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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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모두 하나씩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 그 상처 안에서 삶이 요리되어지고 만들어 진다.
상처는 크나큰 아우라가 되어 나를 지배하기도 하며, 어떤 기억은 내 인생의 발목을 붙잡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처럼 삐걱삐걱 외줄에 서서 언제 떨어질지 몰라 허둥대기도 한다.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패션지 기자 생활 7년. 남들은 화려하게 보는 일의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미친듯이 뛰어야 하고, 거절을 밥먹듯이 당해야 하고, 밟고 올라가야 하고, 음모와 소문이 난무하는 곳에서 인내를 같고 버텨내야 한다. 한 번 아웃되면 그걸로 끝,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사람들 삶은 비슷비슷하다. 껍데기만 봐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거야 말로 정말 되도 않는 아는척일 수밖에...
서정은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아는척해야 하는 시대를, 몰라도 알아야 하는 시대를,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하는 시대를.
서른 하나, 그녀에겐 걱정해야 하는 살과 적자로 허덕대는 재정과 친구를 만나서 수다 떠는 것도 사치가 되는 바쁜 생활의 연속.

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열정으로 '안 되는 것은 더 되게 하라'라는 일념으로 인터뷰를 따내고 기사를 쓴다. 잡탕같은 생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기 길을 걷지만, 그 나이에 싱글들이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한숨도 가득하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 누구 하나 평범한 사람이 없다.
잘해도 갈구는 선배, 소문을 달고 다니는 후배, 맞선 자리에서 사라져버린 기억 속의 남자, 패션계를 둘러싸고 있는 싸이코 같은 인간들과..
속으로는 정상이 아니라고 욕할지라도 서정 마음속에 그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이해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
그것이 그들의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다. 남들 눈에 내가 정상이 아니어도, 내 눈엔 내가 정상이다.
나처럼 정상인 사람은 없다. 그게 바로 착각이며, 자만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나만의 진실이다.
왜? 왜? 왜?

우린 묻는다. 왜 저럴까? 왜 도대체!!! 저 인간은!!!

결론은 하나다. 그들의 삶 속에는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가득한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로 잃은 언니에 대한 기억을 상처처럼 안고 사는 서정은 맞선자리에서 5분만에 사라진 남자에게 한이 가득하다.
'떠나버렸다'라는 상처를 가득 품은채, 정말 누구도 떠나지 못하게 울타리를 꽁꽁 치고 사느라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살기만 한다.


그녀가 미워서 죽이고 싶은 기자 선배도, 그녀만의 이유가 존재한다. 5년을 같이 일하고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았던 남자 선배가 다가온다. 그의 이유도 존재한다. 그녀가 찾아 헤매이는 닥터 레스토랑의 비밀스러운 행보도, 이유가 존재한다.

우리의 삶의 스타일은 이유에서 출발하고 삶 속에서 출발한다.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 그 사람의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안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모든 오해의 끈이 한순간에 풀어지며, 그녀는 새로운 시대를 꿈꾼다.
그녀에겐 새롭고, 다정하지만, 역시나 치열한 삶이 계속 될 것이다.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우리의 스타일이란, 명품을 온몸에 처 발라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같은 것이 아닐까?
하하~ 웃는다. 그 명랑함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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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독립한다 - 지금 독립을 꿈꾸는 여자들에게
윤하 외 지음 / 미디어일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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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은 어떤 독립을 꿈꾸고 있나요?
독립을 꿈꾸는 모든 이여.
당신이 생각하는 독립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요.


언젠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서른이 넘는 남자가 부모랑 사는 건 이상한거야. 그런 남자는 매력이 없지. 그런 남자와 연애를 하는 건 좀 끔찍해."
독립의 의미는 무엇일까? 온전한 성인이 되는 것일까? 누군가의 능력을 보게 되는 것일까?

나야말로 지난 3년간 독립을 꿈꿔왔다.  아이가 있고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엄마에게, 아빠에게 나의 부모에게 독립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독립하려면 나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여자, 아니 많은 사람들은 독립을 꿈꾼다. 혼자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나를 간섭하는 이 없고, 아무 때나 홀딱 벗고 벌러덩 누워있다고 탓할 이가 있는가.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욕할 이가 있는가. 내가 좋을 대로 나의 시간과 공간을 마음껏 쓸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 독립한다>에서 말한다. 독립은 쉬운 게 아니라고.

