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노부토모 나오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시공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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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가 치매에 걸린 80대 엄마와 노환으로 귀가 잘 안 들림에도 불구하고 지극정성으로 엄마를 보살피는 90대의 아버지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일본에서는 다큐멘터리로 방송되고, 영화로도 개봉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영상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책에 옮겼다고 했는데, 기회가 되면 영화도 보고싶다.

파스텔 톤의 표지와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실제로 저자의 어머니가 새해 인사로 했다는 말)라는 왠지 미소짓게 만드는 제목이 풍기는 귀엽고 발랄한 느낌과 달리 책의 내용은 굉장히 뭉클하고 묵직하고..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저자는 치매 환자를 둔 가족에 대해 희망 또는 절망 어느 한 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치매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려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할 수밖에 없는 괴롭고 절망적인 순간들에 대해서도 아주 진솔하게 들려준다.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저자의 어머니는 복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헌신적으로 보살펴주는 남편, 치매 환자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간병 서비스 기관의 직원들 그리고 저자와 같은 딸이 있었으니까.

부모님이, 남편이, 아니면 내가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읽었더니 의외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오히려 슬펐을 거 같은데, 담담하고 냉철해져야 한다는 어떤 결기 같은 게 계속 생겨나서 울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일본같은 간병시스템이 작은 규모의 마을 단위로 잘 이뤄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발췌)
사실은 팬티 기저귀 따위 입고 싶지 않다는 엄마의 자존심. 하지만 옷에 실례를 해서 딸을 괴롭히는 건 더더욱 싫은 부모의 마음. 그러나 아버지 앞에서라면 조금 실례를 하고 응석을 부려도 괜찮다는 신뢰감. 그리고 그에 응해 바닥을 닦고 엄마의 속옷을 빨아주는 아버지의 애정. 어떤 상황이건 모두 받아들이는 아버지와 엄마의 유대. 딸인 나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강하고 깊은 유대다. 195

도쿄에 있어도 간병 전문가들이 아버지와 엄마를 정기적으로 지켜주고 있다는 안도감. 그것이 있고 없고에 따라 정신적으로 이토록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나는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비로소 ‘가족 셋이서 틀어박혀 있을 때에는 나도 상당히 우울했었구나’하고 깨달았다. 조금씩 기분이 우울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여가기 때문에 그 한가운데 있을 때에는 의외로 깨닫지 못한다. 214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나는 지금의 엄마를 더는,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 못돼먹은 딸이다 싶겠지만 지금의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했던 과거의 엄마에 대한 기억이 고장 나버린 지금의 엄마로 덧입혀지는 것이 싫어서 나는 엄마와 진지하게 마주하기를 피하며 적당히 받아넘기고 있는 것 같다. 231

아버지가 엄마에게 고함치는 장면을 돌려볼 때마다 과연 나는 이런 식으로 엄마를 대할 수 있을까 싶어 숙연한 마음이 든다. 나는 이렇게 전력을 다하지 못한다. 스스로도 참 치사하다고 여기는 부분인데, 꼭 에너지 절약을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이미 치매 환자니까 그렇게까지 화를 내봤자 나만 지칠 뿐이라며 체념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에게 상처 주지 않고 나 자신도 가능한 한 상처 받지 않으려 ‘치매 환자를 대하는’ 매뉴얼대로 ‘착한 딸’을 연기하며 얼버무리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매뉴얼과는 관계없니 자신의 신념으로 엄마와 정면 승부를 보았다. 그리고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엄마라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엄마를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247

“간병은 부모가 목숨 걸고 해주는 마지막 육아다.” 이보다 정확한 말이 있을까. 부모가 자신의 전부를 걸고서 자식이 인간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마지막 육아.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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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자의 질문 -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치다 마사토시 지음, 한승동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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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꼭 필요했던 책.
중국인 강제연행 강제노동 문제 등 전후 보상 문제, 야스쿠니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재판에서 피해자의 변론을 담당해왔던 일본인 변호사가 썼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한일기본조약 및 청구권 협정, 일중 공동성명 등의 내용을 살핌으로써 각각의 조약이 가지는 특징과 역사적 함의, 한계를 지적하고, 한국 중국의 강제징용 피해자와 자국 전쟁 피해자들의 보상 요구에 대해 일본정부가 보이고 있는 모순적인 태도를 하나하나 밝히고 있다.

