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배니싱 포인트(1971)'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거대한 휠 로더(Wheel Loader) 2대가 도로를 봉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경찰과 순찰차들이 집결한다. 마을 주민들은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하나둘씩 나온다. 캘리포니아의 외딴 시골 마을 Cisco, 그곳 도로변에 모인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헬기의 추적을 받는 흰색의 자동차 한 대가 등장한다. '소실점(Vanishing Point)'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그 차, 크라이슬러의 1970년형 Dodge Challenger R/T이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의 화면이 멈추면서 영화는 이틀 전으로 돌아간다. 과연 그 차를 운전하는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는 경찰의 추적을 받는 신세가 되었을까? 관객은 플래시백(flashback)을 통해 남자의 지난 여정을 복기하게 된다.

  리차드 사라피안(Richard C. Sarafian) 감독의 1971년작 영화 '배니싱 포인트'는 몬티 헬만 감독의 '자유의 이차선(Two-Lane Blacktop, 1971)과 같이 언급되곤 한다. 두 영화 모두 자동차가 주요한 소재이며, 그것을 통해 1970년대 미국의 내적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치 영혼의 쌍둥이 같은 이 두 영화 가운데 그럼에도 어느 영화가 더 본질적으로 미국의 내면을 향해 직진하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배니싱 포인트'라고 답하겠다. 인물들의 대화는 지극히 절제되어 있고, 관객들은 오로지 자동차와 속도에 자신을 내맡기며 그것이 주는 의미를 성찰한다. 어떻게 무지막지한 속도로 내달리는 차를 보며 무언가를 성찰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고 물을 수 있다. 바로 그것을 사라피안 감독은 '배니싱 포인트'에서 구현해낸다.

  코왈스키(베리 뉴먼 분)는 자동차 배달 기사이다. 금요일 저녁, 이제 막 일을 끝내고 온 그는 쉴 새도 없이 새로운 일감을 맡는다. 덴버에서 샌프란시스코의 고객에게 Dodge Challenger를 월요일까지 전해주기 위해 그는 빨리 길을 나서야만 한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것은 Benzedrine(각성제 암페타민) 알약이다. 길을 떠나면서 코왈스키는 딜러에게 내기를 건다. 월요일이 아니라 하루 앞선 일요일에 인수를 완료하겠다는 것. 그가 내기에게 이기려고 한다면 과속은 필수이다. 그렇게 코왈스키의 무한질주 자동차 배송극이 시작된다.

  고속도로 경찰들이 가만히 구경만 할 리가 없다. 놀라운 운전 실력과 과단성으로 코왈스키는 순찰차들을 따돌리며 농락한다. 그의 질주본능이 맹렬해질수록 추격대의 규모는 점차 불어난다. 코왈스키를 잡기 위해 도로에는 전자 탐지선이 설치되고, 헬기가 뜬다. 무슨 대단한 돈이 걸린 내기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는 이 미친 질주를 시작한 것일까? 관객은 경찰들의 대화, 코왈스키의 회상 장면을 통해 그의 과거에 대한 단서를 조금씩 얻는다. 무공훈장을 받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 경찰, 카 레이서, 그리고 이제는 자동차 배송일을 하고 있다.

  사라피안 감독은 코왈스키의 여정을 통해 1970년대 미국 사회를 조망한다. 네바다주의 사막을 지나면서 코왈스키는 다양한 부류의 인간군상을 만난다. 무리를 지어 노래를 부르는 오순절 교회파의 신자들, 방울뱀 사냥꾼, 히피족, 느물거리는 악당 게이 커플이 그들이다. 거기에 코왈스키의 길동무가 되어주는 지역 라디오 방송 흑인 DJ 수퍼 소울(Super Soul)도 있다. 코왈스키의 질주극에 매료된 그는 경찰 무선을 도청하면서 방송을 통해 코왈스키를 돕는다. 결국 분노한 백인 순찰대원들에게 수퍼 소울이 가혹하게 린치를 당하는 장면은 1960년대 미국을 달구었던 인종 차별의 한 단면을 재현한다.

  "미국의 마지막 영웅, 그의 속도는 영혼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제 문제는 언제 그가 멈추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를 멈추게 하느냐입니다."

