츠, 세계사)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소개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중반까지는.. 애덤 스미스가 이런 책을 썼어? 하는 신기한 마음에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 <국부론>과 '보이지 않는 손', 자유방임주의, 고전 경제학의 아버지. 이게 애덤 스미스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였고, 그래서 막연히 애덤 스미스가 철저한 개인주의자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덕감정론>에서의 애덤 스미스는 인간을 파편화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존재로서 그려내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덤감정론>에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할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라고 했다. 이때의 사랑은 좋아하는 감정, 존경, 관심 등을 포함한다. <도덕감정론>은 <국부론> 보다 먼저 쓰여진 책이고, <국부론>을 집필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수정, 보완된.. 어떻게 보면 애덤 스미스가 더 '애정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나니 애덤 스미스가 왜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라고 했는지 조금 이해가 될 것 같다.

중반 이후부터는 흡입력이 좀 떨어지는 책이긴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있기 전에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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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하는 어떤 원칙이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히 있다. 또 자식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자 한다. <도덕감정론>

어떤 국가는 부자인데 왜 어떤 국가는 가난한지에 대한 이유를 밝힌, 엄청나게 유명하고 훌륭한 책을 쓴 덕에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감정론>에서의 애덤 스미스는 행복을 얻기 위해 돈을 따르는 삶이 얼마나 헛된지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설득력 있게 말해준다. 19

누구나 마음속에 공정한 관찰자가 있다. 나의 행동이 옳은지 공정하게 알려주는 가상의 인물이다. 공정한 관찰자 덕분에 우리는 한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신성한 미덕을 실행하는 것은 이웃과 인류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인류애보다 더 큰 사랑, 더 강력한 애정 때문이다. 그것은 명예롭고 고상한 것에 대한 사랑, 존엄과 위엄에 다한 사랑, 그리고 탁월한 자신의 인격에 대한 사랑이다. <도덕감정론>

내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혹은 실행하지 않은 나의 동기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은 나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칭찬으로부터 어떤 만족도 얻을 수 없다. ... 그 칭찬은 우리에게 어떤 비난보다도 더 큰 굴욕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칭찬으로 인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반성을 하게 된다. 그 칭찬처럼 되지 못한 지금의 우리 모습에 대하여. <도덕감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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