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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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편식이 심한 내가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을 읽게 된 건 정말 행운이다.

1999년 미국에서 일어난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였던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쓴 책이다.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살인사건의 가해자이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들의 엄마로서 수 클리볼드의 얘기를 듣는 것도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끔찍한 사건은 뉴스를 틀었을 때 거의 매일 접할 수 있다. 묻지마 살인 형태의 연쇄살인도 많고. 그런데 그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죽임을 당한 사람과 유가족을 안타까워하고, 천하에 몹쓸 살인범을 욕했지, 그 살인범의 부모, 가족이 어떤 심정일까 하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아니 했는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부모의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었을 거야, 자식이 살인을 저질렀을 땐 그렇게 자라도록 한 부모의 책임이 커.
이렇게 생각을 했을 거다.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 모든 걸 알 수는 없다는 것과, 바르고 착하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자식조차 부모에게 낯선 존재로 변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말 세심한 관심 없이는 자식의 상처입은 내면과 두려움, 우울증을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는 것을. 아이들은 의외로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는데 아주 능수능란하다는 것도.

이젠 학생의 문제 행동을 가정환경, 가정교육과 자동적으로 연결시키는 발상과 발언을 절대로 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복직하면, 아이들의 얘기에 최대한 귀기울이고, 투정과 응석도 귀찮아하지 않을 거다.

수 클리볼드가 하느님에게 딜런이 저지른 죄와 아들의 아픔을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죄를 빌면서, 딜런이 아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하는 장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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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약 - 마음이 멍든 아이들을 위해 베스트셀러 작가 이지성 선생님이 운영한 '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
이지성 지음, 이두용 사진 / 성안당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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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장님 블로그에서 추천 도서 목록을 보고 읽게 됐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아마 평생 읽을 일이 없었을 거다. 서가에서 도서 검색해서 분류번호를 보고 찾아갔더니 교육도서 칸에 꽂혀있는 게 아닌가. 꺼내봤다가 어떤 교사의 수기집이겠거니 하고 제자리에 꽂아두고 돌아서려는데, 이렇게 뒤돌아 가면 정말 이 책을 읽을 기회가 평생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대여를 했다.

예상대로 전직 초등교사가 학생들과의 상담을 통해 서로의 변화와 성장을 경험한 이야기가 실린 책이었다.

나는 지금 교사를 잠깐 쉬고 있고, 아직 부모도 아니지만 지난 7년 동안 어떤 교사였는지, 나중에 어떤 교사, 부모가 되어야하는지 등을 성찰해보는 기회가 됐다.


"버겁기 그지없는 마음의 짐을 안고서 한번쯤 인생길을 터벅터벅 걸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의 고민을 두고 이론적으로 옳은 소리만 떠벌리는 사람처럼 보기 싫은 사람도 없음을. 그리고 이해한다는 얼굴로 그저 따뜻하게 손잡아주는 사람처럼 고마운 사람도 없음을."(41)

"나는 한때 아이들에게 무한히 영향받는 삶을 살았다. 그때의 삶을 나는 스위치의 삶이라고 표현하는데, 아이들이 누르는대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바보 스위치. . . . 나는 아이들이 감정선을 누르는대로 기뻐하다가 힘들어하는 것을 무한히 반복했다." (136)

"나는 그 아이와 처음 만난 그 현재가, 앞으로의 내 삶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오직 단 한번의 현재라는 것을 기억했다. 영원에 비추어 볼때 그 현재는 순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영원이다. 곧 영원이 되어버릴 현재에 감정적으로 반응해서 부정적인 색깔을 칠하면 어떻게 되겠는가."(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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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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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관련 책 중 단연 최고라는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품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과 여행 중에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이토록 세밀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글은 처음인 것 같다.

특히 공항에서, 비행기에서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감정의 묘사는 정말...

좋은 글은 자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것에 집중하는데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왜 보통, 보통하는지 알겠네.