우리가 꿈꾸는 혼자만의 공간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독립에는 돈이 필요하며 자립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 독립은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을까? 모두의 독립이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독립을 꿈꾸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인형같은 집에 멋진 가전제품과 맛있는 음식이 언제나 제공되는 나만의 공간은 돈을 싸들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꿈일 뿐이다.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월세를 따박따박 내긴 하지만, 어쩐지 깨끗한 독립은 아닌 것 같다. 깨끗한 독립을 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작은 집을 구하자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필요한 것은 다 돈이요. 청소와 빨래에 밥과 반찬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독립은 내 부모를 돌아보게 한다. 미련하게 산다고 손가락질 하던 내 엄마의 희생으로 등따숩고 배부르게 살아오면서도 불평만 하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의처증이 심해서 날 죽일지도 모르는 남자에게서 독립하자는 마음을 갖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보복이 두려워서 자립이 두려워서 이혼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혼해주지 않으려는 남편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끈질긴 인내와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한다. 남편에게 생활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았다면, 사회에 나와서 밥벌이를 하겠다는 용기 또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와 아이를 지키자 하는 독립은 어떤 선택보다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혼녀를 보는 사회의 눈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용기 또한, 쉽지 않은 것이다.

장애를 가진 여자의 독립은 경이롭다. 독립을 하겠다는 의지뿐만 아니라 혼자 할 수 있다는 건강한 마음가짐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나약해 지는가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한다. 쉽게 물러서고 쉽게 포기하는 우리는 그들의 독립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는 게 싫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나도 안되는 데 감히 네가?

하지만, 한다. 장애가 있어도 그들은 혼자 서고 싶어한다. 생활에 필요한 도움은 받을 지언정 혼자만의 시간을,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누구나 똑같다.
 
퇴직 후에 독립. 나를 심드렁하게 생각하는 남편과 다 키워 놓은 자식을 훌훌 털어버리고 일주일에 며칠쯤은 독립을 한다. 너를 키웠으니 나를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나는 이제 쉴 시간이 필요하니 나를 독립시키겠다 라는 멋진 생각은 누구나 본받을만 하다.

누구에게나 휴식은 필요하다. 그 휴식을 누릴 권리가 있다. 독립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여덟명에 여자들의 각기 다른 색깔로 독립을 말한다. 독립은 선택이다.

이것을 포기하면, 다른 것을 얻게 된다.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그 선택을 내가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독립 또한 나의 선택이고 나의 자유이다.

한결같이 말한다. 기회를 잡아라. 그 기회가 왔을 시 망설이지 말아라.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약해질 뿐 독립의 기회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라고...

나는, 이제야 한 발 나아갔을 뿐이다. 내가 돈을 벌게 되었고, 분가를 해 나의 살림을 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가 돌봐주고 있다. 아직도 반쪽짜리 독립을 하고 있는 나는, 완전한 독립을 꿈꾼다.

그렇다. 독립은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전한 독립은 될 수 없다.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익숙해질 수 있어야 한다. 천천히 이별을 준비해야 하고, 천천히 홀로 설 준비를 해야한다.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진짜 독립을 할 수 있게...

 
나는, 어떤 독립을 꿈꾸고 있는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주는 책이었다. 독립을 꿈꾸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진정 독립을 꿈꾸는 여자들에게 건전한 독립을 위해...

펼쳐라. <나, 독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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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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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예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


삶의 생각 속에는 동화같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로맨틱의 극치, 환상의 극치를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상상하는 만큼 즐거울 수 있고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그것은 현실이 아닌 꿈꾸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기자를 꿈꾸나 낙방만하는 자신이 처량해 자살을 꿈꾸는 은미, 미소년의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여자가 되기를 꿈꾸는 민이는 서로가 꿈꾸는 현실을 얻지 못한채 은미의 고모를 찾아 미국 여행을 떠난다.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내왔던 편지를 들고 말이다.

고모는 삶의 굴곡이 많은 사람. 미혼모로 홀로 아이를 낳아야 했고, 결혼에 실패를 했고, 아이를 할머니에게 버리는듯 맡기고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난 후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달을 여행하는 편지.
할머니는 고모가 우주비행사라고 믿고 있었고, 고모가 먹고 싶다는 잼을 은미에게 들려 미국으로 떠나 보낸다.

미국으로 향하는 은미와 민이. 꿈꾸는 현실을 얻을 수 없는 곳에서 떠나 한박자 쉴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우주비행사가 되어 살고 있을 거라는 고모를 찾았는데 고모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것 따위는 중요치 않다. 고모는 그 다른 생활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가끔 사는 게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하고 싶다고 느낀 것을 향해 달려갈 때 죽도록 힘을 써도 되지 않아 절망할 때 의문을 갖는다. 이건 계속 해봐야 되나 말아야 되나. 지나온 시간이 아까워서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지 그게 좋아서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지 헤깔리기 시작하는 거다. 내가 헤매고 있는 꿈 속에서 꿈도 나를 비껴나가며 헤매고 마는 것. 너무 우스운 노릇이다.

