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狂人)


그는 40대 후반의 남자로 보였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해장술을 들이켰다
오전 10시, 빛바랜 퍼런색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 근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시킨다

시를 써야 할 시간

이 찌끄러기 같은 것들아
너희들이 인생을 알아?
그러면서 무슨 시를 쓴다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시
자비 출판(自費出版)으로 4권의 시집을 냈지만
아무도 그를 시인으로 불러주지 않았다

나는 그가 쓴 시를 찬찬히 읽다가
금세 지겨워져서 그만두었다
그는 재능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어중간한 재능
후미진 이발소에 걸린 유화(油畫)같은 시

장맛비가 예고된 흐린 뒷골목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에는
소주 세 병과 마른오징어 한 마리
싸구려 월세방의 침대에 앉아서
경건하게 시상(
)을 다듬는다

꿀꺽,
시는 그렇게 그의 인생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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