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蔘鷄湯)


냉동 삼계탕을 주문했다
봉지째 데워서 먹을 수 있는 간편식
얼어버린 국물에 찹쌀밥 한 줌
내 주먹 크기의 작은 닭 한 마리

저 정도의 닭은 양계장에서 얼마나
키운 후에 도살되는 것일까
2주 정도? 아니면 20일?
배급기가 쏟아내는 사료를
꾸역꾸역 먹은 닭이 비좁은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다 그렇게 나에게로 왔다

십자가 모양으로 다리가 꺾인 닭은
참회하는 죄수가 되어 누워있다
타자(他者)의 살과 뼈를 취해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육식의 딜레마
고기맛에 중독된 사람들의 머릿속,
공장 닭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상상하는 능력은 거세되었다

인공육(人工肉)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므로
입안에서 서걱거리는 죄책감을 삼키고
뚝배기의 어린 닭 다리를 편하게 풀어주었다
가스레인지의 파란 불꽃이
타닥타닥 경쾌한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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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리스


버려진 매트리스는 장맛비에 퉁퉁 불었다
빗물로 배가 불룩해진 매트리스
+7000, 폐기물 수거업자는 급하게 휘갈겨 쓴 숫자를 남겼다
이 매트리스를 수거하려면 7천 원이 더 필요하다는 뜻
매트리스의 주인은 일주일째 모른 척하고 있다

사람들의 뜨악한 눈길을 받으며
저렇게 자신의 몸뚱이를 드러내는 일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냐
나는 매트리스를 보며 기이한 연민을 느낀다
흉물스럽고 외롭고 괴로운 매트리스

매트리스는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한 제품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어딘가에는 버려진
매트리스의 거대한 무덤이 있을 것이다
뒤틀린 몸뚱이들이 엉키고 싸우며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그런 곳일지도 몰라
합성섬유와 솜덩어리는 갈가리 찢길 것이며
스프링은 튕겨지며 용광로에 갈 수도 있겠지
그 누구도 매트리스의 최후를 상상하지 않는다
매트리스의 고통을 헤아리지도 않는다

불어터진 매트리스의 허리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물
이제, 사랑은 더러운 추억이 되어버렸으며
죽음은 빨리 치워버려야 하는 물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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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


엄마의 집 찬장에서 다시마를 발견했다
몇 년을 묵은 것 같은, 아주 잘 마른 다시마
나는 다시마를 물에 불린다
푸른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기 전의 그 바다
불린 다시마에다 집간장과 식초, 소금,
그리고 매실 원액과 청주를 넣는다
정해진 비율 따위는 없다
레시피 같은 것을 무시하므로 내 요리는
변화무쌍하며 늘 새로움이 있다, 고 생각한다

엄마의 다시마는 원래 국물을 내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제 나의 냉장고에서 다시마 절임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구부러진 다시마의 여정
엄마는 이 다시마를 언제 사놓았는지 알지 못한다
오늘은 나의 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에게는 시어머니가
되는 우리 할머니가 불쌍하다고 눈물을 지었다
그런데 엄마는 할머니와 늘 불화했다

어디에 계시는 거니? 얼마나 외로우실까?
엄마, 할머니는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셨어

엄마의 머릿속에서는 뺄셈이, 그리고 나서는 덧셈,
곱셈과 나눗셈이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무너져 내리는 기억의 방주(方舟)
나는 방주에 난 커다란 구멍에 내 주먹을 넣어본다
어떤 기억의 물은 흙색이고 어떤 기억의 물은 청색이다
흙색의 물은 지루하며 청색의 물은 가엾다

요새는 왜 그렇게 흰색 차들이 많으냐?

모두들 흰색의 세계로 도망치고 싶은 것이겠죠
나는 같은 대답을 매일 엄마에게 들려준다

다시마의 세계는 갈색이고 눈물이며
그래서 짠맛이 난다 엄마의 잃어버린 바다와
다시마가 끈적거리는 시간을 천천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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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游泳)


지렁이는 신나게 헤엄을 치고 있다
장맛비가 마련해준 아스팔트 웅덩이
그들의 행복한 비명은 사방으로 퍼져
나는 조심스럽게 유영(游泳)의 우주를 건너간다
비록 누군가의 부주의한 걸음걸이와
차의 뒷바퀴에 으스러질 휘발성의 행복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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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끼


무지근한 통증은 너와 함께 온다
나는 네가 절대로 그립지 않다
너 없이도 잘살고 있다 하지만
너의 부드러운 눈길을 기억한다
아주 약한 안약에서부터 센 안약까지
차례대로 넣어본다 나는 너를 막아야 한다

나은 것 같다가 다시 아프고 가렵다
나는 조금씩 끈기를 잃어가고 있다
너는 물기를 머금은 염화칼슘처럼 끈덕지게
내 눈가를 파고들며 묻는다 이길 수 있니?

곪아서 터지게 내버려둘 자신이 없으므로
열심히 눈을 닦아주며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대로 그렇게 잠들어 줄 수 있다면
그래, 우리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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