간절히 여자가 되는 수술을 받기 원하는 민이를 보며, 자신은 절망의 상태인데도 할머니에게 즐거운 믿음을 주는 고모를 보며 은미는 과연 내가 기자가 되고 싶은가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 어렴풋한 답을 찾는다.

할머니에겐 그토록 보고 싶은 고모를 보는 게 꿈이고, 민이는 여자가 되는 게 꿈이고, 은미는 글을 쓰는 게 꿈이고, 고모는 가족 모두가 자신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꿈이고, 하지만 그 꿈에 다가섰을 땐 꿈과 다른 현실의 고통이 따른다는 게 <달의 바다>가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고 감싸않는 게 진정한 꿈이 되겠지.

원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갖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고 우린 그걸 배워가며 살아간다. 달의 바다는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고모의 짧은 편지들을 통해서 세상을 조금만 달리 보면 그 꿈의 바다 속에 허우적 거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젊은 작가의 명랑한 마음이 오롯하게 전해지는 것 같다. 암울할 것 같지만 전혀 암울해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현실은 꿈꾸는 것이 아니라 부딪히고 싸워서 내 것으로 만들어 행복해 지는 것이다. 그게 진정 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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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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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평온한가? 오늘까지 평온하다가 내일부터는 평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원치 않았던 일들로 인해, 나와 관련된 사람으로 인해 내 삶의 평온이 깨질지 모른다. 정이현의 신작 <오늘의 거짓말>은 묻는다. 당신의 삶은 평온한가요? 라고.

어느 날, 아침 시작된 사건으로 인해 평온이 깨지기도 한다. <어금니>에서 그 사건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년이면 50대가 되는 중년의 여자에게 평온했던 하루가 어금니를 뽑아내는 고통을 감수해야 할 만큼의 일들이 일어난다. 그녀가 자처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로 인해 평온했던 삶이 순식간에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간다.

아들의 사고. 아들의 교통사고. 표면적으로 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면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사건들은 그녀의 평온은 껍데기에 쌓여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해 준다. 미성년자와 조건만남을 가진 아들은 음주운전까지 했고, 함께 탔던 여학생은 죽었다. 수재라고 해도 모자랄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은 동분서주하고 결국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어제의 평온했던 삶은 아니다.

<그 남자의 리허설>에서도 능력있는 부인에게 주눅들어 살긴 하지만, 나름대로 평온하게 살고 있는 한 남자는 카드키를 갖고 나오지 않아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부터 하루가 꼬이기 시작한다. 작은 실수로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여실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비참하다. 모른척 하고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 의해서 읽게 되는 것이다. 평온한 날이고 싶었다.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살았으면 했다. 하지만, 작은 실수는 그 평온에 돌을 던져 하루, 혹은 그의 삶 전체를 흔들어 버리고 말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또한 윗집에서 일어난 유아 살인 사건으로 인해 조용했던 집이 시끌시끌해진다. 겉보기엔 평범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부부에겐 남들에게 말못할 고민이 있다. 하지만, 둘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삶의 평온을 지키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남편은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고 아내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의심하지 않았던 삶속에 의심가득한 일들이 생겨나면서 평온했던 가정은 급격한 물살을 타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진실은 드러난다. 하지만, 그들은 평온을 지키고 싶다.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 그냥, 그렇게 언제나처럼 등을 돌린채 잠이 든다.

<위험한 독신녀>나 <삼풍백화점>은 잊고 살았던 동창을 만나면서부터 삶에 이상한 일들이 생겨난다. 겉으로는 그러한 일들은 그저 지나쳐도 될 법해 보이지만, 어쨌던 신경이 쓰인다. 친구는 내가 있었던 어떤 시간을 같이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몰차 질 수 없다. 그래서 다가오는 그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삶의 평온 속에 이질감을 느낄 만한 사건들이 생겨난다.  

다른 단편들도 비슷하지만 다르게 우리 삶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떠한 결론은 없다. 그것은 당사자들이 풀 몫이다. 작가는 이런 일들로 인해 우리의 삶의 평온이 깨질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믿음은 또 다른 의심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유쾌한 화법으로 평범하게 사는 듯 하지만, 평범함 속에 감춰진 누구든 숨기고 싶은 부분을 드러내어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러한 사건속에서도 우리는 아닌척 웃으며 담담하게 평온을 유지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당연한 욕망이다. 평온은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지냐에 가장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감춰져 있던 것들이 드러나자 맛있고 통쾌하다. 숨기지 말자. 아픔은 드러내자. 치부도 드러내자. 그래야 해결되지 않는가. 왜 아닌척 담담한척 하는가. 우리는 평온하기 위해 매일 거짓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하지만, 나는 속일 수 없지 않는가?