  수퍼 소울은 코왈스키를 미국의 '영웅'으로, 추격하는 순찰 대원들은 '나치'로 지칭한다. 정말로 코왈스키는 영웅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는 영웅이 맞다. 반영웅(反英雄, antihero)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코왈스키의 삶은 전역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다. 오직 '속도'에만 사로잡힌 그는 거의 잠도 안자고 도로를 질주한다. 거기에는 어떤 목적도 의미도 없다. 사라피안은 흰색 Dodge Challenger가 펼치는 예술같은 스턴트와 무시무시한 속도를 순도 100%로 잡아낸다. 관객들은 코왈스키와 함께 1970년대 광폭하게 날뛰는 미국 사회의 심장부로 직진한다. 1960년대를 관통했던 흑인 민권 운동, 1969년의 Woodstock과 히피 문화의 폭발, 패색이 짙어가는 베트남전과 반전 시위까지 1970년대에 들어서면 미국인들은 그 모든 상황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낀다. 어떤 의미에서 코왈스키의 '질주'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미국 사회 내부의 본능적 반응과 맞닿아 있다.

  마침내 코왈스키는 종착지에 다다른다. 거대한 휠 로더와 헬기, 경찰들이 드글거리는 그곳에 그가 빠져나갈 틈은 없다. At full speed, 그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가속 페달을 밟는다. 그것은 자살인가? Vanishing point, 분명히 코왈스키는 자신을 매료시킨 속도와 함께 사라졌다. '소멸'이 '패배'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물질계에서나 적용된다. 코왈스키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가로막는 휠 로더의 틈 사이로 쏟아지는 환상의 빛이었다. 어쩌면 그는 그 '빛'을 통해 다른 차원의 세계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코왈스키가 유일하게 의지한 '속도'만이 그의 고통을 잊게 할 수 있었다. 죽음으로써 그는 자신을 옥죄는 속도에의 열망에서 비로소 해방된다. 사라피안 감독은 코왈스키의 여정을 통해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 미국 사회의 무기력함과 상실감을 담아낸다. 가스펠과 록 음악을 비롯해 컨트리 음악까지 다양하게 선곡된 노래들은 '배니싱 포인트'에 흩뿌려진 보석들과도 같다. 


*덧붙이는 글: '배니싱 포인트'의 원래 촬영분에는 스튜디오의 뜻에 따라 최종 삭제된 8분 가량의 영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코왈스키가 시스코에 도착하기 전날 밤, 그는 묘령의 여인(샬롯 램플링 분)을 차에 태워준다.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코왈스키가 길에서 얼마나 기다렸느냐고 묻자 '너무나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다'고 말한다. 그 분량이 삭제된 것에 사라피안 감독은 늘 불만을 토로했는데, 그것은 죽음의 천사를 의미하는 여자의 등장이 영화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이 있어야만 영화가 완전해진다고 믿었던 감독과는 달리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사는 과감히 잘라 버렸다(이 장면은 유튜브에서 따로 볼 수 있다). 삭제된 8분의 영상을 보고 나서, 나는 스튜디오의 판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은 영화 전체의 균형을 흐트러뜨리며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관객에게 그 장면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motorious.com



***몬티 헬만(Monte Hellman) 감독의 '자유의 이차선(Two-Lane Blacktop, 1971)' 리뷰

https://blog.aladin.co.kr/sirius7/1258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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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평가된 1970년대의 범죄 스릴러 영화 두 편;

'Charley Varrick(1973)'과 'Straight Time(1978)'


1. 지적 액션 스릴러의 모범, Charley Varrick(1973)

  은행 강도가 은행을 털었다. 정신없이 돈뭉치를 담아왔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훔친 돈의 액수가 어마어마하다. 너무 좋아서 환장하겠는 동료 하먼과는 달리, 영화의 주인공 찰리 베릭은 근심한다. 자신들이 턴 시골 은행에 그렇게 큰 돈이 있는 것이 수상쩍다. 분명히 구린 냄새가 나는 돈이고, 그 돈 때문에 자칫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돈 시겔(Don Siegel) 감독의 1973년작 'Charley Varrick'은 그렇게 훔친 돈 76만 달러를 두고 마피아와 늙은 강도가 벌이는 한 판 승부를 그린다. 주인공 찰리 베릭 역은 월터 매쏘(Walter Matthau)가 맡았는데, 그가 누구냐 하면 1993년작 '개구쟁이 데니스(Dennis the Menace)'에서 꼬마 데니스에게 번번이 골탕먹는 영감님으로 나왔더랬다. 그런 그의 필모그래피에 '찰리 베릭'과 같은 월척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역을 거절하자 매쏘에게 돌아간 행운인 셈인데, 정작 매쏘는 내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큰둥하기는 이스트우드의 캐스팅을 원했던 돈 시겔 감독도 마찬가지. 감독과 배우의 삐그덕거림에도 이 영화는 꽤 좋은 만듦새를 갖고 있다.

