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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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관한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 봤지만, 그림과 음악이 크로스된 책은 처음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림과 음악이라기 보다는 화가와 음악가의 크로스지만 말이다. 이 책은 에세이와 예술의 이야기가 혼합된 책이다. 초반에는 사랑에 대한 감성으로 가득찬 서두 때문에, 정보와 감정의 혼란이 오기도 했다.  예술가들의 생이 작가의 감정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이 책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예술가, 그 주변 사람, 상황 등의 서술로 이끌어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클래식은 그림보다 생소하기 때문에, 낯설은 이야기가 많았다. 작가는 음악을 전공했고, 그림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화가와 음악가를 비교, 대조하여 설명했고, 사랑, 창조, 자유, 일상이라는 주제를 놓고 예술가들을 분류했다. 사랑을 사랑하는 작가의 성격이 잘 드러날 정도로 각 예술가들의 사랑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소재로 등장한다. 누가 누구와 사랑을 했으며, 그 사랑 때문에 어떤 작품이 탄생된 건지 확인할 수 있다.  

<1장, 괜찮아, 슬픔은 곧 지나갈거야>에서는 좀 과도하다 싶은 작가의 감정 표현 때문에 예술가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2장을 지나 3장, 4장에 도달하면 그 과함이 누그러들어 예술가들에게 잘 집중할 수 있다. 뒷 장으로 갈수록 작가는 어떤 아포리즘을 전하려고 하고 있고, 그 아포리즘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어 보이긴 한다. 어쩌면, 작가는 이 책을 쓸 때 사회의 통념에 대한 거부를 예술가들을 통해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림이나 음악에 관한 책을 많이 접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림과 음악에 대해 잘 모르고, 이제 알아보고 싶다는 초보한테는 쉽게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술 에세이라고 해두자. 너무도 너무도 여성적인 예술 에세이. 감정이 많이 삽입된 예술에 관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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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ksy Wall and Piece 뱅크시 월 앤 피스 - 거리로 뛰쳐나간 예술가, 벽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건네다
뱅크시 지음, 리경 옮김, 이태호 해제, 임진평 기획 / 위즈덤피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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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고 충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말하고 싶은 이야를 구구절절 늘어놓기 보다, 한 줄로 혹은 그림 하나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도 능력이다. 뱅크시(Banksy)는 이런 능력에 탁월하다. 간단한 그림으로 간단하게 말하지만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확실하다. 그것이 그의 매력이다.

'그래피티'(Graffiti_낙서)는 무엇보다 하위 형식의 예술이 아니다. 비록 엄마한테 거짓말을 하고 한방중에 숨죽인 채로 작업을 해내야 한다 할지라도 이는 실존하는 가장 정직한 형식의 예술이다. 그래피티를 하는 것은 엘리트 의식으로 인함도 아니며 누군가를 현혹하기 위함도 아니다. 게다가 이것을 전시하기 위해서는 동네의 가장 좋은 벽만 있으면 된다. 당연히 누구도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불필요한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벽(Wall)'이야말로 당신의 작품을 발표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이제까지 벽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왔다.

도시를 경영하며 관리하는 사람들은 그래피티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가치 기준이 당신의 생각이나 의견보다 '돈'에 우선해 있다면 물론 이 또한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 버리겠지만 말이다.

그들은 그래피티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사회를 부정하는 상징이라고 말하지만, 그래피티는 단지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에게만 위험하다. 정치인들, 광고쟁이들 그리고 그래피티 작가들 말이다.

진정으로 우리 이웃들의 외관을 더럽히고 손상시키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거대한 슬로건들을 버스와 건물들 사이에 되는 대로 마구 휘갈겨 쓰고는 마치 우리가 자기 회사의 물건을 사지 않으면 뭔가 부족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회사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얼굴에 대고 그들의 메시지를 소리쳐 대지만 정작 우리의 어떤 질문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이 싸움을 시작했고 그 싸움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나의 무기는 바로 벽이엇다.

