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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ㅣ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평점 :
어쩌다보니 금희 작가님의 <천진 시절>과 은희경 작가님의 <빛의 과거>를 함께 읽게 됐다. 둘다 화자가 여성이고,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아물지 않은 과거의 상처를 다루고 있고,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과거의 일들이 현재로 소환되면서 현재의 시점으로 과거를 마주하게 되는 설정이라 전반적인 정서도 굉장히 비슷하게 다가왔다.
<천진 시절>은 1990년대의 중국 천진, <빛의 과거>는 1970년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천진 시절>은 등장 인물들과 소설의 작가가 모두 조선족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금희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인데, 이 한 권만으로 팬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후회되고, 돌이키고 싶은 과거를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을까. 지우고 싶지만 지워지지도 지울 수도 없는 아픈 과거. 그런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나를 혹은 타인을 원망했던 경험. 과거를 상기시키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던 경험.
<천진 시절> 속 상아와 정숙에게도 그런 아픈 과거가 있는데, 정숙을 만난 상아가 정숙에게,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요 언니."라고 말하는 부분이 마음 속에 훅 들어왔다.
어리석고 한심한 선택이었을지라도 그때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과거. 모지란 과거의 나는 조금은 덜 모지란 현재의 내가 아니라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모지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걸 지금의 나는 안다. 그게 위로가 되면서도 왠지 슬프다.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빛의 과거>에서 나오는 말인데, <천진 시절>에도 묘하게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