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소침한 기분이 들 때면 옛날에 있었던 일이나 내가 재미있어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이룬 작은 업적들까지. 그리고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극복해가면서 갖가지 일을 해냈어. 세세한 사항까지 꼼꼼히 챙겨서 말야'라고 나 자신을 타이른다.

 

에스메이, 당신은 대단히 재능있는 선생님이에요. 잊지 말아요. 무조건 가르치려고 하면 안돼요. 가르침을 강요하는 대신, '배우'가 되어야 해요. 매일 매일 새로운 역할에 뛰어드는 배우 말이에요

의사가 환자의 몸을 치료하듯이, 배움 앞에 가로막힌 장애물이 무엇인지 아이들을 절망으로 빠뜨리는 게 무엇인지 진단을 내려야 해요. 처음부터 장애물이 보일 리 없으니, 보일 때까지 열심히 노력해야죠.

아이들의 나쁜 행동은 참을 수 있는 한, 최대한 오래, 무시하라. 조용한 말투를 유지하라. 부드러운 목소리가 큰 목소리가 훨씬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학부모와 면담을 할 때는 날벼락부터 떨어뜨리지 말고 우선 긍정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라. 질문한 뒤에는 아이가 대답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라.

내 앞에 모인 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 내 운명이야. 아이들이 5학년이 되도록 자라나는 동안 나는 교생 실습을 했고, 마침내 우린 만났어. 바로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우리 211호 교실에서는 학과목 이름을 구식으로 부르지 않고, 수학은 '퍼즐풀기', 과학은 '미친 과학자의 시대', 사회는 '시간 여행과 세계 탐험' 언어 연습은 '언어 예술' 읽기는 '자유 읽기 시간'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은 이미 자기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선입견이 가득 찬 상태로 내게 왔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과목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이름을 바꿔 부르면,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퍼즐 풀기에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에게 엄포를 놓았으니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야 겠지? 그래, 내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애들이 다시는 내 말을 믿지 않을거야. 규율도 없어질테고, 그런 상태에서 내가 뭘 가르칠 수 있겠어?

아이들과의 믿음이 와장창 깨져버린 것 같은 기분. 너무 실망스럽고 화가 치민다. 아이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야 했던 하루. 아, 하루가 왜 이렇게 긴 걸까?

뭘 얻겠다고? 뭘 얻겠다는 거야! 너희는 지금 교육을 받고 있어, 지식을 얻고 있다구. 바로 그게 너희가 받을 상이야! 하지만 미스 클라크한테 이렇게 못되게 굴었으니 너희는 교육받을 자격도 없어!

우리가 맡은 일은 아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일이 아니에요. 그들이 영리해지도록, 현명해지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이죠.

난 널 사랑하지만, 네가 선택하는 것 전부를 좋아하진 않아.

사람들이 무지해서 너희들이 대접받고 싶은 방식으로 대접하지 않을 때 조차도, 너희들은 자기가 대접받고 싶은 그대로 다른 사람들을 대접해야 해. 바로 그게 어려운 부분이지. 멍청한 사람들이나 무례한 사람들을 상대할 때도 이 '황금률'에 따라야 해. 그들이 황금률에 따르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를 그 사람들 수준으로 낮춰서는 안돼.

언제 어디서 돌발 행동을 저지를지 모르는 '시한 폭탄들'. 나 역시 이들을 겁내야 하는 것일까, 아니야, 말콤 엑스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우리를 두려워할 이유가 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참을 울고 났더니 이건 '절대 나답지 않은 비겁한 타협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는 안돼. 젊을 때 짓밟히면, 짓밟힐 때마다 굴복하면, 평생 짓밟혀도 무신경하게 넘기는 그런 인간이 될거야. 안돼 에스메이!

세상에, 교사라는 사람들이 어린이날을 지루할 대로 지루하고 의미없는 날로 만들 '음모'나 꾸미고 있다니. 회의란 게 늘 그렇듯, 매일매일 한가지 테마를 이리저리 빙빙 돌린다. 어떤 교사 회의나 천편일률적으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똑같이' 만들고 '똑같은' 일을 하게 만들까, 그것만 의논한다. 어떤 의사 일정이든 지겹도록 똑, 같, 다.

