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이순원씨의 소설 다섯 편이 들어있다. 그 소설들 속의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참 아프고 외로운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베의 잠』에서는 주인공인 ‘바내’, 『삐비꽃 여인』에서는 ‘나’의 부대 뒷집에 살던 미친 여자 ‘성야’, 『은규』에서는 조각가인 ‘나’와 중국에서 다시 만나 몸을 섞기도 했던, 실종된 여인 ‘은규’,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에서는 오른쪽 팔 하나만 정상이었지 두 다리, 왼쪽 팔이 온전치 못 하고, 지능까지 어린애 수준이었던 ‘수모(氺母) 이세일’이 그렇다. 이순원씨의 작품으로는 전에 ‘19세’라는 장편을 읽은 적이 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실제로 작가 자신의 경험이 소설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작가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 책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인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에도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섞여 있는 것 같아서 참 흥미로운 느낌이 들었다. (작중에서 ‘자신의 글에서 노새나 봉평장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이효석의 영향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나 작가 자신이 전형적인 유교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점에 비추어 이 소설이 상당히 유교적 인간의 도리에 대하여 잘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그랬다.)‘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에서는 도근이 아저씨와 세일이 아저씨가 ‘인간의 도리’라는 측면에서 대비되는 인물로 비추어진다. 둘의 세상을 혹은 세월을 사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리 덜떨어지고 가진 것 없어도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의 몫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에 대하여 깨달았다. 반면에 자기 잘 살겠다고 남의 것을 탐하면서, 인간의 도리조차 저버리며 사는 인간은 얼마나 추악한가에 대하여도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에 세일이 아저씨의 죽음이 참으로 가진 것 없는 자의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허탈하고 쓰린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그 육신이 왠지 숙연한 기분을 느끼게도 하였다.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무언가 여운이 있는 제목처럼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를 떠올렸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이하 생략)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던 것이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존재의 의미와 존엄성이 부여된다는 내용의 시. 이런 심오한(?) 내용의 시가 동화로 장르를 바꾸어 쉽게 풀어쓰인다면 바로 이 '오소리네 집 꽃밭'같은 동화가 나오지 않을까? 몸빼바지를 입은 능청스러운 오소리 아줌마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멀리까지 날아갔다가 집까지 찾아오는 과정에서 본 예쁘게 가꾸어진 꽃들.. 오소리 아줌마는 집에 오자마자 자기 집 꽃밭도 예쁘게 가꾸려고 한다.남편과 함께 꽃밭을 가꾸려던 오소리 아줌마는 자기의 집에도 알고보면 아주 예쁜 꽃들이 많았음을 깨닫게 된다. 조금만 눈을 돌려 꽃밭을 보았더라면 자기 집 꽃밭에도 예쁘고 소박한 꽃들이 옹기종이 모여있음을 알게되었을 것인데 오소리 아줌마는 지금까지 꽃밭에 관심을 가지지 못 했던 것이다.늦게나마 자신의 주위에 것들에 눈을 돌리고 관심을 가지게 된 오소리 아줌마의 깨달음이 참 부러웠다. 내 주위에는 지금도 어쩌면 오소리 아줌마네 집 꽃들처럼 내가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주길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 물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어떤 계기가 생기기를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내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 음반은 올해 초에 선물 받은 것이다. 이 음반을 선물 받고 나서야 임형주라는 이름도 생소한 '팝페라' 가수를 알게 되었다. 노래 듣기를 좋아하지 않던 나였던지라 다른 일들을 하며 별 생각없이 틀어놓고 몇 번 이 음반을 들었다. 하지만 한동안은 이 음반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평소 습관처럼 음반을 틀어놓고 항상 다른 일을 하느라 노래에는 집중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음반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는데 한동한 멍~ 한 기분으로 하염없이 임형주의 목소리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씩 이 음반을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서 마냥 노래(아니..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에 귀를 기울인다. 그때 처음으로 왜 음반 소개에서 임형주의 목소리를 두고 '천상의 목소리'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정말 듣고 있자면 머리 속이 환해지며 내 자신이 하늘 위로 붕~ 뜨는 환상적인 기분이 든다.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노래를 듣고 이런 느낌이 들기는 처음이다. 피곤한 날에도 집에 돌아와서 이 음반을 틀어놓고 임형주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든다. 혹은 일요일 아침 조용할 때 혼자 차한잔 마시면서 이 음반을 듣고 있자면 하루가 기분 좋아진다. 적극 추천하고 싶은 음반이다.(앨범 자켓 사진을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처음엔 무척 헷갈렸다. 하지만 그는 고운 목소리와 예쁘장한 외모를 가진 남자다~!)