  이제, 어떻게든 자기들 돈을 되찾으려는 마피아 일당과 그 돈을 필사적으로 빼돌리려는 강도들과의 싸움은 불가피하다. 원래 4명이었던 일당은 1명이 현장에서 죽고, 베릭의 아내가 도주 중에 총격으로 죽어서 이제 두 명이 남았다. 베릭은 몇 년 동안 돈을 쓰지 않고 은신해야만 마피아의 추적을 피할 수 있다고 하먼에게 말하지만, 하먼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혈기에 넘치는 경솔한 하먼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베릭은 이때부터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마피아가 보낸 암살범 몰리(조 돈 베이커 분)의 그림자가 가까이에 드리워진다.

  자, 여러분이 속시원한 범죄 스릴러 액션물을 보러 영화관에 갔다고 하자. 그런데 정작 기대한 총격전이나 추격전은 별로 나오지 않고, 주인공은 어디론가 쏘다니며 뭘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성미 급한 사람은 이런 영화를 보다가 영화관을 박차고 나올지도 모른다. 개봉 당시에 '찰리 베릭'을 보던 관객들도 그랬던 모양이다. 비평적으로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왜 좋은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는가? 그런가 하면 작품성이 떨어지는 어떤 영화들은 큰 수익을 내기도 한다. 내게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는데 '7번방의 선물(2013)'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된 것에 대해서이다(덧붙여 2006년작 '미녀는 괴로워'도 함께).

  그 수수께끼를 푸는 것에 비해서 '찰리 베릭'의 흥행 실패 이유를 찾는 것은 간단하다. 관객에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거의 정보를 주지 않고 답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찰리 베릭은 자신의 완벽한 도주극을 실현하기 위해 계획에 따라 착착 움직인다. 치과에 잠입해서 자신과 아내의 치아 사진을 빼내온다든지, 하먼의 운전면허증으로 위조 여권을 만든다든지 하는 행동들이 그렇다. 그런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베릭의 행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찰리 베릭'이 보여주는 느리고 치밀한 지적 액션 스릴러는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는 것에 한계가 있다. 아마도 요즘과 같이 OTT(over-the-top media service)가 활성화된 시대라면, 영화관 상영을 짧게 하고 나중에 OTT로 풀어서 추가 수익을 노려보기에 알맞은 작품일 것이다. 불운하게도 VHS 보급 초창기 시대에 '찰리 베릭'은 쉽게 잊혀졌고, 과소평가되었다. 그럼에도 '찰리 베릭'의 내러티브는 잘 짜여져 있으며, 초반부 차량 도주 장면을 비롯해 경비행기를 이용한 액션 장면은 매우 볼만하다. 벽돌을 쌓아가듯 결말에 이르기까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찰리 베릭이라는 인물이 가진 캐릭터적 특성을 극대화시킨 것이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명불허전의 더스틴 호프만, Straight Time(1978)

  '찰리 베릭'과 같이 저평가된 1970년대의 범죄 스릴러 영화로는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Straight Time(1978)'을 들 수가 있다. 원래 이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의 감독 데뷔작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촬영이 시작되고 단 하루만에 호프만은 현장에서 배우와 감독직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타 감독으로 들어온 이가 호프만과 친분 관계가 있었던 Ulu Grosbard였다. 

  맥스 뎀보(더스틴 호프만 분)는 6년 동안 지냈던 감옥에서 이제 막 출소했다. 맘 잡고 착실하게 살아보려는 맥스, 그는 직업 소개소에서 캔 제조 공장 취업 제의를 받는다. 직업 소개소 직원 제니(테레사 러셀 분)와 데이트도 시작하면서 맥스에게도 보통 사람의 삶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만하고 비열한 가석방 담당 공무원 프랭크는 맥스의 발목을 붙잡는다. 친구 윌리가 맥스의 모텔 방에서 마약 투약을 한 흔적이 프랭크에게 발견된 것. 구치소에 갔다가 겨우 풀려나온 맥스는 이전에 익숙했던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 간다. 결국 동네 잡화점 강도를 시작으로 옛 동료와 함께 보석상 털기에 나서는데...

  'Straight Time'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랬다. 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범죄자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강력범이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일반인으로의 갱생을 포기하고 다시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는 맥스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 몸에 딱 맞는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걸림이 없다. 맥스는 범죄에 최적화된 사람처럼 보인다. 전당포에 침입해 총기를 탈취하는 장면을 비롯해 보석상 강도 장면에서의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용의주도함 속에 수반되는 폭력성은 스크린 너머의 관객을 마비시킨다. 더스틴 호프만은 배우로서의 타고난 재능을 그 자체로 입증해 보인다.

