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꼼수 Essays On Design 4
사카이 나오키 지음, 가와구치 스미코 그림, 김향 외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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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디자인을 하고 있지도 않지만, 디자인과 밀접한 삶을 살기에 언제부터인가 디자인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디자인은 알면 알수록 어렵다.
뚝딱 하고 태어나는 것인 줄 아는 모든 디자인에는 숨은 노력과 시간들이 숨어있다. 그리고 우리 삶의 전부가 디자인이라는 사실은 디자인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꾸려낸 '사카이 나오키'라는 사람은 디자인계에서 꽤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유명한 사람이든 아니든 방대한 지식과 통찰력에 질려버릴 만큼 디자인적인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게 된다. 디자인 전문가를 위한 책이 아니라고 하지만, 디자인에 대해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다 보면 걸리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각각의 주제들은 일상적인 것들이 많아 질릴 때쯤 되면 주위를 환기해 준다. 

80가지 이야기가 쓰여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 생활용품, 트랜드, 음식, 디자인 등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에, 모든 것을 디자이너적인, 디자인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그게 재밌다. 한 가지 사물을 보더라도, 디자이너가 하고 있는 생각은 또 다르다는 게. 그리고 그 디자인에 숨겨진 꼼수를 지나치지 않게 파헤치며, 자기라면 이렇게도 해볼 텐데 하며 팁을 건네는 것도 재밌다.

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 초박형 TV, 로고 등에 관해 이야기하다가도 푸딩, 국기, 라이터, 불꽃놀이, 지팡이, 재떨이, 이쑤시개 등 의외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지팡이를 의료 기구라는 선입관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다리를 다치고 지팡이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떠올리는 지팡이는 지지대 역할을 수행하며, 걷기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팡이를 쓰면서 지팡이의 디자인을 연구하며, 지팡이 마니아가 된다. 지팡이의 형태를 구분하고, 지팡이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도 따진다. 그리고 지팡이가 쓰는 사람에게 주어야 할 기능적인 면을 분석하고, 지팡이가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주목한다. '실용' 때문에 손에 쥐게 됐던 것을 '취미' 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팡이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이야기한다. 그의 집요함이 눈에 띄는 칼럼이다.

비단 지팡이 이야기 뿐만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80가지 소재들은 짧은 글 속에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문장을 허투루 낭비하고 싶은 마음도 느껴지지만, 디자인 하나에 담긴 철학과 기능,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면밀히 분석하는 디자이너 장인다운 정신이 느껴진다. 그는 15번째 이야기에서 한국 디자인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그가 느꼈던 한국 디자인은 불완전 했었나 보다. "어디에도 없는 디자인을 하라."라는 디자인 책임자의 말이 무책임하게 들렸던 것이다. '누구도 본 적 없는 좋은 디자인의 물건'을 만들라는 주문이 비이상적이었으며, 현실적이지 않아 보였던 듯하다. 장사의 도구로서만 디자인을 생각하는 한국 디자인 정신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어 보인다.

각 주제마다 그려진 일러스트도 흥미로웠지만, 디자인 지식이 짧은 나로서는 실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더 많았다. 게다가, 일본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많았고, 디자이너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해서 일러스트로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각각의 것들을 일일이 찾아보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디자인의 꼼수>라는 책을 보며 디자인 정신이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디자인은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시행착오와 조사, 논의, 생각 등을 거쳐 완성되는 것이다. 그가 쓴 이 책을 보면, 그가 대단한 디자이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물이 가진 디자인 꼼수를 말하기 위해, 역사나 기원, 마케팅, 브랜드 부분까지 철저하고 세세하게 말하는 방식에서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전체를 어우르고 모든 것을 종합해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통찰력 있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랄까?

사실, 좀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일본 문화가 익숙하지 않기에, 일본에만 있는 것들에 대한 디자인 이야기를 할 때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에서 일본의 대단함을 느끼기도 했다. 에키벤(일본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이나, 리메이크 백, 쇼쿠간(과자 속에 덤으로 들어 있는 장난감), 미즈히키(선물 포장이나 봉투를 장식하기 위해 색실로 만든 매듭), 와가시(일본 과자의 총칭) 등.

디자인의 숨은 힘은 대단하다. 그걸 한 번에 다 받아들이고 소화시킬 수는 없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결국 알아내야 할 부분임을 느낀다. 만만한 분야는 아니지만, 곁에 두고 공부하면 재밌는 분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모든 디자인에는 꼼수가 숨어 있다. 그 꼼수에 좀 더 진중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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