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되었네요
다행히 엄마가 잘 적응해서 지내세요
그런데 한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요
엄마를 만나러 가면 엄마한테서 냄새가 나요
거기서는 목욕을 일주일에 한 번만 시켜준대요
이 더운 여름에 일주일에 고작 한 번이라니,
다른 곳도 그런가요?
네, 보통은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들었어요
두 여자는 그렇게 말을 주고받았다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엄마는 여름만 되면 땀을 됫박으로 흘린다
요양원에 가고 싶어하는 노인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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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참외


쇼핑몰에서 못난이 참외를 주문했다
정말로 못난이 참외가 집으로 왔다
너무 작고 너무 익은
참으로 못난 참외들이 잔뜩

장사꾼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내다 팔지도 못할 찌끄러기 참외를 파는 것
그걸 사는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다
진짜로 못난이를 보내줄까?
좋은 거 몇 개는 보내주겠지

하지만 매우 정직한 장사꾼은
참말로 못난이 참외를 한가득 보내준다
내일이면 익어 문드러질 그런 못난이들을

다 인생의 경험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못난이 참외가 물크러지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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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狂人)의 시


그는 40대 후반의 남자로 보였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해장술을 들이켰다
오전 10시, 빛바랜 퍼런색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 근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시킨다

시를 써야 할 시간

이 찌끄러기 같은 것들아
너희들이 인생을 알아?
그러면서 무슨 시를 쓴다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시
자비 출판(自費出版)으로 4권의 시집을 냈지만
아무도 그를 시인으로 불러주지 않았다

나는 그가 쓴 시를 찬찬히 읽다가
금세 지겨워져서 그만두었다
그는 재능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어중간한 재능
후미진 이발소에 걸린 유화(油畫)같은 시

장맛비가 예고된 흐린 뒷골목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에는
소주 세 병과 마른오징어 한 마리
싸구려 월세방의 침대에 앉아서
경건하게 시상(
)을 다듬는다

꿀꺽,
시는 그렇게 그의 인생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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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옥수수


아주 맛있는 옥수수야
이게 찰옥수수 맞지?
난 어렸을 적부터 옥수수를 좋아했지
정말 맛있구나
할머니는 텃밭 가득 옥수수를 심으셨어
내가 옥수수를 좋아했으니까
아, 그런데 할머니도 돌아가셨을까
돌아가셨겠지, 그래, 돌아가셨을 거야
하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

이제 기억들은 검은 물에 쓸려가지만
여름, 옥수수가 빼곡히 심어진
텃밭이 식탁에 주단처럼 깔리고
엄마의 건너편에는 작은 체구의
새하얀 할머니가 앉아있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 난
할머니가 보고 싶구나,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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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들


옥수수 껍질을 벗기다가
하얗고 통통한 벌레를 보았다
아주 빠른 판단
손가락으로 꾹 눌렀을 때
물크러진 벌레의 살점
한 점의 미안함이 있다
너도 먹고 살려고 거기에
있었을 뿐인데

어스름 저녁
낡은 방충망을 뚫고
검은 모기 한 마리
부엌을 질주한다
다음 날 오후,
나는 하얀 커튼 사이
모기의 다리를 잽싸게 잡아챘다

죽어 마땅할 벌레
죽여야만 하는 벌레
죽일 수밖에 없는 벌레
죽이는 마음을 흔드는 벌레
죽이고 나서 한참은 생각나는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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