  그가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1979)'에서 메릴 스트립에게 군기 잡는다고 물컵 던지고 뺨 때린 일(두 가지 모두 대본에는 없는 장면이었다) 생각하면 비호감이긴 하다. 신인이나 다름없었던 메릴 스트립은 그런 수모를 감수해야 했고, 시간이 한참 지난 나중에서야 호프만의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씁쓸하게도, 재능의 세계란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더러운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더스틴 호프만의 천부적인 연기는 'Straight Time'의 주요한 뼈대를 이룬다. 이 영화에서 호프만과 짝을 이루는 여배우 테레사 러셀의 감성적인 연기도 아주 좋다. 그다지 큰 비중은 아니지만 극의 조화로운 흐름에 기여하는 러셀의 연기는 '저런 여배우가 있었나'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찌 생각해 보면 'Straight Time'의 내러티브는 다소 단조롭고 진부하기도 하다. 범죄자에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이 사회적 편견과 가석방 시스템에 좌절해서 다시 범죄의 악순환에 빠져든다. 가석방 담당 공무원은 맥스를 돕는 것이 아니라, 모욕을 주고 재활의 의지를 꺾는다. 구치소에서 나온 맥스는 분을 이기지 못해 그를 폭행하고 도로에서 바지를 벗겨 망신을 준다. 공권력은 길바닥에 나뒹굴며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맥스는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맥스의 현재에서 과거에 이르는 머그샷들이 차례로 제시된다. 그에게 숨쉬는 것처럼 범죄가 익숙했던 데에는 그토록 오랜 기원이 있었다. 자신의 계획을 완수하고 마침내 어디론가 떠나는 '찰리 베릭'처럼 '맥스 뎀보'도 길 위에 서있다. 아마도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과소평가된 이 두 편의 범죄 스릴러 영화에는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어둡고 서늘한 기운이 감지된다.    
  

*영화 '미저리(Misery, 1990)'의 캐시 베이츠가 맥스의 친구 윌리의 아내로 나온다. 젊은 날의 날씬하고 수수한 외모의 베이츠를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radiotimes.com


***사진 출처: theplaylis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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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탄 기차가 데려다준 곳, 뜻밖의 사랑 이야기가 있는 영화 세 편

'운명의 아이러니(Ирония судьбы, или С лёгким паром!, The Irony of Fate, or Enjoy Your Bath!, 1975)', 엘다 라자노프 감독
'런치 박스(The Lunchbox, 2013)', 리테쉬 바트라 감독
'황무지(Badlands, 1973)', 테렌스 멜릭 감독


1. 소련 시절의 기념비적 로맨틱 코미디, 운명의 아이러니

  소련의 예술 창작 원리인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로맨틱 코미디는 어째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코미디에 재능있는 엘다 라자노프 감독은 그걸 잘 해내었다. 1977년작 '오피스 로맨스(Служебный роман, Office Romance)'는 애 딸린 이혼남과 나이든 독신녀와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로 큰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그 이전에 만들어진 '운명의 아이러니(The Irony of Fate, or Enjoy Your Bath!, 1975)'는 라자노프를 명실상부한 코미디의 제왕으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TV방영용 2부작 영화인 '운명의 아이러니'는 1976년 1월 1일에 시청자들에게 선보였다. 첫 방영 때 1억 명의 소련 시청자가 관람한 이 영화는 쏟아지는 재방영 요청에 2월에 다시 편성되었다. 그 후, 해마다 12월 31일이면 이 영화를 TV에서 틀어주는 것이 소련의 문화적 관습이 되었다. 참으로 소련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노총각 외과의사 제냐는 마음에 둔 아가씨 갈리야에게 청혼을 하려는 참이다. 갈리야에게 자신의 아파트 열쇠를 주며 새해 첫날에 집에 오길 부탁하는 제냐. 그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은 늘 절친들과 목욕탕에서 만나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만취하고 만다. 취한 상태의 친구들은 레닌그라드에 사는 파벨을 비행기에 태워 보내는 대신 제냐를 보낸다. 술에 취한 제냐는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불러주고 아파트에 도착한다. 어떻게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쓰러져 누워 자는데, 그 집 주인인 나디야는 침대에 누워있는 낯선 남자의 존재에 혼비백산한다. 우연의 일치로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에 같은 모양으로 지어진 아파트가 같은 주소에, 심지어 아파트 열쇠마저 같았던 것이다. 나디야의 집에 오기로 한 약혼자 이폴리트, 제냐, 모스크바에서 제냐를 기다리는 갈리야, 이 네 명의 엇갈린 만남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무려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가진 이 영화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노래 사랑하는 러시아 사람들답게 남녀 주인공들이 기타치면서 노래도 여러 곡 부른다. 무엇보다 제냐와 나디야 역을 맡은 안드레이 미야코프와 바르바라 브릴스카의 호흡이 아주 좋다. 브릴스카는 폴란드 출신의 배우로 라자노프 감독이 이 영화를 위해 특별히 캐스팅했는데, 정말로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브레즈네프 시대에 도시마다 찍어낸 것처럼 만들어낸 비슷한 아파트를 소재로 했다. 운명의 장난으로 만나게 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2. 참신하고 세련된 인도 로맨스 영화, 런치 박스

