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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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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데 중요한 게 무엇이더냐. 사랑이더냐. 돈이더냐. 사람이더냐.

사람과 기생은 다른 게 아니다. 같은 사람일 뿐. 기생이라고 손가락질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사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뿐.

부용각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사연에 대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 그 뿐이었기에 그의 인생이 박복하다 하여도 삶이고, 다난하다 하여도 삶이기에 그 삶 자체를 인정하며 살아간다.

부용각의 뿌리이자 기둥인 타박네. 시대를 따라 물러나면서도 상처 많은 삶을 싸안고 살아가는 오마담. 오마담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박기사. 부용각을 이어갈 마지막 기생이 될 미스민. 어눌한 사기꾼 김사장. 타박네의 맛을 이어갈 김천댁.

그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삶은 참 위트있고도 서글프다. 서로를 감싸안는 마음이, 행동이 서툴러 곱지 않은 말이 먼저 나가면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허구헌날 욕을 해대는 타박네를 미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부용각 사람들은 그 타박들이 자신들에게 향하는 관심과 애정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타박네가 시시때때로 해대는 욕도 들을만 하고, 줄창 해대는 잔소리도 버틸만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 부용각의 사람들은 그 사랑의 증거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부용각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악역을 맡는 걸 마다하지 않는 타박네에게도 숨겨진 사연이 있다. 죽이는 홍어맛을 낸 이유로 하룻밤의 동침과 그로 인해 생긴 아들. 아들을 보내야만 했던 어쩔 수 없는 사연. 한없이 그리운 아들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부용각을 지키려 몸부림 치는 이유도 자신의 핏줄 때문이다. 어미가 할 수 있는 사랑이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자랄 수 있게 하는 것. 하지만 자신의 핏줄을 볼 수 없었던 세월의 고통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으리라. 그녀의 마음 속에 깊은 사랑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알콜에 중독되어 목소리 마저 갈라져 버리고 만 소리기생 오마담. 남자들에게 속아 돈을 빼앗기고 있는 것 다 털리고도 그녀는 싫지 않다.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면서 남자를 믿지 않는다 한다. 그러니 배반해도 자신의 모든 걸 내줄 수가 있다고 한다. 자신은 남자들에게 철새도래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한다.
어쩌면 그녀는, 그렇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아니 사랑인척 하는 남자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기생에게 위로받으려 하는 남자들을 따뜻하게 품어 세상으로 내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용각의 마지막 기생이 될지도 모르는 춤기생 미스민. 불우한 집안에서 꿈을 키우던 그녀는 돌연 춤기생이 되기로 마음 먹는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 오마담을 만나고 그녀의 삶을 알고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은 마지막 남은 제대로 된 기생이 되리라 생각한다. 화초머리를 올리고 당당히 기생이 된 그녀의 마음에도 찬바람은 분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뭉쳐졌지만 부용각 사람들보다 친밀하지 못했던 가족들. 애정이란 것에 의문을 던질 때, 부용각 사람들은 제2의 가족이 되고 그녀는 안식처를 찾는다.

한여자를 두고 각기 다른 사랑을 했던 김사장과 박기사. 능소화에 눈이 멀어 눌러앉게 된 박기사. 그녀는 오마담에 순정을 바치며 기나긴 세월 부용각의 궂은 일,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침마다 오마담 방 앞에 넌지시 놓고 간 꿀물은 사랑의 흔적이 되어 마루에 깊숙하게 박힌다. 차마 입을 열지도 다가가지도 못했지만, 그는 그녀를 눈이 멀도록 사랑한다. 그에 비해 김사장은 오마담의 등을 쳐먹기 위해 기회만 기다리는 기둥서방. 이 어설픈 기둥서방은 자신이 다 갖고 도망갈 수 있을 때 오마담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도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랑. 결국 그들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기생이라 다른 게 아니다. 망나니라 불린다고 다른 게 아니다. 다 똑같은 사람. 기생들이 하루코를 부러워 하는 것은 그녀가 돈을 많이 번 전직 기생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사람의  사랑을 받고 사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찾았기 때문에 그녀가 부러울 것이다.

어떤 날, 친구들 손에 이끌려 억지로 발을 들인 남자가 쥐고 있던 검정 비닐 봉지에서 보라색 자잘한 꽃을 피운 화분이 나왔을 때.
그 남자가 아내가 좋아하는 꽃이라서 샀다는 말을 했을 때. 화분을 고르고 앉아 있었을 남자를 상상하며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한동안 말을 잃고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은 그 남자의 아내가 받는 사랑 때문이었으리라. 남들이 고작 그런 사랑이라고 말하는 자잘한 사랑이 절실했기 때문이리라.

욕망을 내비치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아닌척 자신의 일에 여념이 없고 또 그런가보다 무관심하다. 하지만, 저마다 마음속에 품은 욕망은 사랑 그것이었다. 나는 사랑받고 싶지 않을소냐. 내가 택한 삶이든 삶이 아니든, 나 또한 사랑받고 싶은 그냥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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