어떤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경찰이 되고 어떤 이들은 세상을 더 좋아 보이게 만들기 위해 문화파괴자(Vandals)가 된다.



그는 어릴 때 부모 조차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음을 경험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이었는데도 그의 잘못이 되었다. 그떄부터 그는 입을 닫고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속도가 느려서 트럭 밑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는 곧, 자신만의 방식을 개발했다. 스텐실 기법은 그의 그림에 속도를 붙여주었다.

 


이런 풍자는, 그의 비판을 더욱 겸허하게 받아드리도록 한다.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싸우는 것도 폭력으로 행해져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는 말처럼 우스운 것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떠들어 봐야 무슨 소용인가. 하나의 그림으로 단호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능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뱅크시의 그러한 능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아닐까?

 





 그가 그림으로 말하는 화두 중 가장 많은 것이 전쟁이다. 필요없는 싸움, 그것이 바로 전쟁이 아닐까? 평화를 지킨다는 말은 거짓이다. 평화가 아니라 이익을 지키고자 싸운다. 그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사람 이외의 모든 것들, 아이, 동물, 자연 등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외면할 뿐이다. 직접적이고 충격적이게, 우리가 저지르는 일 우리가 동조하고 동의하는 일은 바로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경고다. 수많은 경고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의 책 'Wall and Piece'는 'War and peace'가 연상된다. 그가 정확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다. 전쟁과 평화. 이 끝나지 않는 화두는 서로를 먹고 먹으며, 다른 형태로 진화해온다. 결국, 평화라는 것은 없다. 무기와 죽음, 이익, 고통만 있을 뿐이다. 왜 우리는 그것들을 깨닫지 못하는가? 사실 깨닫고 있으면서도 외면할 뿐이다. 

 




물질주의, 소비주의, 신자유주의.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 뱅크시는 언제나 소수자의 입장에서 대변한다. 다수가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가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문화와 생활 방법을 존중해야 한다. 소비주의, 신자유주의는 물질에 노예가 되어 가고 있으며,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허세와 과시, 그리고 욕망 그것이 고유한 문화들을 망가뜨리며 획일화 시키기도 한다.

인간의 경주는 공평하지 않으며 어리석은 경쟁이다. 아직도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운동화와 깨끗한 먹을 물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 116p

이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슬프게 생각하지 않는 문명들은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물질에 물들지 않는 이들의 문화를 파괴시켰다. 뱅크시의 간단한 그림만으로도 깨달을 수 있다. 우리의 욕망과 경쟁이 어떤 것들을 파괴시키고, 앗아갔는지 말이다.




그는 '예술'에 대한 강렬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유명한 미술관에 자기의 그림을 걸어 놓는 기상천외한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유명 화가의 그림에 그래피티적 요소를 첨가했으며, 유명 화가의 그림을 패러디 하기도 했다.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뉴욕 자연사 박물관 등 그는 혼자만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큐레이터들을 바보로 만들었고,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예술이고 아닌지에 대한 혼란을 가져왔다. 유명하고 저명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 그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관람객들, 심지어 박물관 관련자들을 비웃었다. 그의 행동은 예술의 진정성을 묻는 새로운 시도였다고 본다.

그는 아직도 그리고 있다. 눈치 챌 수 없는 장치들을 곳곳에 뿌리고 있기도 하다. 이제 그의 작품은 숨은 그림 찾기가 되었다. 이제 그의 그림은 지워지지 않고, 심지어 그림이 그려진 벽이 고가에 팔리기도 한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만큼 중요한 것들이 되었다. 

그를 만나며, 그래피티를 더 깊게 더 잘 알 수 있었다. 단순하게 벽에 낙서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도 철저하게 깨주었다. 그의 작품을 보며, 한가지 바람이 생겼다면 우리의 그래피티도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의 그래피티를 보며,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를 알고, 좋아하게 된만큼 그의 행보가 지금처럼 굳건하고 확실하게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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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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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다해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연도 끊고, 관계도 끊고, 하나를 위해 살아가는 이는 얼마나 될까?