솔직히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서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에 한일 양국이 합의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므로, 일본정부가 "우린 그때 할 도리를 다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도의적으로는 참 나쁘지만, 근거없는 생떼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은 우리의 주장을 궁색한 것으로 만드는 약간 고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청구권협정에서 한국 정부가 포기한 것은 국가의 외교보호권이지 개인 청구권이 아니었다는 점을 밝히고, 이때의 '외교보호권' 논리가 일본정부가 자국 전쟁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를 면피하기 위해 사용한 논리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자가당착의 모순적 상황에 빠진 것.

이뿐만 아니라 개인의 기본권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며, 그 과정에서 한일기본협약과 청구권협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그게 합법이었다, 그때 한번 합의했으니까 다 해결된 것이다, 같은 논리는 얼마나 옹졸하고 유치한 것인가.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기본권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거 아닐까.

이 책에서 저자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양국의 민간 차원에서 어떤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지, 피해자에게 배상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 문제에 오랜 시간 몰두해온 일본인이 쓴 책이라 더 진정성 있게 느껴졌고, 이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꼬인 실태래의 절반을 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글이 길어져서 발췌한 내용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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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 현대 의학이 나아가야 할 공감과 연대의 이야기
리타 샤론 외 지음, 김준혁 옮김 / 동아시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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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일까,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를 읽던 중에 예약 신청했던 김초엽, 김원영 작가님의 <사이보그가 되다>를 대출할 수 있게 돼서 두 권을 같이 읽고 있다.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의 부제가 ‘현대 의학이 나아가야 할 공감과 연대의 이야기’인데, 여기서 ‘의학’이란 말을 ‘과학’ 혹은 ‘기술’로 바꾸면 <사이보그가 되다>의 부제로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원격의료가 만들어내는 거리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임상적 의사결정 시대에, 환자들은 점점 자신을 돌보는 이들로부터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보건의료가 점차 비인격화, 분리, 분열되면서 환자들은 먼저 상실감을 느끼고, 다음에는 버려지며, 마지막으로 의료인이 사라진 것에 분노한다. 우리의 서사적 실천은 이 경향을 거꾸로 돌려, 환자의 말과 느낌을 다시 돌봄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13)

#서사의학이란무엇인가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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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내려온다
오정연 지음 / 허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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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이야기를 실제했던 것처럼 창조해낸다는 점에 있어 소설가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하도 책을 끼고 있으니까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읽지만 말고 한번 써봐~’하는데, 나는 그걸 개미의 눈꼽만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가당치도 않은 일인 걸 완전 잘 알기 때문에. 

소설 중에서도 SF소설을 쓰는 작가님들은 왠지 좀더 특별한 것 같다. 다른 소설들이 대체로 현실에 있을 법한, 누군가는 겪었을 법한 이야기라면, SF소설은 현실에 한번도 없었던, 오로지 작가의 상상에 의해서 창조된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재밌는 SF소설은 현대 과학의 성과들에 기반해 쓰여지기 때문에, 묘하게 설득이 되고, 미래를 앞당겨 보는 기분으로 읽게 된다. 