나는 우선 아이들을 여러 그룹으로 나눈 후, 각기 다른 역할을 맡긴다. 먼저 '의논 반장'은 책에 관련된 기본적인 질문을 만들고, '문학 권위자'는 눈에 띄는 부분을 소리내어 읽어준다. 또 '언어를 사랑하는 이'는 그 부분에 나온 어휘 중 가장 어려운 것을 골라서 의미를 정의하고, '예언자'는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예상해본다. 그리고 '과정 점검자'는 모든 논의를 통합하고, 구성원들의 참여도를 점검한 다음, 그날 밤 몇 페이지나 읽어올지를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진행 과정은 각자 노트에 기록해놓을 것. 각 그룹은 20분간 저마다 맡은 역할에 따라 독서 회의를 진행하며, 차례를 정해 돌아가면서 '말하는 돌'을 갖는다. 말하는 돌은 내가 갖고 있는 광석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돌들이다. 독서 회의 중에는 말하는 돌을 가진 사람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효과적으로 독서 회의를 진행햐애 다음 날 먼저 예쁜 돌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저마다 열심히 회의에 몰입하곤 한다. 그날 가장 잘한 그룹을 발표하는 시간에는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입만 쳐다본다. 그렇다고 마냥 자유롭고 즐겁게 아이들을 풀어주는 건 아니다. 테스트 날짜가 엄연히 정해져 있어서, 그날까지는 맡은 일을 책임지고 끝내야 한다. 각 그룹은 책 내용을 주제 삼아 발표회도 준비해야 한다. 입체 모형을 만들거나, 랩을 읊으며 힙합 춤을 추거나, 드라마처럼 내용을 각색해서 장면을 실감나게 연출하는 등 방법은 어떤 것이든 좋다. 단, 결말을 말하지 않는 것이 원칙

어떤 사람이 어떤 교사가 될지 테스트해 볼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은 테스트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과 마음가짐을 얼마나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지 테스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자기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히 선생마다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기득권을 누리며 일하고 있다. '특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초임 교사로서는 드물게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인정받으며 일한다고 해서 반드시 교사로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쎄,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인정받으며 일한다고 해서 교사가 확고한 책임감을 갖게 될까? 그렇다. 인정받으면서 일하면 더 열심히 가르치고 싶어지고, 없던 책임감도 갑자기 불끈불끈 솟는다. 교육이란 참으로 은밀하고도 은밀한 비밀이노니.

흑인이라서 원래 그렇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문제는 피부색이 아니라 가난이에요. 또 아이에게 아무 기대도 하지 앟는 어른들 탓입니다. 자기 선생님한테 '이런, 썅'이라고 욕설을 퍼부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현실때문에 아이들이 점점 더 그렇게 되는 겁니다. 어린이는 좋든 나쁘든 어른들의 기대에 맞춰 자라니까요.

인간의 예측할 수 없는 그 아둔함, 그리고 아동 학대가 오늘따라 유난히 언짢게 느껴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린애 같은' 어른들이 너무 많다. 어른들도 인간인 이상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나약한 인간이기에 사랑에 목말라한다. 잘못이 사람을 허약하게 만드는가? 떨치기 힘든 욕구가 사람을 더 허약하게 만드는가? ....... 어쩌면 온종일 교실에서 유일한 어른으로 지내야 하는 부담감때문에 자꾸만 더 약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괜찮아요, 선생님. 울면 어때요? 선생님도 감정이 있다는 걸 아이들도 알아야 해요. ' 존스 선생님은 몇 아이가 수업 시간에 손가락으로 욕을 했다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아이들은 왜 모르는 걸까. 선생님도 상처받기 쉬운 인간이라는 걸.....

