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지음 / 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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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나고 엄마에게 쓰는 편지였다.
긴 시간이 지나고 엄마를 이해하게 된 딸의 이별 편지였다.

오래 애쓰고, 오래 견뎠을 한시영이라는 어린이를 생각했다. 엄마가 좋지만,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수십번, 수백번 생각했을 아이를 떠올렸다. 어딘가에서 혼자 웅크리고 있거나, 엄마가 돌아올까 기다리던 아이. 누군가의 전화에 불려나가 엄마를 부축해 데려오던 아이. 엄마가 술을 그만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아이. 제발 누군가가 이 현실을 끝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아이를.

미워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고, 사랑하지만 모른척하고 싶은 엄마를 견디며 살아왔을 어린 아이, 청소년이 된 아이, 여성이 된 아이, 엄마가 된 아이. 내면 깊숙하게 엄마를 품고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고백서이자 긴 이별서, 그리고 편지였다.

엄마는 슬픔이 깊어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제때 치료하지 못해 긴 세월을 알콜중독자로 살다가 결국 술 때문에 건강을 잃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어린 아이일 때부터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있는 엄마를 기억하는 작가 곁에는 다행히, 할머니와 할아버지, 외삼촌, 사촌 언니와 사촌 오빠, 스쳐지나갔으나 엄마를 품어주던 어른들의 기억이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아무도 돌보지 않고, 모른척했다면 어땠을까. 반복되는 엄마의 음주와 장취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한 일상을, 감당하고 사는 내내 그녀 곁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게 안심이었다.

지긋지긋하게 엄마를 찾거나, 발견해야 하거나, 연락을 받거나, 뒤치닥거리를 했어야 할 순간에 그래도 누군가에게 작은 마음이라도 의지할 수 있었다면 감사할 일. 남편이 있어, 할머니가 있어, 친구들이 있어 견디며 나아갔을 한시영 작가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엄마와 이별을 정리하는 긴 편지를 읽었다.

이제는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시영 작가를 생각한다. 엄마로서 기쁨을 누리는 어떤 순간에, 살면서 육아의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에 엄마를 자꾸 떠올리게 되겠지. 원망도 하고, 이해도 하면서. 조금만 함께 견디면 안 되었을까 생각도 하면서.

엄마가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은 엄마가 나와 오래 함께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겠지. 그 마음이 커지고 커질 수록 엄마가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겠지. 싫고 속상했던 추억, 상처받았던 시간의 글도 있었지만, 엄마와 함께 해서 좋았던 추억도 많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듯, 작가와 엄마와의 추억을 읽었다.

이젠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테죠? 그리움도 있을 테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지만, 엄마를 사랑했기에 놓지 못했을 테죠. 지긋지긋하게 싫었어도 지키고 싶었을 테죠. 엄마는 아픈 것일 뿐이었는데, 아픈 것을 방치한 시간이 너무 너무 길어서, 엄마가 아픈 시간의 과정을 작가님이 혼자 오롯이 함께 하느라 많이 지쳤을 테죠. 스물 일곱 엄마를 잃고, 10년이 지나서야 엄마를 다시 생각할 용기를 낸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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