당신의 삶은 평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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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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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탈출하고 싶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그러면 현실을 잊을 수 있겠지? 그럼 기분 전환이 될 지도 몰라.'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린 가끔 탈출, 일탈, 혹은 가출을 꿈꾼다.

엄마의 재혼식에 심난해져 있는 준호는 형을 밀항시키기 위한 규환의 여행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한다. 운동권인 형을 만나는 일은 위험한 일이기에 친구 준호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 허나, 피치못할 사고로 규환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임무 아닌 임무를 준호가 맡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간단한 일. 양조장 용달차에 몸을 싣고 목적지까지 가서 형을 만나 서류와 돈을 전달해 주고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일. 하지만, 인생은 원래 수많은 돌발사고 때문에 뒤틀리지 않던가. 준호 역시 순탄하게 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이름 모를 할아버지와 양조장 주인 아들 승주, 아빠에게 쫓기는 게 일인 정아, 정아 아빠의 미친개 루스벨트까지 여행에 동참하게 되면서 좌충우돌 여행기가 펼쳐진다. 마음만 급한 준호는 이 많은 혹들이 자신과 함께라는 게 갑갑해져만 오고, 엎친 데 덮쳤다고 용달차에서 쫓겨나다시피 하고, 루스벨트 때문에 버스조차 탈수 없다. 승주에게 가방을 빼앗기고 여행 경비마저 어쩔 수 없이 동행하는 이들의 밥값을 대느라 술술 빠져나간다.

울화통이 터져버릴 것 같은 이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몇 날 며칠을 동행하는 그들은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 때는 서로를 감싸안고 마음으로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알고보면 모두들 쫓기는 몸이다. 마음을 둘 데가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폭력에 지쳐 도망간 언니와 반편이가 된 엄마가 있는 정아. 자신의 꿈과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저 멀리 도망가고 싶다. 아버지가 죽일만큼 밉고 무기력한 엄마 또한 화가 난다.

엄마의 치맛바람에 어릴 때부터 외톨이였던 승주. 스님말만 믿고 자신을 절에 넣어버린 엄마가 원망스럽다. 장가도 못가고 바보가 되는 건 아닌가에 대한 공포가 탈출을 시도할 용기를 줬다.

아버지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진작가에게 시집가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운 준호. 준호는 아빠를 기다린다.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아빠의 뒷모습을 잊지 못한다.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할아버지. 주워다 키운 자식까지 죽고 난 후,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긴 생활을 살다가 탈출한 할아버지.

주인에게 죽도록 맞고 살았던 개 루스벨트. 시끄럽긴 하나 외로움에 지쳐 그렇게 된 것.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사랑이 필요했던 루스벨트는 준호를 주인삼아 여행에 동참한다.

서로 외로운 이들이 만나 같은 여행을 한다. 외로움에 지쳐 혼자 되기가 무서운 사람들.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고파 가출을,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은 미워하고 이겨내고 웃고 떠들면서 각자의 괴로움을 이겨낸다. 경찰들의 눈을 피해 목적지까지 다다르게 되었을 때는 한마음 한 뜻이 되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규환이의 형을 만나기 위해 태풍이 휘몰아치는 섬에 들어가면서도 두려움이 없었던 건,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일을 겪었던 서로를 믿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서로의 아픔을 감싸안을 수 있는 마음이 깊어졌기 때문이리라.

승주, 준호, 정아는 할아버지가 봤다는 고래를 목격한다. 할아버지가 말한 고래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가슴속에 품은 희망이었을까? 미래였을까? 그들이 본 고래는 그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으리라.

목적지에 다다르고 서로의 길로 뿔뿔히 흩어진 후 준호는 회상한다. 열다섯, 자신들만의 비밀 여행은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었다고.
그 날들의 기억은 또 다른 삶을 사는 밑바탕이 되었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고.

우리는 일탈을 원한다. 탈출을 원한다. 가출도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유에 관해 잘 털어놓지 않는다. 그건, 내가 외롭기 때문일진데 나의 외로움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건 나만의 비밀. 그 비밀속에 서로를 묶을 수 있었으니 그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1980년대 모든게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사춘기의 분위기는 서로 닮아있었다. 각자 풀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여행 한 번으로 어렴풋하게 해결점을 찾았던 여행자들의 이야기이다. 읽는 내내 유쾌했고, 내가 준호가 된 듯, 내가 정아가 된 듯, 내가 승주가 된 듯, 내가 할아버지가 된 듯 감정이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책 속에 인물들과 신나게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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