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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보이네 - 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
김창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3월
평점 :
내 최애곡은 산울림의 <청춘>. 늘 흥얼흥얼 거리던 노래.
이런 노래를 만드는 사람은 얼마나 생각이 많을까. 작은 것도 허투루 여기지 않겠지. 세상을 따순 눈으로 관찰하고 있을거야 믿곤 했다. 이 노래가 담긴 앨범은 내가 태어난 해에 나왔다. 청춘과 함께 태어난 나는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수도 없이 불렀다.
<이제야 보이네>를 읽으면서 투박하고 따수운 마음을 느낀다. 서울 한복판에 사는 나는 앞집 사람도 모르고 사는데, 어릴 때 자라던 나는 앞집 옆집 동네에 사는 친구들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소문과 소문으로 들었다. 할머니랑 시장으로 물건을 팔러 나가면 이집 저집 사정이 흐르고 흐른다. 여느 집에 장이 들어왔고, 누가 오늘 어디를 가는지, 왜 앞집은 크게 싸우는지 조금만 지나면 다 알났던 때도 있었다.
잠깐 그런 때를 떠올린다. 외삼촌이 데려갔던 엑스포, 외숙모가 명절 때마다 찔러주었던 용돈, 외할머니가 해주었던 아궁이 솥 귀퉁이의 계란찜. 뭐 그런 사소한 것들이 떠오르며 갑자기 감사한 마음이 든다. 친구와 놀러가도 됐을 텐데 외삼촌은 왜 초등학생인 나를 데리고 대전 엑스포에 갔던 걸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외숙모는 자기 살기도 바빴을 텐데 왜 내게 명절마다 용돈을 크게크게 주었던 걸까. 엄마 몰래 조용히. 그리고 늘 내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내 소울푸드였던 화양시장 뚱뚱이 할매 순대도 떠오르고, 속상할 때마다 혼자 쳐박혀 있던 집 앞 헌책방도 떠오른다. 별 거 아닌 것들이 별 거 였던 것 같다. 그런 시절들을 건너와 아저씨는 지금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노래도 쓰고,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사람처럼 연기도 하고, 타인의 마음을 쓰다듬는 진행자가 되기도 한 걸까.
무수한 말말말들을 견디고, 투박한 사랑을 어머니에게 전하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투병을 바라보고, 이웃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아저씨는 자신만의 세월을 견뎠다. 그런 삶의 이야기들 중 일부를 글로 만나니 소중하고 귀하다.
“지금은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사소한 의미를 하나하나 보여주어야 이해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만, 삶에는 말이 되지 못한 이야기가 여전히 숨어 있습니다. 뭔가를 꼭 하고 있어야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인생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게 아니니까요. 모두 너에게 돌아올 뿐입니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말을 하는 게 먼저입니다.” - 서문.
누군가의 마음을 읽듯 시작되는 <이제야 보이네>.
읽다 보면 나의 오래 전과, 그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보인다. 이제는 무엇도 별로 서운하지 않은 내가, 과거에는 무엇도 이해하지 못해 퉁퉁 거렸다는 걸, 두려워하고 외로워만 하느라 놓치고 지나쳐 버린 게 많다는 걸 인정도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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