  인도의 리테쉬 바트라 감독의 '런치 박스(The Lunchbox, 2013)'도 예기치 못한 실수가 맺어다준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인도의 대도시 뭄바이, 이곳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집에서 만든 도시락을 점심마다 배달시켜 먹는다. 남편과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둔 일라는 무관심한 남편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도시락 반찬 만들기에 온힘을 쏟는다. 이웃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정성들여 만든 도시락은 배달원의 실수로 남편이 아닌 퇴직을 앞둔 홀아비 공무원 사잔에게 배달된다. 일라는 곧 도시락이 잘못 배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어쩌다 쓰게 된 쪽지를 주고 받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친밀한 감정이 싹튼다. 그러는 와중에 일라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낀다. 일라와 사잔은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사잔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는다.

  노라 에프론 감독의 '유브갓 메일(You've got mail, 1998)'을 떠올리게 하는 '런치 박스'의 설정은 이메일 보다 구식인 '손편지'이다. 이 의외의 설정이 강력한 유인물로 작용한다는 것은 영화를 보다 보면 알 수 있다. 얼굴도 모르는 두 사람이 매일 도시락 속에 넣은 편지를 확인할 때의 설레임과 짜릿함이 스크린 너머 그대로 전해진다. 일라와 사잔이 편지를 통해 나누는 추억과 일상은 점차 서로의 마음을 물들인다. 마치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처럼 사랑이 그렇게 찾아온다. 뭄바이의 독특한 도시락 배달 시스템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덤이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대사는 사잔의 후임 셰이크가 하는 대사일 것이다.

  "때론 잘못 탄 기차가 우릴 목적지에 데려다 줍니다."


3. 낯설고 기이한 종착지, 황무지

  '운명의 아이러니'와 '런치 박스'의 주인공들이 잘못 탄 기차 같은 실수 때문에 사랑의 목적지에 이르게 되는 것과는 달리, '황무지(Badlands, 1973)'의 종착지는 낯설고 기이하다. 테렌스 멜릭(Terrence Malick)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아서 펜의 1967년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의 마일드 버전 같은 느낌을 준다. 사우스 다코타주의 시골 마을, 억압적인 아버지와 살고 있는 15살 홀리(시시 스페이식 분)는 25살의 청소부 키트(마틴 신 분)와 알게 된다. 홀리는 제임스 딘을 닮은 키트에게 끌리지만, 홀리의 아버지는 둘의 만남을 반대한다. 홀리의 아버지에게 적대감을 드러낸 키트는 총을 쏘아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결국 시신과 집을 불태우고 정처없이 길을 떠나는 홀리와 키트. 이 괴상한 한 쌍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몬태나주의 황무지로 들어간다. 황무지에서 보낸 둘만의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곧 현상금 사냥꾼을 비롯해 경찰과 주방위군이 그들의 뒤를 쫓는다.

  좋아하는 여자의 아버지를 죽인 남자, 그리고 그 남자와 길 떠나는 여자. 이 잘못된 인연의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 추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황무지'는 테렌스 멜릭이 그려낸 1970년대 미국의 황폐한 내적 자화상 같다. 홀리의 아버지와 집으로 상징되는 기성 세대의 권위와 가부장적 질서에 거침없이 총질을 하고 불까지 질러 멸실에 이르게 하는 장면은 참혹하다. 홀리와 키트가 마주하는 몬태나의 황량한 풍경들은 마치 베트남전의 패배가 남긴 젊은 세대의 내적 트라우마처럼 보인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선율 속에 펼쳐지는 이 기이한 범죄 스릴러 영화는 쓰디쓴 뒷맛을 남긴다.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도, 방향성도 잃은 세대. 멜릭은 서정적인 풍광 속에 정신병적 징후를 지닌 키트와 철부지 십대의 로맨스를 짜넣는다. 잘못된 만남은 어그러진 여정으로 이어지고, 도착한 곳에서 보게 되는 것은 파멸일 뿐이다. 테렌스 멜릭이 '황무지'에서 보여준 영화적 감성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나았을 텐데, 그의 2011년작 'The Tree of Life'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만 나온다. 멜릭의 영화 종착지는 의미없는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어쨌든 이 '황무지'와 '천국의 나날들(1978)'은 볼만한 영화이므로 멜릭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챙겨볼 것을 추천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en.unifrance.org