김영갑 그는, 제주도를 사랑하고 제주도의 사람을 사랑하고, 제주도의 바람과 비와 공기와 풀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진밖에 몰랐고, 사진에서 자신을 발견했고, 처절하게 자신을 고립한 채로 사진을 찍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도, 가족도, 돈도, 공간도, 아무것도 없는 채로 뭍에서 온 그는 섬사람이 되었다.

그의 사진은, 아름답다. 그 말 이외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사진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가 기다려온 시간, 그가 참아낸 시간, 그가 이겨낸 시간.
바람의 움직임, 구름의 움직임, 나무의 움직임. 제주도의 세월이 제주도의 흔적이 그의 사진에 담겨 있다. 제주도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그를 존재하게 했고, 그를 살아가게 했다. 제주도가 있었기에 그는 고통을 참았고, 외로움을 참았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제주도의 순간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기뻤다.

작가는 한 줄을 쓰기 위해서 몇 년을 고민하고, 화가는 선 하나를 긋기 위해서 또 몇 년을 고민한다. 사진가 또한 그런데, 왜 사진은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느냐는 그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 일에 매달려 영혼을 바치는 사람들, 주위의 냉대와 비웃음에도 우직하게 한 길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답답하다. 그런 일은 팔자 좋은 사람이나 정신 나간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게 세상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고 삶을 판단한다. 다른 생각으로, 다른 이상을 위해 살아가며, 다른 것을 꿈꾼다.
- 44p

그는 제주도를 찍는 일이 좋았을 뿐이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과 가족의 걱정이 사진을 찍는 일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모두 단절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가족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세상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 180p


제주도에 와서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이, 제주도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원하는 장면만 보고 싶어한다. 그 모순에 그는 안타깝다. 바람의 기다림을, 파도의 기다림을 모르는 이가 과연 제주도를 찍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제주 살이를 십수 년 해 온 그는 사진도, 제주도도 사람들이 제대로 봐주길 바란다.

허기짐 속에서, 고통 속에서, 냉대 속에서 제주도를 찍었던 그는 루게릭병과 맞닥뜨린다. 신은 왜 이리 불공평한 것일까? 하나만 알아왔던 그에게 다른 세상을 보라고 그런 고통을 내린 것일까? 그의 병은 그에게 사진을 빼앗아 가지만, 사진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폐교를 갤러리로 꾸민다. <두모악 갤러리>는 그렇게 탄생된다. 움직일 때마다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그때 그는 다시 새로운 일을 벌인다. 갤러리를 꾸미고 사진을 전시하고 그는 그렇게 병과 싸우고, 시간과 싸운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길을 가르쳐 준다. 그러면 그가 일러준대로 가지만 한참을 걷다 보면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 190p

버려야지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미련인 줄 알면서도, 그는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병에 대한 집착으로 더 고통스러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사그라지는 그의 몸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의 고집스러움, 그의 신념이 안타깝다. 왜 화해하지 못했을까? 그렇게까지 애를 쓰지 않아도 될 텐데. 그는 마음으로 미안하고, 마음으로 감사해 하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표현하지 못한다. 죽는 순간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지, 미안함과 고마움이 차오르는 것을 두고 가는 게 힘들었을지 그가 써내려간 글에서, 그가 남겨놓은 사진에서 느껴진다.