그치만 나는 SF 장르를 그닥 좋아하진 않아서 찾아 읽거나 하진 않는 편인데, 오정연님의 <단어가 내려온다>는 꽤 재미있게 읽었다. 지구인들이 화성에 정착한 뒤 벌어지는 일, 지구보다 50만년 정도 늦게 탄생한 쌍둥이별에 찾아가 지구의 과거를 유추해보는 일 등이 흥미로웠다. 특히 새로운 행성에서 조차 국적과 언어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지속되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싸워야 하는 등 일상의 문제들을 다룬 점이 좋았다. SF지만 SF같지 않은 게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발췌>

뭔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손을 움켜쥐고만 있었는데,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소중한 것을 어딘가 더 튼튼한 곳에 옮기는 기분이랄까.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이야기더군요. 우주가 쓰고 있는 이야기에 우리 모두 한 줄씩 보태고 있는 거죠. 삶이 시작되기 전에도, 죽음 뒤에도 끝나지 않는 것은 이야기뿐이었어요. 29

돌연변이의 결과물인 우리가 특별하고 대단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착각일 뿐이다. 그보다 확실한 위안은 없다. 44

몇만 년 동안 인류의 터전이었던 지구가 ‘창백한 푸른 점’으로 멀어지는 모습은 이주 1세대 모두에게 각인된 극단적인 공허 그 자체였다. 문화 민족적 정체성을 ‘뿌리’라고 부르며 과거와 이어지기를 원하고,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인류에게, 어떻게든 채워야 할 구멍이 생긴 것이다. 어딘가에 자신을 붙들어 맬 수 있는 마음의 중력이 절실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이를 저중력증후군 혹은 무중력증후군이라고 불렀다. 101

#북스타그램📚 #단어가내려온다 #오정연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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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장도연·장성규·장항준이 들려주는 가장 사적인 근현대사 실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팀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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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강추👍

꼬꼬무 방송을 제대로 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팬이 됐다. 책 읽던 중에 우연히 삼풍백화점편 본방을 보게 됐는데, 역시나, 앞으로 챙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꼬꼬무 책 1편은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책 서문에서,

"사건의 중심에는 여지없이 ‘사람’이 있다. 그가 어쩌다 그 사건의 복판으로 들어가게 됐는지, 시대적 상황과 어떻게 작용-반작용을 하면서 그러한 결말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래서 어떤 성장을 하게 됐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객관적인 시점이 아니라 주관적인 시점을 얻고자 했다. … 사건에 연루된 개인의 주관적 이야기여야 바로소 오늘 다시 그 사건을 반추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 말, 그대로 아주 사적인 근현대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라고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는데, 이 말이 너무 좋았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여러 주관적인 것이 모였을때 역사의 본질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진짜 너무 흥미진진했다. 뒤에 이어지는 얘기가 궁금해서 마음은 자꾸 뒤로 내달리는데, 눈은 지금 읽는 페이지에 붙들어 둬야하는, 그런 상태로 계속 읽었다.



김대중 납치 사건, 휴거 소동, 지강헌 인질극 사건,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 등 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건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이다. 너무나 안타깝고 비극적이었다.



진짜 이때의 현대사는 어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



(발췌)

강제 철거가 끊임없이 자행됐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나갔어. 1987년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주거회의에서 한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함께 ‘가장 비인간적인 철거를 자행하는 나라’로 꼽혔어. 우리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숨기고 싶은 과거는 이 사실이 아닐까? 149



오죽하면 이때는 “낮에는 영남이 지배하고 밤은 호남이 지배한다”라는 말도 돌았을 정도야. 낮은 영남 출신의 대통령이 지배하고, 밤이 되면 호남 출신의 조폭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는 의미야. 1980년대 서울의 밤을 지배한 삼대 패밀리가 전부 호남 출신의 조직이었거든. 당시에는 경부선을 중심으로 국토를 개발하면서, 호남이 경제적으로 낙후됐어. 그러다 보니 이권을 찾아 서울로 진출하게 된 호남 조직들이 대한민국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된 거지. 한때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조폭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많이 썼던 것도 이 고증 때문이야. 169



#북스타그램📚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가장사적인근현대사 #꼬꼬무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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