***사진 출처: themusichal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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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9편   'The Adventure(1956-1961)'               1시간 54분
Jazz 10편  'A Masterpiece by Midnight(1961-2001)'    1시간 48분


  7편은 비밥의 문을 열었던 찰리 파커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 이어진 8편에서는 비밥(Bebop), 쿨 재즈(Cool Jazz)를 비롯해 실험적인 Avant-garde Jazz, Free Jazz가 융성했던 1960년대를 담아낸다. 2차 대전의 승전국으로서 미국은 새로운 시대의 패권을 차지하며 황금기를 구가한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 인종 문제로 인한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다. 흑인들의 인권 운동이 본격화 되는 가운데, 재즈 음악계도 급변하고 있었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는 그 시기를 대표하는 재즈의 젊은 피였다. 찰리 파커와 함께 했던 비밥 시절을 거쳐 마일스 데이비스는 쿨 재즈의 탄생에 기여한다. 한편, 레이 찰스(Ray Charles)는 재즈에 블루스적인 감성을 결합시켰다.

  그런 가운데 엘비스 프레슬리는 블루스를 모태로 한 새로운 음악 락앤롤(Rock and roll)을 들고 나왔다. 그의 등장에 청중은 열광했고, 상대적으로 재즈 음악계의 지분은 축소되었다. 물론 뛰어난 인재들은 계속 나오고 있었다. 테너 색소폰 연주자 Sonny Rollins는 복잡한 화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재능을 선보였다.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는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과 음반 작업을 함께 하며 감성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그 시기에 대형 음반사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냈던 음반들은 크게 히트했고, 그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트럼펫 연주자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은 놀라운 재능과 함께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음악인이었다. 그 시기 재즈 음악계를 휩쓸었던 마약에 물들지 않았고, 술과 담배도 하지 않았다. '바른 생활 사나이'처럼 살았던 그는 비운의 교통사고로 서른 여섯의 삶을 마감한다. 찰리 파커의 이른 죽음과 함께 재즈 음악계가 감당해야했던 큰 손실이었다. 드러머 맥스 로치(Max Roach), 재능있는 피아니스트이며 가수였던 사라 본(Sarah Vaughan)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아트 블래키(Art Blakey)는 '재즈 메신저스(The Jazz Messengers)'를 이끌면서 '하드 밥(Hard bop)'을 만들어 나갔다. Blue Note 음반사와 함께 하며 명연주를 쏟아내던 블래키는 열정적인 순회 공연으로 이름을 알렸다. 

  듀크 엘링턴은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것을 역전시킨 것은 1956년에 열린 Newport Jazz Festival이었다. 엘링턴은 기사회생한다. 루이 암스트롱의 전성기는 계속 이어졌다. 독보적인 트럼펫 연주자인 동시에 엔터테이너의 재능까지 겸비한 그의 위치는 견고했다. 흑인 인권 운동의 격랑 속에서 암스트롱은 분명한 자신만의 목소리를 냈다. 예정된 공연이 줄줄이 보이콧 당하는 일을 겪었고, 1959년 이탈리아에 가서는 심장마비를 겪기도 했다. 1959년, 20년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무대에 섰던 빌리 할러데이가 세상을 뜬다. 마약 중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재즈의 여왕이 숨을 거둘 때의 나이는 마흔 넷이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의 한계를 실험하는 여정에 나섰다. Gil Evans와 협업한 음반 'Kind of Blue(1959)'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잘 나가는 거물 뮤지션이 된 그는 거침없이 부를 과시했고, 여자를 갈아치웠다. 데이비스는 정말로 놀라운 재능을 지녔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의 동료들이 성토하는 증언을 정리하면 이렇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그 격동의 시기에 재즈의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 오넷 콜먼(Ornette Coleman)이 등장한다.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는 극도의 실험적 재즈를 구사하는 콜먼의 음악은 'Free Jazz'라고 불린다. 이제 사람들은 '재즈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콜먼의 아방가르드적 실험은 이후 40년 동안 재즈 음악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유와 혼란 속에 1960년대가 열린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10편에서는 1960년대 이후 이어진 재즈계의 변화를 살펴본다. 스탄 게츠(Stan Getz)는 카를로스 조빔과의 협업을 통해 보사노바(Bossa Nova) 열풍을 만들어 낸다. 그런 가운데 루이 암스트롱이 1971년에, 듀크 엘링턴은 1974년에 세상을 뜬다. 두 사람 모두 재즈 음악의 산증인이며 재즈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죽기 전까지 재즈 음악에 헌신했으며, 무대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이들이 퇴장할 무렵에 재즈 음악계는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었다. 나이든 세대의 청중들은 모두 TV 앞에 앉아 있었고, 젊은 세대는 재즈 음악을 즐겨 듣지 않았다. 무엇이든, 놀랍고 기발한 것이 필요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다. 다양한 악기와 장르를 재즈에 결합시킨 그는 Fusion Jazz를 선보였다. 말 그대로 데이비스가 개척한 음악의 길은 재즈의 새로운 길이 되었다.