김중미씨의 작품은 사회의 어두운 곳을 사실적이면서도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철이와 송이 남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늙고 병드셨고 철이와 송이 남매는 아직 어리다. 6살때부터 철이가 아기인 송이를 돌보았는데 철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할머니께서 일나가시며 송이를 방 안에 넣어둔 채 밖에서 문을 잠그셨다. 하교하고 돌아온 철이가 잠긴 방문을 열고 들어가보면 어린 송이는 단칸방에서 혼자 종이 조각을 씹어먹으며 놀고 있었다. 어린 송이가 혼자 방에서 종이 조각을 먹고 있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 책의 제목인 '종이밥'이 무척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이런 송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송이의 가족은 송이를 절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빨간색 푸우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는 송이. 그런 송이가 안쓰러워 자신이 오랫동안 아껴서 모아둔 돈을 모두 털어 푸우 가방을 사주는 어른스런 오빠 철이. 몸이 편찮아서 병원 신세를 지시면서도 손녀의 가방을 사주기 위해 시장에 장사를 나가시던 마음 여린 할아버지. 병약한 할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시립 병원 청소일을 하시는 아이들 앞에서는 늘 강하게 행동하시는 할머니. 이 가난하고 힘없는 가족은 송이를 절로 보내기 전에 사진관에서 가족 사진을 찍는다. 동화 속의 사진을 보면 자신이 절로 보내진다는 것을 모르는 송이만이 신나는 표정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철이는 모두 시무룩한 표정이다. 모두들 엉뚱하지만 귀엽고 애교많은 송이를 절로 보내기 싫은 것이다. 특히 철이는 늘 자신 곁을 찰거머리처럼 붙어다니며 재잘대던 어린 동생이 떠난다는 것을 마음 아파한다.무거운 내용이었지만 어두운 환경속에서도 시종일관 귀엽고 해맑던 송이의 모습이 이 동화를 읽는 동안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너무 사랑스런 송이의 모습에 다시 할머니가 송이의 손을 이끌고 산을 내려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갈아 입지도 않을 옷을 많이 넣어가느라 새로산 가방이 망가졌다고 투덜거리는 송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랑스런 송이가 있고, 그런 송이를 옆에서 지켜주려는 오빠가 있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한 부유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가난한 이 가족은 언제나 따뜻하고 풍요로울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무당인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송화라는 여자아이다. 할머니는 12살에 19살인 남편에게 시집을 와 17에 아이를 낳는다. 봉동이라는 이 아이는 송화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무당인 어머니를 원망하며 집을 나가버린다. 그리고는 어느날 자신의 어머니 집 앞에 갓난아기인 송화만 내던져두고 소식이 없다. 그런 아들을 기다리는 송화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게 그려져있다. 엄마, 아빠 얼굴도 모르고 자란 송화 역시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이 책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송화의 친구인 영분이 역시 마찬가지로 불우한 처지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할머니, 송화, 영분이가 가진 아픔이 아련하게 느껴져 나 역시 마음이 아파왔다.책을 읽으며 어른인 나 역시 잘 이해 안 가는 우리 말이 몇 눈에 띄어서 놀라기도 했다. 내용이 어른인 내가 읽어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송화 할머니가 겪었던 6·25니, 이산가족 이야기는 그다지 마음에 깊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아픔을 아련히 느낄 수는 있었다. 직접 겪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이것.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핏속에 그런 아픔의 기억이 유전적으로 흐르고 있나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아이들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나처럼 이 아이들도 막연히 슬픈 마음을 가질 것 같다. 이제는 서서히 잊혀져가는 이야기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들. 물론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아니었지만 이렇게라도 동화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송화라는 한 어린 아이에게는 해피엔딩이었을지 모를 이야기가 송화 할머니를 통해 미련을 남기고 끝이 난다. 하늘에서 모든 것들을 보고 있는 달님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알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도 이 동화를 통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느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