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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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형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

 
아는 것이 적으면, 쓸 줄 아는 것도 적다,
아는 것이 적으면, 할 말도 적다,
아는 것이 적으면, 즐거움도 적다,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지는 말들.
어쨌든, 레오나르도 다빈치 형님은 정말 멋진 분이다.
그리고 난, 형님의 말처럼 멋진 작가를 발견했다.
 

오랜만에 좋아질 것같은 작가를 발견.
그의 상상력과 예상치 못한 소재와 스토리에 깜짝 놀랐다.
음악을 많이 알고, 음악을 많이 사랑할 것만 같은 <악기들의 도서관>에 담긴 단편들.
그속에서 뜻하지 않은 감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생각을 주는 글은, 정말 좋은 글이다.
단편이 끝나고 마침표까지 읽고 나면, 생각의 공간 속에 잘 모셔다 준다.
한쪽만으로 치우쳐 생각지 말라는 그의 속삭임은 달콤하고 유혹적이다.

 
질리게 면접을 보고 질리게 면접에 떨어졌다면 <유리방패>를 읽으며 유쾌해질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어떤 우연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지금 나의 행동과 일상은 뜻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 몇 분만에 온전한 자신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모순 속에서도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두 남자의 이야기. 언제나 함께 같은 길을 걸었지만, 이제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는 두 남자의 암묵적인 합의는 어릴 때 단짝친구와 다른 대학에 가야하고, 다른 과에 가야했던 아쉬움과 씁쓸함을 기억나게 해준다.

 
일상 속에서 배우고 싶은 것들이 한가지씩은 있다. 하지만, 시간과 돈으로 망설이기만 한다.
한 번 시도는 해 봤는데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시도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B>에서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진짜 이야기를 한다.
"좋아한다면 두세 번은 시도해봐야지. 계속 시도하다보면 어느 순간 정말 좋아지거든."(201p)
나의 도전은 몇 번으로 끝났던가.


<메뉴얼 제너레이션>, <악기들의 도서관>, <비닐광시대>, <자동피아노>는 다른 내용이지만,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 그렇지 않은 것, 새로운 것, 해야 하는 것, 하고 있는 것들에서 우린 낯선 상황과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낯섬이 내 것같지 않고, 잠깐 의문과 생소함을 가져다 줄지도.
어떤 사건, 혹은 어떤 일들은 나른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내가 하는 일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되돌아봄의 긍정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109p)"라는 문장 때문에 악기들의 도서관을 차리게 된 주인공처럼, 메뉴얼을 쓰면서 돈을 벌었던 나에게 메뉴얼 하나가 삶의 행로를 바꾸게 한 것처럼, 나에게 두려움과 정신적 강박을 주게 한 사건이 나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해 준 <비닐광 시대>의 디제이처럼, 괜찮은 피아니스트로 생각하고 살던 삶에 한 이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방향을 돌린 <자동피아노>의 피아니스트처럼 살아가는 것은 익숙한 일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든 어떤 일이 튀어나와 처음과는 다른 곳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말하고 있다.


엇박자로 고교시절 축제를 망쳐버렸던 친구가 등장하는 <엇박자 D>. 아이러니하게 그가 콘서트를 기획하겠다고 연락해 오고 그를 통해 수십년에 지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불쑥, 나타난 친구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 불쑥 사라진 엄마가 등장하는 <무방향 버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한 줄로 연결되는 순간, 삶이 바뀐다. 그 줄을 길게 늘인 것이 한 인간의 삶이 아닐까."(112p)

<악기들의 도서관>의 중심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단편 하나 하나가 이 메시지를 중심 주제로 담고 있다.


낯선 일들로 나는 살짝 내 항로를 다시 조정한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나, 나를 찾아온 그 낯선 일들은 우연이 아니었다.
익숙하지만 낯설게, 때때로 삶은 그렇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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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4 14: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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