사람은 없는 제주도 사진. 그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사진 어디엔가 흩뿌려놓았을 감정들이 느껴진다.
그 섬에 그가 있었다. 그 시간에 그가 있었다. 그 바람 사이에 그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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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꼼수 Essays On Design 4
사카이 나오키 지음, 가와구치 스미코 그림, 김향 외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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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디자인을 하고 있지도 않지만, 디자인과 밀접한 삶을 살기에 언제부터인가 디자인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디자인은 알면 알수록 어렵다.
뚝딱 하고 태어나는 것인 줄 아는 모든 디자인에는 숨은 노력과 시간들이 숨어있다. 그리고 우리 삶의 전부가 디자인이라는 사실은 디자인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꾸려낸 '사카이 나오키'라는 사람은 디자인계에서 꽤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유명한 사람이든 아니든 방대한 지식과 통찰력에 질려버릴 만큼 디자인적인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게 된다. 디자인 전문가를 위한 책이 아니라고 하지만, 디자인에 대해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다 보면 걸리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각각의 주제들은 일상적인 것들이 많아 질릴 때쯤 되면 주위를 환기해 준다. 

80가지 이야기가 쓰여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 생활용품, 트랜드, 음식, 디자인 등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에, 모든 것을 디자이너적인, 디자인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그게 재밌다. 한 가지 사물을 보더라도, 디자이너가 하고 있는 생각은 또 다르다는 게. 그리고 그 디자인에 숨겨진 꼼수를 지나치지 않게 파헤치며, 자기라면 이렇게도 해볼 텐데 하며 팁을 건네는 것도 재밌다.

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 초박형 TV, 로고 등에 관해 이야기하다가도 푸딩, 국기, 라이터, 불꽃놀이, 지팡이, 재떨이, 이쑤시개 등 의외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지팡이를 의료 기구라는 선입관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다리를 다치고 지팡이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떠올리는 지팡이는 지지대 역할을 수행하며, 걷기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팡이를 쓰면서 지팡이의 디자인을 연구하며, 지팡이 마니아가 된다. 지팡이의 형태를 구분하고, 지팡이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도 따진다. 그리고 지팡이가 쓰는 사람에게 주어야 할 기능적인 면을 분석하고, 지팡이가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주목한다. '실용' 때문에 손에 쥐게 됐던 것을 '취미' 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팡이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이야기한다. 그의 집요함이 눈에 띄는 칼럼이다.

비단 지팡이 이야기 뿐만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80가지 소재들은 짧은 글 속에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문장을 허투루 낭비하고 싶은 마음도 느껴지지만, 디자인 하나에 담긴 철학과 기능,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면밀히 분석하는 디자이너 장인다운 정신이 느껴진다. 그는 15번째 이야기에서 한국 디자인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그가 느꼈던 한국 디자인은 불완전 했었나 보다. "어디에도 없는 디자인을 하라."라는 디자인 책임자의 말이 무책임하게 들렸던 것이다. '누구도 본 적 없는 좋은 디자인의 물건'을 만들라는 주문이 비이상적이었으며, 현실적이지 않아 보였던 듯하다. 장사의 도구로서만 디자인을 생각하는 한국 디자인 정신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어 보인다.

각 주제마다 그려진 일러스트도 흥미로웠지만, 디자인 지식이 짧은 나로서는 실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더 많았다. 게다가, 일본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많았고, 디자이너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해서 일러스트로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각각의 것들을 일일이 찾아보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디자인의 꼼수>라는 책을 보며 디자인 정신이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디자인은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시행착오와 조사, 논의, 생각 등을 거쳐 완성되는 것이다. 그가 쓴 이 책을 보면, 그가 대단한 디자이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물이 가진 디자인 꼼수를 말하기 위해, 역사나 기원, 마케팅, 브랜드 부분까지 철저하고 세세하게 말하는 방식에서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전체를 어우르고 모든 것을 종합해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통찰력 있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랄까?

사실, 좀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일본 문화가 익숙하지 않기에, 일본에만 있는 것들에 대한 디자인 이야기를 할 때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에서 일본의 대단함을 느끼기도 했다. 에키벤(일본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이나, 리메이크 백, 쇼쿠간(과자 속에 덤으로 들어 있는 장난감), 미즈히키(선물 포장이나 봉투를 장식하기 위해 색실로 만든 매듭), 와가시(일본 과자의 총칭) 등.