"결국 내 몸과 마음은 나의 목적지를 평가한다는 임무를 앞에 두고 자기들의 기질에 따라서 공모를 하게 되었다. 몸은 잠을 이루기 힘들어했고, 더위, 파리, 소화가 잘 되지 않는 호텔 식사에 대해서 불평했다. 마음은 불안, 권태, 자유롭게 떠돌어다니는 슬픔, 경제적인 걱정에 몰두했다."(32)

"아름다운 대상이나 물질적 효용으로부터 행복을 끌어내려면, 그 전에 우선 좀더 중요한 감정적 또는 심리적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 요구들 중에는 이해에 대한 요구, 사랑, 표현, 존경에 대한 요구가 있다. 따라서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몰이해와 원한이 갑자기 드러나면, 우리의 마음은 화려한 열대의 정원과 해변의 매혹적인 목조 오두막을 즐기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즐길 수가 없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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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 - 승정원일기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다
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 지음 / 한국고전번역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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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 보면, 내가 그 책의 첫 독자일 때가 종종 있다.

이 책 역시 첫장에 주름조차 없는(주름이 없다는 것은 아무도 펼쳐본 적이 없다는 것) 새 책이었다.


전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편찬한 같은 시리즈의 책, <충무공전서 이야기>와 <최고의 소리를 찾아서>를 재밌게 읽었었기 때문에 이 책 역시 큰 기대를 갖고 읽게 됐다.

이 책 <후설>은 승정원과 <승정원 일기>를 다루고 있는데, 승정원 일기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방대할 뿐만 아니라 아직 연구가 진행중인 까닭 때문인지, 이 책을 읽었음에도 뭔가 2% 부족한 듯한 아쉬움이 좀 남는다.


승정원 일기는 조선시대 왕명출납을 담당하던 승정원에서 국정과 관련된 일을 일기형태로 기록한 책이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그리고 영조대와 고종대의 화재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지만 복구과정을 거쳐 현재 1623년부터 1910년까지 총 288년간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무려 3,245책, 2억 4,300만 자로 조선왕조실록의 5배 분량이며, 역대 중국역사를 기록한 이십오사(3,996만자), 명실록(1,600만자)과도 비교가 안 된다. 단일 서종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양이라니.. 실로 어머어마한 것 같다. 더 놀라운 것은 아직 번역 중에 있다는 사실과, 이 속도로 모두 번역하려면 10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한국고전번역원 한문교육과정을 이수해서 번역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면.. 좋겠지? 한문 공부 좀 꾸준히 해둘 걸ㅠ


이 책에는 영조 대의 기록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아마 정조 대는 아직 작업이 이뤄지지 못한듯.

신하들이 왕에게 말대꾸는 기본, 꾸짓기도 하고, 무안을 주기도 하는 대화 내용이 많이 있었다.

상상 속 왕의 이미지와 실제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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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어느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
권내현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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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이후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권내현 교수님의 책이다. 교수님의 '첫 단독 대중 교양서'라고 한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호적대장 일부를 바탕으로 양반이 되기를 꿈꿨던 노비 김수봉 가계의 이력을 기록한 책이다.

경상도 단성 지역의 양반 심정량의 사노비였던 김수봉. 그와 그의 자식, 손자, 증손자들의 호적을 추적하면서 호적에 나타난 역, 본관, 성씨 등의 변화를 통해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신분 상승을 실현해갔는지 보여주고 있다.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역사교육론에서 얘기하는 '역사가 되어 보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저자의 연구방법, 과정, 고민의 흔적들이 있는 그대로 담겨져 있다.

호적을 직접 접하면서 호적에 담긴 의미와 거기에 반영된 인간의 의도, 의지 등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이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인 것 같다. 그동안 조선 후기 양반의 증가와 노비의 감소를 말로만 열심히 설명하려고 했으니, 나나 배우는 학생들이나 얼마나 무미건조 재미가 없었을까.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단에는 김수봉 일가의 끈질기고 지난한 신분상승에의 노력이 오늘날 제2, 제3의 김수봉들에 의해 여전히 진행중되고 있는 사실을 안타까워 하는 저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있는 것 같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평등하다는 선언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할뿐 출생과 동시에 획득된 조건의 불평등을 염두에 둔 말은 아니다. 수봉가가 여러 세대에 걸쳐 좁혀 나간 심정량가와의 간극은 근래 들어 기회의 균등에도 불구하고 다시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장으로 가는 사다리에 밀려난 이들은 수봉가처럼 또다시 기회를 엿보며 장기간에 걸쳐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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