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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평점 :
나의 삶은 평온한가? 오늘까지 평온하다가 내일부터는 평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원치 않았던 일들로 인해, 나와 관련된 사람으로 인해 내 삶의 평온이 깨질지 모른다. 정이현의 신작 <오늘의 거짓말>은 묻는다. 당신의 삶은 평온한가요? 라고.
어느 날, 아침 시작된 사건으로 인해 평온이 깨지기도 한다. <어금니>에서 그 사건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년이면 50대가 되는 중년의 여자에게 평온했던 하루가 어금니를 뽑아내는 고통을 감수해야 할 만큼의 일들이 일어난다. 그녀가 자처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로 인해 평온했던 삶이 순식간에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간다.
아들의 사고. 아들의 교통사고. 표면적으로 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면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사건들은 그녀의 평온은 껍데기에 쌓여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해 준다. 미성년자와 조건만남을 가진 아들은 음주운전까지 했고, 함께 탔던 여학생은 죽었다. 수재라고 해도 모자랄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은 동분서주하고 결국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어제의 평온했던 삶은 아니다.
<그 남자의 리허설>에서도 능력있는 부인에게 주눅들어 살긴 하지만, 나름대로 평온하게 살고 있는 한 남자는 카드키를 갖고 나오지 않아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부터 하루가 꼬이기 시작한다. 작은 실수로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여실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비참하다. 모른척 하고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 의해서 읽게 되는 것이다. 평온한 날이고 싶었다.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살았으면 했다. 하지만, 작은 실수는 그 평온에 돌을 던져 하루, 혹은 그의 삶 전체를 흔들어 버리고 말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또한 윗집에서 일어난 유아 살인 사건으로 인해 조용했던 집이 시끌시끌해진다. 겉보기엔 평범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부부에겐 남들에게 말못할 고민이 있다. 하지만, 둘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삶의 평온을 지키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남편은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고 아내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의심하지 않았던 삶속에 의심가득한 일들이 생겨나면서 평온했던 가정은 급격한 물살을 타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진실은 드러난다. 하지만, 그들은 평온을 지키고 싶다.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 그냥, 그렇게 언제나처럼 등을 돌린채 잠이 든다.
<위험한 독신녀>나 <삼풍백화점>은 잊고 살았던 동창을 만나면서부터 삶에 이상한 일들이 생겨난다. 겉으로는 그러한 일들은 그저 지나쳐도 될 법해 보이지만, 어쨌던 신경이 쓰인다. 친구는 내가 있었던 어떤 시간을 같이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몰차 질 수 없다. 그래서 다가오는 그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삶의 평온 속에 이질감을 느낄 만한 사건들이 생겨난다.
다른 단편들도 비슷하지만 다르게 우리 삶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떠한 결론은 없다. 그것은 당사자들이 풀 몫이다. 작가는 이런 일들로 인해 우리의 삶의 평온이 깨질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믿음은 또 다른 의심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유쾌한 화법으로 평범하게 사는 듯 하지만, 평범함 속에 감춰진 누구든 숨기고 싶은 부분을 드러내어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러한 사건속에서도 우리는 아닌척 웃으며 담담하게 평온을 유지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당연한 욕망이다. 평온은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지냐에 가장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감춰져 있던 것들이 드러나자 맛있고 통쾌하다. 숨기지 말자. 아픔은 드러내자. 치부도 드러내자. 그래야 해결되지 않는가. 왜 아닌척 담담한척 하는가. 우리는 평온하기 위해 매일 거짓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하지만, 나는 속일 수 없지 않는가?
당신의 삶은 평온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