  재즈의 침체 시기에 빛을 비춘 것은 다시 돌아온 거장이었다. 14년 동안 유럽에 머물렀던 덱스터 고든(Dexter Gordon)이 귀환했다. 또한 윈턴 마샬리스(Wynton Marsalis)를 비롯해 새로운 세대가 재즈 음악을 하기 위해 모여든다. 재즈는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적 조류와 합류하며 자신의 물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말로 마무리되는 이 마지막 10편을 끝으로 켄 번즈의 재즈 음악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이 시리즈의 1편 제목은 'Gumbo'였다.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에서 유래된 이 요리는 다양한 채소와 해산물을 섞어 만든 일종의 잡탕 수프이다. 거기에는 아프리카, 프랑스, 스페인의 요리 유산이 접목되어 있다. 초창기 재즈의 탄생도 그와 같았다. 가스펠, 아프리카 뮤직, 카리브 민속 음악 등 여러 종류의 음악이 합쳐져 탄생한 '재즈'는 변화와 혁신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왔다. 어느 누구도 '재즈'의 정의에 대해 쉽게 말하기 어렵다. 그 다양한 음악적 색채와 역사가 재즈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켄 번즈의 이 미니 시리즈는 재즈가 '미국 남부 흑인의 음악'에서 '세계인의 음악'이 되기까지의 역동적인 과정을 잘 담아냈다. 



*사진 출처: rollingstone.com     Miles D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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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숭 시네마텍', 참 그리운 이름이다. 1995년에 그 영화관이 문 열었을 때, 마치 새로운 영화 세계가 열린 것 같았다. 동숭 시네마텍의 구조가 관객 친화적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비좁은 외벽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을 감수하고 그곳에 갔던 이유는 단 하나, 좋은 영화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거기에서 본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1988)'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내가 머릿속에 담고 갈 영화일 것이다. 그리고 아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도 그곳에서 만났다. 그때 상영관 좌석은 거의 매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주인공 꼬마 아마드가 달려가는 갈지자(
之) 모양의 산길,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공책에 살포시 꽂혀있는 작은 풀꽃. 진짜 그 두 장면이 다였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떴을 때, 굉장히 허탈하고 사기 당한 기분이 들었다. 뭐 저딴 영화가 다 있냐, 하면서 영화관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키아로스타미는 그 후로도 불호 감독이었다. 이 양반은 예술 영화를 표방하면서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기술이 있었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와 '체리 향기(1997)'를 챙겨서 보기는 했으나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장면 장면들이 가끔씩 생각나곤 했다. 나는 그 영화가 가진 소박함과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그 영화는 '세월의 힘'이 필요한 텍스트인지도 모른다. 젊은 나이에는 그런 느린, 매우 심심한 영화를 밀쳐두기 마련이다. 아마도 그의 유작이 된 '24 Frames(2017)'도 나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영화는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1527-1569)의 '눈 속의 사냥꾼' 그림에서부터 시작한다. 풍경화를 통해 당시 민중의 생활상을 보여주었던 브뤼겔의 이 그림이 '24 프레임'의 첫 프레임을 장식한다. 키아로스타미는 그림과 사진 같은 정지된 이미지가 순간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 그 전과 후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을 매혹시킨 그림을 비롯해 직접 찍은 사진을 가지고 연속된 장면을 구성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키아로스타미의 생각을 펼치기 위해 쓰인 도구는 최첨단 영상 기술이었다. 첫 번째 프레임의 '눈 속의 사냥꾼'을 응시하던 관객은 그림의 중경에 위치한 집 굴뚝에서 연기가 점차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그와 함께 근경에 자리한 사냥꾼 옆의 나무 위 까마귀가 우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뭐지?'하는 당혹스러움 속에 그렇게 첫 프레임이 지나간다. 영화는 이렇게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된 24개의 짧은 영상들을 엮었다.