디자인의 숨은 힘은 대단하다. 그걸 한 번에 다 받아들이고 소화시킬 수는 없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결국 알아내야 할 부분임을 느낀다. 만만한 분야는 아니지만, 곁에 두고 공부하면 재밌는 분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모든 디자인에는 꼼수가 숨어 있다. 그 꼼수에 좀 더 진중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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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 그림과 나누는 스물한 편의 인생 이야기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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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는 CEO 이후 이명옥 작가의 최근작,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그림에 대한 많은 책이 나오지만, 알기 쉽고 와 닿게 설명해주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이명옥 작가의 그림 칼럼들은 주제별로 잘 분류하고, 작가의 생각을 설명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희망, 재생, 가난, 떠남, 인생, 행복, 추억, 눈물, 아름다움, 고독, 사랑, 폭력, 모델, 죽음, 용서, 침묵, 명상, 전쟁, 관음, 불안, 늙음. 21가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명화를 설명하는 것도 인상깊지만, 주제에 따라 한국 화가들의 작품과 작품 설명도 인상 깊다. 화가들의 작품과 인생을 설명하며 교훈적인 메시지를 남기는 것도.

가난한 사람들을 그렸던 밀레, 그의 시대에는 그의 그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정부의 숨기고 싶은 치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회의 불안을 조장하는 불온한 그림이라는 보수파의 비난과 반대로 진보진영은 찬사를 보낸다. 그림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 효과, 그것은 화가들이 가진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도 아름답게 미화하는 그림만 좋아했던 당시의 모순을 깨는 용기있는 시도였다.

개인적으로 르누아르 풍의 그림은 좋아하진 않지만, 행복이란 주제에 담은 르누아르의 생각과 그림은 공감할 만 하다. 내가 그림을 그리며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다는 르누아르. 스승이 오직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냉담한 말에 르누아르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선생님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즐겁지 않다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잘 알고 계시잖아요."라고. 그래서 그는 아름답고 착한 그림만 그렸나 보다.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서. 그렇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 그의 그림을 보고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게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그래서였는지 그는 노년에 병이 들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아름답고 고운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폭력적인 김성룡의 그림 <목단꽃>은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그림. 화가들은 원초적인 감정의 메시지를 아주 간결하고 충격적이며 인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생각한 것을 표현하고, 보는 이에게 그 감정을 선명하게 전달한다면 우리는 깨닫게 된다. 잊고 있었던 본성을. '폭력'이란 주제로 그림을 설명한 작가는 사회적 현상과 철학자들의 이론을 빗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데즈먼드 모리스는 인간의 폭력적인 성향을 동물행동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흥미로운 가설을 발표했다. 그는 도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비인간적이며, 반사회적인 행동이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행동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야생에서의 동물은 생존을 위해 본능과 감각을 최대한 활용한다. 어디에 가면 먹이를 찾을 수 있는지, 몸에 병이 나면 어떤 식물을 먹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기에 스스로 구하고 치유한다. 그러나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먹이를 구하고, 병을 치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자연 상태와는 다른 밀집된 공간에서 그들의 본능은 억압되고, 그 결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놀랍게도 야생의 돌물이 하지 않는 자해행위를 하기도 한다.

인간은 도시인들이 휴일이면 야외로 나가고 싶어하는 것과 자연 풍경에 위안을 얻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인간 동물원에서 벗어나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원초적인 갈망이라고 말한다. 그림은 사회적 현상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김성룡의 다른 그림인 폭력적인 소녀를 나타내는 그림과 <소년>이라는 그림도 현대에 비인간적인 문화에 갇힌 청소년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씁쓸하다.

이명옥 작가는 본적이 있고, 다른 책에서 설명했을 법한 그림도 자신만의 해석으로 풀어낸다. 생각하게 하는 설명.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행동을 분류해 풀어낸 그림 설명법. 쉬우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카미유 피사로


작가가 글쓰기 방법에 모토로 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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