난 아이들 한명 한명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일을 걱정하지만, 결코 내가 발벗고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려 하거나 간섭하진 않는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너무 관망하는 태도를 취해선 안되겠지만, 어쨋든 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아이들을 대한다. 나는 그냥 아이들이 어린 시절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도록 내버려둔다. 내가 그 시절을 살아내고 이겨냈듯이, 아이들도 스스로 겪어낼 시간이 필요하다. 내 역할은 시간이 좀 흐른 뒤, 두려움을 고스란히 껴안고 끝까지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든 그것을 훌륭히 극복하든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충고하는 것뿐이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힘겹고 무겁다. 먼 길을 걸어왔지만 아직도 갈 길은 보이지 않는 아득함. 난 몹시 지쳤고, 매일매일이 버겁다. 누군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셨어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나는 날마다 31일을 산다. 서른한 명의 아이들과 저마다 다른 하루를 산다. 루벤과는 좋은 하루를 보냈고, 빌리와는 힘든 하루를 보냈고..... 사람들은 교사라는 직업. 특히 가르치는 일을 권할 때 꼭 정신적인 보상이니 만족감이나 하는 말들을 빼놓지 않는다. 물론 그런 부분도 분명히 있긴 하지만, 가끔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이 낯선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 혹은 몽유병에 걸려 하염없이 돌아다니는 것, 혹은 어릴 때 막연하게 느꼈던 두려움과 비슷하다는 사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또 아이들이 꽉 들어찬 교실 앞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기분이 어떤지, 반항하는 아이들과 하나가 되오 뒹굴어 대는 기분이 어떤지,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침 뱉는 아이들으 ㄹ떼어 놓을 때의 긴장감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선생님 미워!'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널 사랑한단다'라고 말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교육학 시간마다 "여러분은 아이들에게 모든 사람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친절한 상담자, 때로는 자상한 어머니, 때로는 편안한 친구..."등등의 멋있는 이야기만 주워섬겼을 뿐. 되어주어야할 대상은 왜 그리도 많은지. 경험이 많ㅇ느 고참 교사들일수록 더더욱 자신있게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난.........

하지만 난 엄마 노릇을 하고 싶지 않다./난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이니까/난 엄마 역할을 해줄 수도 없다/난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이니까/아이들에겐 엄마 노릇을 해주는 선생님이 아닌, /진짜 엄마가 필요하다/그들에게 진짜 선생님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겐 일할 권리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 그 자체를 위해 일해야 한다. 우리에겐 일의 성과를 누릴 권리가 없다. 일의 성과를 향한 열망이 절로 일하는 동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태함에 굴복하지 말라. 결과에 조바심치며 행한 일은 조바심없이 몰두해서 평온하게 행한 일보다 훨씬 못한 법. 결과에 연연하며 이기심을 품고 일하는 사람은 비참하노니.-바가바드 기타(힌두교의 3대 경전 가운데 하나)중에서

초임 교사와 경험 많은 교사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요? 초임 교사는 '내가 어떻게 해나가고 있나?'라고 묻는 반면, 경험 많은 교사들은 '아이들이 어떻게 해나가고 있나?'를 묻는다는 거에요.

서른한 명의 아이들. 서른한 번의 기회, 서른한 개의 미래, 서른한 개의 희망, 서른하나의 각기 다른 인생 중 일부분은 분명 '내 것'이라는 믿음이 피어오른다. 그들이 어떤 존재가 된다면 곧 내가 그 존재가 되는 것. 무조건 받기만 한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들이, 무조건 내가 도와줬다고만 생각했던 아이들이 사실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매일 수십개의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최선을 다해 어떤 일을 해내는 것이야말로, 교사로서 품을 수 있는 최상의 희망

선생,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리가족 노릇을 해야하는 괴로운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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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2-2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스메이 선생님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ㅋㅋ

젊은느티나무 2004-02-20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스메이의 일기는 정말 기대이상이네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줘요..^^*

마태우스 2004-02-2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그래요.

ceylontea 2004-02-23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읽어보고 싶네요.

젊은느티나무 2004-04-2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