  24개의 프레임은 대부분 숲과 나무,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동물들이 나오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Frame'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대상을 고정된 카메라로 찍은 단일한 롱쇼트가 화면을 채운다. 각각의 프레임에서 무엇이 재료가 된 원본인지 구분해내기는 어렵다. 그것이 명확하게 드러난 프레임은 15번째로 다리에서 파리의 에펠탑을 바라보는 무슬림 관광객들이 나온다. 어둑해지는 저녁 풍광 속에서 아마도 가족으로 보이는 그들은 관객에게 등을 보이며 서있다. 에펠탑에는 불이 켜지고, 그들 뒤로 거리의 악사와 다른 행인이 지나가면서 카메라를 응시한다.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에펠탑의 풍경에 매혹된 그들은 멈춰진 시간 속에 머문다. 무슬림, 이란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던 그에게 이미지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은 평생의 과업이었다. 그렇게 15번째 프레임에서 나는 영화 감독 키아로스타미의 정체성을 엿본다.

  그는 이 영화를 편집하던 중에 세상을 떴다. 남은 작업을 마무리한 것은 아들 아흐마드였다. 키아로스타미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이 작품을 만든 것은 아니었음에도, '24 Frames' 곳곳에서 죽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까마귀'의 존재이다. 첫 번째 프레임인 브뤼겔의 그림 속에 있던 까마귀들은 이후 여러 프레임에서 출몰하며, 그들이 내는 소리는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사냥감의 사체를 뜯어먹는 눈 속의 늑대들, 총 소리와 함께 해변가에 떨어지는 갈매기, 전기톱 소리에 프레임에서 사라지는 두 그루의 나무, 그러한 이미지들은 모두 '죽음'과 이어져 있다.

  예외적으로 9번째 프레임에서는 짝짓기 하는 사자 한 쌍이 나온다. 천둥과 번개가 치는 요란한 풍광 속에서도 무심한듯 생식행위에 몰두하는 이 사자들은 생명의 한 장면을 묘사한다. 그런가 하면 총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달아나던 사슴 무리에서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는 숫사슴도 있다. 5번째 프레임의 숫사슴은 도망치는 무리를 거슬러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그 사슴이 기다리던 또 다른 사슴이 마침내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을 때, 둘은 무리가 떠난 방향으로 함께 떠난다. 16번째 프레임에서는 낯선 타자와의 만남이 그려진다. 들오리는 철망으로 둘러쳐진 집오리 농장을 계속해서 기웃거린다. 집오리와 들오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탐색한다. 그러나 멀리서 지나가는 사람의 존재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야생 동물과 가축의 세계를 나눈다.

  영화의 마지막 프레임에는 어두운 창가의 책상에 켜진 노트북 컴퓨터가 중앙에 자리한다. 컴퓨터 화면에는 편집 프로그램이 떠있고, 윌리엄 와일러의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46)' 남녀 주인공들의 키스신이 재생되고 있다. 아주 느린 배속으로 서로를 향해 가까워지는 주인공들과 함께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이 프레임에서 흐르는 노래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Love Never Dies'이다. 책상에서 잠든 것처럼 보이는 노트북 앞의 여성은 가끔씩 팔과 머리를 들썩인다. 24번째 마지막 프레임의 모든 것은 부자연스럽다. 뚝뚝 끊기며 결국 키스신에 도달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비롯해 밤에서 아침에 이르는 긴 시간의 밝기 변화는 수 분 안에 이루어진다.

  우리가 보는 모든 '영화'는 그러한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 가공된 이미지들이다. 오늘날의 관객들은 더이상 영화에서 '현실'과 '가상'의 이미지들을 구분해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키아로스타미는 정지된 스틸 컷들의 환상적인 CGI 변환 작업을 통한 결과물을 '24 Frames'로 남겼다. 생의 끝자락에 서있던 노감독은 '영화'라는 매체의 기술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영화'의 본질은 이미지 그 자체에 대한 매혹에 있음을, 그 마법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노래한다.

  3번째 프레임에서 해변가에 죽은 것처럼 쓰러진 소 옆에 까마귀가 한두 마리씩 날아든다. 파도가 들이치는 가운데 소떼가 드러누운 소 옆을 지나가고,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됨을 본다. 그러나 파도와 모래에 파묻힐 것처럼 보였던 그 소는 마지막에 벌떡 일어난다. 까마귀는 놀라 날아간다. 누워있는 소의 정지된 하나의 이미지만을 본다면 우리는 그러한 놀라움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초당 24개의 연속된 프레임으로 구성되는 영화라는 이 요술 상자에서는 기이한 마법이 펼쳐진다. 나 또한 그 마법에 사로잡힌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 멀리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리는, 스러져 가는 생의 뒤안길에서 영원을 노래하는 이 영화에서 나는 뜻밖의 충만함를 발견했다. 



*사진 출처: wikipedia.org   피터 브뤼겔 '눈 속의 사냥꾼',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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